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93
92화. 오래된 나각과 낡은 노리개 (6)
밤의 장막이 내려오면 피어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스름한 달빛을 벗 삼아 향기를 내는 모든 것들을 사고파는 곳도 그중 하나다. 통칭 ‘야시장.’
어둑한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똑같이 모습을 숨긴 자들이 모인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꽃이 가득 핀 화원이 있다. 그 화원을 건너서 아래로. 아주 깊숙한 아래로 내려가면 도달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건, 소문을 타고 넘나드는 ‘물건’만을 무대로 올리는 경매다.
“자, 그러면 다음 상품을 소개하겠습니다.”
경매의 사회자로 추측되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사회자가 짝 손뼉을 치자 무대에 빛이 들어왔다. 손님들에게는 절대 닿지 않는 작은 빛은 오로지 무대 중앙의 상품만을 환하게 드러낼 뿐이다.
상품은 앞면을 투명한 유리막으로 막아두었고, 뒷면은 상품의 색이 잘 보이도록 검은 가림막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물빛의 타원형의 알이 하나 빛났다.
고요하던 경매장 안을 산발적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채우기 시작하자 사회자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경매를 진행할 수 없는 법. 흰 장갑을 낀 손가락이 딱, 부딪치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순식간에 찾아든 정적 속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아실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야시장의 최대 기대 상품인 ‘인어의 알’입니다!”
잠잠해졌던 웅성거림이 단번에 되살아났다. 사람들의 더운 숨결이 모여서 낮게 가라앉았던 공기가 어수선해졌다.
허공을 타고 흐르는 건 인어의 알에 관련된 이런저런 소문들이다. 믿어도 그만, 믿지 않아도 그만일 정도의 몹시도 가벼운 이야기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점점 커다랗게 몸집을 키웠다.
이래서 입을 타고 나오는 것들은 무서운 것이다.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거대해진 잡다한 가십들이 진실로 변할 것이다.
곧 거짓이 괴물같이 부풀면 훌륭하게 높은 가격으로 팔려 나갈 수 있을 상품을 보며 사회자가 팔에 걸고 있는 지팡이를 까딱였다.
“인어를 먹으면 불로불사라던데, 그 알도 같은 효과인가?”
“어차피 물고기. 알이나 생선이나 같지 않겠어요?”
“저주받는다는 얘기도 있지 않았습니까?”
“알이잖소. 기껏해야 달걀 아니오.”
“부화시키는 것도 아닌데 괜찮지 않아요?”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야기들이 사회자의 귀에 쏙쏙 박혔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 착용한 가면에 음성변조기가 달려있어서 듣기에 다소 불쾌한 목소리들이었지만 상품 앞에서 그게 대수랴.
불로불사. 저주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말들이 넘나들면서 상품은 점점 견고하게 형태를 갖췄다.
어느새 경매장 안은 저주에 관한 소문은 싹, 빠진 채. ‘인어의 알을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말이 야금야금 퍼져 사실이 되었다.
사회자의 입이 찢어지면서 기묘한 초승달을 만들었다. 원하던 것이 드디어 손아귀에 잡혔다.
팔에 있던 지팡이를 왼손에 쥐고 그대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고요함에 휘감겼다.
사회자가 어둠 속에서도 다시 한번 자기 얼굴을 가려주는 새카만 가면을 추켜올렸다가 내리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사회자의 말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걸어 올렸다.
“예로부터 인어의 살을 먹으면 영원히 미모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고 하더랍니다. 이 ‘알’은 그 인어가 태어나는 아주, 아주 귀중한 ‘인어의 알’이다, 이 말입니다. 인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셔도 좋고, 그대로 드셔도 좋습니다. 선택은 인어의 알을 가지실 분이 내리시겠지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지만, 불로불사를 얻는데 그런 것쯤은 사소한 것, 아니겠습니까?”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이 넘칠수록 사람은 겁쟁이가 되는 법이다.
특히나 죽음 앞에서 의연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당장 이 말을 하는 사회자 자신도 불로불사라면 두 눈에 불을 켜고 안달을 낼 텐데.
부도, 권력도 모두 잡은 자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 있는 경매장을 지켜보며 사회자가 다시금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가치를 매길 시간이다.
저 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사실 그들에게 중요한 점이 아니다. 진품이면 좋고, 짝퉁이어도 큰 손해는 없다.
