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2
062화 구룡쟁패(7)
xx
날아드는 검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용린갑이 있다 해도 검에 담긴 힘을 해소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문제는, 지금같이 최악의 몸 상태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다.
“······!”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든 검을 쳐 내기 위해 급한 대로 백무하의 안구를 터뜨리려던 손을 회수했는데.
‘빌어먹을······.’
이건 턱도 없어 보였다.
단지, 0.5초 먼저 죽냐 그 뒤에 죽냐의 차이였다.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워졌을 때.
파드드득. 콰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일광검이 튕겨 나갔다.
“······?”
어디선가 날아온 북궁백이 검을 튕겨 낸 것이다.
그가 은은한 노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내게 검을 날린 대상을 노려보았다.
“괜찮나?”
그 말을 듣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북궁백의 시선을 따라갔다.
긴 백발의 중년인이 백색의 장검 한 자루를 쥐고 서 있었다.
백룡당주, 일월신검(日月神劍) 백중천이었다.
북궁백이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미쳤소?”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뿐이오.”
“그렇다고 하기엔 검에 살의가 가득하던데?”
북궁백의 말이 맞았다.
백무하를 지키려고 했다면, 내 손을 노렸어야 했다.
가슴을 노릴 게 아니라.
“다급해서 검이 헛나갔나 보군.”
“일월신검이 헛손질이라······.”
구룡성 제일의 검객을 꼽으면 무조건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묵룡당의 태청진인.
그리고 그다음을 꼽으면 나오는 이름이 바로 일월신검 백중천이다.
그런 이름 높은 초절정의 검객이 손이 헛나갔다니.
변명이 너무나 허접하지 않은가.
그냥 자기 아들을 이긴 나를 죽이려 했다고 말하는 게 차라리 양심적이다.
피식.
북궁백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비웃음을 지으며.
파드득.
백무하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질렀다.
“······!”
백중천의 신형이 벼락처럼 쏘아지며 일광검이 터져 나왔다.
콰앙! 부스스.
비무대 전체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졌다.
확보된 시야로 전면을 바라보니 북궁백과 백중천이 백무하를 사이에 둔 채로 대치하고 있었다.
“나도 손이 헛나갔군.”
“죽고 싶소?”
북궁백이 싸늘한 눈으로 백중천을 바라봤고 그 역시 살기 등등한 눈으로 북궁백을 마주 봤다.
북궁백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냥 애들 싸움을 이어받는 건 어떤가? 각자 목숨은 알아서 챙기는 것으로 하고.”
대뜸 던진 캐삭빵 제안.
백룡당주라는 위치상 북궁백이 저렇게 나오면 쉽게 뿌리칠 수 없다.
수많은 무인을 이끄는 단체의 장인 만큼,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백중천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무리 그가 구룡성에서 둘째가는 검객이라 해도 북궁백은 초절정의 끝에 다다른 무인,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왜? 겁나나?”
“이익!”
북궁백의 가벼운 도발에 백중천이 얼굴을 붉혔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이런 소요는 한 사람이 끼어들면서 종료되었다.
“그만두시게. 온 강호의 눈이 두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은가.”
태청진인이었다.
“······진인을 뵙습니다.”
백중천의 입장에선 은인이나 다름없기에 예를 표하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려.”
반면, 북궁백은 김이 샜는지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태청진인이 백무하를 내려다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종용했다.
“승부는 난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느냐?”
백무하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시······불······.”
아슬아슬하게 잡아 뒀던 전왕기가 역류하기 시작하며 정신을 잃었다.
털썩.
여기서 자면 감기 걸리는데.
* * *
무전이 쓰러지자마자 청소소와 묘향은 비명을 질렀다.
특히, 청소소의 표정이 심각했다.
무전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직감했기 때문이다.
“진인!”
그녀가 목청을 쥐어짜 안면이 있는 태청진인을 불렀다.
태청진인 역시도 짐작했는지 무전을 안아 들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리고는 북궁백을 향해 말했다.
“호법을 부탁하려 하는데 괜찮나?”
“얼마든지.”
북궁백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달려온 외당 무사들이 그 주위를 둘러쌌다.
주변이 빈틈없이 막히자 태청진인이 무전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으음······.”
