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3연속은 좀 심하지 않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랜덤 가챠도 이렇게 확률이 극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정말 아무 정보도 없는 건 아니었다.
구서복이 꽤 예전부터 이겸과 함께 다녔다는 것.
이 남매의 부모님은 이모아가 말도 잘 못 할 때부터 없었다는 것.
이겸이 화랑을 세운 것 역시 아주 어린 나이에…….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모아에게는 스스로 뭔가 변화한 중요한 기억일지 몰라도 지금 나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어릴 적의 이모아는 대부분 길드 꼭대기.
그러니까 지금의 집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본 바깥 풍경이라곤 고층에서 내려다본 창문 아래가 다였다.
이것도 이겸의 보호 프로그램이라면 이해가 갈 법도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뭔가가…….
“찜찜하다.”
그것도 무지.
‘되도록이면 많이 남기고 싶은데. 다이아.’
심각하게 기억들을 넘겼다.
지금까지는 이겸과 잠긴 스킬이 연관 돼있다는 생각에 길드, 오빠가 들어간 해시태그를 주로 골랐지만.
【1000 다이아 소모.】
【‘이모아의 기억 #33 (#공원, 분수, 구슬)’을 구입하셨습니다.】
“공원이나 분수가 길드 안에 있을 리는 없고.”
내용만 봐선 뻔하디 뻔한 소풍스러운 느낌이 강했지만, 구슬.
저 단어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이번엔 정말 축적된 정보들과 직감으로 고른 기억이었다
스르륵 몰려오는 기억들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제발 천 다이아의 가치가 있길…….
‘…… 응?’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뭔가 오는 느낌만 나고 전처럼 어떤 장면도, 어떤 감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앞이 굉장히 환했다.
눈앞에 형광등 백 개 정도는 켜놓은 거 같은 이 느낌…….
‘설마 뻑났냐? 이대로 내 천 다이아 떼먹히는 거냐? 어?‘
불안한 생각과 함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동시에.
“꺄아!”
“아하하.”
“정민아, 조심해.”
“와아, 도망가자아!”
와글와글한 소음에 파묻혔다.
나는 서 있었다.
어디에?
생각하기도 전에 눈앞으로 새하얀 물줄기가 솟구쳤다.
쫄딱 젖은 아이들이 신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고,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은 부모들이 나긋한 눈으로 자신의 아이를 좇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들 위로 얕은 무지개가 뜬다.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
그러나, 또다시 낯선 공간에 뚝 떨어진 나는.
여기…… 여기는.
‘광화문이잖아.’
탁.
축축한 손이 작고 오동통한 손을 쥐어왔다.
“모아야, 뭐해?”
똑. 똑. 그의 머리칼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상냥한 눈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는 이 남자아이는 역시나.
‘이겸이다.’
전에 봤던 기억들보다 조금 더 앳된 모습이었다.
열다섯, 열여섯쯤 되었을까? 아직 애 티는 벗지 못했지만 이모아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모아야, 겸아.”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스르륵 몸이 돌아갔다.
한 부부가 나와 이겸을 보며 자상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겸 역시 화답하듯 내 손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팔을 휘휘 흔들었다.
금세 쭈그려 앉은 그가 내 젖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아빠한테 갈까?”
그렇구나.
저 사람들이 이겸과 이모아의 부모님이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내가 움직이지 않은 입이 제멋대로 소리를 냈다.
“응!”
나는 아무래도.
‘이번엔 이모아의 어릴 적. 더 깊은 과거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
광화문.
그곳은 이겸에게 아주 상징적인 장소였다.
애카에서는 먼 시점이라 설명 몇 줄로 넘어간 설정이긴 하지만, 오죽하면 그에게 붙는 수식 중 하나가 였을까.
그런데 만일 이 기억이 그 광화문이 맞다면.
이모아가 기억하는 그날의 장면이라면…….
잠깐…… 유일?
‘어어! 뭐야!’
심각한 생각에 빠지려는 나를 풍덩 건져 올린 건 이겸이었다.
이겸은 나를, 아니, 그러니까 이모아를 가볍게 들쳐 안았다.
이모아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이겸의 어깨 죽지를 꾹 쥐었다.
자신을 의지하는 자그마한 머리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는 뜨끈하게 열이 오른 이마로 이모아의 머리를 몇 번 부비기도 했다.
근데, 그거, 다…….
‘나한테 느껴지는데.’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니. 이미 나는 죽어 있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움직였지만, 손은 그 자리 그대로 굳어 있었다.
보고 느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공간.
그러는 사이 이겸의 발은 점점 더 부모님에게로 가까워졌다.
“엄마아.”
손을 쭉 뻗은 이모아는 엄마에게로 옮겨 안겼다.
쯥. 조금 아쉬운데.
속으로 입맛을 다셨지만 이모아가 느낀 행복과 따스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곧 투덜거림은 멎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오빠보단 엄마가 좋을 나이지.
그러나, 이 평안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저게 뭐야?”
“먹구름인가? 하늘이…….”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멍하니 새까만 구체로 뒤덮이는 하늘을 보며 웅성거렸다.
공기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거대한 돔은 훗날 ‘인스턴스 배리어’로 불리게 된다.
