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멀어.”
멀어도 너무 멀어.
서서히 동이 터 오르는 하늘을 보며 숨 가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남산 주변은 아스팔트로 잘 닦인 데다, 평지뿐인 산책길이 많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은 항상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이제는 없으면 서운할 흙바닥.
나무.
풀.
그리고.
‘오르막길.’
남산을 빙 둘러싸고 있는 둘레길 코스 중 하나였다.
거의 산길이나 다름없는 느낌이라 이제 막 아침이 됐다고 해도 걷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인기척이라고는 산짐승인지 뭔지 가끔 들리는 낙엽 소리뿐이었다.
그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덤이고.
‘이 을씨년스러운 풍경.’
쌀쌀한 팔을 부비며 조금 더 몸을 움츠러트렸다.
고작 산책이나 하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다.
내가 찾고 있는 건 단 하나.
코스 사이사이에 구비된 야외 운동기구들이었다.
허리, 어깨, 심지어는 복근 운동까지 공짜로 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
하물며 운동에 별 관심이 없어도, 길 가다 보이면 누구나 한 번쯤 공중걷기 기구를 탄다는 그곳!
그리고 단연 그 운동기구들 중 하이라이트를 말하라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삼단 철봉.’
철봉은 누구든지 쉽게 ‘나 지금 운동 하고 있다’.
흉내 낼 수 있는 다른 운동기구들과 달랐다.
오직 봉과 나만의 싸움.
초보자와 고수의 차이가 한눈에 판가름 난다는 그 냉정한 운동기구.
그리고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달인이라 불리는…….
“저기다.”
덤불들 사이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쇳덩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달려가자 오는 길에는 하나도 없던 사람들이 꽤 북적거렸다.
그것도 어디서 공동구매라도 했는지 죄다 등산복에 썬캡을 쓴 사람들이, 일말의 대화도 없이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끼익, 끼익.
기름칠 안 된 쇳소리들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무에 등을 두드리고 박수만 뻑뻑치는 어머니들에게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겼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진짜는.
‘문 선생.’
익숙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애카에서나 여기서나 철봉 문 선생은 한결같은 비주얼을 뽐내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사계절 내내 흰 메리야스에 반바지.
양말을 종아리까지 끌어올리고, 무지막지한 팔 근육을 자랑하는 그.
문 선생은 철봉에 매달려 그네 타는 것처럼 반동을 주고 있었다.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무슨 서커스단처럼 날았다가 다시 철봉 붙잡기를 반복했다.
종내에는 허공에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리를 들어 막 걷기 시작했다.
오로지 팔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그의 몸에서 김이 펄펄 났다.
‘고수들은…… 중력을 찢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화려한 테크닉을 보자니 입이 바짝 말랐다.
맞다.
나는 그에게 야매 근력 스킬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왜 하필 야매냐고 물으신다면.
‘안전빵으로 근력을 올리기 위해.’
사실 근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정석 루트라고 하자면, 검술이나 격투술처럼 무(武) 계열 스킬을 받으러 가는 것.
근력을 올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하는데, 이모아의 현 상태가 오로지 ‘지능’에 기대고 있는 마법사라는 것에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검술과 마법의 하이브리드는 쉽지 않다.
물론 같이 배우면 배울 수 있기야 한데, 서로의 장점을 깎아 먹는 짓밖에 되지 않았다.
근력과 지능이 그만큼 상충된 능력치인 탓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검술 스킬을 숙련시켜 근력이 올랐다면, 그에 비례하는 양 만큼의 지능이 깎이는 식.
하지만 야매는 다르다.
이 철봉의 달인에게 배울 수 있는 근력 스킬은 .
이 스킬은 아무리 숙련도를 쌓는다고 해도 다른 능력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게다가 근력 스킬 중에서 그렇게 나쁜 효율도 아니고.’
물론 서브 퀘스트를 시작하기 위해선 미리 달성되어야 하는 선제조건이 좀 까다롭긴 하지만.
