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3
23. 대통령 선거(2)
여의도 광장에 모인 군중의 함성이 더욱 높아갔다. 그들은 후보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다.
“하하, 후보자 유세는 처음 참관했는데 나름 재밌네.”
구인혁의 말에 이지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두 사람이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즐거워했다.
유서준은 그들 두 사람이 죽이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단순히 생각하면 같은 고향인 부산 사람에 부산 출신 후보가 나와 있어서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강성 야당 후보에 야성이 짙은 문과 여인과 시국에는 전혀 관심 없는 이과 남자의 조합이니 특이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장막이 겹겹이 쳐진 관중 사이를 훑어보던 유서준의 눈에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 들어왔다.
유세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한 여인이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남색 스커트, 한눈에도 회사 유니폼처럼 보이는 단정한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질끈 묶어 활동하기 편하게 정리한 여인, 여인의 얼굴은 탤런트를 연상시켰다. 바로 증권사의 서하나였다.
유서준은 서하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서하나가 그를 알아보고는 그에게로 다가왔다. 유서준이 먼저 말을 뗐다.
“이곳에 어쩐 일이세요?”
“오늘 토요일 오전에 여의도 본사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유세 구경 나온 거죠. 서준 씨야말로 이런 곳이랑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반가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서하나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서준은 가볍게 그녀와 악수를 했다.
유서준의 옆에 서 있던 김현아가 서하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서… 선배님!”
서하나의 눈길이 김현아에게 옮겨졌다. 하지만 그녀는 김현아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김현아가 재차 자신을 소개했다.
“저 경제학과 일학년이고요. 지난 3월에 입학 후 얼마 안 되어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때 오셨잖아요?”
서하나는 서울대 경제학과 83학번 졸업생이었다. 그녀는 재학생이었을 때 당시에는 학과 동아리였던 주식투자연구회에서 활동을 했었다. 올해는 졸업 후 1년째였고 지난 3월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의 자격으로 참여해서 후배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즉 서하나는 김현아에게 학과 선배이자 동아리 선배였다.
많은 후배를 만났기에 서하나는 김현아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김현아는 몇 안 되는 선배였기에, 게다가 매우 미인이었기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
서하나가 김현아에게 미안해했다.
“미안,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해서. 요즘도 동아리는 잘 굴러가지?”
“네, 별일 없어요. 회원들 대부분 수익률도 좋고요.”
“올해는 장이 워낙 좋아서 그렇겠네.”
유서준은 신기한 인연이라 생각하며 두 여인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김현아도 나름 빠지지 않을 미인이었고 이지은도 꽤 귀엽게 생겼는데 서하나는 그런 두 여인을 미모로 순식간에 압살해버렸다. 그는 서하나가 새삼 대단한 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하나의 눈이 다시 유서준과 김현아를 번갈아 가며 오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
“아, 서준이도 주식투자연구회 회원이죠. 서준아 우리 동아리 선배님이셔.”
유서준은 신기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는 처음 서하나를 만나 투자 상담을 받았을 때 학교 동아리에 가입해보라는 권유를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녀가 그 동아리 출신이었으니 그렇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네. 인연이네요.”
서하나가 중얼거렸다.
잠시 유세를 경청하던 서하나가 문득 유서준을 보며 뭔가를 떠올리더니 김현아에게 물었다.
“올해도 동아리에서 투자대회를 하고 있지?”
“당연하죠. 참가자도 예년보다 늘었데요.”
“너희는 일학년이니까 하반기부터 참여했겠네. 올해는 누가 1위야?”
서하나의 눈이 유서준을 잠시 향했다.
김현아가 곧바로 대답했다.
“올해는 총무인 신선영 언니예요. 제가 알기로는 하나 언니 졸업하신 후 선영 언니 독무대인 걸로 알고 있어요.”
서하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유서준씨는 참가 안 했나요?”
“전 지금 2위랍니다.”
유서준이 대답했다.
그의 대답과 동시에 서하나의 의문이 튀어나왔다.
“그 성적으로도?”
김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하나 언니가 서준이를 어떻게 알죠?”
