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2
3화
피가 싸하게 식어 내렸다.
이겸이 그에게서 이무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적’ 상태의 마수에게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은 먹잇감의 머리통을 씹어 삼키기에 충분했다.
피가 불티처럼 흩뿌려졌다.
울퉁불퉁하게 뜯겨 나간 목의 단면.
이무기의 아가리 속에서 형체도 없이 뭉개지는 눈, 코, 입.
목 없는 몸뚱이가 한 박자 늦게 시체 더미 위로 쓰러졌다.
콰르르릉!
섬광이 허무하게 흩어지는 소리는 꼭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이번에는 이겸도 이모아의 눈을 가려줄 수 없었다.
다만 뻣뻣하게 굳은 팔이, 덜덜 떨리는 손이 아이의 뒤통수를 감쌌다.
“……모아야.”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괜찮아. 괜찮아, 너는…… 너는 아무것도, 내가…….”
우르릉.
하늘이 갈라지고 포탈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들을 끔찍한 지옥에 몰아넣었던 배리어가 중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바깥의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
드높은 건물과 솟구치는 분수.
고요한 물소리가 이겸의 발등을 두드렸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아.”
‘안쪽’의 사람일 뿐.
그때였다.
“괜찮으십니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배리어 바깥에서 걸어온 여자는 이겸의 코앞으로 마주 섰다.
‘이해운.’
앳된 얼굴의 이해운 총장이었다.
어린 이겸은 이모아를 품에 숨기듯 확 끌어안았다.
경계와 살기가 뒤 섞인 묵직한 공기.
답답했던 이모아가 몸을 뒤척였다.
이해운은 자신의 어깨만큼 오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한껏 너그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굽혔다.
“국가안보지원부입니다. 두 분 모두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이겸과 눈높이를 맞춘 그녀 손에 들려 있는 건 제복을 입은 증명사진과 이름.
소속기관의 명칭이 적힌 공무원증이었다.
이제 와서 증 같은 게 무슨 소용일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를 효과적으로 안심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걱정스러운 듯 이곳저곳을 눈길로 살피는 이해운을 보며, 이겸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이모아의 머리 위로 고개를 떨궜다.
중얼거리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있어요?”
그러고 보니 광화문은 소름 끼치게 고요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자동차 하나 없었다.
드넓은 서울 한복판에 오로지 이겸과 이모아, 이해운.
이 셋만 존재하는 것처럼.
‘죄다 대피시켰나.’
광화문은 대한민국에 등장한 첫 포탈이었다.
사람들은 배리어 바깥으로 마수들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상태일 테니 당연한 처사처럼 보였다.
이겸의 질문에 이해운은 잠시 뭔가를 짐작하는 것처럼 시선을 굴리다가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안에서는 밖이 안 보였나요?”
이겸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그녀가 품 안에서 작은 수첩 같은 것을 꺼내 무언가 마구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거든요. 성함이?”
“……이겸이요.”
“그래요. 전부 다 보고 있었어요.”
이해운의 볼펜이 딸깍, 소리 내며 닫혔다.
“이겸 군이 싸우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겸의 몸이 다시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미친.’
이런 미친. 이런 미친!
마음 같아선 주먹이라도 입에 넣고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머리가 어디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러니까, 이겸이 싸우는 걸 이해운이 다 봤고, 그러니까, 그러면 이모아가 스킬 써서 뭔 일을 벌였는지도…….
‘진심 오바.’
오바도 이런 오바가 있을 수 없었다.
터질 것 같은 머리로 떠오르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말도 안 돼.’
그때.
“사, 살려 주세요……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발…….”
어디선가 실낱같은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퍼뜩 정신이 든 이겸의 등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하자, 아스팔트 위를 팔꿈치로만 기어오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무릎이 덜렁거리며 상체를 따라오고 있었다.
용케도 살아남은 생존자.
기적이었다. 기적과도 같았다.
남자는 생명줄이라도 된다는 듯 안간힘을 써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간절하게 뻗어진 손가락이 피투성이였다.
본능적으로 남자를 구하기 위해 이겸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여기 있어요.”
그를 팔로 막아선 이해운이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생존자의 앞에 쭈그려 앉은 그녀는 무심하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예예……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저 좀 살려 주세요. 병원, 병원으로 좀…….”
“혹시 각성자이십니까?”
“……예?”
남자의 눈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당황함이 깃들었다.
이해운은 재차.
단호하지만 평이한 투로 되물었다.
“각성자로 등록이 되셨냐고 물어봤습니다.”
“각성은, 그게 무슨…….”
타앙!
이어진 건 단발마의 총성이었다.
방금 전까지 지옥을 넘어 살아남았던 사람은 사람의 손에 의해 아무것도 아닌 살덩이가 되었다.
“이제 목격자는 아무도 없네요.”