마수, 혹은 인간.
누구 하나 완벽히 몰살되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는 방어막.
이는 즉 외부와의 단절을 뜻했다.
어떤 도움도, 지원도 받을 수 없이 배리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해내야만 했다.
또 한 가지.
배리어는 안에서 바깥은 볼 수 없지만 그 반대.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는 형태로, 애카에서는 사람들의 무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 종종 사용되기도 했었다.
지금처럼.
하늘이 막힌 것과는 별개로 안쪽은 대낮처럼 훤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이모아는 불안한 공기를 느끼기라도 하듯 엄마의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작은 아이의 등을 조금 더 꽉 끌어안았다.
대한민국에 뜬 최초의 채널이자
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채널.
‘광화문 참사’.
그게 바로 이겸이 겪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거 흠집도 안 나는데.”
“다 같이 몸으로 부딪쳐 봐요!”
“엄마, 나 배고파아. 빨리 나가자. 빨리.”
“응. 괜찮아, 괜찮아. 잠깐만 기다리면 경찰 아저씨들이 와서 구해주실 거야…….”
“바깥에선 뭐 하는 거야? 서울 한복판에 이딴 게 생겼는데.”
배리어 안은 우는 아이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어른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웠다.
모든 전파는 아웃.
손, 발, 나중에는 무기로 쓸 만한 온갖 것들을 꺼내와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 배리어가 부서질 리는 없었다.
‘나갈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명되는 건 그것뿐.
사람들은 점차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모아를 품에 안고 이겸의 손을 꼭 쥔 그들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연신 두드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던 아빠는 주위를 둘러보다 이겸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이겸은 티 나게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고작 열 몇 살이었다.
눈빛의 불안함까지는 숨기지 못하는 어린아이.
아빠가 엄마의 귀 가까이로 허리를 숙였다.
“수경아. 나 잠깐 다녀올게. 뭐 좀 진행되는 게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이겸에게까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아빠의 손목을 붙잡아 쓰다듬었다.
이모아의 볼을 가볍게 문지른 아빠가 이번엔 이겸에게로 다가갔다.
“겸아. 아빠 잠깐 사람들한테 다녀올게. 저기 모여 있는 어른들 보이지? 저기 있을 거야.”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금방 다시 올 건데 뭘. 그래도 그동안 아들이 엄마랑 동생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다정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이겸은 결국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떼를 쓰는 정도로는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빨리 올게.”
“응.”
엄마는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답했다.
안겨 있는 이모아에게까지 그녀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그러나, 아빠는 끝까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짓하고 사람들 사이로 파묻혔다.
‘가지 말지.’
마음이 착잡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가 떠난 뒤 이겸은 호위무사라도 된 것처럼 사방을 경계했다.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내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하늘에 뜬 포탈 균열이…….
‘열린다.’
“아아아악!!”
고통에 찬 신음이 저 끝에서부터 배리어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붉은 오오라를 두른 새까만 균열.
SS급이었다.
그것도.
‘사룡(死龍), 이무기.’
허공을 유유히 헤엄치는 새까만 비늘이 순식간에 돔 안을 뒤덮었다.
사방이 아수라장이었다.
수십, 아니, 수백의 이무기 떼가 사람들의 몸뚱이를 찢어댔다.
하늘에서 툭 툭. 분리된 팔다리가 떨어졌다.
“겸아.”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감지한 그의 어머니가 강한 손놀림으로 아들을 잡아챘다.
갈 곳이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도망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아빠! 어린 이겸이 목이 찢어져라 외치지만, 그녀에게는 닿지 않는다.
비틀대는 발걸음으로 무작정 배리어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이 답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으앙. 으아아앙.
공포감에 짓눌린 이모아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 X발.’
차라리 눈이라도 감고 싶다.
비릿한 피 웅덩이 위로 쓰러져 있는 시체들.
눈도 감지 못해 고통에 찬 희번득한 시선들이 여기저기 낭자했다.
뚫린 배로, 목으로, 얼굴로 인간의 내장들이 미끄러져 나왔다.
지옥.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이건 과거다, 이모아의 과거…… 끊임없이 되새기며 중얼거려도 미칠 것 같았다.
역겹고 두려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패배감, 두려움, 공포심…….
그 모든 것들이 섞여 끈적한 절망을 퍼붓고 있었다.
텅.
우리는 배리어 끝까지 도착했다.
이미 죽어 물커덩 한 시체들을 밟고 올라간 그녀는 손톱이 들춰질 때까지 배리어를 긁어댔다.
그러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목 뒤로 소름이 쫘악 솟아올랐다.
이무기가.
“…… 아.”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이들을 품에 안고 엎드렸다.
아앙. 아아아앙! 울부짖는 이모아의 이마에 입술을 붙이고 쉬이, 쉬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발버둥치는 이겸과 이모아를 끌어안고 두드리는 손길은 두려움을 잊으려는 듯 억세고 뜨거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뜨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촥.
이모아의 얼굴 위로 흩뿌려졌다.
그들을 토닥이던 손이 헐겁게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젠장.’
파아아앗!
그 순간 눈이 멀 듯한 강렬한 빛이 터졌다.
‘…… 지금이라고.’
세상은, 정말 구질구질하게 더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