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7
096화 이사(3)
#096 이사(3)
북궁백의 지적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외통수다.’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걸.
애초에 집안에 십마련의 무인들을 숨겨 주고 있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
‘망했네.’
이럴까 봐 그냥 내쫓으려 했는데······.
하지만 이런 내 심정과는 상관없이 북궁백은 창고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정수리 땀샘에서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이윽고.
덜컹!
북궁백이 창고의 문을 열었다.
“음······.”
그가 안에 있는 열하나의 십마련도들을 가만히 살피더니.
“십마련의 종자들이군.”
대번에 정체를 파악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 * *
오해가 깊어지기 전, 나는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최근 일어난 살인 사건을 파헤치다 우연히 십마련의 간자들을 잡아냈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 가둬 놓고 고문 중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설명이 그럴듯했는지.
“그렇군. 수고했다.”
북궁백이 공치사를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손속이 너무 잔인한 게 아니냐?”
“예?”
“무인에게 생명과 같은 내공을 폐하지 않았나. 차라리 그냥 죽이는 게 더 관대해 보이는군.”
“네?”
잠시 후.
나는 북궁백에게 이놈들의 상태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놈들의 내공이 금제 된 게 아니라 전왕기에 흡수당했다는 겁니까? 그래서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이고요?”
“정말 몰랐나 보군.”
북궁백의 설명에 어이가 온데간데없이 가출해 버렸다.
그저 못대가리에 기를 실어 찔렀을 뿐인데 내공의 통제권이 넘어왔다니.
듣도 보도 못한 괴사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겁니까?”
“그거야 네가 익힌 심법이 여타 중원의 심법들과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
“네가 이들을 제압하는 데 쓴 현철 못 때문이다.”
북궁백의 지적에 나는 품에서 현철 못을 꺼내 들었다.
“현철이라고 해 봤자 단단한 못일 뿐인데, 괴현상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내 질문을 들은 북궁백이 왼쪽 손바닥을 보이며 검은색의 길쭉한 뱀을 만들었다.
크기로 보아 그의 성명절기인 흑염룡의 미니미 버전인 듯했다.
타탁. 탁.
주변이 순식간에 따뜻해지는 게 보통의 열기가 아니었다.
수웅. 퍼엉.
그가 손을 내밀자 작은 뱀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불을 피웠다.
삼매진화를 넘어선 신기(神技)에 묘향은 물론이고 열하나의 십마련도들이 입을 떠억 벌렸다.
“흑염룡이 내 손을 떠났을 때와 아궁이에 도착했을 때 같은 열양력을 품고 있었을까?”
“당연히······. 아!”
“이해했나 보군.”
그랬다.
몸에서 떨어진 기는 떨어진 시간과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위력과 특성을 잃어 간다.
하지만 현철 못에 불어넣은 기는 흩어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다.
‘그게 바로 현철이 가진 효용이니까.’
그렇기에 현철을 사용해 만든 무기를 신병이기로 치는 것이고.
게다가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노말 현철이 아닌 만년현철.
기를 담았을 때 보존력이 더욱 뛰어난 물건이다.
즉, 혈염방도 열한 놈의 몸에 전왕기가 원형 그대로 박혔다는 뜻이다.
“그럼 이들은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겁니까? 평생토록?”
“그렇다.”
그 말에 혈염방도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시뻘겋게 충혈된 게 꼭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외상도 심하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평생 반병신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북궁백이 십마련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놈들을 제압할 당시 귀찮았던 탓에 그냥 팔다리를 두 개씩 부러뜨려 놨다.
특히 놈들의 대장 격인 혈염방주는 오른쪽 눈깔이 아예 터져 버렸고.
게다가 내공까지 잃었으니, 회복 속도가 배는 느려질 것이다.
하지만 십마련도들을 앞에 두고 실수로 그런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 진무전. 평소 악(惡)이라면 극도로 증오하는 남자! 착한 십마련도는 죽은 십마련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괜한 오해를 받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지금은 살려 두지 않았나.”
“이제 곧 죽일 겁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열하나의 십마련도가 대경하며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놈들의 우두머리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려 했다.
