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02)
중국 윈난성 푸얼시.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많은 야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만들어진 천해의 골짜기는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한 종의 식물이 비밀리에 키워지고 있었다.
“조심해. 까딱 잘못했다가, 독니에 맞기라도 하면 바로 황천행이야. 절대로 소리를 내면 안 돼.”
한 중국인 노동자의 주의에, 신입 노동자가 긴장감이 잔뜩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테랑 노동자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지시를 내렸다.
“좋아. 그럼 장비부터 확인해.”
그 말에 안전 장비들을 확인하는 신입 노동자.
베테랑 노동자도 꼼꼼하게 자신의 장비를 확인했다. 안전 장비라고 해 봤자 대부분이 소음을 막아 주는 종류라서, 유사시에 방어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나마 방어용으로 용이해 보이는 것이라고는 손목에 착용한 방패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후, 모든 장비를 확인한 베테랑 노동자는 신입 노동자와 함께 골짜기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스르륵.
마치 뱀처럼 움직이는 두꺼운 넝쿨들.
베테랑 노동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넝쿨을 넘어서 걸어갔다. 그 뒤로는 신입 노동자가 흠칫 놀라면서 따랐다.
그렇게 잠시 후.
드디어 노동자들이 채취해야 할 식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여덟 장의 꽃잎이 유독 눈에 띄는 식물…… 아니, 식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식물형 몬스터에 가까운 것이 일정 간격을 두고 자라 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신입 노동자는 신기해서 그 모습을 두 눈에 담기 바빴다.
그러는 사이에 베테랑 노동자가 수신호로 작업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가져온 장대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괴식물로 다가가서 잎을 서서히 벌렸다.
쩌억.
큰 저항 없이 천천히 벌어지는 거대한 꽃잎.
그 사이로 드러나는 진득한 액과 새하얀 이빨들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으엑.’
신입 노동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였다.
가시같이 길쭉한 이빨 안쪽으로 커다란 눈알이 신입 노동자를 지그시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크게 삼켰다.
꿀꺽.
풱!
괴식물이 자신의 이빨 하나를 내뱉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신입 노동자가 낸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냅다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은 금세 막혔다.
팍!
베테랑 노동자가 어느새 손목에 차고 있던 나무 방패로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그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채로, 재빨리 신입 노동자의 목덜미를 잡아채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 뒤로 두꺼운 넝쿨이 뭔가를 찾는 듯이 바닥을 열심히 헤집어 놨다. 자신이 공격한 뭔가를 찾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잠시 후.
신입 노동자의 목덜미를 잡아챈 채로 안전거리까지 나온 베테랑 노동자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신입 노동자를 구타하는 일이었다.
퍽! 퍽퍽!
“이 새끼야! 나를 죽일 셈이야!? 내가 침도 삼키지 말라고 했지? 죽고 싶어!? 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신입 노동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그의 구타를 받아 내야만 했다. 베테랑 노동자는 한참 동안 신입 노동자를 구타한 후에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 이봐, 너. 대체 여기 뭐 하러 온 거야?”
그 물음에 신입 노동자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돈, 돈 벌려고요.”
“그래. 돈 벌려고 온 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죽으면 무슨 의미야? 어? 조심 좀 하자고. 그냥 소리만 내지 않으면 된다. 그게 어려워? 침도 삼키지 말고 눈알도 굴리지 마. 그냥 내가 녀석의 이빨을 채취하면, 그걸 받아 가면 되는 거야. 알아들었어?”
“네, 네. 잘하겠습니다.”
“닥쳐.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시키는 것만 하라고. 내 옆에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이빨만 받아 가란 말이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시키는 것만 하겠습니다.”
그 말에 베테랑 노동자가 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래. 알았으면 숨 고르고 있어. 오늘 채취해야 할 양이 많아.”
“네, 네. 금방 숨 고르겠습니다.”
신입 노동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숨을 골랐다.
베테랑 노동자는 그 모습을 보다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큰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에 덜컥 따라온 그때, 그는 첫날에 자신과 같이 온 동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액수의 일당을 받았다.
하루 일한 것뿐인데, 평범한 사람들의 일당보다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 액수였다.
“그래. 조금만 고생하자. 딱 1년만 고생하고 나가는 거야.”
베테랑 노동자는 그렇게 언제나 했던 다짐을 하고서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그때였다.
스르륵.
뭔가가 수풀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베테랑 노동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주변 배경과 흡사한 옷을 입은 이들이 튀어나왔다.
“어어?”
베테랑 노동자가 당황하는 사이. 그는 가장 앞선 이에게 일격을 맞고 쓰러졌다. 신입 노동자도 단번에 제압당한 상태였다.
그들은 두 사람을 제압한 상태로 후방으로 옮겼다.
잠시 후, 그들은 괴식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 * *
다음 날.
천보 마약을 주도적으로 재배하던 사내는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천보 마약 재배지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령을 이용해서 하루 만에 소식을 전해 받은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얼마 못 갔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바람의 정령을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천보 마약 재배지는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웠다.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아 둔 것만 팔아도 평생 먹고 살 테니까.’
