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8
68화
다시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흰 천장 위로 ‘남산’과 ‘아침’이라는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아무것도 없는데 등이 배기는 사람처럼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어댔다.
속이…….
‘울렁거려.’
결국 발차기 하듯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어차피 거기까지 가는데, 다이아도 얻으면 개꿀이잖아.”
스스로를 달래는 것처럼 토닥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냐고.
눈에 보이는 다이아를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맞다. 이 모든 건 다 나를 위해서다.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침’인데.
‘30분. 딱 30분 정도만 더 일찍 가면 되겠지.’
그럼 헛걸음할까, 걱정도 덜 되고.
이왕 가는 거 수련 시간도 늘리고.
“그거지. 딱 좋지, 좋아.”
만족스럽게 타협한 게 어젯밤이었는데…….
“어으, 추워.”
서걱서걱.
낙엽을 밟는 소리와 함께 쌀쌀한 팔을 마구 비볐다.
어느덧 코에 닿는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갈수록 해도 짧아져서, 매번 같은 시각에 나와도 하늘의 어둑함이 차원이 달랐다.
오늘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러다 내가 먼저 행방불명되는 거 아니냐?”
으슥한 둘레길 한가운데에서 중얼거렸다.
가끔 바스락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어깨가 번쩍 튀었다.
가로등도 없어 핸드폰에 달린 손전등으로 겨우겨우 앞을 헤치며 걸었다.
‘고작 30분 차이인데 이 정도로 공기가 다를 줄이야.’
약간의 후회를 곁들여 발걸음을 움직였다.
평소보다 이르게 도착했으니 인파도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왔어요?”
“아이구, 애기 오늘은 좀 빨리 왔네.”
등산복에서 조금 더 두꺼운 경량 패딩으로 옷을 바꿔 입은 어른들이 알은체를 해왔다.
심지어는 머리에 작은 랜턴을 달고 하늘 자전거를 굴리는 분도 계셨다.
현재 시각, AM 6시 37분.
‘식지 않는다.’
운동인들의 열정이란.
머쓱하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가볍게 뜀뛰기를 시작했다.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아직까진 고요했다.
포탈이 터질 조짐, 전조.
그런 것 하나 없이 평화로운 광경.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했다는 말이다.
기합을 넣으며 철봉을 하고 있어야 할 문 선생.
그리고, 옆에서 조잘거리며 인사를 해와야 할 아솜이가.
‘없다.’
항상 메고 다니는 백팩이랑 물약은 가지런히 나무 의자 위에 올려져 있는데, 그 둘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내가 두리번거리는 걸 봤는지 옆에서 건강 박수를 치던 선생님 한 분이 말을 걸었다.
“문 씨, 그 아 찾으러 간 거 같던디.”
“아요? 아솜이요?”
“으응. 갸. 오자마자 화장실 가구싶다고 난리를 치더니, 여 맨날 어깨 돌리고 있던 사람 있제? 강 여사. 그 치가 데려 갔는디, 오는 길 어둡다고 걱정하더니 거 쫓아간 거 같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묘하게 뒷목이 시려왔다.
간이 화장실.
여기서 한 5분쯤 더 가면 등산로 쪽으로 빠지는 갈림길.
바로 그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갈 수도 있지.
그런데 이미 포탈이 터지는 걸 내가 알고 있는 시점에서 평소와 다른 그림이 생긴다는 건 의심스러웠다.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한마디로.
‘불길한데.’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직감으로만 움직이기에는 다른 가능성이 너무 많았다.
이런 상태에서 섣불리 돌아다니는 건 만만치 않은 손해고.
“읏챠.”
불안함을 애써 무시하며 평소대로 훈련을 시작했다.
팔을 흔들며 앞뒤로 반동을 줬다.
먼저, 가볍게 한 바퀴.
【‘공중 뒤돌아 차기’ 스킬 사용 시간이 ‘11초’ 남았습니다.】
우당탕탕 꼴사납게 넘어졌다.
나동그라진 나를 보며 주변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괜찮어?’ 안부를 물었다.
아픔보다 쪽팔림이 더 컸다.
벌떡 일어선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무릎을 털었다.
‘이걸 실패한다고?’
정신 차려라, 윤채희.
다시 마음을 갈무리했다.
화장실.
거기 좀 다녀오는 게 어떻다고.
그러나, 형체 없는 불안을 갈고리째 끌어올리는 소리가 울렸다.
삐이. 삐, 삐이―.
재난 문자 소리.
사람들이 모두 같은 동작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중구 삼일대로231, 남산공원길 NE-C+급 포탈 출현. 인근 주민 여러분들은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반경 1km 이내 민간인의 이동이 제한됩니다.】
포탈이 터졌다.
“얼른 가, 뭐해! 정 씨!”
“내려가다 포탈이라도 마주치면 어쩔 건데!? 여기서 잠자코 기다리다가, 구출대들 오면…….”
“누구 올 때까지 멍청하게 기다리다가 객사하는 건 괜찮구? 그냥 얼른 내려 가자구, 이 양반아!”
상황 파악을 마친 사람들이 파드득 경기를 떨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꼼짝 않던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끌었다.
앞다투어 외길밖에 없는 둘레길 출구로 빠져나가려고 안달이었다.