서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유서준 씨의 계좌를 관리하고 있거든.”
“아, 그래서 서준이가 수익이 좋은 건가?”
김현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서하나가 곧바로 손을 내저었다.
“일임매매나 그런 것 아냐. 난 단순한 조언자일 뿐이지. 모든 매매는 유서준 씨 스스로 판단해서 해. 놀랍게도 현재 유서준 씨가 우리 지점에서 수익률 1위거든. 금액이 적어서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네?”
김현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하나가 유서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현재 누적 수익률이 300%에 육박하고 있던데…….”
김현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서준을 쳐다보았다.
서하나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현아에게 확인했다.
“몰랐어?”
“동아리 대회 출전한 계좌는 100% 조금 넘었던 것 같은데요?”
김현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하나가 금방 상황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서준 씨 계좌가 두 개야. 그중 수익률이 낮은 게 대회에 출전한 것인가 보네. 다른 계좌 하나는 정말 수익률 짱이다. 놀랄 정도야.”
김현아가 입을 삐죽 내밀며 유서준을 째려보았다.
“다른 계좌가 또 있었어? 근데 그 계좌가 더 엄청나다고? 너 정말 대단하네.”
유서준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어쩌다 보니까. 운이 좋았지.”
“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해. 내가 보기엔 주식의 감이 정말 좋아.”
서하나가 유서준을 칭찬했다. 그녀는 웃고만 있는 유서준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감이야? 감으로 투자하는 것 맞아요?”
“정말이라니까요. 주식 공부는 물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유서준이 그들의 의심을 무마하고자 대답했다.
김현아도 신기한 눈초리로 그를 살피며 웃었다.
유서준은 이곳에서 서하나를 만난 것이 묘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여의도가 우리나라 증권사 본사가 밀집한 금융가이긴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이렇게 만난 것은 정말 신기한 인연이었다. 게다가 같은 동아리 선배였다니. 유서준의 입장에서는 금융에 관련된 사람을 많이 알아둘수록 먼 훗날을 대비하여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머뭇거리며 묻는 유서준을 향해 서하나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나도 주식 잘 하는 후배가 생겨서 기쁜걸.”
“하나 언니는 동아리 활동할 때 대회에서 1등은 맡아 놓고 했다고 들었어요. 사실인가요?”
김현아가 끼어들어 예전에 들었던 것을 확인했다.
서하나는 단지 웃음만 머금었다.
김현아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하나 언니랑 서준이가 뭉치면 정말 막강한 조합이겠네.”
유서준은 그것이 불가능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전공이 이쪽이 아닌 데다 졸업 후 무엇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막연히 금융 쪽을 염두에 두고 있긴 했지만.
문득 유서준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먼 미래에 자신은 SJ 투자금융을 차려 국제투기자본에 맞서 싸운 것 같았다. 자신과 뜻이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서하나를 예전보다 중요한 관심 인물로 승격시켰다. 일단 주시해보아야 할 여인이었다. 그것도 아군으로.
그날 서하나가 유서준을 비롯한 모두에게 저녁을 한턱냈다. 유서준으로서는 서하나와 매우 가까워질 기회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증권사로 찾아갈 때마다 그녀에게서 커피나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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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26일]기말고사가 거의 끝나 가던 12월 16일, 제 13대 대통령으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득표율은 31%에 불과했지만,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상당한 표 차이를 드러냈다.
야당을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던 대학가 벽보는 이번에는 당선자의 선거부정과 개표 부정을 고발하는 벽보로 바뀌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26일 토요일, 87년의 주식시장은 납회일을 맞았다. 이날을 끝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연말을 기해 배당락을 거친 다음 88년 1월 4일 월요일에 다시 문을 열게 된다.
강세장의 경우 배당락은 당일이나 늦어도 2 – 3일이면 회복하는 경향이 있어 유서준은 대부분의 주식을 보유한 상태로 연말을 맞았다.
토요일 오후, 동아리 역시 축제 분위기였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음과 동시에 동아리 역시 한해를 자축하고 마감하는 축하연을 열기 때문이었다. 특히 올해는 주가 상승이 커서 모두가 행복한 연말을 맞았다.