물론 그 전에 모아 둔 천보 마약을 팔 만한 거래처를 알아봐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알아 둔 곳이 몇 군데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천보 마약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천보 마약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갑부들이 많을 테니까.’
그가 아는 한, 천보 마약의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이 흐르면서 후유증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보 마약만 있다면 자신의 노후는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노후가 문제가 아니지. 얼마나 떵떵거리고 사느냐가 문제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호텔 침대에 편히 몸을 눕혔다. 그런 그의 시선에 한 존재가 눈에 띄었다.
식탁 앞에 앉아서 달콤한 오렌지를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까먹고 있는 여자아이. 그 아이의 귀는 다른 아이보다 유독 길쭉한 것이 특징이었다.
사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소아, 맛있어?”
그 물음에 ‘소아’라고 불린 여자아이가 오렌지 과즙을 볼에 잔뜩 묻힌 채로 고개를 돌렸다. 방긋 미소를 짓는 모습이 유독 예뻐 보였다.
“응! 맛있어.”
“많이 먹어. 오렌지 따위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필요하면 말해. 다른 과일도 구해 줄까?”
“아니, 됐어. 나 배불러.”
소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입을 소매로 쓱쓱 닦아 냈다. 그러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내의 옆에 와서 누웠다.
“첸밍. 우리 부족 언제 찾아 줄 거야?”
그 물음에 ‘첸밍’이라고 불린 사내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하지만 곧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번 일만 잘 마치면 찾아 줄게. 돈만 생기면 소아의 부족은 언제든지 찾아 줄 수 있어.”
그 말에 소아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돈만 있으면 돼?”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이번 일만 잘 마치면 돈이 산더미처럼 생길 거야.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소아의 가족을 찾아 줄게.”
“정말이지? 고마워, 첸밍.”
소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첸밍의 품에 폭 안겼다. 첸밍은 그런 소아를 가볍게 안아 주면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소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를 쓰다듬는다기보다는 귀금속을 쓰다듬는 것같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 * *
천보 마약에 관한 소식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유명 재력가, 국회의원, 연예인들이 무기력증에 빠지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국민들 사이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요동치는 주가였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일어난 것도 잠시, 그것을 단박에 누그러뜨릴 소식이 이어졌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천보 마약의 치료제를 신화그룹에서 개발했다는 소식입니다. 신화그룹은 천보 마약 치료제를 누구든지 구입할 수 있게 제품화해서 판매할 예정이며, 천보 마약 피해자에게 구매 우선권을 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천보 그룹에서 치료제를 제품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버지가 뉴스를 보면서 잘됐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번에 신화그룹이 좋은 일을 하나 했구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래기 된장국을 한 수저 떴다. 어머니가 그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게요. 들어 보니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천보 뭐시기 때문에 골치라는데…… 신화그룹이 치료제를 개발해서 우리나라가 가장 빠르게 회복할 것 같대요.”
“그래? 다행이네, 다행이야.”
부모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뉴스가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이고, 이번 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국가들이 이번 천보 마약 사건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 당국에서는 ‘우리도 피해자’라면서 항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뭇매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들어온 속보에 의하면 현재 중국은 천보 마약 재배지를 급습해서 관련 일당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주범은 놓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상당한 지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화면에는 난생처음 보는 식물이 잡혔다. 줄기 밑동이 완전히 잘려 나간 그것은 거대해도 너무 거대했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무가 아니라, 풀이네?”
크기만 보면 당연히 나무를 떠올려야 할 정도였지만, 건우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나무라기보다 풀에 가까워 보였다.
‘꽃 크기만 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데, 줄기가 버텨 주나? 넝쿨이 줄기를 칭칭 둘러싸서 버티는 형태인 것 같은데…… 신기하네.’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화면에 연구원으로 보이는 이가 꽃잎의 가운데 부분을 들어 올렸다.
진득한 액이 늘어지면서 바늘같이 뾰족한 이빨이 드러났다.
앵커가 늦을 새라 부연 설명을 이었다.
-자료 화면과 같이, 이빨처럼 생긴 부분이 천보 찻잎으로 둔갑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이것을 채취해서 연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비록 신화그룹에서 치료제를 개발하긴 했지만, 그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 때문에 중국은 하루빨리 대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거기까지 뉴스를 본 건우는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하와가 밥을 크게 한 수저 떠먹다 말고 물었다.
“하와?”
“아아. 갑자기 입맛이 없어져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료 화면을 보고 입맛이 뚝 떨어진 것이다.
그때였다.
건우가 챙겨 준 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가온이 뭔가를 꺼내 들었다.
갸웅!
은빛송송이꽃이었다.
건우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나, 먹으라고?”
갸웅!
“얼마 남지도 않았을 텐데…… 그냥 가온이가 먹어.”
그 말에 가온이 괜찮다는 듯이 계속 은빛송송이꽃을 내밀었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 들면서 신기한 듯 바라봤다.
‘이 꽃은 시들지도 않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빛송송이꽃을 입에 물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은은한 달콤함과 새콤함.
입맛이 절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가끔씩 가온이가 이걸 먹는 이유가 있구나.’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이건우 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연구소에 한번 방문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집사 나이트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