오늘부터 꼬박 열흘간 아침 철봉을 하러 나와야 하긴 하지만.
비록 스킬을 시전 해봤자, 한 바퀴 뒤로 도는 것뿐이지만.
‘그게 별거냐.’
힘들게 올려놓은 능력치 깎아 먹는 것보다야 백배 나았다.
슬쩍슬쩍 주변 눈치를 보며 몸을 푸는 척했다.
뉴페이스의 등장에 눈길이 끌리는 게 느껴졌다.
은근슬쩍 철봉 쪽으로 다가가는데, 가장 낮은 철봉에 매달려서 낑낑대고 있는 여자애 하나가 보였다.
나이는 7살? 8살쯤 되었을까.
‘애카에서는 못 보던 앤데.’
누구 딸내미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긴장된 어깨를 들썩거렸다.
달인 문 선생과 여자아이의 사이.
중간 철봉 아래에 섰다.
“흐읍.”
폴짝 뛰며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일단 매달리는 건 성공.
연약한 이모아의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온 힘을 다 짜내 턱걸이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실패.’
부들부들 떨다 내려온 게 끝이었다.
이 민망함을 숨길 길이 없어 ‘손이 미끄러졌네’ 따위를 중얼거리기나 했다.
그래도 이 머쓱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근력 D면 턱걸이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흘긋 살폈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다.
…… 고독한데?
그 때, 옆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
“…….”
작은 원숭이처럼 봉에 매달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이는, 자랑하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않고 몸을 빙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것도 못해?’라고 묻는 듯한 저 표정.
수치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첫날이라고.’
그 모습을 보자 잠들어있던 오기가 깨어났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팔에 힘을 빡 줬다.
딱 한 개만. 딱 한 개만!
【‘근력’ 숙련도: +0.1045%】
“으허억.”
턱으로 철봉 위를 찍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졌다.
용을 쓴 팔이 찌릿거렸지만, 그래도 작은 소득은 있었다.
자연 수련치.
‘그냥 달리는 것보다는 많이 쌓이네.’
거의 0.1%의 효율이니, 계산하면 천 번 턱걸이에 등급 하나를…….
‘말도 안 나온다.’
천 번 하는 사이에 계절이 바뀔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이야 뭐.
‘이거라도 해야지.’
한참 낑낑대자 몸에 열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이마의 머리칼이 땀에 폭삭 젖을 정도로 철봉과 씨름을 하던 와중.
메세지 창 하나가 떴다.
【지정된 필수 스케줄을 이행하기 위해 강제 이동됩니다. (남은 시간: 2분 59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고?’
봉에 매달려 번쩍 위를 쳐다봤다.
이미 해가 활짝 떠 맑고 청명한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었다.
‘젠장.’
어차피 지금 출발해봐야 강제 이동되는 게 빠를 거.
버틸 때까지 버틴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순간이라도 자연 수련치를 더 얻기 위해 상체를 들어 올렸다.
더 이상은 팔꿈치가 빠질 것 같았지만 마지막까지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서……!
【지정 된 필수 스케줄을 이행하기 위해 강제 이동됩니다. (남은 시간: 0초)】
순간, 시야가 까무룩해졌다.
투!
누군가 침을 뱉는 것처럼 허공에 떨어졌다.
볼품없게 우당탕탕 넘어진 나는 바닥에 부딪힌 무릎이며, 팔꿈치를 마구 비벼댔다.
강제 이동 당하는 건 처음인데, 뭐랄까…….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 같은 기분.’
“아파 죽겠네, 이씨!”
소리를 질러 봤자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옮겨진 지점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새빛중학교, 교문 앞.
‘왔구나, 드디어.’
근 3일 만에.
보통 등교 시간이 다 지난 교문은 한산했다.
예의상 트레이닝복 위에 대충 교복을 껴입고, 산발이 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내렸다.
‘어쨌든 됐다. 오늘은.’
근력 퀘스트를 위한 한 발을 잘 뗐으니, 이제 꾸준히 유지만 하면 될 일이었다.
