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4
083화 사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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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
성주 직속 조직으로 구룡성의 행정 업무는 물론이고 죄인의 형별을 결정하는 법원, 대외 정책을 결정하는 외교, 전쟁 시 전략을 짜는 참모의 역할까지 하는 부서였다.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인가 싶지만, 이런 조직은 천하오패 모두가 운영하고 있었다.
의무 교육이 없는 무림 세계에서 무사는, 빡대가리를 기본 특성으로 달고 있는 족속들이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고명한 문사를 고용하거나 내부에서 키워 내 머리 쓰는 일을 맡겨야 하는 거다.
그리고 현재 구룡성의 브레인은 하늘을 꿰뚫어 본다며 천통(天通)이라 불리는 유등.
과거 십마련에 의해 망해 버린 유림주의 후손이다.
사천성은 물론이고 최근 운남성까지 손에 넣은 구룡성의 세력권을 생각해 봤을 때, 가히 일국의 재상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유등과 최단기간에 두 번이나 만나는 업적을 세우게 되었다.
“외당 일조장 진무전! 하늘 같으신 문상님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좀 과한가 싶기도 하지만 뭐, 높은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리는 게 좋으니까.
효과가 있었는지 서류에 꽂혀 있던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앉지.”
“소인이 어찌 감히 문상님과 마주 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 서서 듣겠습니다.”
“명령이네.”
“옙.”
재빨리 앉자 시비 하나가 나와 차를 가져다줬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보아 시비도 무공 꽤나 익힌 듯 보였다.
후룩.
문상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
“군사부의 군사들이 자네를 어찌 처벌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네.”
“예?”
뜬금없는 말에 의문이 솟아올랐다.
법 없이 사는 내가 왜 처벌을 받는단 말인가.
어이는 물론이고 맷돌까지 없어진 것 같은 황당함을 눈빛에 담아 바라보자 문상이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외당의 조장이라는 지위를 악용하여 백룡당의 정당한 상행위를 방해하지 않았나?”
“그럼 위험 물품을 반입하는 걸 지켜만 보란 말씀입니까? 저희로서는 저희 일을 한 것뿐입니다.”
“······무명천이 위험 물품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군.”
“모르셔서 그러시나 본데 무명천이라는 게 물에 젖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질겨집니다. 일종의 편(鞭)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그런 살인 무기가 돌아다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럼 쌀은? 세상에 밥을 안 먹는 이도 있던가?”
“모르셔서 그러시나 본데 이 쌀이라는 게 많이 먹으면 비만은 물론이고 각종 소갈 합병증을 일으킵니다. 어찌 보면 독이나 다름없지요.”
“입담 하나만큼은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더니 소문이 사실이었군. 내 앞에서 그딴 개소리를 늘어놓다니 말이야.”
“헤헤, 과찬이십니다.”
“칭찬 아니네.”
“넵.”
문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백룡당 건이야 금전적인 피해밖에 발생하지 않았으니 백번 양보하여 넘어간다 쳐도 감찰단주에게 중상을 입힌 건 어떻게 설명할 텐가?”
“그건 정당방위로 봐 주셔야죠. 죽이려고 온 사람에게 목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가 자네를 죽이러 왔다고 어찌 확신한단 말인가?”
“전후 사정을 따져 보면······.”
“나는 증거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네.”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무림에서 증거를 논하다니. 역시, 세계관 최고의 브레인다웠다.
“감찰단원들을 족쳐 보면 그의 불순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감찰단의 단원들은 성주님의 직속 부하네.”
“저 역시 성주님의 충성스러운 부하가 아니겠습니까?”
월급 받고 일해 주면 충성스러운 부하지 뭐.
“······한 마디를 지지 않는군.”
“말로 져 본 역사가 없어서요.”
“투룡이 아니라 구룡(口龍)이라고 불러도 되겠네.”
“과찬이십니다.”
“······.”
문상의 입가에 조소가 흘렀다.
착.
그가 서탁 아래서 종이 뭉치를 꺼내 내게 던졌다.
여러 사람이 작성한 의견서였다.
“군사부 서생들의 의견서일세. 읽어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자네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써 놨지.”
