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40)
던전 농지에서 누군가가 툭 튀어나왔다.
“헤에- 밖이랍니다!”
난생처음으로 던전 농지를 벗어난 엘이었다.
엘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주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건우와 하와, 소아, 가온이 차례대로 던전 농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나온 건우가 엘의 들뜬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밖에 나오고 싶었던 거구나.’
평소의 엘은 던전 농지 바깥은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지금 모습만 봐도 평소에 엘이 얼마나 던전 농지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이야.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돼서…….’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엘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건우를 돌아봤다.
“이건우 님! 그런데 정말로 지구는 둥근가요? 그냥 보기에는 평평한 것 같은데…….”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땅바닥을 작은 발로 꾹꾹 밟았다. 땅바닥이 얼마나 둥근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건우가 자기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지구가 평평해 보이는 건, 지구가 너무 커서 그래. 우주에서 보면 공처럼 둥글어. 그 외에도 수평선이라던가, 지평선 같은 걸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 수 있어.”
그 말에 엘이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으음, 지구는 둥글다는 건가요?”
“맞아. 지구는 둥글어.”
그 대답에 엘이 활짝 웃었다.
“그럼 제가 미튜브에서 본 게 지구가 맞나 보네요!”
“미튜브에서 본 거?”
“네! 우주에서 본 지구인데, 파란색 동그란 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답니다!”
엘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하와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와!?”
“정말이랍니다. 저랑 같이 한번 볼까요?”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소아와 가온도 호기심이 동했는지, 슬쩍 엘의 옆으로 붙었다.
건우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자제시켰다.
“지구 모습은 집에 가서 보자.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야지.”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엘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접었다. 그러면서 다시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우 님의 집이라니…… 무척 기대됩니다!”
“기대까지야…… 그냥 평범해.”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곤 다 같이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아이들이 흥얼거리면서 걷는 모습을 아빠 미소로 보고 있던 건우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문자 알림음이 울렸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초인 협회 원주 지부, 김미영 민간지원 팀장입니다. 올해 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기나긴 건기로 인해서, 수많은 농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초인들의 힘을 빌리고자 합니다. 부디 초인님의 힘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농업 대민지원 신청 바로가기.)」
‘스팸인 줄 알았더니…… 초인 협회에서 온 문자였네?’
건우는 그러면서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나서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초인 협회에서 대민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나 보구나. 잘됐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걱정하던 부분을 초인 협회에서 나서서 도움을 준다니, 기꺼웠던 것이다.
‘대민 지원이라…… 나도 신청해 볼까?’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가물은 날씨로 인해서, 수많은 농업인들이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농협에서는 그런 농업인들께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농업 대민지원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농업 대민지원에 많이 신청해 주셔서, 함께 힘든 시기를 넘겼으면 합니다. (농업 대민지원 신청 바로가기) – 농업협동조합 대민지원 김미영 팀장 올림.」
이번에는 농협에서 온 문자였다.
다만 그 내용은 초인 협회에서 온 문자와는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대민지원을 직접 신청해서 받으라는 문자였다.
이는 건우가 청년 농민으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농협에서 온 문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화면을 껐다.
‘이 상황에서 내가 대민지원을 받으면 양심 없는 거지.’
그는 그러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봉사자의 입장에서 대민지원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농사꾼이 아닌, 초인의 입장이 돼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살아야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이번에는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화?’
건우는 혹시 초인 협회나 농협에서 온 전화인가 싶어서 발신인을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는 포식자 민서린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서린 씨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볍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건우 씨, 안녕하세요? 저 민서린이에요.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민서린의 인사에, 건우가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이제 막,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아, 지금 끝나셨구나. 고생 많으셨어요.
“매일 하는 일인데요, 뭘.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하셨어요? 여왕바위벌 고치는 아직인데…….”
건우는 높은 확률로 민서린이 여왕바위벌 고치 때문에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민서린이 평소에 여왕바위벌 고치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민서린이 전화를 건 이유는 여왕바위벌 고치 때문이 아니었다.
민서린이 말을 이었다.
-아뇨. 그것 때문에 연락드린 게 아니고……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농활 하실래요?
“농활이라면…… 농촌 봉사활동이요?”
-네! 이번에 대민 지원 요청이 들어왔거든요. 횡성 근처인 것 같은데, 건우 씨가 시간만 괜찮으시면 같이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건우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서린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대민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저야 좋죠. 안 그래도 방금 초인 협회에서 문자 받아서, 신청하려 했어요.”
