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3
082화 사신
xx
초절정에 오른 그날.
나는 외성 바깥으로 나가 무공을 점검했다.
벼락같은 속도와 위력.
보신경과 전왕십삼투의 스피드가 배는 빨라졌고 초식 하나하나의 파괴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맹해졌다.
실로 엄청난 발전에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느껴진다. [힘의 차이]가.’
서 있는 곳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는 법.
절대자의 시각으로 과거를 회상해 보니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하찮구나.’
십마련의 탈혼살부.
그의 스승인 쌍부살마.
그 무서웠던 남천궁주.
감찰단주 백자천.
이 모두가 하찮게만 느껴졌다.
마치 참지 않는 말티즈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절대자의 관점인가?’
화경이 뭐고 초절정이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한 방만 제대로 먹이면 이승을 하직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그 말인즉슨.
‘드디어 패배를 설욕할 수 있겠군.’
가슴속에 박힌 트라우마를 제거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가자.”
마음을 먹자마자 적룡당으로 향했다.
그렇다.
혈귀들의 대장 적혈사신 적사중.
오늘 나는 그 사람을 꺾음으로써 구룡성에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
“한 수 배우러 왔수다.”
* * *
개같이 두들겨 맞았다.
“에구구.”
삭신이 쑤셔 와 앓는 소리를 내뱉자 적룡당주가 금창약을 던졌다.
“패기가 훌륭하더구나.”
“헤헤! 패기라니 과찬이십니다.”
“칭찬이 아니니라.”
“넵.”
“자신과 상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무인은 제 명에 못 사는 법이다. 이 점 명심하도록 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헤헤, 이 진모 오늘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요.”
“그래도 이해는 된다.”
적사중이 진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경지에 오르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지는 법이지. 나도 그랬고.”
“······적룡당주님께선 누구에게 도전하셨습니까?”
“십마련의 암종주. 그가 가진 천하제일 살검이라는 별호를 빼앗고 싶었거든.”
와우.
“······당주님이야말로 패기가 넘치셨군요.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성과가 있었으면 내가 적룡당주질을 하고 있겠느냐. 성주전을 차지하고 앉아 있겠지.”
“그럼?”
“청해성 초입도 지나지 못하고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다.”
다행이다.
뽕에 취해 온 곳이 십마련이 아니라 적룡당이어서.
“마침 오늘이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온 김에 술이나 한잔하고 가거라.”
“소생이 공무가 바빠······.”
“부숴 먹은 문이 비싼 자철목으로 된 건 알고 있느냐?”
“갑자기 입맛이 도는군요. 어디 앉으면 되겠습니까?”
“끌끌.”
잠시 후.
적왕전의 대전에 엄청난 규모의 잔칫상이 차려졌다.
특별히 귀한 음식은 없지만, 고기와 술이 가득해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와글와글.
적사중과 적일이 자리하자 적룡당의 무사들이 편한 자세로 술을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격의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흐흐, 향향이 년 엉덩이가 그냥······.”
“나는 유화루 예월이의······.”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음담패설이 오가기 시작했다.
‘화란이 걔는 여기서 어떻게 산 거야?’
아무리 살펴봐도 여자아이 교육에는 절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차, 적사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초절정에 올라 보니 어떻더냐.”
“음······ 세상이 발아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뽕 맛에 취해 여기로 와 버렸지만.
“끌끌, 바로 그걸 느끼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지. 한 잔 받거라. 축하주다.”
누가 따라주는 잔이라고 거부할까.
“옙.”
재빨리 양손으로 잔을 붙잡아 올리고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적사중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소를 터뜨렸다.
“끌끌끌, 예의도 바르구나.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지.”
“과찬이십니다.”
굳이 마음에 들어 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안 올 거니까요.
쪼르르.
그가 술병을 기울이자 향긋한 꽃내음이 풍겨 나왔다.
맡아 본 적 있는 냄새였다.
‘홍화주!’
