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6
085화 사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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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정도맹주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정신이 드느냐?”
“예, 누구 때문에 머리통이 깨질 것 같지만요.”
“험험, 그러게 입을 조심해야지······.”
“천하의 정도맹주께서 기습이라니, 십마련 놈들도 비겁하다고 손가락질을 할 겁니다.”
“그 정도맹주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놈은 무림 역사상 너밖에 없을 거다.”
겨우 몇 마디 나눴을 뿐이지만 수많은 격전을 치른 키보드 배틀러로서 알 수 있었다.
절대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비긴 걸로 하는 게 어떠십니까?”
“그리하는 게 좋겠구나.”
“좋습니다. 그럼 이 밤에 부른 이유부터 알려 주십시오.”
“성격도 급하다 이놈아. 오랜만에 봤으면 차라도 한잔하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해야지.”
“어릴 때 며칠 보고 만 인연이 얼마나 무겁다고······.”
“네놈과의 인연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저 현검자의 마지막이 궁금해서 그런다.”
그거면 인정이지.
“그러시죠.”
그렇게 정도맹주를 따라 작은 모옥에 들어가자 그가 손수 차를 우려 내게 건넸다.
후룩.
“······!”
한 입 마셔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푸웁.
“에퉤퉤. 차 맛이 왜 이럽니까? 깜짝 놀랐네.”
“응?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명색이 민초들에게 신선이라고 불리는 분이 차도 못 우리십니까?”
“신선은 무슨. 이놈아, 내가 차를 직접 우려 먹을 위치더냐. 맨날 주는 것만 먹다 보니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게지.”
하긴, 정도맹주이자 화산의 태상장로인 그가 차를 대접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그 역시도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찻잔을 내려놓았다.
“현검자의 이야기나 해 보거라.”
“그러죠.”
뒤에 이어진 대화는 별것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의 노년,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추억을 나누자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정도맹주가 약간은 회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의 도우라 생각했음에도 속세에 얽매여 마지막도 지켜보지 못했구나.”
정도맹주가 약간은 회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말년에 네놈이라도 있어 다행이었구나.”
“등천각에 입각해 수련하느라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후레자식이 따로 없었죠.”
“길에서 주운 아이가 재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약간은 훈훈한 분위기가 감도는 틈을 타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언제 정도맹주가 되신 겁니까?”
거지꼴로 다니던 도사가 세월이 지나 정도맹주가 되다니.
길에서 본 노숙자가 알고 보니 재벌 회장이었다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맹주가 하기 싫어 천하를 유랑하다 사 년 전에 마음을 먹었다.”
나와 만났을 때가 십사 년 전이었으니 못해도 십 년 이상 천하를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따뜻한 집 놔두고 노숙자를 자청하다니······.’
확실히 이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도맹주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맹을 맺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거야 당연히 십마련을 견제하기 위해······.”
“나는 성주의 진의를 묻는 것이다.”
구룡성의 목적이 아니라 성주의 진의라······.
확실히, 그들쯤 되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시야가 넓었다.
“성주님의 진의는 저도 모릅니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말해 보거라.”
“성주께선 전쟁을 피하고자 하십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지금 구룡성의 전력은 근 백 년 내에 유례가 없을 만큼 강합니다. 십마련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를 정도맹이 모를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확실히 그렇다.”
그랬다.
북궁백이 화경에 오름으로써 구룡성은 근 백 년 내 최강으로 꼽힐 만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마도 고수가 구름처럼 모여 있다는 십마련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성주는 공격을 명령하지 않았다.
십여 년 전, 십마련으로 추정되는 놈들에게 자신의 장손을 잃었음에도 말이다.
즉, 평화를 원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이어 나가자 어느 정도는 공감했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균형 때문이다.”
뜬금없는 말에 눈만 껌뻑였다.
“황실이 힘을 잃은 지금 천하는 다섯 개 세력이 분할통치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 균형 잡힌 대치는 지난 백 년간 평화를 가져왔다.”
옳은 말이다.
지난 백 년간은 국지전을 제외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한데, 정도맹과 구룡성이 동맹을 맺으면 어찌 되겠느냐?”
“······두 세력의 사이가 좋아지겠죠.”
인별 맞팔을 한 것처럼.
이런 대답을 하자 정도맹주가 ‘이 병신은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크흠, 농담입니다. 맹주님께선 동맹으로 인해 균형이 무너질 거라고 보시는 게 아닌지요.”
“그렇다. 그렇게 되면 십마련 입장에서는 어떻겠느냐?”
“위기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게 전쟁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그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정도맹과 동맹을 맺은 구룡성을 공격하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리 과격한 마도 세력이라도 질 게 뻔한 싸움을 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예로부터 신강은 중원 바깥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십마련은 그런 신강을 백 년이 훌쩍 넘게 지배해 왔지. 설마, 중원 바깥에 그들과 손잡을 세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중원 무림을 넘어 세외까지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 감탄만 나왔다.
“하지만······.”
어찌어찌 반박 의견을 짜내 입을 열려던 찰나, 정도맹주가 한 차례 주장을 더 쏟아냈다.