-아, 그랬나요? 마침 잘됐네요. 우리 같이해요. 제가 건우 씨 몫까지 신청해 둘게요.
“서린 씨가요?”
-네. 제 이름으로 신청하면서 동행인으로 건우 씨 이름을 넣으면 편하게 신청할 수 있거든요.
그 말에 건우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네. 바로 신청해 둘게요. 아, 그리고 저 말고도 예준이하고 예란이도 같이할 것 같아요.
“예준이하고 예란…… 씨도요?”
민서린의 말에 건우가 살짝 움찔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예란 씨는 조금 불편한데…….’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친해지질 못해서 어색했다. 같이 여름휴가를 보낸 사이기는 했지만, 말도 거의 섞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크게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네. 알았어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그럼 신청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푹 쉬세요!
“네. 서린 씨도 푹 쉬세요.”
건우는 그렇게 민서린과의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언제 도착했지?’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하와가 나서서, 엘에게 집을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하와!”
“와!”
“하왓!”
“우왓!”
“하왕!”
“우왕!”
대문, 집, 마당 등등.
하와가 엘에게 뭔가를 하나 소개시켜 줄 때마다, 엘은 감탄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건우를 돌아보면서 외쳤다.
“정말 근사한 집이랍니다!”
그 말에 건우가 슬쩍 웃었다.
“그래? 마음에 들었어?”
“네! 역시 이건우 님의 집은 정말로 대단하답니다!”
“그래?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그럼 앞으로 여기서 같이 살아도 되겠지?”
“네! ……네? 제가 말인가요?”
엘은 건우의 말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여기에 온 것을 단순히 구경만 하러 온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건우가 그런 엘의 모습을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엘도 가족이니까. 가족은 원래 같이 사는 거야.”
그가 그렇게 말하자, 엘이 다시 한 번 집을 쭉 둘러봤다. 그러다가 다시 건우를 바라봤다. 놀란 눈을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제, 제가 정말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지. 앞으로 잘 부탁할게, 엘.”
건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자, 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슬쩍 잡았다.
그리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린답니다.”
그렇게 엘도 같이 살게 되었다.
* * *
그날 저녁.
부모님은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엘이라고 한답니다.”
“안뇽하쎄요. 소아여요! 도라왔떠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사진, 동영상으로만 봤던 엘과 가족들에게 돌아갔다고 들었던 소아가 인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런 둘의 인사를 웃는 얼굴로 받아 주었다.
하지만 곧, 건우를 주방으로 끌고 가서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아들! 소아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니?”
“저 아이, 엘 맞지? 그 던전 농지 뭐시기인가에서 못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질문에 건우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결국 건우는 시간을 좀 들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상황을 전부 이해한 어머니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럼 소아는 다시 우리랑 살게 된 거야?”
“음, 일단은요. 혹시…… 소아랑 사는 게 불편하세요?”
그 물음에 어머니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소아가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엄마가 얼마나 섭섭했는데? 다만 조금 걱정인 거지. 들어 보니까, 제대로 허락을 받고 온 것도 아니라며.”
그 말에 건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그도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건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근시일 내로 족장이라는 분이 다시 찾아올 거예요. 그때가 되면 소아가 원하는 대로 이곳에서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해 봐야죠.”
“그래? 그런데 그쪽에서 소아가 이곳에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줄까? 거기에는 소아 부모님도 있을 거 아냐?”
그 물음에 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응? 왜?”
“소아한테 들어 보니까, 애초에 부모님 같은 존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뭐, 뭐!?”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건우가 그런 어머니를 빠르게 진정시켰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소아의 종족이 특이한 거니까요. 태생 자체가 인간하고 많이 다르더라고요. 애초에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대요.”
“뭐? 그게 가능해?”
“저야 모르죠. 그런데 전번에 어머니는 똑똑히 보셨잖아요. 하와처럼 소아도 이것저것 없는 거요.”
건우의 말에 어머니가 소아와 함께했던 목욕 장면을 떠올렸다.
분명, 소아도 하와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부분들이 밋밋했다.
“확실히 그랬지.”
어머니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엘도 우리랑 같이 사는 거냐?”
그 물음에 건우가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허허. 그럼 엘도 딸로 들일 생각이야?”
그 물음에 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모습에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건우가 소아를 딸 삼을 거라고 데리고 왔을 때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아가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건우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가 둘이나 딸린 총각을 좋다고 할 처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까지 딸로 삼아 버리면, 정말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이었다.
하지만 건우의 다음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신에 조카딸로 들이려고요.”
건우 다음으로, 친동생 이찬우의 혼삿길까지 공식적으로 막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