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38)
다시 변신하면 영영 사라지는 특징이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여,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구려!”
경기장의 위.
어느덧 내 앞에는 붉은 곰과 전신에서 불을 뿜어대는 도마뱀이 있었다.
그리즐리, 그리고 광기의 살라만다!
둘 다 흥분한 듯 눈을 희번뜩이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얀티 산’의 주인이로군.”
그러자 그리즐리가 두 눈을 깜빡였다.
“··· 나를 아시오?”
“서대륙 끝에 존재하는 그 아름다운 얀티 산의 주인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
동시에 미친놈처럼 번뜩이던 두 눈이 가라앉았다.
얀티 산의 폭군 그리즐리는 유저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하다.
전부 ‘찢어버리기’로.
손에 닿는 모든 걸 다 찢어버리기에 ‘찢는 곰’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실제로 백 명이 넘는 게이머가 폭군 그리즐리에게 찢김을 당했다.
‘칠대 히든 퀘스트 중 하나와 이어지는 놈이니.’
마냥 적대할 필요는 없으리라.
언젠가 다시 한 번 만날 수도 있었으므로.
“······ 드루이드의 신께서 서쪽 끝에 있는 산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군.”
폭군 그리즐리가 가볍게 양손을 모았다.
“후에 한 번 놀러오시오. 극진히 대접하겠소.”
나도 찢으려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억지로 눌러담았다.
“그러지.”
“대결하게 되어서 영광이오.”
“나도 얀티 산의 주인과 대결하게 되어 영광이다. 부디 명예로운 대결이 됐으면 좋겠군.”
“걱정 마시오. 봐주진 않을 생각이오.”
피식 웃고 말았다.
호전적인 ‘찢는 곰’의 성격은 그대로였다.
‘재밌군.’
재밌는 녀석이다.
물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호전적이기로는 나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
폭군 그리즐리는 승리를 자신했다.
기껏해야 광물 지네.
속성 자체도 너무나도 유리했으므로.
지는 건 말이 안 된다.
“······.”
하지만 이어진 대결에서 폭군 그리즐리는 입을 꾹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광기의 살라만다가 내뿜는 불길은 모든걸 녹일 만큼 강력하지만.
··· 다이아낙스는 꿈쩍도 안 했다.
‘분명히 광물과 불은 상성일 텐데?’
속성 자체가 살라만다에게 유리하다.
허나 살라만다의 불길은 무용지물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이아낙스의 몸이 아무리 초금속 오리하르콘으로 이루어져 있다지만, 그건 그냥 껍데기일 뿐이다.
부분부분을 감쌀 뿐 전체를 감싸고 있지도 않다.
다이아낙스의 핵으로 이어지는 틈이 많아, 불길이 닿으면 타버려야 정상이다.
그러할진대.
‘일반적인 다이아낙스가 아니구나···!’
폭군 그리즐리는 다이아낙스가 살라만더를 감싸는 장면을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이아낙스의 모습만 하고 있지, 저건 다이아낙스가 아니라고.
《태초 속성에 의해 ‘살라만더’의 불길에 의한 피해가 50% 경감됩니다.》
《‘다이아낙스’의 형태변환에 따라 체력이 ‘150’으로 고정됩니다.》
《방어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강신성’의 효과로 ‘다이아낙스’의 모든 공격이 ‘신성’으로 판정됩니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키에에에엑!
온 몸이 둘러싸여 조여지던 살라만다가 비명을 내질렀고.
《‘다이아낙스’가 승리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폭군 그리즐리’가 패배했습니다.》
승리를 확신했건만.
순식간에, 패배를 맞이했다.
*
40강이 끝나자, 20명의 탈락자가 발생했다.
그중 황금률의 기사단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세렝게티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당해버렸으니.
압살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멸왕 모크를 상대로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다.
하여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허나 패배한 건 세렝게티만이 아니었다.
“남은 게 다섯명뿐이라니······.”
“··· 생각보다 강하군요.”
열셋 중 고작 다섯.
절반이 넘게 패배한 셈이다.
