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28
신필천하(神筆天下) 128화
“선배님, 이분들을 따라가 보지요.”
“으잉? 뭣하러 따라간단 말이냐? 오호라! 결국 목을 따기로 결심했구나!”
그러자 장군이 검을 뽑아 들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라!”
“흥! 내가 사람 목을 딴다고 말했느냐? 단지 목을 딴다고 했지! 그게 돼지 목인지 사람 목인지 어찌 알고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냐?”
“지금 말장난하는 것인가!”
“자네와 나는 나이 차이가 나서 장난을 주고받을 연배가 아닌데 어찌 내가 자네에게 장난을 한단 말인가?”
서요평이 계속 약을 올리듯 대답하자, 흑표와 유설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 소리를 내고 말았다.
장군은 얼굴이 귀 밑까지 발갛게 달아올라서 씨근거렸다.
진양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저희에게 잘못도 있으니 장군을 따라가겠습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흥! 좋소! 어디 그 여유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 봅시다!”
장군이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들을 포박해서 끌고 가라!”
결국 장군에게 포박당한 진양 일행은 남경의 북동쪽에 위치한 연왕의 진영까지 이끌려 갔다. 모두들 침착한 태도로 병사의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살피는데, 유독 서요평만이 쉴 새 없이 불만을 투덜거렸다.
“니미럴! 굳이 이렇게 갈 필요는 뭐가 있나? 이놈들을 묶어서 끌고 가도 시원찮을 판에!”
진양이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만약 그랬다간 정말 연왕과 적이 될 겁니다. 오히려 이렇게 얌전히 끌려간다면 그쪽에서 마음을 더 놓고 대하겠지요.”
“흐음. 역시 그런 작전을 이용해서 얌전히 다가가서 목을 딴다는 전략인가?”
진양은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이들의 대화 소리는 장군에게도 충분히 들렸다.
장군은 서요평이 ‘목을 딴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심 발끈했지만 굳이 나서서 따지고 들지 않았다. 사실 이들의 무공 실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도 없거니와 어차피 이렇게 고분고분 잡혀준 이상 괜히 자극시킬 필요 없이 진영으로 끌고 가면 그만이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먼발치에 진영이 내려다보였다.
진영 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은 연이은 승전으로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이윽고 진양 일행이 병사들에게 이끌려 진영 안으로 들어가니 주변을 지나치는 병사들이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이들이 어수선한 병사들 틈을 헤집으며 막사 앞을 지나치는데, 마침 그 안에서 잿빛 승복을 차려입은 승려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자 진양 일행을 끌고 가던 장군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승려를 향해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아마도 꽤나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인 듯했다.
사실 그가 바로 연왕의 모사인 도연(道衍)이었다.
도연은 포박되어 있는 진양 일행을 힐끔 쳐다보더니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장군이 어깨를 펴며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자들이 왕야를 모욕하기에 압송해 왔습니다.”
“흐음…….”
도연은 진양 일행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연왕을 모욕하다가 적발되어 끌려온 사람들치고는 하나같이 기개가 남달랐다. 오히려 마치 큰 대접이라도 해줘야 할 것처럼 당당한 표정이 아닌가?
도연은 마지막으로 진양을 바라보았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호필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도연이 진양에게 다가가서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혹시 신필대협 양 장문이 아니신지요?”
도연이 몹시 공손한 태도로 물어오자, 진양도 얼른 반례로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불초한 소인이 어찌 그런 별호가 어울리겠습니까? 그저 양 아무개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러자 도연이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예전부터 양 장문의 명성을 들으며 마음 깊이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이렇게 뵙게 되다니…….”
말을 하던 도연은 그제야 상대방이 포승줄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장군을 쏘아보았다.
진양 일행을 끌고 왔던 장군은 이야기가 생뚱맞게 흐르자, 좌불안석이 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도연이 그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다짜고짜 오른손을 휘둘러 장군의 뺨을 올려붙였다.
짝-!
어찌나 세게 쳤는지 장군이 뒤로 한 걸음 휘청일 정도였다.
장군은 물론 진양 일행 모두가 놀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연을 바라보았다.
도연이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위엄 서린 목소리로 엄하게 꾸짖었다.
“자네는 어찌 귀인을 몰라뵙고 이런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하, 하지만…… 이자들은 연왕을 모욕하고…….”
“닥쳐라! 상대를 보아서 행동해야 할 것이 아닌가? 네놈이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자 장군이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잘, 잘못했습니다.”
도연이 혀를 끌끌 차더니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 이 녀석을 끌고 가서 목을 베어라!”
졸지에 무시무시한 명이 떨어지자 장군을 비롯한 진양 일행은 화들짝 놀라서 도연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연의 주위에 서 있던 병사들은 일제히 ‘예!’ 하고 외치며 장군의 양팔을 끌어 잡았다.
진양이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얼른 나섰다.
“군사께서는 노여움을 푸시지요. 저자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희들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말을 함부로 한 것 또한 사실이니, 저자는 그저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될 말이지요. 양 장문처럼 명망있는 분이 그런 짓을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양 장문은 마음이 너그러워 저 미련한 것을 살리려고 그러시는 게 아닙니까? 저런 놈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진양은 그의 말을 들으며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자는 권모술수에 능하구나. 순식간에 우리를 불리한 위치로 만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리는 떳떳한 태도였는데, 이자의 말 한마디로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이구나.’