곧 작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무전의 내상이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온몸의 퍼져 있는 세맥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고 전왕기의 경력을 감당하지 못한 혈도는 막히거나 파열되었다.
내장도 손상되었는지 의식이 없는 중에도 입에서 울컥울컥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래도.
“해 보마.”
살려야 한다.
비록 묵룡당에 적을 두진 않았지만, 사형의 하나뿐인 손자였으니까.
마음을 먹은 그가 무전의 몸에 기를 흘려 넣었다.
파지직. 파직.
태청진인은 가장 먼저 무전의 몸 안에서 날뛰고 있는 전왕기를 확인했다.
전왕기는 찢어진 혈도를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 경력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는 안 그래도 찢어진 내장과 세맥에 커다란 부담을 줬다.
이걸 진정시켜야 무슨 치료든 시작할 수 있었기에.
콰아아.
그가 진신내력을 황하의 물줄기처럼 쏟아부었다.
대해와도 같은 천룡무상진기, 즉 천룡기가 무전의 몸속에서 날뛰는 전왕기를 붙잡기 시작했다.
전왕기가 워낙에 빠르고 힘이 강한지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태청진인이 하지 못하면 천하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그는 바로 구룡성에 존재하는 단 둘뿐인 화경의 고수 중 한 명이었으니까.
샤아아.
그와 무전의 몸이 푸른 빛에 휩싸였고.
무전의 몸 곳곳에서 폭풍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전왕기가 천룡기에 잡힐 때마다 경력을 피워 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한 식경.
태청진인이 마지막 전왕기를 잡아냈다.
이제 붙잡은 전왕기를 다시 기해혈에 차곡차곡 집어넣을 차례.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태청진인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그만큼 어렵고 심력을 쏟아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후우······.”
태청진인이 무전의 등에서 손을 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기는 안정시켰으니 이제부턴 네 손에 달렸구나.”
“감사합니다. 진인!”
청소소가 고개를 숙이자 태청진인이 자애롭게 웃었다.
“내 손주나 다름없는 놈이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일어선 그에게 북궁백이 머리를 숙였다.
“수하를 살려 주셔서 고맙소이다.”
“끌끌, 단순히 수하는 아닌 거 같으니 북궁 당주의 인사는 받아 두겠소.”
태청진인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무전을 들어 올린 북궁백이 청소소에게 물었다.
“집으로 가면 되오?”
* * *
집에 딸린 의원에 도착하자마자 청소소는 무전의 상태를 살폈다.
다른 의원이라면 몰라도 자신은 그를 살릴 수 있다.
그만큼, 청가장의 의술을 믿었다.
묘향과 청소소가 힘을 합쳐 무전의 옷을 전부 벗겨 냈다.
옷을 모두 벗겨 내자 용린갑을 입은 자리를 제외하고 온몸에 피 칠갑이 되어있었다.
“흑······.”
생각보다 심한 상처에 묘향이 울먹이기 시작했고.
“언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일단, 상처에 지혈산을 뿌려 주시고 뜨거운 물을 준비해 주세요.”
청소소가 냉정하게 일갈했다.
“아, 알았어.”
곧장 시작된 치료는 현대 외과의 그것과 비슷했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분을 뿌리고 소독된 바늘과 비단실로 무전의 상처를 꿰맸다.
자상과 골절 치료는 청가장이 무림 최고의 의원으로 꼽히는 이유였다.
거의 반 시진 동안 치료를 하자 더는 피가 흘러오지 않았다. 묘향이 뜨거운 물에 담가 놨던 무명천으로 무전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한시름 놓았으나 방심할 수 없다.
필시, 내상은 외상보다 더 심각할 테니까.
청소소와 묘향이 반드시 살리겠다는 표정으로 무전을 내려다봤다.
“으음······.”
“므으······.”
왠지 모르게 무전의 몸 중심으로 시선이 향하긴 했지만 말이다.
* * *
다음 날.
짹짹. 짹.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으음.”
온몸에서 느껴지는 격통.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전왕기를 아주 약간 일으켜 내상을 살피려 했는데.
“크으······.”
전신이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전왕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필시 혈도부터 세맥까지 전부 망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우욱! 웩.”