아마 이번에 맺은 정당한 거래를 폭로하려는 모양.
퍽.
“크륵!”
재빨리 바닥에 있는 돌을 발로 차서 놈의 이마를 맞추었다.
거품을 물며 기절하는 놈을 보니 약간의 측은지심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이놈들! 내 자비를 베풀어 오늘까지는 살려 뒀다! 하나, 구룡성의 ‘최강자’ 십수천패 북궁 대협께서 네놈들을 죽이라고 명한 이상 더는 명을 늘려 줄 수 없겠구나. 이만 죽어라!”
은근히 강조한 최강자란 말에 북궁백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를 뒤에 두고 폭사경을 터뜨려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 주려던 찰나, 나를 말리는 북궁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둬라.”
“아닙니다. 천하의 악은 모조리 박멸해야 옳습니다. 제가 오늘 이놈들을 처단함으로써 일벌백계 경각심을 일깨워 줘야 십마련 놈들이 다시는 구룡성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십마련이 어떤 놈들인데 겨우 이놈들 죽는 걸 신경 쓰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오버함으로써 의심을 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죽여 봤자 송장 치우기 귀찮기만 하지 않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그런 수고스러움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냥 둬라. 하인으로 쓰겠다.”
“이놈들! 죽어······ 예?”
“못 들었나? 하인으로 쓰겠다고 했다.”
“갑자기 말입니까?”
“곁에 두고 가르치다 보면 갱생이 되겠지. 그것이 바로 정파의 협의지도가 아니겠나?”
아니, 당신은 협을 부르짖을 자격이 없다고.
물론, 이런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했다.
“도망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네가 잡아 오면 되지.”
“마음먹고 도망친 놈들을 제가 어찌······.”
“네 몸을 빠져나갔다고 해도 전왕기는 전왕기지.”
북궁백의 설명을 듣자 뇌리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잠시 눈을 감고 기감을 집중하자 놈들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전왕기가 느껴졌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짐작건대 네 경지가 화경에 이르면 저놈들 몸속에서 터뜨릴 수도 있을 거다.”
와우.
나는 방금 꺼내 둔 못을 조심스레 품에 넣었다.
아무래도 이건 팔아먹으면 안 되겠다.
* * *
결국, 열한 명의 십마련도들은 자발적으로 북궁백의 노예······ 아니, 하인이 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괜한 생목숨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살려 두면 무임금 유노동을 시킬 수 있으니 이득인 것도 같았다.
물론, 단도리를 확실히 해 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자, 다들 이거 먹어라.”
“이게 무엇인지······.”
“그냥 지금 죽여 주랴?”
“아, 알겠습니다. 먹겠습니다.”
꿀꺽.
열하나 모두 단약을 삼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이들에게 말했다.
“자, 저기 뭐라고 써 있는지 읽어 봐라.”
“······청가장 무전이네 분타? 호, 호북 청가장?!”
“흐흐흐. 그래, 청가장주의 고명딸이 만든 분타다. 지금 먹은 단약은 그녀가 만든 독단이고.”
“헉!”
“두 달에 한 번씩 해독단을 먹지 않으면 손끝부터 녹아 없어지니까 잊지 말고 찾아와야 한다? 아! 혹여 입을 나불대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영원히 해독단을 받지 못할 거니 참고하고.”
사실 그런 거 없다.
독약을 먹으면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 어떻게 두 달이 지나서 나타난단 말인가.
“······.”
믿기지 않는지 놈들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나는 믿음을 주기 위해 놈들 몸에 있는 전왕기를 살짝 움직였다.
아직 터뜨리는 건 못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거든.
몸속의 내공이 날뛰기 시작하자 놈들이 대경하며 비명을 질렀다.
“으헉!”
“도, 독이!”
그렇게 일각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는지, 놈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박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안 죽어. 그저 두 달에 한 번씩 해독단만 챙기면 된다니까?”
여기까지 말하자 눈치 빠른 놈들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평생 입 다물고 살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흐흑.”
“잘 생각했어. 원래 군자의 입은 천금 같아야 한다잖아? 이번 기회에 우리 군자로 살아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놈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협지에서 나오는 가짜 독약 클리셰가 엉터리는 아니었다고.
