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1
32화
얼굴을 와그작 찌푸렸다.
“뭔 소리야? 이름이 여호안이라고요?”
“음. 보호할 호자에 편안할 안자를 쓰는 여식이다.”
“근데 제 가까이에 있다고?”
“그렇다니까.”
눈이 먼 건지, 등잔 밑이 어두운 건지.
킥킥대며 중얼거리는 이 도깨비를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여호안.
애카에서도 한 번 본 적 없는 이름이고,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혹시 화랑 사람 중 하나인가?
뭉근한 의심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이모아를 감시하려고 채본이 심어둔 스파이가 있다던가.
그게 아니라면 학교 내부에? 그것도 아니면…….
“가까이가 어딘데요?”
멍한 눈으로 묻자.
“소원인가?”
도깨비왕이 야차 같은 눈을 치떴다.
기막힌 질문에 소반을 탕탕 치며 항의했다.
“아니,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댁 때문에 누구는 지금 몇 번을 죽었다 살았다 하고 있는데!”
“너는 ‘누군지 찾아달라’고 빌었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가 귀를 후비적댔다.
우와, 재수 없어.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라 억울함을 되삼켰다.
역시 한 번 소원을 빌 때는 구체적으로, 꼼꼼히 빌어야 한다.
아주 그냥 골수까지 빨아먹을 생각으로 R=VD 육하원칙 꼭꼭 챙겨서 빌어야 한다고!
“저어…….”
옆에서 호록호록, 꽃차를 마시며 대화를 경청하던 리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빌면 알려주시는 겁니까?”
네 개의 눈동자가 그에게 다다다닥 박혔다.
“소원을 빌 것이냐?”
“퉤해! 윤산영, 퉤퉤!”
기회를 엿보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처용을 등으로 밀쳐내고 리오의 입을 절실하게 두드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퉤…… 하고 작게 읊조리는 그를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돌탑도 없고, 손도 안 모았고, 퉤퉤도 했으니까 이건 무효입니다.”
단호하게 가로막는 것을 보며 처용이 아쉬운 듯 쩝쩝 입을 다셨다.
나는 리오에게 경고했다.
“저승까지 갔다 와서 빌 생각을 하면 그건 멍청이지, 이제.”
“아, 저는 도움이 될까 해서…….”
“그건 아는데 상대가 잘못됐어.”
아주 크으으으게 잘못됐지.
리오를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용은 이번에는 배웅할 생각도 없는지 자리에 누운 채로 다리만 까딱까딱 흔들었다.
볼 장 다 봤다 이거지. 아니꼽게 윗입술을 말아 올렸다.
드르륵.
장지문을 열었다.
이 문을 나가면 더 이상 도깨비 나라에 올 일도, 이 미친 도깨비왕을 만날 일도 없었다.
고양이랑 평생 백년해로를 하든지 말든지 내가 신경 쓸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웬만하면 적당히 하고 보내주지.”
미처 문지방을 밟지 못한 등이 툭 내뱉고 말았다.
미션을 하는 내내 떠올렸던 의문.
마음속에서 따끔거리는 바늘처럼 계속해서 결리던 질문.
“붙잡고 있는 것도 댁 욕심이지, 나비가 원하는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홉 번의 생 동안.
그것도 이 괴팍한 도깨비의 곁에서.
상상하면 조금 몸서리가 쳐졌다.
처용의 고양이가 야옹야옹, 직접 도와 달라 요청했다면 이 정도로 고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판에 참 모순적인 감정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쉽게 의구심을 멈출 수 없었다.
‘불멸이라는 게 좋은 것인가?’
끝이 없는 삶이라는 건 무엇인가?
끝이 없다면, 어디서 다음을 찾아야 하는가?
끝이 없다면, 어디서 시작을 찾아야 하는가?
‘나조차도 그 에 희망을 걸고 있는 판에.’
입안이 씁쓸했다.
인간 주제에 선 넘는 말을 내뱉는다고 불호령 칠 것을 예상한 것과 다르게 처용은 고요했다.
까딱대던 다리가 멈추고, 그의 시선은 뚫어지게 천장 가운데로 박혀있었다.