원래 이 야시장은 소문으로만 이루어진 밑바닥의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물이다. 그저 반반의 확률로 나오는 상품들을 비싸게 팔아넘기고, 물건을 산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식인 저열한 곳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물품들은 언제나 가장 높은 가격을 갈아치웠다. 새로운 기록을 기대하며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가볍게 시작해볼까요. 귀한 물건인 만큼 공수하는 데에 힘들었기 때문에 2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단위는 천만입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무대뿐인 야시장은 경매의 진행 방식도 살짝 다르다.
경매인만큼 가장 돈을 많이 내겠다고 한 자에게 물품이 낙찰되는 것은 평범하지만, 어둠 속이기 때문에 조금 단순화된 방식이 필요하다.
사회자가 시작가와 함께 단위를 공표하면 그때부터 경매에 참여할 사람은 입장할 때 받은 작은 리모컨을 사용하게 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리모컨은 딱 두 가지의 버튼만이 존재한다. 좌측의 버튼을 누르면 단위만큼 가격을 올리겠다는 뜻이고, 우측의 버튼을 누르면 현재 나온 가격에서 두 배를 올리겠다는 뜻이다.
결과는 사회자가 소지하고 있는 태블릿에만 표시가 되는데, 이를 보고 사회자가 좌석 번호와 현재의 가격을 계속 말해주게 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무조건 가장 먼저 누른 자의 가격을 먼저 경매에 올리게 된다.
그 이후는 사회자가 입 밖으로 가격을 내뱉는 순간부터 다시 버튼을 가장 빨리 누른 자를 기준으로 새로이 가격을 올린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태블릿 속 숫자를 보며 사회자가 킬킬 흥에 겨워 입매를 길게 찢었다.
“시작부터 두 배가 나왔습니다! 47번, 4억! 곧바로 다시 두 배입니다. 11번, 8억! 다시 두 배인가요? 오, 잠깐 주춤합니다. 47번 8억 천!”
몹시도 경쾌한 어조가 연달아서 경매장 안을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했다.
사람 심리가 으레 그렇듯이 돈을 쓰면 쓰는 만큼 상품은 더 희귀하게 느껴지고 더 귀하게 느껴진다.
점점 올라가는 경매 금액에 맞춰서 버튼을 누르는 사람도 늘어났다가 어느 순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29번, 18억 8천! 다시 47번, 18억 9천! 31번 19억! 19억까지 나왔습니다! 더 올리실 분, 없으십니까?”
계속 반짝이던 태블릿에 더 이상 아무런 숫자가 뜨지 않자 사회자가 줄곧 말해서 갈라진 목을 살짝 매만졌다.
약간의 정적이 지나고, 더는 반응이 없는 태블릿을 뒤집어 둔 사회자가 탕탕탕 지팡이로 바닥을 세 번 두드리며 승자를 호명했다.
“축하드립니다! 불로불사의 인어의 알은 31번분께 낙찰되었습니다!”
불로불사라는 단어에 힘을 팍팍 주면서 단정적인 어조로 경매의 끝을 알린 사회자가 손목을 문질렀다.
촉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 독특한 시계는 지금이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다는 걸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슬슬 다음 물품을 올리기 전에 휴식 시간을 가질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은 사회자가 딱 손가락을 부딪쳤다.
인어의 알이 담겨 있던 상자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불빛도 사그라졌다. 다시 완벽하게 어둠으로 잠긴 경매장에 사회자의 또박또박한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물품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화장실이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바닥에 비치는 화살표를 따라가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바람 쐬러 가실 분들도 바닥을 잘 보고 이동해주십시오. 계속 참여하실 분께서는 가면을 착용하신 채 재입장하시고, 돌아가실 분께서는 입구의 가드에게 안내를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30분 후, 이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새카만 바닥에 총총 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화살표가 생겨났다.
두 갈래로 나뉜 화살표는 한 곳은 경매장 바깥을, 다른 한 곳은 화장실을 알려주고 있다.
약 두 시간가량 앉아서 유일하게 들고 들어올 수 있는 음료만을 마시던 사람들이 우르르 화살표를 따라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한두 번 참여한 자들이 아닌 만큼 나름대로 저들끼리의 질서를 갖춰서 이동하는 걸 보던 사회자도 다음 물품 리스트와 태블릿을 품에 잘 챙긴 후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잡고 앉아 있던 사람도 모두가 움직이고 난 뒤에야 동행인과 함께 슬그머니 화살표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푹 눌러 쓴 모자와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 기괴했다. 그래봤자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은 차림새이기 때문에 주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 * *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저런 일을 벌이는 거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가며 밖으로 나온 자가 건물에서 꽤 멀리 떨어지자 모자와 가면을 벗으며 날이 선 말을 내뱉었다.