그래. 여기까진, 예상했던 시나리오.
근데.
‘뭐 어쩌라고.’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안내 문자 덕분에 스마트폰을 으스러져라 붙잡았다.
나는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새카만 산등성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포탈 어디 있냐고.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속으로 욕을 박박 지껄였다.
다른 때면 도로명 주소나, 정확한 위치가 있으니까 찾아가기라도 했지.
“남산공원기일?”
덩그러니 적힌 지명을 보기만 해도 기가 찼다.
그래. 정말 넓은 마음으로 생각해서, 산이라 어떻게 정확히 못 알려주는 건 이해 한다.
그래도 뭐, 어디 바위 아래라던가.
무슨 표지판 가까이라던가!
‘그 정도는 말해줘야지, 미친.’
지금 나보고 여길 다 뒤지라 이건가?
피가 싸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오른쪽? 산길 쪽으로 향하는 왼쪽?
‘…… 아니면.’
어제부터 이상하게 철렁거리던 느낌이 점점 더 극심해졌다.
초조함에 손톱을 물었다.
혹시나 커넥트 앱에 포탈이 찍혔을까 싶어 서둘러 손가락을 움직이던 때.
“도와주세요! 도와, 누가 좀 도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꺾었다.
문 선생이었다.
어둠 속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다 발을 헛디디는 그를 보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저쪽이구나.
기시감은 점차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벌벌 떨리는 몸을 재빨리 부축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솜이. 우리 아솜이가…….”
소란에 허겁지겁 둘레길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문 선생은 전에 없던 공포스러운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아 죽죽 끌었다.
“저기, 균열이.”
문 선생이 손가락을 뻗은 곳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왼편.
그러니까, 아마도 사람들이 말했던 대로.
‘간이 화장실 근처.’
상황판단을 위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문 선생의 주위로 말들이 툭툭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 선생 각성자 아녔어?”
“이 사람아. 각성자였으면 당장 애 구하러 뛰쳐 들어갔겠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
“펄펄 날아다니기에 각성자인 줄 알았네, 우리도.”
악의 없이 수군거리는 소리들.
그러나 충분히 가질 법한 의문이었다.
아무리 한 분야에 오래 몸담은 장인이라면,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스킬을 가르쳐줄 수 있다지만.
‘나만 해도.’
문 선생이 각성자가 아닐 거라는 의심을 해본 적 없었다.
“아닙니다. 나는 각성자가 아니에요.”
그러나 문 선생이 처참한 목소리로 말을 짓씹었다.
그를 감싼 모든 것들이 절망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각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단련했던 겁니다. 아솜이를 지키기 위해서. 내, 내 아이가 남긴 유일한 보물을…….”
으으윽. 문 선생이 얼굴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아아. 그는 자책하는 것처럼 머리를 땅에 쿵쿵 박아댔다.
꺽꺽 들이켜는 숨소리는 듣기 슬퍼질 정도로 깊은 회한이 묻어 있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냉정해지는 사고에 비해 맥이 널뛰는 소리가 머릿속까지 울렸다.
그 마음을 안다는 것처럼, 눈앞으로 창이 하나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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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긴급 구출
― 분류 : 서브
성공 시, 1,000 다이아 지급.
실패 시, ‘달인 문 선생’의 모든 연계 미션 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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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던 기사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사망 추정, 1명.
‘그게 아솜이었구나.’
가슴 밑바닥에 내내 품고 있던 의심이 확신으로 뒤바뀌었다.
아솜이가 애카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이유.
단 한 번도, 문 선생 곁에서 언급되지 않은 이유.
‘여기서 죽어야 했으니까.’
빠르게 확답 내릴 수 있었던 건, 어느 한구석에선 예상해왔기 때문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 나는.
‘알고 있었나?’
어제 기사를 읽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사실 그 전부터.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런 생각이 파고들자마자 엉망진창으로 쓰러져 있는 문 선생을 보기가 거북했다.
그 등이 나를 힐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는 얼굴이 곧 나로 변한다.
문 선생이 아닌, 윤채희의 얼굴로.
‘그게 뭐.’
꽈악 주먹을 움켜쥐었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들.
알았다고 한들, 그게 뭐가 어쨌다고.
‘지금 막으면 되는 거잖아.’
이건…… ‘진짜’가 아닌데.
거칠게 문 선생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습기에 축축한 얼굴이 점차 찰흙으로 빚어놓은 인형처럼 무르게 변한다.
화들짝 놀라 몇 번 머리를 터니 시야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 괴리감에 호흡이 잘게 떨렸다.
지금 내 표정은 어떨까. 알 수 없었다.
“제가 갈게요.”
텅 빈 동공.
서서히 이지러지는 문 선생의 얼굴을 보며, 나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작게 생각했을 뿐.
“제가 반드시 데려올게요, 아솜이.”
당장 코앞의 면죄부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비겁했다.
【예정된 서사를 벗어나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포탈 난도 재분류 중…… 】
【포탈 등급 변경을 알립니다. 결과: ‘C+’】
【상태 및 세부 사항이 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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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포탈을 돌파하라!
― 분류 : 포탈 / C+
성공 시, 2500 다이아 지급.
(단, 신체의 일부가 손상될 때마다 100 다이아 씩 차감됩니다.)
실패 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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