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0
11화
“아, ×바 또 뻑났네.”
분주하게 움직이던 핑크 머리의 엄지가 단말기 위에서 허탈하게 굽어들었다.
카악, 투.
끈적한 침이 거뭇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섞여 하수구로 흘렀다.
옆에 선 파란 머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받아쳤다.
“또?”
“장난하나. 이게 의뢰 쳐 받는 거야, 경매 입찰이야. 아주 씨가 말라 버리네.”
“말도 마라. 나도 Q 때문에 이번 주 수입 뚝 떨어진 것만 생각하면…….”
“뭔, 씹, 이게 독점 아니냐고. P 때보다 더 심해. 걘 그래도 남은 거 주워 먹는 상도라도 있었지.”
“아니, 진짜 인간 새끼 맞아? 몸이 열두 개가 아닌 이상 하루에 오십 건을 어떻게 쳐내냐.”
“선수들이 돈 안 돼서 뻗대던 것도 다 가져간다잖아. 존나 망한 거지 뭐.”
말하는 동안에도 하얀 연기가 축축한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콜록콜록. 지나가며 내뱉는 기침 소리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쭈그려 앉은 핑크 머리 놈이 담배 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중얼거렸다.
“나도 이름을 바꿔야 되나…… A 이런 걸로.”
“지랄 마라. 그런다고 벌레가 용 되겠냐고.”
“크흐흠!”
결국 이렇게 요란스레 존재감을 표시해 줘야, 이런 놈들은 주변을 둘러본다.
다짜고짜 대화에 끼어든 나를 가늠하는 시선이 노골적으로 타고 내렸다.
아래냐, 위냐.
동물적인 서열 판단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꼬맹아. 어두운 길로 다니지 말라고 엄마가 안 가르쳐 주셨어?”
대사 한 번 뻔하시고.
놈들의 머릿속에서 처리된 연산 값은 아마도 최최최최하일 게 뻔했다.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 각이 나왔다.
대충 체크 목도리로 얼굴을 둘둘 싸매고 나왔더니, 한 블록 지나갈 때마다 시비 털리는 게 이 거리의 일상이었다.
담뱃재를 중지로 툭툭 털어낸 핑크 머리가 저열하게 웃었다.
“우리가 착한 사람이라 망정이지. 엉아들 까까값만 빌려주면 얌전히 돌려보내 줄게용.”
말만 그런 줄 알았더니 하는 짓은 더 뻔하시고.
어깨에 걸쳐오는 팔뚝이 무거웠다.
옆에 있는 놈도 말릴 생각은 없는지 그냥 실실 웃고 있다.
에이, 왜 그래. 한마디만 했어도 곱게 보내줬을 텐데.
“남의 집 앞에서 앞담 까놓고 용기가 가상하네.”
우드득.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간 팔꿈치가 덜렁거렸다.
요란한 비명이 척척한 빗소리에 파묻힌다.
“오셨습니까, 형님!”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일어서 나를 맞이했다.
깡패놈들이라 그런지 인사성은 참 밝아.
헬멧을 고쳐 쓰며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밖에 비가 꽤 오는 것 같던데 많이 젖으셨습니까?”
“괜찮다.”
좀 축축하긴 해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대충 답하고 돌아서려는데, 그 즉시 보송한 수건이 내밀어졌다.
극진한 대우.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놈들이야.’
며칠 전에 그렇게 먼지 나게 맞을 때에는 살쾡이처럼 눈을 치뜨더니, 위계질서가 세워지자마자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 이거지.’
내가 놈들에게 쓸 만한 ‘자리’로 보였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끝을 눌러 닦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용태 놈이 슬금슬금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오, 오셨어요.”
등치는 산만 한 놈이 쭈굴거리기는.
용태는 내가(엄밀히 말하자면 ‘Q’가) 이 심부름센터를 인수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매사 저런 태도였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고 그의 의자에 망설임 없이 착석했다.
아직도 놓여 있는 실장직 명찰패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페인트 갈라진 천장.