그 모습을 고요히 지켜보다 결국 문지방을 넘었다.
이곳에서의 볼일은 이제 끝이었다.
인벤토리에 쑤셔놨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바로 오 사장에게 연락해 ‘여호안’이라는 사람을 찾아달라고 할 셈이었는데,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그새 방전이 된 모양이었다.
“……충전 한 번만.”
멋진 퇴장은 실패다.
모양 빠지게 뒷걸음질 쳐 작게 부탁했다.
파지직!
처용의 손놀림 한 번에 단말기 주변으로 노란 스파크가 번쩍였다.
웅. 웅. 우웅.
연달아 진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위에 뜨는 알림으로는 이겸, 구서복, 이겸, 이겸, 구서복, 이겸…….
고작 하루 좀 연락이 안됐다고 이 정도로 어디에 있느냐, 움직이면 움직일 때 제발 위치 좀 알려 달라 애원 섞인 부재중 텍스트들을 남겨놓다니.
‘과보호야, 과보호.’
어디 야밤에 돌아다녀도 이제 죽을만한 등급은 아닌 것을.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충 문자를 확인하던 손가락이 핸드폰 액정 위에서 딱 멈췄다.
[연락 왔습니다. -심부름꾼]드디어, Q에게 도착한 용건이었다.
***
“아, 서울이라니까요. 진짜라니까? 뭐 63빌딩이라도 찍어서 보내줘요?”
금방이라도 난간이 부러져 나갈 것 같은 낡은 옥상 위.
살짝 몸만 기울여도 삐그덕 거리는 철제로 툭툭 발장난을 쳤다.
담담히 전한 현재 상황에 전화 상대에게서 빽빽거리는 소리가 돌아왔다.
일말의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핸드폰을 귓가에서 멀리 떨어트렸다.
―「근데 왜 연락이 안됐냐구요, 예? 사람 피 말려 죽일 일 있어요? 당일치기라고 나가신 분이 연락도 안 되고. 아침까지 핸드폰도 꺼져있고!!」
“버스 타고 자느라 몰랐다니까요. 심야 버스였다니까.”
―「그게 지금 말이 되냐고요. 요즘 버스에 고속 충전기가 얼마나 잘 달려있는데!!」
여기까지 오자 더 이상 거짓된 알리바이로도 할 말이 없었다.
짭짭. 입맛만 다시고 있으려니 구서복이 쉴 새 없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아가씨 때문에 도무지 제 명에 못 살겠어. S급 차원보다 아가씨가 더 심해. 아주 그냥 수명이 팍팍 깎이는 기분이라고요. 말리지 마세요. 저 지금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하고 올라니까.」
그러나 이 말만은 참을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함부로 합니까? 사과해요.”
아, 사과하라고.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이 아저씨 지금 저승이 장난인 줄 알아?
삼도천이 집 앞 호수 공원이야?
그 미친 사자 놈들이 하이파이브라는 걸 해주기나 할 것 같아?!
진심으로 밤새 저승사자와 파이트를 뜨고 온 자로서 분노가 솟구쳤다.
내 노기를 느낀 구서복이 쭈굴 대며 한풀 꺾인 투로 중얼거렸다.
―「그거는…… 제가 잘못했네. 실언했습니다. 쏘리.」
후우. 이번만 봐주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연락이 안 된 이유는 지옥에 갔다 와서 그랬습니다, 실제로 말할 수도 없으니 적당한 마무리였다.
‘그나저나 리오는 집에 잘 갔나.’
문득 그를 떠올렸다.
울산에서 서울까진 같이 올라오려고 했는데, 서둘러 가봐야겠다는 말에 반색하며 등 떠밀던 그 손.
「“엥? 리오는 안 가고요?”」
「“아, 근처에 할 일이 좀 있습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 연고도 없는 애가 무슨 할 일이냐고 되묻기도 전에 리오는 나를 버스에 구겨 넣었다.
부르릉. 떠나는 차창 너머로 작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선연했다.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구서복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만난 리오는 어딘가 좀 변한 것 같기도 했다.