그의 말에 화를 참으며 콧김을 훅 내뿜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엄벌이라니.
앞으로 군사부의 서생들은 성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이틀은 걸리게 하는 건 물론이고, 외성에서 노상 방뇨라도 했다가 걸리는 날엔 몰매를 놔 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반대 의견을 내놨지. 가장 위에 있는 것을 읽어 보게.”
문상의 말대로 가장 위에 있는 의견서를 집었다.
“어라?”
아는 이름이 보여 다시 한번 읽어봤다.
“소평이?”
유소평이 작성한 의견서였다.
하지만, 그의 소속은 외당 일조. 의견서를 낼 수 있는 소속도 위치도 아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습니까?”
“어제 자네의 처분을 두고 군사부 회의가 열렸네.”
문상이 차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의 변호를 한다며 의견서를 제출하더군. 자격이 없음에도 말이야.”
“그런데도 의견서가 여기 끼어 있는 건 어째서입니까?”
내 물음을 들은 문상이 잠깐이지만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워낙 잘 써서 말이지. 군사부 서생 전부가 그 의견서에 동의했다네.”
그 말에 의견서를 살폈다.
열두 페이지에 달하는 의견서에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팩트에 기반하여 나열되어 있었고 그걸 근거로 내가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굉장히 논리적으로 잘 쓰긴 했지만.
‘탄원서가 그래봤자지 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뛰어난 변론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서생이 변호를 해 봤자 얼마나 잘하겠는가.
“어떤가? 식견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나?”
문상 정도 되는 인물이 그걸 모를리 없는바.
그럼에도 이런 반응이라면, 아들 어드벤티지가 크다는 뜻이다.
‘저번에는 데면데면하더니만······. 츤데레 스타일인가?’
평생 관심 없는 척하다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차를 사 주셨던 전생의 아부지처럼 말이다.
이제 대충 답은 나왔다.
“허어! 이런 문장이라니, 마치 제갈무후의 출사표를 보는 듯합니다!”
적당히 어울려 주며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이다.
“핫핫핫, 출사표라니! 자네도 그리 생각했는가?!”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으핫핫, 이 사람 참. 그리 안 봤는데.”
문상이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웃더니.
“소질이 있군. 합격이네.”
한순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180도 바뀐 태도에 깜짝 놀라자 그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강한 무공에 훌륭한 입담, 때에 따라선 아부도 할 줄 아니 딱이군.”
“뭐가 딱이라는 말씀이신지······.”
“정도맹에 사신으로 가기 딱 맞는다는 말이네.”
“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십마련과의 마찰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문상은 위치도 가깝고 사이가 나쁘지 않은 정도맹과 군사 동맹을 맺을 필요성을 느꼈다.
단순히 동맹만 맺어도 십마련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사신으로 보낼 사람이 없더군.”
“아니, 내성 당주만 해도 여덟인데······.”
“녹룡과 청룡, 적룡은 십마련을 견제해야 해서 성을 비울 수 없네. 그렇다고 은룡과 금룡을 보내기엔 제 잇속만 챙기고 올 게 뻔하고, 묵룡과 회룡을 보내자니 양보만 하다 올 것 같네. 남은 건 백룡뿐인데 그는 지금 누구 때문에 침상에 누워 있지.”
“크흠, 차라리 문상께서 가시는 건······.”
“내가 그리 한가해 보이나?”
“저도 바쁩니다만.”
“군사부의 서생 몇이 자네를 파문시키라는 의견을 내더군. 사지 근맥을 자르고 단전을 부수는 그 파문 말일세.”
“구룡성을 위한 일이라면 몸이 으스러진다 해도 기꺼이 달려가겠습니다.”
“좋군.”
불현듯 든 의문에 되물었다.
“그런데 배분도 명성도 안 되는 제가 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상대가 노자와 부처를 믿는 종교단체의 연합이라 해도 세상에는 급이 있는 법이다.
내성 팔 당의 부당주 급도 아닌 내가 가 봐야 무시만 당하고 올 것이 뻔했다.
어쩌면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길길이 날뛸 수도 있었다.