한 병에 은 열 냥에 판매되는 무림 최고의 고급술이었다.
꿀꺽.
냄새를 맡으니 자동으로 입맛이 돌았다.
‘무조건 세 병 이상 마시고 간다.’
한입에 털어놓고 슬그머니 술병으로 손을 뻗자 적사중이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갈 때 몇 병 싸 주랴?”
이 아저씨가 누굴 거지로 아나.
“당주님의 은혜가 하해와도 같아 소인이 감히 받을 수가 없사옵니다!”
적룡당에 비하면 거지가 맞긴 하지.
“솔직한 것도 마음에 드는구나. 아예 내 호적에 입적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
자금으로만 따진다면 구룡성 서열 삼위 적룡당.
그런 곳의 입적한다는 건, 현대로 치면 재벌가에 입양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 할아버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적사중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끌끌.”
“수결할 서류가 있으면 지금 당장 하겠습니다.”
“적극적이기까지?”
그렇게 역사적인 협상이 타결되려던 찰나.
“안 됩니다. 조부님.”
적일이 끼어들어 양잿물을 끼얹었다.
적사중이 볼멘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안 된다는 게냐?”
“무전은 장차 화란이의 짝이 되어 우리 적룡당을 지키는 췌서가 될 예정입니다.”
아니, 누구 마음대로 그 납작이랑 결혼을 시켜?
순간적으로 술을 뿜을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삼켰다.
“에잉, 손주나 손주 사위나 다 똑같은 것을.”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피로써 이어지는 게 확실합니다.”
“음, 틀린 말은 아니구나. 알았다. 이 건은 적일이 네게 맡기겠다.”
당사자인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내 인생을 자기들 입맛대로 설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술이 들어간 적룡당원들 역시 미친 소리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검을 푸욱! 하고 찌르니까 덜덜 떨면서 오줌을 싸더라니까? 대장도 그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사혈검의 삼 초식을 이렇게 꺾어서 찌르면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최대한 고통을 줄 수 있지.”
“하루빨리 전쟁이 터져야 피 맛을 볼 수 있을 터인데······.”
“내 이번 전쟁에서 스물을 죽이려고 계획 중이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사이코패스 집단이 틀림없군.’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적이와 적삼 형제가 도착했다.
무얼 하고 왔는지는 몰라도 피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낄낄낄, 오랜만이군. 형제.”
“오랜만이다. 진 조장. 최근 고생이 많았다지?”
“아, 네.”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하지 그랬나? 그랬으면 한 칼 보태러 달려갔을 텐데.”
“낄낄, 백룡당 놈들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깝군.”
그럼 꼼짝없이 적룡당에 들어가야 할 거 같아서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이 자리엔 적룡당의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던 바.
최대한 그들의 마음에 들 만한 대답을 했다.
“백룡당의 조무래기들 따위를 잡는데 굳이 적룡당의 영웅들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거야말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아니 명검을 꺼내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자 대전 안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의도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으하하하하!
심지어 몇몇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다.
‘좋았어.’
집에 갈 때 홍화주 다섯 병은 챙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술을 들이켰다.
그러기를 한 시진.
“밤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잉, 이제 겨우 흥취가 올랐는데. 쯧쯧.”
“하하. 죄송합니다. 당주님.”
“대신, 다음에 올 때는 각오하게나. 이번에만 보내 주는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적사중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던 찰나, 적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나가 잠시 기다리면 배웅해 줄 사람을 보내겠다. 그편에 홍화주를 챙겨 보낼 테니 잠시 기다리도록.”
그럼 기다려야지.
적일의 말대로 잠시 기다리자.
“선배?”
적화란이 나타났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첫째 오라버니가 선배를 배웅해 주라고 해서요. 마침 오늘 쉬는 날이어서 적룡당에 있었거든요.”
별로 궁금하지 않은 내용까지 줄줄이 읊는 그녀에게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군.”
