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11
118. 마지막 랭킹(2)
마침 오늘은 다른 종목 대부분이 대폭 하락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가 빠지더라도 크게 이상하게 보일 일도 없었다.
박강수의 강한 주장에 운용본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현대차는 기존 펀드에 매입된 물량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매도치면 펀드 구성이 무너집니다. 실효 대비 무리수입니다.”
“그래도 무조건 쳐.”
박강수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일단 매도 친 다음 일주일 뒤 다시 매수에 들어가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운용본부장이 찔끔 위축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무리수인 것 같긴 하지만 부사장이 저렇게 강하게 주장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매수는…….”
“그렇지. 일단 지금 가진 놈 중에서 하나를 골라 위로 띄우자고. 그리고 거래량 적은 놈을 별도로 하나 골라서 내가 매수하자마자 상한가로 보내. 내일부터 3일 연속 상한가를 쳐서 수익률 격차를 확 벌려보자고.”
박강수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운용본부장이 아부하는 표정으로 의견을 말했다.
“그럼 지금 보유주는 코스닥 종목인 극광전기로 하겠습니다. 그 주식이 거래량이 적어 좋습니다. 다른 종목은…….”
“좋아, 좋아. 이 정도면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이야. 상대 주식은 폭락시키고 우리 것은 상한가로 보내는 거지. 지금 당장 실행하자고. 오늘부터 일단 무차별로 돈과 물량을 퍼부어.”
작전 지시를 받은 운용본부장이 자리를 떴다.
작전은 훌륭했다. 그들은 현 보유주인 극광전기를 강력한 매수 몰이를 해서 쳐올렸다. 그리고 오늘 하한가로 떨어진 코스닥 종목 대정기계를 아래서 받치며 물량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둘 다 내일은 상한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박강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승부는 끝이다.”
**
유서준은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서하나가 늦을 예정이어서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하나는 밤에 일을 더 하다가 돌아올 모양이었다.
서하나가 회사 승용차를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많이 편해지긴 했다. 집에서 여의도 본사까지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해야 하는 것을 승용차로 가게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최근에 그녀의 대중적 인기가 엄청 높아져서 감히 지하철을 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운전사로 뽑은 김만학 가도건설 사장도 아무런 문제 없이 제 역할을 잘 했다. 처음에 다소 염려했던 유서준은 한시름 놓았다.
홀로 있으니 자연스럽게 피씨 모니터로 눈이 갔다. 서하나의 팬카페를 들리고 HTS를 켜서 오늘의 시황을 살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발표되는 스타리그, 펀드매니저의 브러드워는 오늘 처음으로 서하나가 선두에 나섰다.
일등이든 이등이든 문제없지만, 이상하게도 박강수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았다. 대학 때부터 이래저래 경쟁 상대였던 것이 증권사를 차리고도 경쟁을 계속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서하나가 박강수 위로 올라선 것이 그로서는 대만족이었다. 오늘 서하나가 오면 칭찬이라도 해주어야겠다. 근소한 차이이지만 오늘을 비롯하여 앞으로 일주일간 하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역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서하나에게 구체적인 종목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대박 예정이라던 새롬기술의 매수를 권했을 때에도 그녀는 거절했으니까. 그가 기여한 바는 큰 흐름을 짚어준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마저 그녀와 시황 토론을 하며 넌지시 알려준 게 모두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 브러드 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역시 그녀는 타고난 재능에 실력이 있었다. 대학 때 동아리 투자대회를 휩쓸었다는 전설이 사실이었다.
모니터에 나타난 관심 종목의 주가를 보다가 그는 서하나와 박강수가 보유 중인 주식을 떠올렸다. 지난 금요일 종가기준으로 오늘 생방송에서 공개된 것이니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서하나의 현대차, 박강수의 극광전기, 아토, 파워텍. 오늘 시장 상황이 별로였기에 이들 종목은 상태가 나빴다. 신기하게도 극광전기 하나만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박강수가 보유한 다른 종목 주가는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서하나가 보유한 거래소 대형주인 현대차는 괜찮았다. 어제 대비 보합.
만일 아직 보유종목 변화가 없었다면 서하나가 유리했다. 게임은 끝난 것이다.
유서준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다가 문득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혹시 우연히라도 이 종목 중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종목이 있지 않을까.
그는 다이어리를 폈다.
*
1999년 9월 27일 월요일. 종합주가지수 903.79, 코스닥지수 170.82.
미국과 일본의 급락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하락했다. 9월 들어 수익률이 엉망이지만 지금까지 벌어둔 것이 있어서 아직은 문제없다. 시장이 상승으로 돌아서면 수익률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화끈하다. 요즘은 상한가 한번 치면 적어도 일주일은 상한가이고 하한가 한번 치면 일주일은 하한가니까.
보유 주식은 움직임이 영 아니다. 거래소 종목인 현대차는 29250원으로 어제 대비 250원 올랐다. 한국통신은 800원이나 떨어져서 78500원이다.
한국정보통신은 하한가로 38200원이다. 이놈이 보유 수량이 많은데 내일 또 하한가를 칠 것 같다. 이름만 딱 보면 무조건 오를 놈인데.
소소하게 보유 중인 대정기계도 오늘 하한가인 11400원을 기록했다. 역시 코스닥 종목은 무섭다. 상한가 아니면 하한가다.
*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다이어리를 내려다보던 유서준의 눈이 갑자기 빛을 발했다.
“응? 이게 뭐야?”
순간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황급히 주식 프로그램으로 해당 종목을 검색했다.
현대차의 오늘 종가는 보합인 27000원. 다이어리에는 27250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지금까지 다이어리에 적힌 그 많은 숫자 가운데 현실과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발견된 것이다.
“실수로 잘못 적은 걸까?”
유서준은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이상했다.
