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23
322화 면벽(5)
안휘상방.
흔히 휘상이라 불리는 곳의 주력 품목은 바로 소금과 쌀이다.
길게 뻗은 해안가와 넓디넓은 평야에서 나오는 축복.
이 두 가지 축복은 휘상과 그들의 주인인 사자맹에 커다란 부를 안겨주었고,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일단의 무리가 안휘 최대의 소금 창고를 향해 접근했다.
“준비는 끝났나?”
“예, 모두 챙겨 왔습니다.”
“잘했군.”
육학과 북궁장환이 이끄는 자경대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육학이 보름 전, 유소평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힘을 보여 주는 것은 좋으나 그런다고 해서 사자맹 놈들이 멈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만?’
‘당연히 멈추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더욱 날뛸 수도 있죠.’
‘하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대신 경각심을 품게 될 겁니다.’
‘경각심?’
‘예. 계속 건드리면 크게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경각심이요.’
‘그것만으론…… 의미가 없지 않나.’
‘맞습니다. 부족하죠. 하여 총주께 한 가지 일을 더 부탁드리려 합니다. 사실 이게 진짜고 도적질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어떤 것인가?’
천하의 철혈패에게 도적질을 부탁하다니.
실로 당돌한 군사가 아니던가.
피식하고 웃은 육학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세.”
“예.”
그날 밤.
소금 창고는 철저하게 불에 탔고 산처럼 쌓여 있던 소금은 하나도 남김없이 숯덩이가 되었다.
* * *
육학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숨어 휘상들을 타격했다.
이에 사자맹은 정예를 급파하여 그를 추적하는 한편, 서쪽으로 이어지는 퇴로를 막았다.
어차피 돌아갈 길은 뻔하니 추적하기보다 덫을 놓는 데 힘을 쓴 것이다.
하지만, 육학은 서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추격이 따라붙은 걸 눈치채자마자 습격을 멈추고 동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잘 있었나?”
“이런 정 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이십 년이 지나서야 찾아오는 게 말이 되나?”
자신의 친우이자 현 황실의 우도독, 조명산을 만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자맹의 기세를 꺾을 기회가 왔는데 함께하는 게 어떻겠나?”
일만의 금군을 움직여 사자맹이 더는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그걸 논의하기 위해 내가 찾아온 것이지.”
“부디 작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마음에 들걸세. 우리 군사가 통이 작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거참 다행이군.”
조명산이 진하게 웃었다.
* * *
같은 시각.
천하 상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물건을 받지 않겠다니 대체 무슨 소리요?!”
“못 들었소? 이제부터 휘상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했소.”
“갑자기 거래를 끊겠다니…… 대체 왜?”
“그야 잘나신 윗분들께 물어보시구려.”
삼대 상방이라 불리는 한중상련과 산서상방에서 휘상들을 고립시킨 것이다.
그들은 휘상이 가져온 물건을 사지 않았을뿐더러 물건을 팔지도 않았다.
이에 휘상들은 군소 상단을 돌아다니며 거래를 하기 위해 애썼으나 소용없었다.
군소상단들 전부가 서천상단의 단주이자 한중상련의 태상련주라 불리는 묘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산서상방주의 권유인 듯 권유 아닌 강요가 있었으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철저한 고립.
바로 묘향이 떠올린 복수의 방법이었다.
물론, 손해는 있었다.
예로부터 강남은 풍족한 땅. 특히, 소금 같은 경우 강남에서 천하 생산량의 절반을 넘게 책임지고 있는바, 휘상들과 거래를 끊자 소금의 가격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묘향은 묘향이었다.
그녀는 휘상을 고립시키기 직전에 운남과 광동의 염전을 모두 사들이고 대규모의 인력을 파견해 생산량을 크게 키우는 한편, 서장으로부터 대규모의 암염을 수입하여 풀었다.
덕분에 가격이 요동친 건 잠시뿐이었고 오히려 서천상단의 염전 사업 규모만 날로 커졌다.
양령 역시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여태 모아 온 막대한 자금을 풂과 동시에 하오문의 인맥을 활용하여 표사들을 고용했다.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양령은 이 격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통상적인 금액의 세 배를 지급했다.