드르륵.
거지꼴로 교실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벌떡 일어선 건 역시 하나였다.
“야, 이모아!”
놀란 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또 와다다닥 박혔다.
쟤가 나 이목 집중시키네.
코를 한 번 킁, 들이켜며 손을 흔들었다.
하긴. 3일 만에 지각으로 나타난 것부터가 좀 논란의 여지가 있긴 했다.
거기다 나의 비주얼이…….
‘봐라, 봐.’
이제 남들이 떠드는 건 익숙했다.
태연하게 자리에 앉자, 이번엔 뒤를 돈 하나의 질문 폭격이 시작됐다.
“뭐야? 조금 더 쉬다 나오는 줄 알았더니, 이제 몸 괜찮은 거야? 근데 꼴이 왜 이래?”
그녀가 아래위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뭐부터 답할까, 싶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학생들을 위해 가장 좋은 떡밥을 던져주기로 했다.
“아침운동 하고 왔어.”
“아침운동? 니가? 갑자기?”
“응.”
모두가 하나와 비슷한 반응이겠지.
그러나 내가 이렇게 다 들어봐라, 싶게 입을 턴 이유는 하나였다.
이모아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사람들의 기저에 무의식적으로 깔아두기 위해.
시선들을 스치며 재빨리 한 자리를 눈으로 더듬었다.
‘…… 한미래.’
그녀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결같음에 조금 웃음이 났다.
응. 철봉.
‘시작하길 잘했어.’
태연하게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
그리고, 2일 차.
“끄으으윽.”
턱걸이 연속 3개 성공.
3일 차.
“으허억!”
4.5개, 어찌어찌 성공.
그렇게 4일 차, 5일 차를 지나…….
‘딱 일주일 째.’
이제는 익숙해진 둘레길을 재빠르게 올랐다.
점점 더 아침 공기가 쌀쌀해지긴 했지만, 오르는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어느덧 내 지정석이 된 나무 등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몸을 풀었다.
얼굴이 익었는지 눈인사를 해오는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저번에는 사과도 얻어먹었으니 말 다했지, 뭐.
‘역시 진정한 고수들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매일 보는 얼굴들뿐이었다.
그건 문 선생과, 옆 자리 철봉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하얀 김을 펄펄 내며 철봉을 하는 그의 옆에 섰다.
손을 탁탁 털고 철봉을 붙잡았다.
“크윽.”
이를 악물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꽤 늘었다.
이제 7개는 거뜬하고, 8개에서 좀 마의 구간이 오긴 하는데, 10개까지도 용을 쓰면 해낼 수 있었다.
【‘근력’ 숙련도: +0.1045%】
【‘근력’ 숙련도: +0.1045%】
…….
…….
자연 수련치로 조금씩 올라가는 근력은 덤이고.
봉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늘의 목표는, 12개.
빠질 것 같은 팔에 힘을 줘 상체를 끌어당겼다.
그 순간.
옆에서 작은 원숭이처럼 철봉을 타고 다니던 아이의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저대로면 머리로 떨어질 것 같은데.’
위험을 감지한 몸이 생각보다 빨랐다.
펄쩍 뛰어내림과 동시에, 슬라이딩하다시피 아이의 몸을 받아들었다.
품 안으로 느껴지는 따끈한 무게감.
날 보는 놀란 얼굴이 토끼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마주쳤다.
“괜찮아?”
나름 상냥하게 물었다고 물었는데, 아이의 얼굴이 곧 뾰로통해졌다.
“…… 나 아무렇지두 않은데.”
그러곤 내려달라는 것처럼 발을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오…… 내가 쫀심을 좀 건드렸나 본데.’
두 손을 들고 몇 걸음 물러섰다.
철봉 고수로서 자존심이 구겨졌다고 생각했는지, 민망해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이가 입을 비죽거리며 다시 철봉에 오르려 했다.
그때.
타악.
흙바닥에 발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절대 철봉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철봉의 달인.
문 선생이 두 발로 바닥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