먼지 쌓인 책상.
누렇게 변색된 보드.
어쩜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지만 이곳을 손에 넣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뒷골목에 당신의 명성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어둠의 평판이 올랐습니다.】
【선 성향에 변동이 있습니다.】
【일부 NPC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집니다.】
Q의 거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러니까, Q는 이 뒷골목을 발라 버릴 닉네임이었다.
이모아와 뒷골목을 철저하게 분리하기 위한 허수아비 이름.
낮의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야 할.
사실 별 생각을 하고 지은 이름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이 Q를 말하며 P를 떠올리면 좋겠다고 조금 생각은 했다.
나는 한미래의 영향력이 Q로 인해 조금씩 줄어들길 바랐다.
그래야.
‘빠져나가기 쉬워질 테니까.’
알림들을 내리고 정보창을 확인했다.
선 성향 98%.
위험한 정도가 오려면 한참 먼 수치였다.
“분위기는 어때? 시킨 대로 잘 하고 있어?”
심드렁한 물음을 던지며 의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용태는 통과의례처럼 묻는 질문에도 항상 뭐 잘못한 놈처럼 겁먹은 표정을 지어댔다.
더듬대는 몸짓이 거슬리게 느껴질 무렵.
지잉. 안주머니에 처박아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채희님 송정동 마무리 했습니다. –고구마]반가운 리오의 문자였다.
“에…… 그…… 애들 사이에서도 P를 뛰어넘을 놈이 나타났다. 강동 쪽을 꽉 잡고 다닌다더라, 소문을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용기 내 말 하는 용태의 목소리가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스쳐 지나갔다.
흐음. 대충 보고를 받는 척 콧소리를 내며 자판을 두드렸다.
[잘했어요. 애기들 코 묻은 돈도 뺏어다 줬어요?] [예. 설교까지 마쳤습니다. –고구마] [ㄷㄷ 걔네 이제 질려서 나쁜짓 못할 듯]“거기다 Q한테 오는 의뢰양도 전보다 세 배 이상 늘었구요. 위에서도 조금씩 주목하는 추세고…….”
[다행이네요. -고구마]허. 날아온 답장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재미없는 인간.’
자기 놀리는 것도 모르고 더 나쁜 짓 안 하면 다행이란 말이나 하고 있으니.
가볍게 혀를 찼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Q의 이야기는 리오에게도 비밀이었다.
그는 요 며칠 따로 미션을 진행하는 이유가 단순히 보상의 효율 때문인지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솔직히 말한다고 하더라도 이해 못 해줄 양반은 아니었으나.
‘그냥. 철석같이 사람들 돕는다고 믿고 있는 애 끼게 하기 싫어서.’
대충 그런 이유였다.
리오는 꾸준히 내가 찍어 보내는 나쁜 놈들의 거래 현장을 급습하고 있었다.
떨어져 있느라 문자를 주고받는 횟수가 늘었는데,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메시지 속이 더 재미가 없다는 게 좀.
‘딱딱한 말투가 문젠가…….’
고민하는 사이 설명하는 목소리가 멈춘 게 느껴졌다.
힐금 시선을 돌려 쳐다보니 용태 놈이 질겁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헛웃음이 이쪽한테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분위기 잡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입단속 잘해.”
평소와 같은 경고임에도 용태의 목울대가 요동쳤다.
“어디서 Q도 아닌 놈이 대리의뢰 한다. 소리 들리기라도 하면 바로 박살 나는 거 알지.”
“예. 옙.”
“‘위’ 쪽에서 오는 의뢰는 나한테 바로 넘기는 거 잊지 말고.”
“옙.”
군기가 바짝 든 용태를 보며 가서 일하라는 손짓을 내보였다.
툭, 투둑.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조금 더 사나워졌다.
뿌연 밖을 내다보며 종이 끝을 매만졌다.
한미래가 적어준 위쪽의 주소.
‘맘만 먹으면 당장 쳐들어갈 수 있겠지만.’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뒷골목에서의 평판.