목 뒤에서 피가 넘어오는 것으로 보아 장기도 일부가 파열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일어나셨······. 어머?! 피, 피가!”
문을 열고 들어온 묘향이 화들짝 놀라며 달려왔다.
그러자 의원 구석에서 쓰러져 자고 있던 청소소가 얼른 일어났다.
“어디?! 무슨 일이야?”
잠시 살펴보던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다행이네요. 속에 고여 있던 피를 토한 거예요. 회복되고 있다는 표시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어제 어떻게 됐습니까?”
“뭐요? 비무를 말씀하시는 거면 진 조장님의 승리로 마무리됐어요.”
“아뇨. 저 말고······.”
내 질문에 묘향이 대신 답해 줬다.
“청룡검이 이겼대요. 500초를 넘게 겨룬 끝에 부족함을 느낀 묵룡검이 기권했다고 들었어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왜, 자기들만 비무를 해?
나는 피 튀기는 생사결을 치렀는데.
“끄응,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됩니까?”
“묘시 말이에요. 조금 있으면 결승전이 열릴 시간이네요. 어차피, 진 조장님은 가지 못하겠지만.”
다행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가야 합니다. 그러니 저······ 좀 부축해 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탁하자 두 여자가 호들갑을 떨며 반대했다.
“미쳤어요?! 죽을 수도 있어요!”
“소소 말이 맞아요. 어제 정말 죽다 살아난 거라고요.”
나는 두 여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미룰 수 없는 약속이 있습니다.”
단호한 의지를 느껴서일까?
눈을 마주친 묘향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진 조장님을 업어갈 사람을 데려올게요.”
“언니!”
“소소, 넌 저럴 때의 진 조장님을 몰라.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걸어갈 사람이야. 그럴 바엔 도와주는 게 나아.”
······두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려 했는데.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혼자 가?’
뭔가 나에 대해 잔뜩 오해하고 있는 묘향이었다.
곧장 문을 연 그녀가 목을 쥐어짜며 소리쳤다.
“용 무사님! 도와주세요.”
그렇게 부른다고 용마산이 올 리가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쿵.
“부르셨소.”
진짜 왔다.
이 새끼, 묘향 누이를 진짜 좋아하는구나.
“어제 비무는 잘 보았소만······. 표정이 왜 그러오? 꼭 남의 약점을 잡은 사람 같구려.”
“아니야. 그냥······ 뭐. 그나저나 나 좀 업어서 비무장에 데려가 줄 수 있냐?”
묘향이 용마산의 팔을 살짝 터치하며 내 부탁을 들어 달라 종용했다.
“진 조장님을 좀 업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의 머리가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용마산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묘 소저의 부탁이라면.”
그렇게 용마산의 등에 업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룡쟁패가 열리는 비무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웅성웅성.
나를 알아본 몇몇이 내 꼴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만. 여기서부턴 나 혼자 올라갈게.”
“괜찮겠소?”
“싸우기도 전에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잖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땅에 발을 딛자마자 오장육부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후들후들.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발걸음에 사람들이 절로 길을 비켜 줬다.
스무 걸음을 넘게 걸어 도착한 계단.
“끄응.”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난관을 지난 나는.
“······못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무대 위에서 눈을 크게 뜬 단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약속이니까.”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걸로 보인다만······. 기권을 하는 게 어떤가?”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금검진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청룡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네.”
“안 됩니다.”
“으음, 알았네. 나는 분명 말렸으니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게나.”
“걱정하지 마십쇼.”
잠시 고개를 가로저은 금검진이 외쳤다.
“그럼 비무를 시작하시오!”
단운이 한숨을 내쉬며 검을 빼 들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스무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땀방울이 비 오듯 떨어졌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 끝에 나는 그의 앞에 도착했고.
툭.
마침내, 힘없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칠 수 있었다.
곧장 몸의 통제권을 잃고 넘어졌다.
툭.
쓰러지는 나를 단운이 안듯이 떠받쳤다.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단형이 이겼소. 그러니까 인제 그만 좀 들러붙으시오. 귀찮아 죽겠수.”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 이놈 얼굴을 안 볼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초주검이 된 몸으로 이렇게까지 하다니, 과연 내 필생의 적수답군.”
이 일로 그가 내게 더욱 투지를 불태우게 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