더 다부져진 것 같기도 하고.
더 실력이 는 것 같기도…….
아니, 그러고 보니까 뭔가 잊은 게…….
‘그 방패!’
정신이 없어서 못 물어봤다.
재빨리 핸드폰을 내려 리오에게 문자를 남기려던 찰나.
―「그래서 집에 대체 언제 오실…….」
덜컹. 덜컹덜컹.
구서복의 질문이 막 열리려는 구겨진 철제문의 소음에 가려졌다.
신속하게 코 위로 올려놨던 헬멧을 뒤집어쓰고 핸드폰의 마이크 홀을 막았다.
“형님.”
비죽 얼굴을 내민 것은 용태였다.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주자 다시 덜커덩 망가진 옥상 문을 끼워 맞추고는 몸을 돌린다.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숨을 죽이다, 이내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오늘 안에는 갈게요.”
아마도.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툭.
경쾌하게 밀린 빨간 버튼에 구서복의 목소리가 끊겨 사라진다.
단단히 헬멧을 고쳐 쓰고 앞 유리판을 벅벅 닦았다.
이 세상이 나한테 이렇다.
아주 잠깐 딴 생각할 타임도 주지 않으니까.
이제부터는.
‘Q의 시간.’
***
“답이 왔어?”
“예. 여기 올려놨습니다.”
바쁘게 심부름센터로 내려오자 용태가 책상 위로 곱게 올려놓은 학 한 마리가 보였다.
여전히 흑요석처럼 빛나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일반적인 의뢰는 계약자가 적당한 레벨을 골라 수락하고 날려 보내면 끝인데, 이렇게 상대를 지정해서 오는 의뢰는 계약자가 한 번.
그리고 최종적으로 거래한다는 의미로 의뢰자가 한 번 더 서명을 적어 보내는 절차가 존재한다고 들었다.
끄트머리를 붙잡고 펴자 내가 마력으로 적어 넣은 싸인 옆으로 새로운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작은 박쥐 날개 같은 것에 자잘한 한자들이 수놓아진 문양.
읽을 수는 없었으나 꽤 정교한 것임은 분명했다.
용태는 그게 위조할 수 없는 ‘위’의 표식이라고 했다.
“열 시간 만에 응답한 것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네.”
“그러게 말입니다. 참을성이란 게 없는 놈들이라 두 시간 이내에 답변이 없으면 보통 다른 거래자한테 가기 마련인데요.”
머리를 긁적이는 구 실장의 말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 지금 나 간 보는 거네.’
어쩐지 보낸 의뢰가 너무 쉽다 싶었다.
놈들이 구해 달라 부탁한 물품은 ‘미네타르의 핵’.
대부분 폭탄을 만들 때 많이 조합하는 아이템으로, B+등급 정도의 각성자라면 차원 안에서 가볍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부수적인 과정이 더 필요하긴 하다만.
‘뒷골목에 있는 놈들이라면 그 정도는.’
한마디로 굳이 ‘Q’가 아니어도 되는 의뢰에, 놈들은 하루 반나절을 허비했다는 소리가 됐다.
그동안 퍼진 명성에 비해 실체가 없으니 ‘네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겠다’는 테스트 목적이 강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갔다 올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또 보고 줘.”
“예? 형님이 직접 가십니까?”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용태 놈이 휘둥그렇게 눈을 뜨고 물어왔다.
의뢰 내용도 모르면서 놀라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순순히 당해줘야지, 뭐.”
일단은.
“아.”
지저분한 심부름센터 문을 붙잡고 깜빡했다는 듯 뒤를 돌았다.
“Q 이름 걸고 쓸 만한 인재들 몇 명 추려놔. 너무 양아치 같은 애들 말고, 그래도 나름 의리가 있는 놈들로.”
믿는다.
가볍게 덧붙인 마지막 말에 용태가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철제문이 닫힐 때까지 벌어진 턱은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리 낀 계단을 미끄러지듯 밟으며 내려갔다.
여기까지는 계획한 대로 잘 왔다.
어느 정도 명성을 쌓았다면, 이제는.
‘세력을 만들 차례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