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6)
정령 농사꾼 – 26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건우와 계약을 맺게 된 초인 쉐프 정수찬은 빠르게 자신이 할 일을 시작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한 다음날에 상당한 금액을 대출받더니, 레스토랑을 차리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건우는 그의 행동력에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레스토랑을 차리겠다고 한 위치가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횡성에 고급 레스토랑이라니······차라리 오픈이 늦더라도 천천히 좋은 자리를 찾아보지.’
건우가 횡성군 토박이이기 때문에 횡성에 대한 애착이 있긴 했지만,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횡성은 고급 레스토랑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지역이었다.
건우는 정수찬이 조급하게 움직이느라,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원주나 오크밸리 쪽에 자리를 잡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정수찬의 일은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가 할 일은 정수찬의 레스토랑 위치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레스토랑 오픈 전에 A+급 고구마를 가져다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 신경 끄자. 그러려고 농작물에 대한 보장금액 옵션도 계약에 추가한 거니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 최근에 가장 문제가 되는 농사일로 신경을 돌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뿔토끼 농사였다.
‘솔직히 말해서 뿔토끼 털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건우는 뿔토끼 농사를 털과 뿔의 수급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문제에 봉착했다. 뿔토끼 뿔의 수급은 문제없었지만 뿔토끼 털이 문제였다.
‘여러모로 너무 비효율적이야.’
건우가 알아본 결과, 뿔토끼 털은 분명 수입에 도움이 되긴 했다. 생각보다 털의 품질이 좋고 양도 많아서 쏠쏠한 이득이 예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이득은 현재의 건우에게 큰 이득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물론 부수입으로 이득이 나는 거면 좋겠지만······이러다가는 이게 주업무가 돼 버리겠어.’
아름만 먹어대면 털북숭이가 되어버리는 녀석들. 덕분에 최근의 건우는 뿔토끼들의 전용 미용사가 되어야만 했다.
‘지금이야 농한기니까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거지만······.’
봄이 되고 제대로 농사를 지을 시기가 오면 뿔토끼 털만 붙잡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 건우의 사정이었다.
‘그렇다고 아름을 안 먹이면 뿔의 수급이 안 되니······사면초가라.’
건우는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사자성어를 사용하면서 혀를 찼다.
그리고는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뀽뀽!(갈기가 생겼다뀽!)”
사실, 건우는 수컷 뿔토끼의 털을 잘라주면서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에 드냐?”
“뀽!(너무 좋다뀽!)”
수컷 뿔토끼의 대답에 건우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진 갈기를 쓸어내렸다.
“너니까 해주는 거야. 다음부터는 안 해줘.”
“뀽!(알았다뀽!)”
“그래. 그럼 이제 내려가······기 전에 너 좀 컸다?”
뀽?
녀석은 건우의 말에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컸다는 것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건우는 그런 녀석의 골격을 만져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살이 찐 건가? 먹이를 좀 줄여야하나?”
뀽!?
수컷 뿔토끼는 건우가 툭 내뱉는 말에 마치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 건우가 피식 웃으면서 녀석을 바닥에 내려놔주었다.
“장난이야.”
그러자, 안심하는 수컷 뿔토끼. 건우는 그 녀석을 보면서 실실 웃었다. 그때, 하와가 훌쩍 녀석에게 다가갔다.
“뀽!(최신 스타일이다뀽!)”
“하와!”
수컷 뿔토끼는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스타일을 자랑했고, 하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둘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가, 이내 다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뀨웅~ 뀽! 뀽! 뀽!
뿔과 귀가 달린 커다란 솜사탕 같은 뿔토끼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전부 건우가 털을 깎아줘야 할 녀석들이었다.
‘하아. 역시 뿔토끼 농사를 주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에는 더 이상 무리야.’
그는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엘이 슬쩍 날아와서 건우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건우 님.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네가?”
“네. 저도 도울 수 있답니다.”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작업용 가위를 꺼내 들었다.
그에 건우가 슬쩍 웃어 보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신경 쓸 것 없어. 괜히 그러다가 다치면 더 큰 일이야.”
건우는 그렇게 말하고 다음 뿔토끼를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얌전히 눈을 감고 건우의 손길을 기다리는 녀석. 마치 마사지를 받기 바로 직전의 손님 같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엘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도 잘 할 수 있답니다! 이건우 님의 능력을 빌려올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건우는 시작하려던 낫질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엘의 능력이 그런 능력이었지.’
주인의 힘을 일부 빌려오는 능력.
그렇기 때문에 엘은 건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곧잘 따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순간, 마음 한 구석에 엘에게 좀 기대볼까?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흐음. 그럼 한 번 엘이 한 번 해볼래?”
그 말에 엘이 활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건우의 허벅지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뿔토끼는 아니었다. 녀석은 편안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더니, 곧바로 도주하기 위해서 뒷다리에 힘을 줬다. 자신이 엘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걸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건우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도망치려던 녀석을 꽉 움켜쥔 것이다.
