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20
319화 면벽(2)
무림의 재판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무림은 입법, 사법, 행정부를 나누어 서로를 견제하게끔 하는 삼권 분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이렇게 재판을 받는 것도 구룡성의 최고위층이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지간하면 현장에서 즉결 처분으로 끝난다.
정말 민주주의 정신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무림이었다.
‘아…… 그건 현대 중국도 마찬가지구나.’
여하튼, 그런 가혹한 재판에서 피고인이 된 나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부닥쳤는데.
“죄인 진무전은 전룡당주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함부로 움직여 성의 위신에 먹칠하고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만한 일을 벌인바, 중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번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은 문상 때문이었다.
“아니, 일단 제 얘기를 들어 보시면…….”
“닥치시오! 어디 죄인이 함부로 입을 놀린단 말이오!”
“아니.”
자기변호도 못 하게 하면 어떡하냐고.
변호사도 없는 세상에서.
더욱 환장할 노릇은 따로 있었다.
“하여, 저는 죄인 진무전에게 오 년의 뇌옥형을 선고하고자 합니다. 이견 있으신 분 계십니까?”
“…….”
검사가 된 문상이 판사까지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구형을 지가 때리고 판결도 지가 내린다니.
‘심지어 변호까지 못 하게 해.’
정말 야만적인 재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자리에 배석한 당주들을 쳐다봤다.
오늘 재판의 배심원들이었다.
그랬다.
검사와 판사가 동일 인물인 이 야만적인 재판은 어이없게도 미국식 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형식적인 제도이긴 하다.
재판이 구룡성의 고위층에게만 적용되기에 배심원제를 취하고 있는 것뿐, 만약 오늘의 피고가 내가 아니었다면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상이 저토록 강력하게 나오는 상황에선 그들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기에 나는 영혼의 듀오인 적룡당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도와주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문상이 너무 강하게 나오는구나.] [그럼 이대로 뇌옥에 가라고요?] [……네가 잘못한 건 맞지 않느냐?] [이대로 가면 혼례식이 5년 정도 미뤄질 건데…… 화란이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크흠…….] [뇌옥에서 혼례식을 올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니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조.님.] [자, 장조?]내 말이 제대로 먹혔는지 그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빠르게 움직였다.
[알았다. 내가 한번 나서 보마.]적룡당주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도 작은 의견을 말할까 싶소만…….”
“말씀하십시오.”
“내 문상의 의견은 통감하나 그에게 선처를 통한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소. 아무리 큰 사고를 쳤다 해도 내성의 당주가 아니오?”
“그렇습니다. 죄인이라도 기회를 줘야죠. 그래서 저는 전룡당주에게 뇌옥에서 편히 쉴 기회를 주려 하는 겁니다.”
‘아니.’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거냐고.
칼로 찔러도 끝도 안 들어갈 것만 같은 반응에 적룡당주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노처녀로 전직하게 될 자신의 손녀를 떠올렸는지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재차 의견을 냈다.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일단 성주님의 하나뿐인 의발 전인이 아니오? 또한, 전룡당주가 훗날 구룡성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라는 건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을 터, 나는 그런 점에서 최대한 선처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보오.”
“하나…….”
“그래, 백번 양보하여 문상의 뜻대로 한다고 칩시다. 하면 우리가 얻는 게 뭐가 있겠소? 성에서 손꼽는 고수를 뇌옥에 가둬 봤자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오만?”
“사자맹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효과가 있겠지요.”
“사자맹? 허어, 언제부터 우리 구룡성이 사자맹의 눈치를 봤다고…….”
“전쟁이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정녕 전룡당주를 뇌옥에 가두면 일어날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보는 거요?”
“가능성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선처해야 할 것이 아니오?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전쟁이 터지면 전룡당주가 가장 앞장서서 놈들을 무찔러야 하니 말이오.”
“하나, 그것도 그리 볼 수가 없는 게…….”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마치 진보와 보수의 대표 논객들이 참석한 99분 토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묵룡당주가 동의하는 의견을 보탰다.
“나 역시 적룡당주의 의견에 동의하오. 전룡당주가 치기 어린 마음에 섣불리 움직인 건 백번 맞으나 젊은 그를 뇌옥에 가둬서야 안 된다고 보오.”
“그러니까 더욱 중형에 처해야 하지요. 이런 큰일을 저질러 놓고 어영부영 넘어가면 전룡당주가 성의 규율을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큰 인물이 될 사람일수록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책임지겠소.”
“예?”
뜬금없는 선언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성주님이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소? 하여 어렸을 적 전룡당주를 훈육했던 내가 책임지겠다는 소리요.”
“책임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규율을 가벼이 여긴다면 가르칠 것이고 치기 어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바로잡아 줄 것이며 벌을 받을 일이 생기면 함께 받겠다는 뜻으로 말한 거요.”
묵룡당주의 선언에 모든 당주가 감명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 당주님.’
도무지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렸을 적 키워 준 것도 모자라 가족이 부탁해도 거절한다는 보증까지 서 주다니.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닌가.
묵룡당주의 이름이 무보스 선정 ‘가장 존경하는 인물’ 랭킹 최상위권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니 어쩔 수 없군요. 참작하여 결정을 내릴 테니 그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시도록 하겠습니다. 묵룡당주께선 함께 가셔서 고견을 나눠 주실 수 있으신지요.”
