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1
작품 소개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힘든 삶을 살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던 김요한.
유일한 낙인 소설과 게임을 즐기다가 평범하게 잠이 들었는데,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뜬다.
심지어 이곳은 오래전 죽었던 친구들이 살아있었고, 자신 또한 어릴 적 모습으로 회귀한다.
다시 시작된 인생. 이번에는 어떤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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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어떤 게임중독자의 엔딩
한 20년 정도 전에 히트를 쳤던 판타지 소설이 있었다.
당시의 유행에 맞춰서 제목은 짧고 간결했다. .
그때만 해도 클리셰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고, 장르소설 판이 큰 것도 아니어서, 그때 기준으로 제법 독특한 설정과 캐릭터들로 꽤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과 결말은 파국적이었다.
그런데도 생생한 캐릭터와 섬세한 배경으로 꾸준한 수요가 있던 와중, 한 게임사가 이 ‘쌍월의 보석’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제작에 착수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이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무려 7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가진 후에 동명의 타이틀로 게임이 출시됐다.
모바일 게임이 대세이던 시대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것 마냥 콘솔 게임, 그것도 엔딩 수집형 RPG라는 이상한 조합으로.
이래저래 장벽이 높은 게임이었지만, 소설의 골수팬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소설의 결말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든 스토리에 원작자가 참여했다는 불안감을 상쇄시켰다.
그래서 많은 팬이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 시작 1시간 만에 커뮤니티에는 불만을 폭로하는 글이 속출했다.
반응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걸 깨라고 만든 거냐?’다.
물론 나도 글을 썼다. 엔딩 수집형 시뮬레이션을 가미한 주제에 중간 세이브가 없는 지랄 같은 시스템에 대해서.
그 글에 미친 듯이 달리는 공감 댓글에 함께 분노하면서도 차마 다른 이들처럼 환불을 받거나 접지는 못했다.
자고로 게임은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이다.
중간에 때려치우는 건 게이머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행위였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놈의 미친 게임은 게임 시간으로 7년을 보내야 하는 돌아버린 볼륨에 엔딩 개수만 세 자릿수가 훌쩍 넘었다.
스킵 버튼도 없고, 중간 세이브도 없어서 한 번 밀 때마다 무조건 엔딩 하나를 봐야만 했다.
중간에 어떠한 이유가 있든 멈춰두면 해두었던 게 싹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딱히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남는 건 오기밖에 없었다. 무슨 수를 쓰든 이 게임의 끝을 보기 위해서 주야장천 달렸다. 그것도 3년을.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이 불친절한 게임은 빌어먹게도 선택지를 고를 때마다 시간제한도 있어서 긴 고민조차 사치였기에 세세한 정보까지 다 외워버렸다.
그리고 오늘은 그 미친 짓에 대한 보상을 받는 날이었다.
‘드디어……!’
휘황찬란한 지팡이를 들고 있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다 무너져 가는 세상 속에서 꿋꿋하게 서 있는 뒷모습을 보며 감격했다.
그 앞에 쓰러져 있는 최종 보스의 마지막 대사가 익숙하게 스크린에 출력됐다.
깜빡거리는 삼각형의 화살표를 클릭했다. 괜히 손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미묘하게 다른 선택지를 고르면서 간신히 도착한 엔딩은 미루고 미뤘던 파멸 엔딩이었다.
플레이어 캐릭터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 심지어 적군 포지션의 캐릭터까지 모두 죽고 근근이 이어지던 세계마저 망해서 끝내 플레이어 캐릭터도 자살한다는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
원작가가 사실 이 엔딩을 소설 결말로 하고 싶었다는 코멘트를 남겨서 오랜 소설 팬들의 분노를 샀던 엔딩이자 몇 안 되는 공략이 공개된 엔딩이기도 했다.
‘소설도 파멸이라고 욕했는데 그게 순한 맛이었을 줄은 몰랐지.’
문득 소설의 에필로그와 이 엔딩의 모습을 비교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잡스러운 생각은 지금 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이니 집중해야 했다.
다시 모니터에 눈을 박았다. 잠시 텍스트 창이 사라지고 천천히 먼지로 흩어지는 최종 보스의 모습이 보였다.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끝내주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세계관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외모는 과연 위대했다.
[그래, 나까지 이리 떠나고 나면 무얼 할 생각인가? 그대 곁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데.▼]수천 번도 넘게 봤던 선택지 창이 떴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닐 텐데.◎
▶죽으면서 이상한 질문을 다 하네.
▶…….
이미 끝에 서 있는 시점에서 딱히 의미가 있는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버릇처럼 잠깐 고민했다. 방향키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침묵을 택했다.