덕분에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위험에도 표국들은 한중상련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상련의 상단들이 안전하게 상행을 나갈 수 있게 된 건 당연했다.
무전이 면벽형을 받은 지 팔 개월.
이제 겨우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 * *
“아!”
별안간 든 아이디어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왜 이걸 이제야 생각해 냈지? 짜장 라면을 만들면 되잖아!”
조만간 시작할 라면 사업에 박차를 가할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나가자마자 만들어 봐야지.”
출소 후 제2의 인생을 위한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아니구나.
“아니지. 여긴 감옥이 아니지.”
“수련은 끝내셨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서니 때마침 무언가를 끓이고 있는 청소소가 보였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술을 증류하고 있었어요. 맨날 탁주만 먹다 보니 영 심심해서요.”
“…….”
여기까지 와서 술타령이라니.
정말 누가 데려갈지 고생길이 훤했다.
뭐, 그래도 도박은 끊어서…….
“아! 내일 저녁에 모여서 골패 치기로 했는데 오실래요?”
“…….”
정말 답이 없는 여자가 아닐 수 없다.
무시하고 걸으니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 없으시면 빌려드릴 수도 있어요!”
제발 빨리 자기네 집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청소소에게서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오 분 정도 걷자 커다란 폭포가 보였다.
콰아아.
‘으음…….’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은자림에 처음 온 날이 떠올랐다.
‘네 면벽 장소다.’
‘예?’
‘폭포수를 맞으면서 명상하는 것만큼 효과 좋은 방법이 없느니라.’
‘미치셨습니까? 휴먼?’
저기로 나를 밀어 넣으려 했던 태청진인의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무슨 화이트 노이즈도 아니고.’
주변이 고요해도 명상이 될까 말까 한데 뭣 하러 폭포수를 맞는단 말인가.
쏴아아!
그것도 돌도 쪼갤 위력의 폭포수를.
훌쩍 뛰어 폭포 위로 올라가니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채의 모옥이 보였다.
각각 이풍진인과 태청진인이 기거하는 모옥이었다.
번쩍.
“무슨 일이냐?”
“……그냥 지나가는 길인데요?”
“그럼 지나가거라.”
“예.”
좌선을 하고 있던 이풍진인의 말에 나는 소리를 죽이고 걸어갔다.
‘단운도 그렇고 청룡당은 사람들이 너무 날카로워…….’
저런 삭막함이 청룡당의 전통이 아닐까 의심되었다.
‘작은 할배는 없는 거 같고…….’
태청진인의 모옥을 흘깃 살펴봤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디 가서 낚시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오늘은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뭐, 산중이라 잡아 와 봐야 대부분 손가락만 한 피라미였지만 뼈째 씹어먹으면 나름 고소한 게 별미였다.
쭉 걸어 나가니 자그마한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음을 지닌 적화란 ver.2가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가가!”
출렁.
“…….”
달릴 때마다 힘차게 흔들리는 흉부를 보아하니 적룡당의 무공을 계승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밀함과 정확함이 생명인 무공인 것을…….’
저리 흔들려서야 무게 중심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지 않은가.
뭐, 그래도…….
‘보기는 좋네.’
와락. 물컹.
그녀가 양팔을 벌려 나를 힘차게 껴안으며 물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전백 영감하고 당두천 할배한테 가는 길.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저야 가가께 드릴 과일을 따 왔죠.”
그녀가 보따리를 펼쳐 수십 개의 산과일을 자랑했다.
“맛있겠는데?”
“하나 드셔 보셔요.”
아그작.
강한 신맛과 옅은 단맛.
이제는 꽤나 익숙한 맛이었다.
“맛있네.”
“가서 기다릴게요. 일 보시고 바로 오셔요.”
“……그러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그녀의 말을 잘 듣게 된다.
적화란과 헤어지고 조금 더 걸어가니 전백 영감의 집이 나왔다.
“왔느냐?”
“예.”
“가지고 나올 테니 잠시 기다리거라.”
태산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그가 집으로 들어가더니 곧 한 벌의 갑옷을 가지고 나왔다.
“오오!”
바로 삼노와의 격전에서 부서졌던 용린갑이었다.
