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0
31화
명부.
저승사자들의 업무 기록지 같은 것.
사자 놈들은 위에서 내려온 보고대로 목숨이 다한 자들의 이름을 명부에 옮겨 적고, 그걸 가져갈 혼의 앞에서 세 번 불러야지만 죽음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게 없으면 사자고 뭐고? 그냥 눈 시꺼멓게 칠한 코스프레.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갓이나 쓴 자일 뿐.
그러므로 처용이 원하는 대로 어떤 방해도 없는 유예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명부를 탐하는 게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다.
‘서브 미션에서 봤을 때에는 그냥 발급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뭐, 저승 공무원에게도 여러 저러 절차가 있어 보이니 며칠 정도는 쉽게 넘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패고 쓰러트려봤자 저승사자는 이미 죽은 몸이기 때문에 몇 시간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게 전부라는 점도 한몫했다.
고양이의 이름이 적힌 부분만 찾아 조용히 뜯어 오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뭐.
‘오히려 좋아.’
진심으로 화가 난 한덕차사가 미친 듯이 쫓아오는 거 빼면 다 좋았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곱게 돌려 달라.
그럼 고이 지상으로 보내주겠다 딜을 걸어오더니.
「“한 장만 뜯을게.”」
「“정해진 망자들의 이름을 건드려선 안 됩니다. 진정 저승의 심판을 바라는 건가요?”」
「“아, 딱 한 장만 뜯겠다니까. 어? 어어? 가까이 와? 자꾸 그럼 다 뜯어?”」
「“잠시만요. 우리 말로…….”」
「“저승을 우습게 보는 인간의 만행을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안 돼……!!”」
부우욱.
급작스럽게 달려든 한덕이의 부하, 까망이에 의해 명부는 박박 찢겨 아무 효력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됐다.
방패를 들고 내 쪽으로 몸을 날린 리오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오지 말라니까.”」
나는 이 자리를 빌어 자업자득이라 말하고 싶다.
‘후배 잘못 둔 것도 내 탓임?’
어쨌든, 우리가 또 미친 듯이 달리게 된 건…… 조금 내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끝난 거 앙금은 좀 털어버립시다!”
빛살처럼 날아오는 저승이들의 머리 위로 마법진을 퍼부었다.
떨어지는 운석 사이를 잘도 피해 달려든다.
텅. 터엉!
리오의 방패 위로 놈들의 붓과 부채가 마구잡이로 부딪혔다.
‘이대로 계속 달리는 건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조금만 더 앞으로 향하면 이제 저승 입구였고, 그 말은 즉 삼도천을 건너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물 위에서는 우리가 훨씬 불리할 게 뻔했고, 어떤 방법이…… 방법이.
‘있다.’
까만 사람의 형체를 발견한 눈이 번뜩였다.
***
부우우우웅!
그르렁대는 배기음이 광활한 저승 바닥을 거세게 흔들었다.
감히 어떤 혼백도 따라오지 못할 스피드.
아니, 따지고 보자면 오히려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속도였다.
바퀴 뒤로 버석한 모래폭풍이 몰아쳤다.
문제는.
“저, 저, 저거 누구 차야?”
귀신들도 치고 다닌다는 거지.
불안하게 비틀거리는 차체가 지나가는 곳마다 망자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헐레벌떡 달아난 입들이 손가락을 뻗어 번쩍이는 차 뒤꽁무니에 한마디씩 얹었다.
“딱지 좀 떼이겠는데. 저게 몇 년 추가야.”
“저거 그 넥타이 머리에 맨 양반네 차 아닌가?”
“허어…… 그 친구는 운전을 저렇게 할 친구가 아닌데…….”
멍한 눈의 망자들이 각자 곧 닥쳐올 사자의 형벌을 상상하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의문은 운전대를 잡은 사람을 확인하면 모두 해결됐다.
끼이이익!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바퀴가 헛돌며 스키드마크를 남겼다.
안에 탄 탑승자들은 모두 안전벨트와 좌석 손잡이를 붙들고 기도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우우우욱. 제발 내려, 내려줘……!! 살려줘!”
“채희 님, 분명, 면허 있으시다고…….”
안 그래도 연약한 평형기관에, 롤러코스터급 흔들림이 더해지니 사색이 된 얼굴이 캐물었다.
토기를 참는 볼이 불룩했다.
“있다니까. 무려 2종 보통이라고, 내가.”
저승길의 무법자가 소리쳤다.
물론.
‘6년 장롱면허긴 한데.’
목표는 오로지 하나.
콰앙!
막무가내 운전에 뺑소니를 당한 사자 하나가 차 보닛을 타고 위로 굴렀다.
세차장의 솔처럼 쓸려 올려가는 몸뚱이.
그 와중에 움푹 패인 검은 눈을 마주한 리오가 흡. 작게 숨을 참았다.
“……방금 누구 친 거예요?”
“우리 배 부순 놈.”
그렇죠?
백미러로 뒷좌석에 드러눕다시피 한 본래 차 주인에게 물었다.
잠깐 차 좀 빌리겠다고 했더니 도둑이야, 탈취범이야 난동을 피운 탓에 손발이 묶인 채 납치된 그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어도 맞다.
맞아도 맞다.
사나운 엔진 소리가 차차차착, 물 위를 갈랐다.
채 접지 못한 알림창이 80% 정도의 불투명도로 희미하게 떠올랐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물리구마)】
【1,0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이건 두 번 죽이는 거예요)】
【1,5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지긋지긋한 지하 세계의 탈출이었다.