‘이거 괜찮네.’
가끔 써먹어야지.
* * *
이사 준비는 곧장 진행되었다.
북궁백이 희망하는 이사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본부에서 살고 있었다니······.’
명색이 외당주라는 인간이 직장 한편에 침상을 마련해 놓고 먹고 자는 게 과연 정상이란 말인가.
보면 볼수록 고개를 절로 젓게 되는 인간이다.
덕분에 나와 묘향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는 아끼던 살림살이를 챙기느냐 정신이 없었고.
“빨리빨리 안 움직여?!”
“죄, 죄송합니다!”
나는 하인이 된 십마련도들을 지휘하여 집안 세간살이들을 챙겼다.
마음 같아선 새로운 집에 옮기는 것까지 맡기고 싶었으나, 놈들의 얼굴이 드러나선 안 되기에 외주를 줬다.
“모두들 수고했다.”
“아, 아닙니다. 대협. 저희가 더 영광입니다.”
흑사로에 널려 있는 파락호들에게 말이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수고비다. 가다가 탁주라도 마셔라.”
“아이고, 안 챙겨 주셔도 되는데······.”
“명색이 외당 간부라는 놈이 사람을 공짜로 부리면 쓰나. 진짜 얼마 안 되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받아라.”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짜식들.
평소 틈이 나는 대로 인성 교육을 해 줘서 그런지 꽤 정이 들었다.
당분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감정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수고비 조로 동전을 열 개나 준 것이기도 했고.
놈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희희낙락하며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자유를 찾아 떠나는 도비를 연상케 했다.
그렇게 짐 정리가 끝나고 묘향과 나는 저택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단순히 규모만 보면 외당 본부와 필적할 만한 크기.
상방으로 사용했던 공간은 대로변에 길게 접해 있어 괜찮은 월세 수익이 기대되었고.
그 상방 안에 자리한 넓디넓은 내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유를 느끼게 했으며.
주위에는 고급 자재로 만든 커다란 전각 세 채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 전각 뒤로는 작은 창고와 연못, 정원 등 편의 시설들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다.
재벌 집이라고 칭할 수 있는 내성 팔 당의 당주들 집에 비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 정도면 대저택이라고 할 만했다.
“이런 집에 살아 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묘향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수고했다. 무전아.’
혈혈단신, 천애 고아로 구룡성에 온 지 십오 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이런 것인지 싶다.
비록 삼 년 동안만 거주하는 것이지만, 충분히 만족한다.
‘나중에 이 집을 팔면 더 큰 집을 짓고 살아야지.’
침상 밑에 있는 삼천오백 냥과 훗날 조가 상방을 팔았을 때 얻을 돈으로 더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성공의 냄새를 맡으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묘향이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지 않아요?”
“응? 뭐가?”
“꼭 뭔가 두고 온 거 같아서요.”
“두고 오긴 뭘 두고 왔다고 그래. 애들 시켜서 싹싹 긁어 왔는데.”
“그렇긴 하지만 뭔가 잊고 온 기분이라 그래요.”
“에이, 그런 거 없다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두고 내 방으로 사용할 중앙 전각에 들어갔다.
돈과 개인 짐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어디 보자······.”
그렇게 옷가지들과 상자에 담긴 금자들을 정리하던 차.
“응? 이게 뭐지?”
눈에 익은 종이 뭉치가 보였다.
펼쳐서 살펴보니 이전 십마련의 안가에서 찾은 암호문이었다.
“아! 해독을 시킨다는 걸 잊고 있었네.”
갑작스레 결정된 이사에 깜빡 잊었나 보다.
조만간 다시 가서 물어봐야 할 듯했다.
‘뭐, 급한 건 아니니까.’
혹여나 심각한 문제면 괜히 귀찮기만 하지 내게 도움 될 게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종이 뭉치를 다시 집어넣으려던 순간.
“꺄아악!”
묘향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덜컹.
곧바로 튀어 나가니 얼굴빛이 사색이 된 그녀가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소, 소소를 두고 왔어요!”
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