20강으로 진출한 건 나를 포함해 허드슨과 알비노, 발테, 그리고 앤드류 사제뿐이었다.
“괜찮습니다. 결국 우승하는 건 최후의 한 명. 저만 믿으십시오,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알비노가 말했다.
하지만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너무 확연할 정도로 전력차가 났으니까.
‘장기전에 불리하겠어.’
같은 기사단원을 만나 체력을 아끼는 상황은 앞으로도 없을 듯했다.
허나 알비노의 말마따나 남은 숫자는 상관없다.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이기기만 한다면.
문제는······.
《20강이 시작됩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다이아낙스) VS 잊힌 신(원시 드래곤)》
진짜 문제는 ‘잊힌 신’이다.
원시 드래곤은 본래 저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편을 대진에서 만나자, 돌연히 둘이 합체한 것이다.
‘같은 편을 만나면 합체하고, 다른 기사단을 만나 패배하면 혼이 흘러들어가 진화한다.’
심지어 패배해도 마찬가지다.
패배한 잊힌 신의 ‘몬스터 혼’은 승리한 ‘몬스터 혼’에게 흘러가 진화하였다.
말인 즉슨.
‘끝에 다다르면 13마리 전부가 합쳐질 수 있다는 거다.’
······ 규칙 위반은 아니지만, 아무리봐도 치트키같다.
잊힌 신은 확실히 내 예상을 웃돌고 있었다.
‘누가 더 많은 패를 갖고 있느냐의 싸움이 되겠군.’
허나 마찬가지다.
나도 잊힌 신을 모르듯, 잊힌 신도 내가 가진 패가 뭔지 모른다.
특히 이름 없는 수리의 형상 변환에 대하여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다이아낙스는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서로가 패를 한 장씩 까며 전략을 짜고 대비하는 싸움.
당연히 더 많은 패를 갖고 있는 쪽이, 더 늦게 패를 까는 쪽이 유리할 건 자명한 일.
‘당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진은 당첨이었다.
잊힌 신이 가진 패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볼 절호의 기회!
그렇게 대진표가 완성된 이후.
대결에 진입하며 나는 ‘잊힌 신’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너는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단다. 가증스런 두 여신에게 사랑받는 아이야.
······‘잊힌 신’이 내게 말을 걸었다.
지고의 혼.
우호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도리어 적대적이다.
분노에 찬 음성에 가까웠다.
절대로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잊힌 신’.
동시에 ‘잊힌 신’은 두 여신을 ‘가증스럽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여신에 대해 알고 있으며 괘씸히 여긴다는 뜻.
내가 그들의 축복을 받는 것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하여, 나를 이기게 할 생각 자체가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 레아와 피나를 알고 있나?”
본래 두 여신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언급하는 건 불경한 짓이다.
여신교의 누군가가 보았다면 목덜미를 부여잡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른다는 건, 더욱이 ‘친숙한’ 사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러러보는 게 아닌 수평상의 관계.
마치 친구처럼, 연인처럼, 혹은 이웃마냥.
한없이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
내게는 두 여신이 그러했다.
빌헬름은 두 여신을 숭배하며 따랐으나, 나는 애당초 판게니아인이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친숙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 그 가증스러운 이름을 내 앞에서 부르지 말거라, 아이야.
역시나.
예상대로 ‘잊힌 신’의 반응도 파격적이었다.
지나치게 날선 대답.
신의 자태에는 어울리지 않는 예민함이다.
‘잊힌 신들은 감정 조절을 못하나보군.’
생각해보면 처음 만난 ‘잊힌 신’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잊힌 신도 정해진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문제를 뛰어넘어 문을 부수자 미친 듯이 분노하지 않았던가.
“왜지? 레아와 피나가 사기라도 쳤나?”
-오냐, 네놈이 말로 해서 들을 놈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건 맞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내멋대로 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궁금했다.
두 여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
하물며 그게 ‘신’이라면 더더욱.
특히 ‘가증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건, 이들 사이에 모종의 일이 있음을 암시했다.