그러자 죽어가던 보스 캐릭터가 웃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최종 보스인 만큼 다른 엔딩에서 몇 번이고 죽는 모습을 봤고, 그때마다 이런 마지막 대화를 했지만, 저렇게 웃는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저리 크게 행동하면서 웃는 모습 자체가 귀한 캐릭터였다.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이어지는 대화에 집중했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역시 느낌이 달랐다.
[이 순간까지도 침묵이라니. 그대가 내 사람이었다면 훨씬 즐거운 삶이었겠는걸. 아쉽군, 아쉬워.▼]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문장에 어쩐지 입이 썼다. 최종 보스와 같은 편을 맺었던 엔딩도 결국은 몰살이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저 자리에 서 있었더라면 아마도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서 말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희망도 없다고.
깜빡거리는 화살표를 다시금 누르자 슬슬 엔딩 때마다 흐르는 음악이 나오면서 대사가 마저 나왔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어쩐지 그대도 결국 우리의 뒤를 따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느릿하게 흩어지던 캐릭터가 끝내 마지막 말을 내어놓고 사라졌다.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네. 그럼 잠시간 안녕히.▼]뭔가 공개된 엔딩의 영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었나?’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지만, 마지막이랍시고 아예 공략본을 출력해서 달달 외운 다음에 쭉 달렸던 기억밖에 없다.
많은 유저가 이미 검증했고, 나도 똑같이 따라 한 공략인데 왜 다른지 도통 알 수 없어서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졌지만 애써 털어냈다.
‘몰라. 너무 예전에 스포 당해서 기억 왜곡이라도 됐나 보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이 엔딩을 수집해서 그렇다거나.’
최대한 편한 쪽으로 생각을 돌리며 마지막 화살표를 눌렀다. 장엄한 배경 음악이 점점 커지면서 이번 엔딩의 최종 장면이 흘러갔다.
최종 보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플레이어는 무너진 세상에서 버티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이어지는 장면은 기어이 세상이 멸망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맥이 탁, 풀렸다. 이미 이 결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는데도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던가 싶어서 괜히 허무했다.
‘그래도 다 봤다.’
3년이나 끌어오면서 게임에 명시된 모든 엔딩을 다 보니 후련해졌다.
해피 엔딩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손끝에 걸린 가시처럼 찜찜했지만, 어쨌든 끝은 냈다.
구부리고 있던 등을 쭉 펴고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주무르면서 회상 장면이 흐르고 있는 모니터를 보다가 미니 냉장고를 열었다.
엔딩이 세 개쯤 남은 어제부터 줄곧 게임에만 매달려 있었더니 배가 고팠다.
생수 한 병을 뜯어 빈속에 들이부으면서 냉장고를 샅샅이 살폈지만 먹을 건 없었다.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나가기는 영 귀찮은 시간이었다. 대충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편의점이나 가는 게 좋을 성싶었다.
쿡쿡 쑤시는 목덜미를 지압하면서 다 마신 생수병을 버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커멓게 물들었던 화면이 밝게 돌아오면서 3년 동안 지겹게 봤던 타이틀 화면이 나타났다.
동시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메시지 창도 떠 있었다.
[모든 엔딩을 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명멸하는 삼각형을 반사적으로 눌렀다.
[지금부터 숨겨졌던 스테이지가 열립니다.▼]피곤함에 절어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바로 하고 황급히 마우스를 딸깍였다.
[히든 엔딩 공략을 위해 추가적인 다운로드가 필요합니다. 다운로드하시겠습니까?▶네.◎ ▶아니오.]
고민할 것도 없이 ‘네’를 선택했다. 그러자 처음 게임을 실행했을 때처럼 다운로드 창이 뜨고, 진행 상황이 친절하게 띄워졌다.
“무슨 용량이 이렇게 커?”
4시간이나 걸린다는 글씨에 인상을 찌푸렸다.
한 바퀴 밖을 돌고 다시 들어온 내 목소리에 시계를 한 번 봤다가 그대로 방의 불을 끄고 작달막한 침대에 구겨 들어갔다.
이불 속에서 손만 쭉 뻗어 알람시계를 6시에 맞추고 빠르게 잠을 청했다.
히든 엔딩. 줄곧 왜 이건 없는 걸까 궁금했던 점들과 함께 유일하게 고대했던 엔딩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무조건 맑은 정신으로 경건하게 플레이해야 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드는 몸을 칭찬하면서 순식간에 까무룩 수면 아래로 잠기는 정신을 환영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게임 속에서 깨어나는 걸 기대하거나 환영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