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5)
정령 농사꾼 – 25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건우는 던전 농지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엘한테는 미안했지만 정수찬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 드세요.”
그리고 엘이 먹기로 한 고구마는 정수찬의 몫이 되었다.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은 것이다.
“김치나 마실 것 좀 드릴까요?”
건우의 말에 정수찬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다가 멈칫거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래의 정수찬이라면 건우의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A+급 찐 고구마를 대접해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이 맛을 즐기고 싶다.’
정수찬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찐 고구마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찐 고구마 – A+급.
A+급 고구마를 쪄서 만든 찐 고구마. 완벽한 찐 고구마의 맛을 지니고 있다. 식기 전에 먹어라.」
꿀꺽.
정수찬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요리사이기도 하지만 미식가이기도 했다. 그의 민감한 혀는 요리의 간을 완벽하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했지만, 음식의 맛을 느낄 때도 큰 도움이 되는 도구였다.
건우는 그런 정수찬을 잠시 앉혀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러고 주방으로 들어간 건우.
그 사이 하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신의 몫인 고구마를 들었다. 그리고 껍질도 까지 않은 채로 그것을 크게 베어 물었다.
“하으응!”
볼을 빵빵하게 만들고 고구마를 씹는 하와.
그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이의 모습이었다.
그에 정수찬이 침을 꼴깍 삼켰다.
‘먹고 싶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 주인인 건우가 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조금만 참자.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정수찬은 그렇게 머릿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겨 넣으면서 인내심을 길렀다. 그러길 잠시, 건우가 김치와 함께 우유를 쟁반에 들고 나왔다.
“자, 드세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음식을 권했다.
“감사합니다.”
다급하게 대답하고 손을 뻗는 정수찬. 그는 찐 고구마를 들고 조심스럽게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 사기 아닌가?’
살짝 투명해 보이는 촉촉한 노란 속살, 슬며시 올라오는 허연 김, 거기에 달콤한 향기까지.
정수찬은 머리가 살짝 어지럽다고 느끼면서도 고구마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허······.”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문 정수찬은 놀람과 감탄을 넘어서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만든 그 어떤 요리에서도,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음식에서도 느끼지 못한 천상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그가 걸은 요리의 길을 우습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부끄럽게 만들 정도였다.
‘나는 지금까지 요리를 한 것이 아니었다.’
정수찬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요리에 관한 것들이 재정립되기 시작했고,
「진정한 요리사가 되기 위한 2번째 시련.
정체되어 있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부와 명예, 자존심마저 버릴 수 있어야만 한다. 지금의 것을 비워내고 떠나라. 그리고 도움을 청해라.
목표1: 소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처분해라. (완료)
목표2: A+급 옥수수를 재배해낸 장인을 찾아내어 위탁하고 도움을 청해라.
목표3: 깨달음을 얻어라. (완료)
성공보상: 잊혀진 극한의 요리사의 선물.」
가장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세 번째 목표가 달성되었다.
정수찬은 최대한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건우를 바라보았다.
건우는 고구마를 까고 있다가 정수찬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수찬은 두서없이 그리 말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정체되었던 요리의 길에 한 줄기 빛을 보여준 건우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건우는 난처하기만 했다.
‘아니, 이 양반은 좋은 거 먹고 왜 울어? 갑자기 미친 것도 아닐 테고······.’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으로 고구마를 가져갔다.
정수찬이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일단 고구마는 먹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
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정수찬은 슬슬 자신이 건우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면서 문제에 봉착한 얘기, 우연히 방송에서 A+급 옥수수를 요리하게 된 얘기, 시련을 받은 얘기, A+급 옥수수의 생산지가 강원도라는 것을 알아내게 된 얘기, 그 때문에 강원도로 왔지만 경비 때문에 꼬치구이 장사를 해야만 했던 얘기까지.
정수찬은 마지막으로 횡성에서부터 원주 쪽으로 내려가면서 건우와 하와에 대해서 수소문한 것으로 얘기를 마쳤다.
그렇게 얘기들을 전부 들은 하와는 건우의 무릎을 베고 고롱고롱 코를 골기 시작했고 건우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시련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는 소리구나.’
사실, 건우는 한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정수찬이 재력가나 권력가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가 A+급 농작물을 독점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도끼병일 뿐이었다.
‘하긴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에 대해서 아는 건 나하고 하와밖에 모르는데······높으신 양반들이 맛있는 옥수수나 고구마 하나 찾으려고 움직인다는 것도 웃긴 일이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했던 걱정들을 털어내고 입을 열었다.
“아무튼 결국에는 제가 재배한 A+급 농작물들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고 싶으시다는 얘기신가요?”