어지간한 일로 그런 말을 쓰지는 않지 않나.
말 그대로 사기를 치거나, 배신을 하거나, 괘씸한 짓을 하고 다닐 때 사용하는 말인데.
‘나는 여신에 대해 잘 모르는군.’
생각해보니 그랬다.
두 여신의 일대기는 대략 알고 있지만, 그걸 상대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여신의 일상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건 빌헬름도, 여신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직접적으로 여신들과 엮여있는 듯한 ‘잊힌 신’을 마주했다.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레아와 피나가······.”
-닥쳐라!
휘유.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아무래도 두 이름이 건드리지 말아야할 역린인 듯싶었다.
【불가사의 업적 ‘잊힌 신 도발하기’를 달성했습니다.】
잠깐.
···이런 것도 업적이 있어?
보고서도 어이가 없었다.
허나 단순 도발로 업적이 나타나진 않을 것 같았다.
여태껏 ‘잊힌 신’을 상대로 이 정도로 도발하는데 성공한 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불가사의 업적이 떠올랐다는 건.
【‘잊힌 신’이 당신을 ‘시험대’ 위에 올립니다.】
······ 상대가 확실하게 분노했다는 의미였다.
-어디 뚫린 입만큼이나 실력이 있을지 궁금하구나.
너무나도 분노한 나머지 도리어 침착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군.”
-······ 원래 절반만 가져갈 생각이었다만, 네놈을 상대로는 ‘영혼’의 전부를 가져가마.
잊힌 기사의 영혼.
그 전부를 잃으면, 길을 잃고 영원토록 방황하게 된다.
나만이 아닌 기사단원 전부가.
패배하는 즉시 절반이 아닌 전부를 가져가 그렇게 만들겠다는 엄포다.
“그 대가로 너는 뭘 걸 거지?”
하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하기 마련.
나만이, 황금률의 기사단만이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미 잊힌 신을 상대로 승리하면 ‘상징물’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상으로 걸 게 없을 것 같아서 되물은 것이다.
-나의 모든 아이들이 합쳐질 때 만들어지는 ‘지고의 혼’, 모든 신들이 부러워하며 탐내던 것이란다. 그걸 주마.
13마리의 짐승들이 합쳐져 완성되는 혼.
고작 두 마리가 합쳐져서 ‘원시 드래곤’이 되었다.
13마리가 전부 합쳐지면, 무엇이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저장한 ‘혼’을 내게 그대로 넘기겠다는 말이다.
‘지고의 혼이라.’
과연.
지고라는 이름이 붙은 혼이다.
보상으론 차고 넘친다.
하지만 마냥 좋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결국, 마지막엔 ‘지고의 혼’과 한판 붙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으므로.
-제멋대로 떠들어대던 때와 달리 겁먹었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단다.
내가 침묵하자 역으로 도발한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다이아낙스, 계속해서 합체하는 혼들을 상대로는 무리라고 생각한 거겠지.
내가 가진 패를 전부 알았다면, 이런 식으로 추가적인 보상을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름 없는 수리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게 확실하다.’
이름 없는 수리를 잊힌 신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잊힌 신’이 가진 마지막 패가 무엇인지.
지고의 혼.
그에 걸맞은 급의 괴물이 완성된다면 확실히 위협적이지만.
“받아들이지.”
······ 그렇다고 아예 못해볼 수준은 아니었으니.
【‘잊힌 신의 추가 시련’이 성사되었습니다.】
변한 건 없다.
계속해서 싸워나가면 그만인 일.
결과에 따라 걸어야하는 무게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처음 잊힌 신을 상대했을 때와 같았다.
‘전부를 갖거나, 전부를 잃거나.’
그러니, 한 번 전부를 걸고 부딪혀보자.
너의 전부와 나의 전부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울지.
나도 궁금하던 참이니까.
*
-······.
‘잊힌 신’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상대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곤 그녀도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고작 강화된 다이아낙스를 가지고······ 잘도.’
이곳 세계수의 던전에는 수많은 ‘잊힌 존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