“알겠소이다.”
무림의 메가코프 구룡성의 지분권자들이 한목소리로 의견을 내뱉자 문상은 한풀 누그러진 기세로 휴정을 선언했다.
아마, 묵룡당주의 의견을 받아들여 판결문을 작성해 오려 하는 것 같았다.
[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예비 손녀사위를 위해 나선 것뿐이지.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날을 잡자꾸나.] […….]그렇게 적룡당주에게 감사의 전음을 보내고 있던 차.
“이제 곧 판결을 내릴 테니 귀빈들께선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문상과 묵룡당주가 돌아왔다.
‘최악의 경우라도 벌금형이다.’
묵룡당주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걸로 보아 십중팔구 무죄 방면으로 보였다.
“죄인 진무전은 들으시오.”
“예이!”
“…….”
대답을 하자 문상이 눈으로 욕을 해왔다.
“아니, 들으라고 해서 대답한 건데…….”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사자맹의 영역에서 멋대로 저지른 그대의 행위로 인해 성의 외교와 안보에 문제가 생겼으니 본래 중형을 선고함이 불가피하다.”
“…….”
“하나, 범행의 동기가 힘없는 이들을 위한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곳에 모인 당주들의 의견이 선처해 주자는 쪽으로 모였던바.”
두근두근.
“일 년간의 면벽형에 처한다.”
“아니.”
무죄 분위기 아니었냐고.
* * *
재판을 끝낸 문상은 북궁백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성주 전 가장 깊숙이 있는 모옥에 다다랐을 즈음 그는 평소 보지 못했던 광경을 목격했다.
화왁! 퍼어엉!
북궁백이 몸을 움직이며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하는 일이라곤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는 것밖에 없는 그를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문상은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굉장하다.’
북궁백이 발을 구르면 땅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손을 뻗으면 공기가 타올랐으며 전신에는 새빨간 기운이 용암처럼 둘려 있었다.
그야말로 화신(火神)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후우.”
북궁백이 내공을 거두며 숨을 내뱉자 문상이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어찌 됐나?”
“일 년간의 면벽형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면벽?”
북궁백이 눈살을 찌푸리자 문상이 이유를 설명했다.
“당주들이 한목소리로 선처를 바라는 탓에…….”
모두 들은 북궁백이 단언했다.
“그놈이 수를 썼겠지.”
“……설마 죄인의 신분으로 그 정도까지 했겠습니까?”
“더한 처지여도 할 놈이 아닌가.”
“…….”
“사자맹 쪽은 어떤가?”
“아직은 조용합니다.”
“조용히 넘어갈 놈들이 아닌데?”
“아무래도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니 공식적으로 움직이진 못하는 듯 보입니다.”
“물밑에서 움직일 거라는 소리로 들리는군.”
“하여 정보각의 인원을 총동원해 살피는 중입니다.”
북궁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뇌옥에 가둬 놔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괜찮네. 할 만큼 했어. 당주들이 그놈 편을 드는데 자네가 어쩌겠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북궁백의 눈빛은 차가웠다.
사자맹의 칼날이 날카롭기 그지없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전의 무공은 적수를 찾기 힘들다.
아마 사자맹주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구룡성의 영역에서 그를 해치진 못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칼날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목표가 고수여서 죽일 수 없다면 가족을 노린다. 만약 그것도 힘들다? 그럼 주변인을 노리기 시작한다.
문을 지키는 위사,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 차를 날라 주는 시비, 마차를 모는 마부, 단골 주점의 주인까지.
그 대상이 무공을 일초반식(一招半式)도 모르는 평범한 양민이어도 사자맹은 칼을 휘두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에 북궁백은 흑산호를 파견하여 전룡당과 전룡당의 사업체를 암암리에 지키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흑산호가 구룡성의 최정예라고 해도 그 숫자가 겨우 서른.
어디선가 구멍이 뚫릴 테고 죽는 이는 무조건 나온다.
그렇기에 무전을 뇌옥에 가둬 두려 한 것이다.
성질을 참지 못해 사자맹으로 쳐들어갈까 염려됐던 탓이다.
당장 이번만 봐도 눈을 감아야 하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누굴 닮아서 성질머리가 그따윈지…….”
“아무래도 스승이신 성주님을 닮은 게 아니겠습니까?”
“…….”
작은 농담에 북궁백이 피식하고 웃었다.
“감시를 철저히 하게나. 그놈 성격에 일이 생기면 또 발광하며 뛰쳐나갈 테니.”
“혹시, 전왕께 부탁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분이라면 전룡당주를 언제든지 제압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싶지만, 일 년 정도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한다더군.”
“중요한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버지는 평생 남궁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준비를 한 사람이지. 중요한 일일 걸세.”
자신의 아버지가 사귀는 여인을 보러 갔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북궁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그를 보던 문상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좋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싶습니다.”
“말해 보게.”
“면벽 장소를 은자림으로 하는 겁니다.”
“은자림?”
“예, 그곳이면 진 당주가 날뛰어도 제압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금지이니만큼 외부에서 소식도 들어오지 않을 테고요.”
“묘수로군.”
그렇게 무전의 면벽 장소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