“그래, 백번 양보하여 십마련과의 전쟁에서 이겼다 치자. 그럼 평화가 찾아오리라 보느냐? 마음을 바꾼 구룡성주가 천하 제패를 꿈꾸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을까? 또한, 전쟁 중에 흐르는 피는 누가 감히 책임질 수 있을 것이고.”
천하 만민을 생각하는 그의 질문에 나는 일종의 숭고함까지 느꼈다.
‘지금이군.’
나는 유소평이 써 준 답안지가 나올 차례임을 직감했다.
“······구룡성은 정파입니다.”
“정도맹의 의기가 흐트러졌다고 말한 건 너다. 정파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구룡성주를 믿으라는 게냐?”
“지금의 성주님이 아닌 구룡성 그 자체를 믿어 달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구룡성을 믿어라?”
“예. 맹주께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하를 돌아다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
“구룡성에 사는 민초들의 표정이 어떠했습니까?”
“······좋아 보이더구나. 배고픈 이도 없어 보였고.”
구룡성이 지배하는 사천은 천하에서 가장 세율이 낮은 지역이다.
구룡성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백성들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구룡성이 버티고 있어 외세의 침략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정도맹의 영역과 더불어 천하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으로 꼽히는 게 당연했다.
“혹시 사자맹에도 가 보셨습니까?”
“가 보았다.”
“그곳이랑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혹은 십마련의 세력권에서 사는 민초들과 비교하면요?”
“······확실히 비교할 수 없는 건 맞다.”
“구룡성이 천하 제패에 뜻을 두었다면 사천 민초들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음.”
“또한, 구룡성이 무너지면 사천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무엇보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십마련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뭐라?”
이때다 싶어 십마련이 현재 겪고 있는 내분에 관해 설명했다.
구 종이 십마련주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마종을 공격하고 있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로 인해 등천각을 습격하여 구룡성의 기재들이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까지도.
“확실히 허투루 넘길 일은 아니구나······.”
모든 사정을 들은 정도맹주의 눈빛이 깊어졌다. 필시, 속으로 깊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속으로 양손 모아 싹싹 빌었다.
‘먹혀라 먹혀라 먹혀라 먹혀라······.’
그리고 이어지는 정도맹주의 대답에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알겠다. 내일 즉시, 무당의 문주와 소림 방장께 전서를 보내겠다.”
돌아가는 대로 유소평에게 뽀뽀라도 해 줘야겠다.
* * *
정도맹주와 독대한 이후로 동맹은 급물살을 탔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여러 번의 협상이 이어졌고.
“흠, 섬서 서쪽에 분타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건설 비용과 유지 비용 중 일부는 구룡성이 대야 할 것이오.”
“얼마나······.”
“이 정도는······.”
“그러지 말고 요 정도가 좋아······.”
그렇게 세세한 조건들을 조율한 끝에 마침내 초안이 완성되었다.
“구정 동맹? 이름이 좀······.”
첫날 내게 목이 뻣뻣하다며 시비를 걸었던 무당의 진상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고.
“요즘은 이렇게 이름을 줄여서 쓰는 게 유행입니다.”
나는 편하게 받아쳤다.
참고로 나는 정도맹주와 독대 이후 그를 찾아가 좋은 술을 건네는 것으로 화해를 했다.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 정도맹의 역사가 더 깊은 만큼 정구 동맹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보오.”
“어감이 안 좋지 않습니까? 어감이. 이름이 중요한데요.”
“진 소협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이건 우리 정도맹의 자존심이 걸린 사항, 절대 양보할 수 없소이다.”
사실, 정구나 구정이나 구린 건 똑같지. 굳이 따지자면 정룡이나 용정 동맹이 맞을 거고.
그럼에도 굳이 구정으로 하자고 우겼던 이유는.
“진인의 생각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정구 동맹으로 하시죠.”
“오오! 진 소협의 넓은 아량. 잊지 않겠소.”
“대신, 여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조금 양보해 주셨으면······.”
“흠흠, 그 정도야 내 직권으로 처리해 보이리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양보하는 척하며 조금 더 뜯어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모든 단계가 마무리될 즈음, 소림과 무당, 그리고 화산의 장문인들과 제자들이 정도맹에 도착했다.
“와······.”
숫자는 얼마 안 되지만, 그들에게서 마치 범과 용을 보는 듯한 기개가 느껴졌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그들을 보며 감탄하는데 뒤에서 북궁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 년을 이어 온 명문의 저력은 저런 것이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한마디였다.
그들이 정도맹의 문을 넘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척.
배분이 배분인지라 북궁백이 먼저 나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번쩍.
취임한 지 겨우 일 년이 되었다던 소림 방장이 용마산을 생각나게 하는 반사광을 내뿜으며 다가왔다.
전대 방장이 늘그막에 얻은 제자였기에 배분은 높았지만, 그의 나이 겨우 지천명이 넘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엄청나게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와 몇 마디를 나눈 북궁백이 돌아와 말했다.
“이래서 저 나이에 방장이 된 거군.”
“예?”
“화경이다.”
“······!”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겠지.”
“······대단하군요.”
“산문에는 얼마나 더 대단한 고수가 숨어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군.”
역시, 전대의 뭐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정통의 삼대 문파다웠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협정서를 서로 나눠 가지는 것으로 모든 협상 절차는 끝났다.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마지막 절차라고도 할 수 있는 연회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