하지만 이대로 무고한 사람이 죽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도 없었다.
진양이 다시 말을 하려는데, 서요평이 불쑥 나섰다.
“흥! 그렇게 우리를 존경한다면, 양 장문의 말을 듣는 것도 좋지 않은가? 말로는 존경한다고 하면서 어찌 우리의 말에 귀 한 번 기울이지 않는단 말인가?”
도연처럼 영악한 자에게는 때때로 서요평처럼 단순한 화법이 통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가 대놓고 불만을 토하니, 도연도 딱히 반박할 것이 없었다.
결국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여러분께서 그렇게 마음을 써주시니 형벌을 가볍게 하지요. 하지만 군율은 엄격해야 기강이 서는 만큼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더니 도연은 다시 병사를 불러 끌려간 장군의 목을 치는 대신 장 백 대를 때리도록 지시했다.
그 장군의 입장에서는 졸지에 장 백 대를 맞아야 하는 억울함이 있겠지만, 진양으로서는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여겼다.
도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왕야께서 여러분을 만나면 틀림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이왕 어려운 걸음을 하신 김에 왕야를 한 번 뵙고 가시지요.”
“저희로서는 영광일 따름입니다.”
도연은 크게 기뻐하면서 진양 일행을 잠시 자신의 막사에 머물게 하고는 연왕의 막사로 찾아갔다.
막사에 일행만 남게 되자 진양은 유설을 향해 물었다.
“누이는 혹시 저자가 누군지 아시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표국의 일을 해왔던 유설이기에 세상의 일에는 일행 중 그녀가 가장 밝았다.
역시나 유설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아마 도연이라는 승려일 거예요. 일찍이 석응진(席應眞) 도사에게 음양술을 배웠고, 후에 경수사(慶壽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연왕의 정치를 도왔죠. 어려서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굉장히 영악하고 권모술수에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진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 또한 저 승려가 무척 예리하다고 생각했소.”
그때 흑표가 입을 열었다.
“저 도연이라는 자는 돌아가신 남옥 대장군께서도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연왕에게 하얀 모자를 씌워주겠다고 했다더군요.”
“하얀 모자라…… 아……!”
진양이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王)에게 흰색(白) 모자를 씌운다면 글자로 풀이했을 때 바로 ‘황(皇)’ 자가 아닌가?
즉, 도연은 처음부터 연왕을 황제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리라.
진양 일행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잠시 후 도연이 돌아왔다.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야께서도 여러분을 몹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진양 일행은 도연을 따라 막사를 나갔다.
그들은 곧 가장 큰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막사 안에는 크고 넓은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술과 고기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탁자 좌우에는 진양 일행에게 낯익은 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천의교의 위교사왕과 곽연이었다. 그리고 정면의 상석에는 체격이 우람하고 강직한 인상의 사내가 있었는데, 일행은 한눈에 그가 바로 연왕 주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진양 일행이 막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려는데, 연왕이 손을 내저으며 다가왔다.
“허허허! 번거로운 예는 거두시오. 내 그대들의 이야기를 일찍이 들어왔소이다. 평소 그대들을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어 했는데, 오늘 이렇게 보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이쪽으로 오시오.”
이에 진양도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왕야를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허, 자, 앉으십시다.”
연왕은 비어 있는 탁자 한쪽으로 진양 일행을 안내했다.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자, 마주 앉은 천의교의 위교사왕이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나, 천의교의 파천일왕 마천강이오.”
제일 먼저 마천강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소장왕 범릉(范凌)이올시다. 반갑소.”
“난 알 테지? 갈지첨이다.”
세 번째 앉아 있던 갈지첨이 냉랭한 표정으로 소개를 했고, 네 번째로 앉은 중년 여인이 말을 이어받았다.
“비도옥왕 여만옥(余滿玉)입니다.”
마지막으로 곽연은 눈인사를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진양 일행도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나서야 주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이미 서로 안면이 있는 눈치이구려! 좋소! 자, 우리 오늘 이렇게 만난 기념으로 술이나 거하게 합시다!”
진양 일행과 연왕, 그리고 천의교 무인들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묘한 긴장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서요평은 지금 이 자리가 불만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시비를 걸고 싶던 차였다.
한데 마침 그가 고기를 먹으려고 젓가락을 접시로 가져가는데, 비도옥왕 여만옥이 먼저 집는 것이 아닌가? 이에 얼른 서요평이 젓가락을 내뻗어 여만옥이 집은 고기를 낚아챘다.
여만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보자, 서요평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이 고기는 내가 먹으려고 찜해두었던 것일세.”
그러고는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여만옥이 잽싸게 젓가락을 날려 보냈다. 결국 고기는 서요평의 입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만옥의 젓가락에 꿰뚫린 채 날아갔다.
한데 그 젓가락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여만옥의 손으로 다시 돌아와 잡히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별호가 무엇인가.
비도옥왕이 아니던가.
그녀는 비도술을 응용하여 젓가락을 날려 보내 고기를 낚아챈 것이다.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먼저 집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