이해운은 굴러다니던 쓰레기라도 치워 버린 양, 볼에 튄 피를 닦아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녀의 주변으로 총탄, 아스팔트 조각, 핏방울 같은 것들이 둥둥 떠올라 부유했다.
염력.
이해운의 능력이었다.
‘안심해. 너랑 나는 같은 사람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이해운이 다가올 때마다 이겸은 뒷걸음질 쳤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뭔가 깨달았다는 것처럼 입을 뗐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겸 군과 동생분의 그…….”
이해운이 말하기 껄끄러운 사안에 동의를 구하듯 눈썹을 찡긋거렸다.
“일은 저 밖에 못 봤습니다. 사람들 미느라 힘 좀 들였거든요.”
“……왜.”
왜. 이런 짓을.
그는 머릿속에 범벅으로 엉킨 말을 끊어진 테이프처럼 띄엄띄엄 뱉어냈다.
이겸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건 이모아의 등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이겸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여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이해운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당연한 투로 말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죠.”
어느새 이겸을 따라잡은 그녀가 지그시 어깨를 짓눌렀다.
독사 같은 속삭임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두 분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안타깝지만.
이해운은 흘리듯 말한 뒤 똑바로 이겸을 마주 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단정한 태도에 나까지 뱃속이 시큰거려오는 것 같았다.
‘쟨 진짜 미친 새끼다.’
경악이라는 말도 부족했다.
정신 상태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겸의 시선은 여전히 이해운이 쏴 죽인 생존자에게로 박혀 있었다.
그의 온몸이 데일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파직. 파지지직.
미약한 전류가 이겸의 몸 위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명백한 살의.
경계.
“하아…….”
그것들을 느낀 이해운은 은혜도 모르는 자식 놈을 보듯,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올렸다.
“동생분의 능력이 뭡니까?”
그녀는 질문했지만 답을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더 강력하게 스파크가 터지는 걸 본 이해운은 성가신 분노를 받아내기도 귀찮다는 것처럼 딱딱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게 무슨 사태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겠지만…… 이겸 군의 능력은 현재 대한민국에게 필요합니다. 동시에.”
해명하는 톤은 되레 분노에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운의 시선이 이모아에게로 박혔다.
“무엇보다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시겠죠.”
무고한 피해자.
애초에 그걸 만든 게 누구냐는 듯이 질책하는 눈빛.
이겸은 이모아를 끌어안은 채 몇 발자국 더 뒷걸음질 쳤다.
“국가는 이겸 군을 찾아낼 겁니다. 아니,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이 아우성칠 겁니다. 자신을 구해낼 영웅을 찾기 위해서. 목숨을 떠맡기기 위해서.”
“…….”
“그럼 동생분이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고요.”
“…….”
“한 발자국만 나가면 그 앞은 기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순간부터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말을 잘랐다.
대신 새까만 눈으로 이겸을 지켜봤다.
네 의지를 존중하겠다는 양.
처음부터 본인들이 손해 보는 선택지를 건넨 것처럼 모든 상황의 판단을 맡겼지만, 이 야비한 어른의 속내를 윤채희는 알고 있었다.
‘결국 뭐가 됐든 이모아를 인질로 삼겠다는 거네.’
지금 도망치든, 이해운의 제안을 받아들이든.
놈들은 이겸의 ‘약점’을 이용해 좌지우지하겠다는 말을 빙빙 돌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방금 부모님을 잃었고, 누군가를 지켜야 할 각오만이 남은.
고작 아이에게.
어느 길로 돌아가도 이겸과 채본은 엮일 운명이었다.
이해운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새액. 새액.
이겸의 뜨거운 숨이 이모아의 머리 위에서 오갔다.
아이의 손을 몇 번이나 붙잡고, 등을 쓸어 내렸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체온이 안쓰러웠다.
이겸의 품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세게도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요.”
한참 만에 입을 연 이겸은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 할 무게.
책임져야 하는 선택.
그런 것들을 모두 받아들인 담담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대신.”
단서를 붙인 이겸에게 말해보라는 것처럼 이해운이 턱을 치켜들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아이는 내려진 동아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단 붙잡아 보기로 했다.
자신보다 소중한 동생을 위한, 단 하나의 선택이었다.
“지켜주세요, 제 동생.”
그거면 된다는 듯이 악에 받친 목소리.
이겸은 그렇게 로 만들어졌다.
【일부 기억의 습득으로 ■■ ‘■■■■■’의 효과가 약해집니다.】
【전용 스킬, ‘그레이스’가 해금되었습니다.】
【잠재된 능력치들이 회복됩니다.】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일정 비율의 지능이 상승하였습니다.】
【종합 헌터 능력이 업데이트 중입니다…… 】
【결과 : B+】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심연을 엿본 자)】
【3,0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다음 기억으로 접근하기 위해 다이아 500,000 개가 소요됩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Y / N】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