“어허! 어딜 도망가? 가만히 있어.”
뀽!
“등짝을 보자. 허허.”
뀨웅!
건우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엘에게 턱짓을 했다.
그에 엘이 가위를 들고 달려들었다.
***
“흠.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수 있으려나?”
건우는 엘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건우처럼 뭔가 스타일을 만들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자른 것치고는 깔끔했다.
뀨웅.
심지어 뿔토끼도 만족했는지, 엘에게 머리를 부비면서 애교를 피웠다.
“좋아. 결정. 엘! 좀 도와줘.”
“물론이랍니다!”
건우는 그렇게 엘과 함께 뿔토끼의 털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 정도는 벌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와!”
하와도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핑킹가위를 들고 자신도 뿔토끼 털을 잘라보고 싶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하와는 건우에게 바로 저지를 당했다. 엘이야 자신의 능력을 빌려가는 능력이 있었지만, 하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대체 핑킹가위는 어디서 가져온 거야?’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최대한 빨리 뿔토끼 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떠올리기로 마음먹었다.
***
건우가 열심히 골치 아픈 토끼 농사에 열을 올린 지 얼마 후.
정수찬의 레스토랑 단장이 끝났다. 그 소식을 들은 건우는 계약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레스토랑에 방문한 상태였다.
‘너무 빨리 준비돼서 날림 공사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게 꾸몄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스토랑 내부를 살폈다.
상당히 큰 테이블 하나만 존재하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 정수찬에게 얘기를 듣긴 했지만, 건우에게는 상당히 낯선 방식의 레스토랑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인테리어를 하면 장사가 되려나?’
건우는 전에 이어서 또 다시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큰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흐음. 수찬 씨가 전문가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만······.’
건우는 그러면서 레스토랑 내부를 다 살피고는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정수찬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주방 입구 쪽에서는 하와가 그 모습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하와에게 다가가서 살포시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가 그렇게 신기해?”
“하와~”
건우의 질문에 건우가 바로 정수찬을 가리켰다. 확실히 정수찬의 움직임은 신기할 만 했다. 주방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여러 장비를 들었다놨다하는 그 모습에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절도가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긴 하네.’
요리를 잘 모르는 건우가 봐도 확실히 정수찬은 실력 있는 요리사처럼 비춰졌다.
그때, 건우와 하와의 인기척을 느낀 정수찬이 집중에서 벗어났다.
“어?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분주하게 하고 계십니까? 사람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건우의 말에 정수찬이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주방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주방이 좁은 만큼 동선을 정확하게 해야 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코스 요리는 요리와 요리 사이의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니까요.”
“그런가요? 제가 그쪽 분야는 잘 몰라서······아무튼 움직이시는 것만 봐도 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 별 거 아닙니다. 좀 한다하는 요리사라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수찬의 겸손한 대답에 건우는 잠깐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는 요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대신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시켰다.
“그건 그렇고 약속한 고구마 가져왔습니다.”
“오!”
정수찬은 건우의 말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동자를 빛냈다. 벌써부터 A+급 고구마를 요리할 생각에 잔뜩 들뜬 것이다.
건우는 그에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잠시 레스토랑 식탁에 올려뒀던 두 개의 상자를 들고 왔다.
그냥 맛만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좋은 A+급 고구마 25KG과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A+급 고구마 2KG이었다.
정수찬은 그것을 보고는 활짝 웃으면서 부리나케 앞으로 나섰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 말로 까다로운 계약 조건에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정수찬은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에게 고구마 상자를 받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 정수찬의 눈과 동공이 크게 확장되면서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건우는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시련이······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부 건우 씨 덕분입니다.”
정수찬은 그렇게 말하면서 목례를 해보였다. 그 모습에 건우는 환히 웃으면서 가볍게 박수를 쳐주었다.
“와! 정말요? 축하합니다. 시련이란 게,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거라고 들었는데······정말 축하드립니다!”
“하와!”
건우의 축하에 이은 하와의 축하.
정수찬은 다시 한 번 환히 웃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길 잠시, 정수찬은 허공을 잠시 쳐다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건우가 그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시련 보상으로 받은 게 좀 의외의 것이라 그렇습니다.”
“의외의 것이요?”
“네. 보통은 요리 레시피나 능력을 얻는데, 아름의 완벽한 가공 방법이라니······흠. 요리재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보상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정수찬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가로 까닥였다. 보상에 불만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성의 보상이 나왔기에 의아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짓던 건우가 정수찬에게 되물었다.
“방금, 아름의 가공 방법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건우는 그 확답에 턱이 빠지도록 경악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우왕좌왕하다가 고개를 90도로 푹 숙였다.
쾅!
“악!”
급하게 고개를 숙이느라, 주방 싱크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은 건우.
하와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정수찬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하지만 건우는 고통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이 가 있었다.
건우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부,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저 좀 도와주십시오.”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싱크대 모서리를 충분히 신경 쓰면서 말이다.
그 간절한 모습은 처음 정수찬이 건우에게 고개를 숙이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