망가져서 벗어 놨던 걸 본 그가 고쳐 주겠다면서 가져갔거든.
“이전만은 못하겠지만 쓸 만은 할 게다.”
“이렇게나 감쪽같이 고쳐 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험험,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 정도는 쉽지.”
은근슬쩍 얼굴을 붉히는 전백.
보면 볼수록 귀여운 면이 있는 영감이었다.
“수리비는 어떻게 드리면 되겠습니까?”
“뭔 돈이냐. 오랜만에 손맛 본 걸로 만족하련다.”
“그럴 수야 없지요. 이런 보물을 고쳐 주셨는데요.”
“정 그러면…….”
그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전장에서 갚거라.”
“갑자기요?”
“천기를 보아하니 혈겁이 멀지 않은 거 같아서 말이다. 전장에서 내 손주의 목숨을 챙겨 주면 되지 않겠느냐.”
“아니.”
또 별자리 운세냐고.
예전 같았으면 뭔 헛소리냐고 했을 테지만, 한번 정확도를 확인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부탁하지 않으셔도 챙겨야죠.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묵이 정도면 동생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클클, 고맙다.”
“아닙니다. 제가 더 고맙죠.”
“아, 두천이 놈이 너 보면 찾아오라고 하더구나. 전에 맡긴 거 다 해 놨다고.”
“그럼 가 보겠습니다!”
폭화통침은 못 참지.
당두천의 집으로 후다닥 달려가니 그가 앞마당의 풀을 뽑고 있다.
“영감님!”
“왔나?”
“다 됐다면서요?”
“그래.”
삭막한 말투였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당두천이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지.
지금도 아무 대가 없이 폭화통침을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여기 풀을 모두 뽑으면 주마.”
“…….”
정정하겠다.
겨우 풀을 뽑는 것으로 폭화통침을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어지간하면 호신기를 일으키고 뽑아라.”
“왜요?”
“극독을 품은 독초니까.”
“…….”
아무래도 노인정에 모여 살다 보니 성격이 괴팍해진 것 같다.
그렇게 반 시진 동안 독기 가득한 풀을 모두 뽑고 나서야 나는 당두천에게 폭화통침을 받았다.
“전에 쓰던 것보다 나을 거다.”
“오! 어떤 점이 바뀌었습니까?”
안 그래도 엄청난 위력을 보이던 폭화통침을 개선하다니.
역시 녹룡당 최고의 독공 고수다웠다.
“스치기만 하면 한 줌 독수로 녹여 버리는 극독을 첨가했다.”
“…….”
뭐, 위력이 세지면 좋은 거니까.
“막 혼자서 터지거나 하지는 않겠죠?”
“나를 뭐로 보는 거냐.”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사실 나도 모른다. 처음 넣어 봤거든.”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조심히 다루는 수밖에.
각오를 다지던 내게 당두천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중요한 말을 전하려는 듯했다.
“왜요?”
“혹시…… 만독지체에 관심이 있냐?”
“만독불침과 뭐가 다른 겁니까?”
“다르지. 아니, 훨씬 좋은 거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무인의 꿈 중 하나인 만독불침과 비교할 수도 없다니.
믿기지 않는 소리에 눈이 절로 떠졌다.
“그, 그게 뭡니까?”
“쉽게 말하면 독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독인이라면……?”
“독인 모르나? 숨 쉴 때마다 극독을 내뿜고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상대를 중독시킬 수 있는 독의 정점 말이다.”
“……그거 조절됩니까?”
“되면 내가 했지. 왜 네게 권유하겠냐?”
“아니.”
평생 여자 손도 못 만지고 살라는 거냐고.
조만간 두 번째 마누라도 생기는 사람한테.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왜? 잘만 하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도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 뭔가 사람의 감정이 결여된 것 같다.
“헛소리하지 마시고 이따 저녁에 술이나 드시러 오시죠.”
“……그러지.”
그렇게 당두천과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어느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고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쏴아아.
시원한 폭포 소리. 상쾌한 가을바람. 붉은 노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평화롭다.’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쿨럭?”
코에서 피가 쏟아지며.
“어…… 어라?”
시야가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