87년 12월 말 종합주가지수는 525.11로 마감했다. 12월에만 +10.41%의 폭등장세였다. 작년 연말과 비교해보면 1년 동안 93%라는 경이적인 상승을 기록했다. 그 전해인 86년의 63%에 이어 2년 연속 폭등세였다.
주식시장에는 돈을 벌려고 뛰어든 사람으로 넘쳐났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잃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초보자가 넘쳐나는 시장은 분명 과열을 나타내는 신호다. 초보자가 뛰어들 때 베테랑은 서서히 자산을 정리하고 시장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 뒤 주식시장은 폭락하고 초보자는 돈을 잃는다. 가장 보편적인 시나리오였다.
유서준은 지금의 주식시장 상승세가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하는 1989년 초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공격투자가 유효하고 돈을 벌 기회였다. 올해 주가지수가 500을 간신히 넘어섰으니 앞으로 1년여 동안 거의 두 배로 주가가 상승한다는 뜻이었다.
연말이 되었을 때 유서준의 본 계좌는 7월부터 6개월간 누적수익 +340%를 초과 달성했다. 대회 참여계좌는 +150%였다. 처음 25만 원으로 시작했던 그의 자산은 중간에 넣은 자금을 합쳐 900만 원을 돌파했다. 5월부터 시작하여 약 8개월 동안 원금으로 투입한 200만 원을 제한다면 순수익은 700만 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900만 원 중에서 다음 학기 등록금 100만 원과 자취방을 얻는데 필요한 보증금 100만 원을 제하면 실질적인 자산은 700만 원이었다. 이 자산은 현재 국립대 등록금의 대략 7배에 달하는 금액이므로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88년 역시 역사에 남을 강세장 시기이기에 그의 계획대로라면 그의 자산 700만 원은 88년 말, 그 5배인 3500만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다이어리가 정확하고 다이어리에 따른 매매를 충실히 고수한다면. 물론 조금 더 잘 매매하고 운이 트인다면 그 이상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동아리의 납회일 축제는 다량의 음료수, 과자와 함께 벌어졌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주식투자대회 성적 발표였다. 1위는 역시 부동이었다. 총무인 신선영이 누적 수익률 +180%를 달성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기술적 분석으로 선진 매매기법을 도입한 그녀의 방식은 타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였다.
2위는 +150%인 유서준이 차지했다. 일학년이 이러한 성적을 낸 것은 정말 대단한 실적이었다. 유서준은 수상소감에서 강세장에 따른 종목선택 운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87년 1년 동안 가장 많이 오른 업종은 무려 231%나 상승한 금융주였고 그의 주요 매매 종목이 은행, 증권 등의 금융주였던 것이 적중했을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어쨌든 유서준은 동아리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부상했다.
12월에 선전한 김현아는 5위를 차지했다. 누적 수익률은 +65%였다. 초반 대비 대단히 좋아진 성적이었다. 모두가 다음 학기 수익률이 기대된다고 격려했다.
유서준을 이기기 위해 이를 갈았던 박강수는 오히려 수익률이 떨어졌다. 다급한 마음에 작전주에 손을 댔던 것이 원인이었다. 작전주는 초반에 상당한 수익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유서준을 이기고자 조금 더 수익을 보려다 매도에 실패했다. 결국 작전이 꺾인 다음 하한가를 연일 맞으며 하한가 잔량이 쌓이는 통에 팔지도 못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벌어들였던 수익마저 모두 까먹었다.
그의 누적 수익률은 +6%로 간신히 플러스를 보였지만 시장의 상승을 고려하면 사실상 손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최종 등수는 무려 34등이었다.
일등을 한 신선영은 축하 떡을 돌렸다. 백설기와 시루떡, 송편 등이 어우러진 맛 난 떡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실력을 감탄했다.
화기애애한 87년 마감 모임이 끝나고 뒤풀이가 있었다. 뒤풀이까지 모두 끝난 후 유서준은 박강수, 김현아와 함께 맥줏집에 앉아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내기를 정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