“아이참,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심심해요?”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알면 물어보겠어요?”
이래서 얘가 안 되는 거다.
육진화의 동생을 소개해 주기로 해 놓고선 잠수 탄 게 누군데.
이런 점을 설명하자 적화란이 크게 당황했다.
“크흠, 나는 신뢰가 없는 이와 말을 섞지 않는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용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적화란의 신용도를 2등급에서 6등급으로 하향시켰다.
이 정도면 저금리의 제도권 대출은 힘들다고 봐야 한다.
적화란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스스로도 창피한 줄은 아나 보다.
“그, 그게 아니라······.”
“듣기 싫다. 혼자 갈 테니 홍화주나 내놓거라.”
매몰찬 말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얼굴색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적화란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잠깐 저 좀 봐요.”
“갑자기 왜 이래?”
“잠깐이면 되니까 따라와요.”
잠시 후.
달빛도 잘 들지 않는 으슥한 곳에 도착하자 적화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자그맣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게······. 이렇게······.”
드문드문 들리는 말소리.
초절정에 오른 이후 청력이 엄청나게 향상됐기에 아무리 작은 소리여도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적화란은 별 뜻 없는 단어만 반복해서 내뱉을 뿐, 요지를 꺼내지 않았다.
답답함에 그녀를 보챘다.
“화란아, 나 내일 일찍 나가 봐야 하거든? 그러니까 좀 빨리 말해 줄래?”
뻥이었다. 출근을 하는 건 맞지만 해 질 무렵에 나가도 상관없었다.
이런 내 보챔에 적화란이 눈을 질끈 감았고.
“선배를 좋아해요.”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고백을 듣게 되었다.
“뭐라고?”
잘못 들었나 해서 곧장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 보았다.
물론 결론은, ‘아무 이상 없다’였고.
“······.”
너무 놀란 탓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적화란이 눈을 마주치며 물어왔다.
“저······ 별로예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럽구나.”
“그럼 지금 생각해 보면 안 돼요?”
적화란이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달빛 아래 그녀의 하얗고 오밀조밀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예쁜 얼굴이었다.
현대로 치자면 여자 아이돌 센터까진 아니더라도, 그 바로 옆 정도는 노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제 대답해 주세요.”
적화란이 다시 보챘고.
“그게······.”
나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내려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흉부가 나보다 작은 여자는 좀······.”
* * *
고백을 단호하게 거절했음에도 적화란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들이밀었다.
유교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적룡당에서 가치관을 쌓아 온 적화란은 공자의 가르침을 가볍게 무시했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가지지 못할 거 같으면 부숴 버리라고.”
과격 테러 단체의 면모까지 보여 줬다.
그렇게 되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됐다.
아침밥을 먹으러 나가면 적화란이 묘향을 도와 밥상을 차리고 있었고.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서 앉으세요. 오늘 아침은 만둣국이랍니다.”
부담스러워 대충 한술 뜨고 출근하자면 뒤에 바짝 따라붙어 조잘거렸으며.
“그래서 어제 진화 언니가······.”
퇴근 후, 어디 가서 술이라도 한잔하려 치면.
“선배도 참, 뭐하러 다른 데서 돈을 쓰시나요? 홍화루에 오면 공짜로 마실 수 있는데.”
“······너랑 같이 마셔야 하잖냐.”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제가 대접할 테니 홍화루로 가요.”
어디선가 나타나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뿐이었으면 불편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적화란은 적룡당의 무사들을 내게 붙이기까지 했다.
“······그만 따라오시면 안 됩니까?”
“우리 공녀님께서 진 조장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명을 내리셨소이다.”
“······.”
성질대로 쫓아 버릴까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성 팔 당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자랑하는 적룡당이다. 이들을 쫓아내 봐야 다른 사람이 붙을 게 뻔했다.
그렇게 불편하기 그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외당 일조장 진무전은 지금 즉시 군사부로 오라는 문상의 명령이오.”
군사부에서 사람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