그는 다른 종목의 주가를 비교했다. 오늘 적힌 종목의 주가는 대부분 일치했다. 달라진 것이 현대차 외에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대정기계. 코스닥 벤처 기업에 속해 있는 이 종목은 다이어리에 따르면 오늘 -12% 하락한 하한가인 11400원이어야 했다. 그런데 모니터에 나타난 오늘 종가는 11600원.
그는 대정기계의 오늘 주가 흐름을 확인했다. 오전에 잠시 상승으로 돌아섰다가 장이 꼬꾸라지며 곧바로 하한가로 주저앉았다. 계속 하한가에 머물다 장 막판에 대량거래를 일으키며 하한가에서 200원이나 올라섰다.
“이것도 실수?”
뭔가 이상했다. 하나만 달랐으면 우연한 실수라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나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이어리에 적힌 종목은 극히 일부였으니까.
만일 다이어리에 적힌 것 역시 진실이라면?
유서준은 오한이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미래가 바뀐 것이다!
물론 그가 서하나와 결혼하면서 분명히 미래는 바뀌었다. 또 그가 증권사를 설립하면서 미래는 바뀌었다. 원래대로라면 D 증권사는 다른 대형 증권사와 합병할 몸이었으니까.
그런데 주식 가격이 바뀐 것은 처음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하나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의 주가가 다른 것은 우연일까?”
그는 머리를 흔들며 우연이라는 가정을 쓸어냈다. 세상일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을 담고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냈다.
주가가 바뀐 원인은 바로 박강수였다.
“강수 그 자식이 주가에 개입했구나!”
달리 생각할 변수는 없었다. 박강수는 대회에서 이기기 위해 서하나가 보유한 현대차 주가를 억눌렀다. 문제는 현대차가 대형주, 그것도 상당히 큰 주식이란 거다. 웬만큼 물량을 퍼붓는다고 하여 급락할 주식이 아니다.
해솔 증권의 펀드에 담긴 현대차 주식을 동원해서 매도를 쳤겠지만 원래 대비 불과 250원만 하락했다. 즉 원래대로라면 오늘 250원 상승해야 할 것을 보합으로 끝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대정기계 역시 박강수가 오늘 건드린 주식이라고 보아야 했다. 애초에 하한가로 떨어진 놈을 일단 박강수가 먼저 하한가에 사들이고 펀드에서 쳐올려서 바닥보다 200원 올려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일 되면 본격적으로 펀드를 통해 이 종목을 매수하여 상한가로 만들 것이다.
유서준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 자식이 진짜 생사를 걸려고 하네.”
물론 우승하면 좋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편법을 써가면서 우승해야 하는 걸까.
먼저 싸움을 걸어온 이상 그 역시 잠자코 있을 생각은 없었다.
유서준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전략을 구상했다.
잠시 후 유서준은 명동 인베스트먼트의 자산 관리팀의 고동찬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팀장님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이야, 이게 누구야. SJ 대표 아니신가? 오랜만이네.”
수화가 너머로 고동찬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요즘 잘 되시죠?”
“장이 좋잖나.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유서준은 곧바로 본 내용으로 들어갔다.
“요즘도 명동 찌라시에 소문 넣고 하시죠?”
“그렇지. 요즘엔 찌라시도 뿌리고 메신저로도 뿌리고 그렇게 하지.”
“거기에 소문 하나만 넣어주세요. 극광전기, 아토, 파워텍, 대정기계에서 세력이 작전을 포기하고 빠져나가고 있다라고요.”
유서준은 박강수가 보유하고 있다고 예상되는 모든 종목을 언급했다.
“그건 왜? 네가 매집하려고?”
“그건 아니고요. 한 3일간 계속 소문 넣어주세요.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알았다. 나중에 술 사라.”
고동찬이 순순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유서준이 주먹을 꾹 쥐었다. 박강수에 대항하여 일단 응전을 해줄 생각이었다.
밤이 이슥하여 서하나가 집으로 돌아왔다.
살짝 맥주를 한잔 걸치고 들어온 모습. 누구랑 마셨냐고 물었더니 신선영과 한잔 걸쳤다고 했다. 신선영이 새로 시작한 현물 주식과 선물의 차익거래가 나름 잘 되고 있다나. 이를 기념해서 한잔했다고 했다.
유서준은 옷을 갈아입는 서하나를 따라 들어가서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
“뭔데?”
서하나는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가 보지 못하도록 돌려세우며 물었다.
유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대회는 이겨야겠지?”
“으응, 당연하지. 지금까지 노력해서 1위 자리를 차지했는데 다시 미끄러지면 섭섭할 것 같아.”
서하나가 재빨리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거실로 나갔다.
유서준도 그녀의 뒤를 졸졸 따랐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는 그녀를 보며 유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럼 이번 한 번만은 내 말대로 하면 어떨까?”
의외의 말이었던지 서하나가 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지금까지 약 7개월간 이런 말을 유서준이 한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난 이번 주는 약세로 보고 내일 현대차도 팔고 전액 현금으로 갈 생각이었어. 괜찮은 종목 있으면 매수해도 좋아.”
다행이었다. 그녀가 이유를 묻지 않아서. 또 그의 개입을 반대하지 않아서.
유서준은 다이어리에서 미리 봐둔 종목을 꺼냈다.
“내일 아침에 현대차를 팔아. 그다음에 한국정보통신을 매수해. 오늘 한국정보통신은 하한가였어. 내일도 하한가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내일 종가 무렵 천천히 사면 돼. 전체금액 모두. 이해했어?”
“응, 그런데 매수 이튿날도 하한가로 떨어지면 어떡해?”
서하나가 다소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유서준은 그녀의 옷자락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나만 믿어. 다음날은 아침 시가부터 상한가로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