“누가 자네가 대표라고 했나?”
“그럼 누가 대표로······. 설마?!”
그랬다. 내성 팔 당의 당주들과 문상을 제외하면 남는 사람은 단 하나.
“구룡성엔 아홉 개의 당이 있지. 외당도 그중 하나고.”
정파의 대마두로 불리는 북궁백이었다.
“혹여 사고가 나면 자네 책임이니 부디 잘 보필해야 할 것이네.”
아니 왜······.
* * *
급히 꾸렸음에도 사신단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정도맹과 교류할 기회를 놓칠세라 각 당에서 앞다투어 에이스를 파견했기 때문이다.
역시 꽌시에 살고 꽌시에 죽는 중원 무림다웠다.
그렇게 모인 사신단의 총원은 열.
북궁백과 나, 각 당의 에이스들과 각종 서류 작업을 책임질 유소평이었다.
“대체 저는 왜······.”
“문상께서 너를 꼭 데려가라 하시던데?”
“······.”
가는 길은 당연히 편했다.
천하의 북궁백이 이끄는 사신단을 가로막을 놈은 없었으니까.
얼마나 편했는지.
“검으로 도를 이룬다는 건······. 마음가짐을 기꺼이······.”
“잠을 자지 않고 검을 수련한다면 두 배는 강해지지······.”
위지풍과 단운은 온갖 미친 소리를 해 대며 검에 관해 논의했고.
“구룡호 근처 상권이······.”
“백마산에 금광이 있다는 소문이······.”
은룡창 이종산과 금룡검 금필대는 각종 투자처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으며.
전묵은.
“좀 떨어지면 안 되냐?”
“제가 아니면 누가 형님을 보필한단 말입니까?”
“보필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강호라고 들었습니다. 항시 대비해야 합니다.”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적일은.
섬뜩.
“거참, 살기 좀 그만 보내십쇼. 뒤통수 따갑습니다.”
“······.”
나를 노려보며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적화란의 고백을 거절한 소식을 들은 모양.
마음이 좁쌀만 한 제 동생을 탓하지 않고 원인을 내게 찾는 걸 보면 역시 사이코패스 집단의 작은 주인다웠다.
이런 일이 며칠간 지속되자 보다 못한 유소평이 나섰다.
“적 공자, 노자께선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습니다. 순리대로 흐르는 물이 가장 맑다는 뜻이지요. 내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나 남녀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나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저 살귀한테 노자의 도리를 가르치다니.
혹여나 그가 칼을 휘두를까 걱정되어 튀어 나갈 준비를 했지만, 이어지는 장면에 나는 더욱 경악하고 말았다.
“······일리가 있군. 알았소. 유 문사의 말대로 두고 보도록 하겠소.”
적일이 중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으로.
‘······아니, 저게 된다고?’
도교의 위대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런 구절이 떠오르는군. 인능홍도 비도홍인,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맹자께서는······.”
그 일을 계기로 친해진 두 사람이 서로의 지식을 뽐내며 토론을 하는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지능 캐였다니······.’
적일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공맹의 도리를 들으니 혼돈의 카오스란 말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그런 미친놈들 사이에서.
“정도맹의 탄생은······. 초대 맹주는 화산검선으로······. 총원이······.”
나는 정도맹에 관해 공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상대를 알아야 협상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당주님, 정도맹에 도착하시면 고개만 끄덕이시면 됩니다. 아니, 고개‘만’ 끄덕이셔야 합니다. 아셨죠?”
“······.”
이번 협상 최고의 리스크, 북궁백의 관리도 같이 진행했다.
아무리 상대가 부드러운 성향을 보이는 정도맹이라고 하지만, 무림인이란 기본적으로 조폭에 가까운 이들.
북궁백의 트롤 짓 한 번에 모든 게 파투 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명심하게.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모든 책임은 자네가 지게 될 것이야.’
‘뭐로 책임지라는 말씀이신지······’
‘뭐긴 뭐겠나? 파문이지.’
나는 문상의 당부를 떠올리며 더욱더 확실하게 북궁백을 단속했다.
그렇게 이십 일.
마침내, 목적지인 정도맹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