다소 과격한 움직임에 약간 흐트러진 가발을 똑바로 바로잡으며 인상을 구기는 자에게 동행인이 가면을 머리 위로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인간이기에 저런 짓을 하는 거지. 너도 잘 알 텐데 모르는 척하지 말지. 용왕님께서 말씀하시길, 너도 만만찮게 인간에게 피해를 본 인간이라며.”
“여기서 모든 인간이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을 해도 안 들을 거죠?”
“잘 아네. 한시라도 빨리 이 구역질 나는 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유독 가느다란 입술이 비틀어지고, 얄팍한 눈매가 뾰족하게 솟았다.
경멸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가발을 다 고친 강나비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인어의 알이라는 상품도 역겨웠지만, 그 이전부터 야시장에 나온 물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였기에 속이 메스꺼웠다.
아마 동행자로서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온 주오는 더 속이 뒤집혔겠지만.
구부정한 등을 벽에 기대는 주오를 보며 강나비가 입술을 달싹였다.
“선옥과 함께 오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허, 그 녀석이 몇 살인지 알고 말하는 거 맞아? 이 정도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초사흗날의 초승달을 올려다보며 강나비가 멋쩍은 미소를 걸쳤다.
“선옥은 사람을 좋아하니까요. 분명 슬퍼했을 거예요.”
“오지랖이 넓다더니 진짜네.”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어깨를 으쓱인 강나비에게 주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자연스럽게 속도 좋다며 빈정거렸겠지만, 마음이 흐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용왕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히 심술은 부리고 싶어서 주오가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강나비의 의아한 시선이 볼에 닿자 주오가 삐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이다음부턴 어떤 것들이 나와? 더 역겨운 것들?”
“아, 다 알고 계시면서 제 입으로 꼭 말을 해야겠어요?”
“글쎄. 난 다 잊어버려서 말이야.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네.”
처음 야시장의 정보를 물고 온 것은 용왕의 언질을 받은 주오고, 카탈로그를 얻어 온 것은 계수나무에게 허락을 받았다던 선옥이다.
주오와 선옥은 각자 수장의 뜻대로 요한에게 대화를 요청했고, 셋이 응접실에서 쑥덕거리더니 돌연 강나비에게 임무가 내려왔다.
감사부의 일원으로서 협회원이 참여한 흔적이 존재하는 이런 불법 장소를 검거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전력을 들키는 바람에 더 굴려지고 있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강나비가 부루퉁하게 뺨에 바람을 넣으며 뻔뻔스러운 표정의 주오를 흘겼다가 이내 후우 한숨을 쉬었다.
“전반부는 아이온으로 특수한 효과를 지닌 물품이 주된 상품이었죠. 죄다 장물에다가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효과를 가진 물품인 게 문제였고요. 그리고 휴식 시간을 기점으로 열리는 후반부는 ‘생물’이 주된 상품이에요.”
“그럼 알은? 아직 부화하지 않았으니 물건 취급인가?”
“설마요. 그건 그냥 미끼죠. 이후에 이런 게 더 있을 거라는.”
야시장과 연관된 협회원을 찾는 순간, 격리실에서 직접 손을 봐줄 거라고 강나비가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의 주오는 흉악한 표정이 된 강나비를 빤히 보다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본래 이 세계에 존재하는 눈썹 같은 초승달과 언제나 가득 찬 보름달이 나란히 떠 있다.
행여 부분적으로 보이는 짐승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더위가 기승인 7월 초인데도 긴팔과 긴바지를 고집한 주오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휴대폰이 손끝에 걸렸다. 주오는 낯선 감촉을 손톱으로 갉작였다.
손바닥 크기의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던 강나비가 고개를 퍼뜩 들고 눈을 마주하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다 됐네요. 들어가요. 마저 버텨보자고요.”
“그래, 참아봐야지.”
다시 모자와 가면을 쓴 두 사람이 모습을 제대로 숨겼는지 서로 꼼꼼하게 확인해줬다. 곧 휴식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자 그 인파에 자연스럽게 끼어서 야시장 건물 안으로 발을 디뎠다.
들뜬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한 기색을 최대한 감춘 강나비가 작게 심호흡했다. 버틸 각오를 다져야 했다.
초승달이 모습을 감추기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밤은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