“네. 정확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왔습니다.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수찬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에 건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정수찬의 열정적인 모습만 보자면 도와주고 싶었다. 예전에 자신이 각성자 지망생이었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럴 수 없는 것이 건우의 사정이었다.
건우가 그것을 입에 담았다.
“도와드리고 싶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힘듭니다.”
“현실적으로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농사라는 것이 후딱 지어서 후딱 수확하는 게 아니니까요. 거기다가 A+급의 수량은 무척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정수찬 씨한테 다 제공하면 저는 거지꼴을 못 면할 겁니다.”
물론 말이 거지꼴이지, 그보다 낮은 등급의 농작물만 팔아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었다. 단지, 이득이 아주 많이 줄어들 뿐이었다.
그에 건우의 말뜻을 알아들은 정수찬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 부분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건우 씨도 수긍할 만한 제안을 들고 왔습니다.”
“제안이요?”
“네.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저는 요리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레스토랑을 내겠습니다. 거기에 A+급 농산물을 제공해주는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정수찬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꼬깃꼬깃한 서류봉투를 꺼내 들었다.
“한 번 읽어보십시오.”
건우는 정수찬의 말에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건우가 계약서에서 눈을 뗐을 때, 정수찬이 입을 열었다.
“업계 표준계약서를 조금 수정한 겁니다. 매출의 8:2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건우 씨가 8이고 제가 2입니다.”
건우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건우에게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건우가 제공할 것이라고는 A+급 농산물뿐이니, 말도 안 되게 건우에게 유리한 계약이었다.
그에 건우는 오히려 의심이 들었다. 사기꾼들이 먹잇감을 혹하게 하는 것과 느낌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한테 너무 유리한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건우 씨한테 아주 유리합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A+급 농산물이 들어간 요리에 한한 매출에만 적용되는 정산비율이기 때문에 저한테 오는 손해는 다른 쪽으로 충분히 매울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저는 꽤 유명한 요리사입니다. 꼭 A+급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손님들은 줄을 설 겁니다.”
정수찬은 무척이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그에 건우는 묘한 신뢰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수찬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 정수찬이 먼저 선수를 쳤다.
“혹시 불안하시다면 저에 대해서 검색해보셔도 됩니다. 제 정보라면 바로 나올 겁니다.”
“그래도 될까요?”
“네. 제가 오히려 부탁드리겠습니다. 건우 씨에게 신뢰만 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건우는 정수찬의 말에 슬며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정수찬이라는 이름을 검색한 순간 깜짝 놀랐다.
‘어마무시하게 유명한 사람이었네?’
정수찬에 관련된 인물 검색이 뜨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직접 집필 했다는 요리책도 나와 있었다. 심지어 기사도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고, 블로그 글, 카페 글, 웹 글까지 따지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정수찬에 관한 정보는 많았다.
‘외국에서도 유명하고······.’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계 최정상급 요리 대회에서 대상 수상은 기본이고, 국내는 물론, 국외의 여러 요리 프로그램에 심심하면 얼굴을 노출 시키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대한민국 미쉐린 가이드 3성 레스토랑의 총주방장을 역임했다는 정보까지.
정수찬의 실력과 유명세는 건우의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최소한 요리계에서는 확실한 유명인이자, 실력자인 것이다.
‘심지어 초인계에서 상당히 유명인사였구나······.’
건우는 딱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에 정수찬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셨으면 알겠지만 저랑 계약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건우는 그 말에 한동안 뜸을 들이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정수찬은 앉은 채로 들썩이면서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건우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건우가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계약서에 여러 가지 궁금증도 있고,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문, 문제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건우는 정수찬의 표정에서 진심을 엿봤다. 하지만 건우는 계약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건우가 말을 이었다.
“일단 그에 대해서는 전문가를 가운데 두고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거기에 동의하시면 계약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정수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직 계약이 체결된 것도 아닌데, 이미 계약이 체결됐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무래도 건우의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줄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건우에게는 상당히 좋은 이미지로 남겨졌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러운 소란에 건우의 무릎을 점령했던 하와가 눈을 슬며시 떴다.
“하와?”
잠이 덜 깨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하와. 그에 정수찬이 꽤나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건우가 하와를 얼마나 위하는지 얼추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수찬은 계약을 위해서라도 무리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와는 안 어울리게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연 것이다.
“아, 아니에요. 하와 어린이. 아직 꿈나라에 더 머물러도 돼요~”
“하와······.”
정수찬의 노력으로 살포시 눈을 감는 하와.
건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풋!하고 웃어버렸다. 평소의 이미지랑 차이가 너무 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정수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수찬과의 계약을 아주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