***
“에취.”
“아직도 많이 추워요?”
여기는 그래도 따듯한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리오에게 인벤토리에 쟁여 놓았던 땡땡이 무늬 담요며 법사용 예비 로브를 더 둘러 덮어줬다.
안 춥긴 뭘 안 추워. 겁나 코 훌쩍거리면서.
중얼대는 나 역시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다.
아직도 꽁꽁 얼어 있는 머리칼 끝을 바삭 만졌다.
끝내주는 레이스 한 판을 즐기고, 삼도천을 건너 돌아온 현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밤을 건넌 자)】
【2,0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희뿌연 안개가 사라지고 업적명이 뜨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저승을 기어 나오자 바깥은 지하와 다름없는 캄캄한 야밤이었다.
그것도 막 동이 터 오르기 직전, 가장 어두운 아침 6시경.
드디어,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분명 들어갈 때에는 아직 해 떠 있는 점심때였는데.’
드문드문 불 켜진 인가와 비쩍 말랐지만, 분명히 서 있는 나무들을 보지 않았다면 여기가 아직 지상인지 지하인지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휘이이잉!
진심으로 칼 같은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바람이 아프다는 걸 오랜만에 느껴봤다.
뼈 사이사이가 난도질 난 것처럼 시리고 저절로 이가 딱딱 부딪혀 소리가 났다.
‘쫄딱 젖어 돌아다니고 있는 꼴이니 춥지 않을 리가.’
중간에 영업 중인 24시간 편의점에 들러 핫팩을 샀으니 망정이지, 바로 다시 저승으로 돌아갈 뻔했다.
물론, 알바생은 주위에 물가도 없고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축축이 젖어 들어온 우리를 보고 내내 계산대 밑에 달린 신고 버튼에 손을 올려뒀다.
물미역처럼 젖은 몸을 굳이 말리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또 물에 빠져야 되니까.’
그게 조금 슬프긴 했다.
우물 앞에 도착한 다음, 여기가 입구라고 말했을 때 리오 반응이 얼마나 당혹스러워 보이던지.
“조금만 참아요. 그 도깨비 오면 몸부터 말려달라고 할 테니까.”
뜨끈한 찻잔의 열기로 언 손을 녹였다.
처용 대신 우리를 맞이한 뿔도깨비가 호의로 대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도깨비들의 활동 시간인 밤이 끝나가서 그런지 처소 주변은 전에 왔던 것과 딴판으로 고요했다.
리오는 덜덜 떨면서도 신기한 눈으로 저잣거리를 살펴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겁도 없이 도깨비의 취침 시간을 방해하나 했더니.”
그때, 뒤통수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잠기가 묻은 것처럼 하품하고 연기하는 투에 정색을 하고 답했다.
“안 자는 거 다 알거든요?”
처용이 씨익 웃었다.
***
저번과 같이 짧은 영창 한 번으로 온몸의 물기를 날린 처용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옷까지 말끔히 다려줬다며 생색을 내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그래도 배려인지 뭔지 처용의 처소 안은 훈기가 감돌았다.
웬일로 이 모든 사건의 주요 원인인 고양이를 안 끼고 있기에 행방을 물었더니,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한심한 얼굴로 답했다.
“본래 고양이의 주 활동 시간은 밤이다. 지금은 잘 시간이지.”
고 예쁜 걸 지켜봐야 하는데.
구시렁대는 걸 보며 손에 쥔 명부 조각을 얼굴에 집어 던질까 잠시 고민했다.
이 미친 집사.
하지만 고양이는 죄가 없지.
육각 소반 위에 얌전히 팔을 올려놓았다.
“한동안은 안 나타나지 않을까 싶은데.”
꽤나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낡은 종이의 정체가 뭔지 가늠하던 처용이 별안간 캬하학! 소란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 배까지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는 탓에 나 역시 엉성한 웃음을 마주 지어줬다.
“명계 음식만 들고 오는 줄 알았더니, 늦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게 기분 좋아 보이는 도깨비의 얼굴은 또 처음이었다.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순식간에 미션이 두 개나 클리어됐다.
아마 조건을 자동적으로 달성한 탓에 미션 하나가 그냥 넘어간 것 같았다.
처용은 살짝 이름의 획이 남아 있는 그 조각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손으로 쫙쫙 펴 불빛에 비춰보고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곧 액자에라도 박제할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썩은 미소를 유지했다.
그가 홱 고개를 돌려 반짝반짝한 눈으로 물었다.
“신명나게 패줬나?”
“예, 뭐, 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그랬나? 얼굴도 좀 퉁퉁 붓고 말이야.”
“그런 셈이죠.”
캬학학학! 그 꼴을 봤어야 하는데!
찢어질 것 같은 웃음이 또 천장을 꿰뚫었다.
그러나.
‘내가 처용의 행복한 얼굴 같은 걸 보자고 이 개고생을 한 게 아니다.’
“제 소원은?”
보상을 내놔야지.
순간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산통을 깬다는 듯 심드렁한 눈이 나를 돌아봤다.
이렇게 태도가 극과 극일 수가.
질린 티를 굳이 내지 않고 비즈니스적 미소를 유지했다.
끄응. 소리를 내며 벌러덩 누운 처용이 배를 벅벅 긁었다.
툭 한 단어를 내뱉었다.
“여호안.”
여호안?
그게 뭔지 묻기도 전에 뒤에 붙은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네 가까이에 있구나.”
처용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을 따분한 면으로 내려다보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