명성.
그리고.
‘세력.’
애카는 이런 부분에서 특히나 요상한 고증이 판쳤으므로, 아무리 미션이라고 하지만 쌩판 쥐뿔도 없는 인물을 왕으로 알박기하긴 쉽지 않았다.
미션을 수락하자마자 ‘여기 1짱이 누구냐 묻기’나 ‘도박장 가기’ 등 관련 연계 미션이 뜬 것도 그냥 생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왕이 됐다 하더라도 명성이 영 떨어진 상태라면 목을 물어뜯으려는 반역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한마디로 자격이 있어야 했다.
‘왕이 될 만한 자격이.’
근데 평판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한 결과, 이 심부름센터를 매수하는 게 첫걸음이었다.
하루에 의뢰를 50개씩 어떻게 쳐내냐. 인간 맞냐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Q는 한 명이 아니니까.’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 Q의 이름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명성을 먹는 건 오로지.
‘나.’
본체 윤채희의 몫이었다.
【뒷골목에 당신의 명성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잠자코 앉아 있기만 해도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며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이제 생각해둔 준비는 대충 끝났으니.
“어, 어디 나가십니까?”
온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몸 매무새를 가다듬자 용태가 또 쪼르르 물었다.
그 눈에 미묘한 기대감이 깔려 있어 잠시 ‘버티고 앉아 있어?’ 하는 고얀 맘이 들었으나.
“내 할 일 하러.”
***
강당 안은 들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학년 별로 깔린 의자.
가방도 없는 아이들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수다를 떨어댔다.
단상 위에는 조잡한 현수막이 펄럭였다.
.
‘몇 년 갈아 써도 모르겠구먼.’
딱히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문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말 그대로, 오늘은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학교생활의 종지부였다.
비록 한 달 남짓한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감회가…… 새롭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감상에 젖어들게 됐다.
내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는 쪄 죽을 뻔 한 여름이었고, 다들 짧은 반팔, 반바지 하복에다가 배경도 아주 초록초록 했는데.
‘그 몇 달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이모아를 둘러싼 주변은 폭풍처럼 몰아치고 뒤집혔다.
물론 다 내가 만든 결과이긴 한데…….
‘이건 좀 섭섭하다.’
힐끗 고개만 돌려 뒷자리를 곁눈질했다.
삼삼오오 짝을 맞춰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한미래는 꼿꼿이 혼자 앉아 있었다.
앞을 바라보는 새까만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를 막 처음 만났을 때로 시간이 돌아간 것 같았다.
요 며칠 인사하고 지냈던 게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가 죄인이지, 내가 죄인이야…….”
한탄하며 몸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말하면서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번 방학에는 뭐 할 거야? 저번처럼 연락두절 되고 그럴 거냐고.”
다른 친구들과 깔깔대며 안부를 묻던 하나가 제자리를 찾아왔다.
가볍게 헤드락을 거는 팔을 감싸 안으며 작게 웃었다.
“그럴 거 같은데.”
“뭐라고? 이제는 아주 연락 씹겠다는 예고를 해 버리네?”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손에 몸을 마구 비틀었다.
한바탕 웃어댄 뒤 찾아온 짧은 정적 사이에는 현실감이 물씬 찾아들었다.
이번 방학.
‘조져지지 않으려면 준비를 해야겠지.’
나는 또 할 일이 많았다.
하나는 눈썰매를 타러 가자거나, 겨울 바다에 놀러 가고 싶다거나 하는 중학생다운 바람을 조잘조잘 늘어놨다.
그 모습이 귀여웠지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의 새 주인】.
내가 그 미션을 처음부터 수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다이아만 먹고 빠지려고 했으니까.’
일이 꼬여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여전히 나의 1순위는 계림사에 도달하는 것.
뒷골목 일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으니까…….
삐이―.
마이크의 노이즈음이 귀 따갑게 울리며 가득 찬 생각을 날려 보냈다.
“지금부터 제 7회 새빛중학교 겨울방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하시고…….”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