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50)
신들도 탐욕했으며, 악신마저도 갈구하던 시기.
탐욕의 악마가 얼마나 강한 힘을 쥐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 그리고 머지않아, 탐욕의 악마가 나타났다.
쿠르르르릉!
이름없는 산이 무너지며.
“뭐, 뭐야. 세상이 왜 이렇게 됐어?”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 눈살을 찌푸리고, 이맛살을 구겼다.
탐욕의 악마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간 싸운 모든 신들의 기술과 힘을 이해하고자.
깨달음을 체득하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겨우 체득하고 나왔는데 세상이 망해가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저놈이구나. 세상을 망가트린 놈이.”
저 멀리서 느껴지는 멸망의 기척.
강하다.
여태껏 싸운 신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렬한 악의 기운이었다.
그래서일까.
“오오오! 저정도로 강한 놈이 이 세상에 아직도 존재할 줄이야!”
탐욕은 기뻤다.
순수하게.
놈과 싸우면, 자신 역시 더욱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
‘······ 생각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군.’
이야기를 듣던 도중, 나는 궁금해졌다.
눈앞의 잊힌 신이
악신임이 분명할진대, 어떻게 신들의 상황마저 알고 있다는 말인가.
‘타락한 신이로구나.’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잊힌 신은 타락한 악신이다.
본래 백신전의 신이었으나, 멸망의 출현 이후 악신으로 변한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탐욕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계속 염탐이라도 한 듯이.
······ 잠깐. 설마 여신 중 하나인가?
그러기엔 너무 남자 노인의 모습인데.
-탐욕은 멸망을 공격했소.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됐겠소? 깔끔하게 졌소이다.
“······.”
-하지만 멸망은 탐욕을 살려주었소. 이미 모든 악마가 ‘멸망’에 일조하고 있었으니, 봐주기로 한 것이오.
“이해가 일치해서 봐주었다?”
-그런 셈이지. 문제는······ 이후로도 탐욕의 공격이 계속됐다는 것이오. 정말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지 않소?
“······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긴하군.”
부정하고 싶지만, 탐욕은 왠지 나와 닮았다.
누가 보아도 정신이 나간 짓이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저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그래서인지 두 여신들도 탐욕을 돕기 시작했소. 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들만이 탐욕과 함께했지. 그리고 탐욕은, 멸망의 출현 이후 처음으로 그에게 상처를 남기는데 성공했소. 기껏해야 생체기에 불과했지만, 틀림없이 처음있는 일이었지.
“그래서 멸망이 멈춘 건가?”
-아니오. 멸망은 여전히 세계를 멸망시키고 있었소. 다만······ 멸망은 궁금했던 것 같소. 두 여신과 악마가 서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며. 절대로 조화할 수 없는 존재들이 조화한 모습을 보면서······ ‘종말’의 구상을 한 게 분명하오.
그 순간이었다.
잊힌 신의 몸이 점차 흐맅해져갔다.
쿠릉! 쿠르르르릉!
세계수의 떨림도 심화되었다.
그러자.
-그 뒤로 멸··· 망은······ 으느으아르으으으!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제, 제발, 내게 안식을······!
잊힌 신은 애원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싫다며 몸부림쳤다.
하여, 나는 결정했다.
《‘재’의 장갑에 담긴 ‘박현명’의 모습으로 전환됩니다.》
《‘비활성 상징물’에 ‘5’의 성화를 부여합니다.》
《‘상징물’이 활성화합니다.》
《활성화 된 상징물을 땅에 심으면 ‘세계수’가 자라납니다.》
《활성화 된 상징물을 연관된 ‘잊힌 신의 터’에 놓을 경우 ‘잊힌 신’이 이름을 되찾으며, 세계 각지에서 ‘이름을 되찾은 신’과 관련된 생명들이 잉태하기 시작합니다.》
눈앞에 있는 잊힌 신을 살리기로.
-무, 무엇을······!
잊힌 신은 당황했다.
-이 힘은··· 별을 만드는 자의 힘!
설마 내게 이런 능력이 있으리라곤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하지만 나의 터를 모르면 소용없는 짓이오. 나도 내가 어디에 터를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거늘······.
“여기다.”
-여기······ 라니?
“이곳이 너의 터다.”
잊힌 신.
에인션트라 불리운 자.
그의 형상이 흐려지자, 이 세계 자체가 흐려지고 있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세계수의 던전에,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한 존재가 누구인지.
바로 눈앞에 있는 노인이다.
그가 자신의 터를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당연히 이 세계 자체가 그의 터다.
나는 활성화된 상징물을, 즉시 바닥에 꽂았다.
《‘잊힌 신의 터’에 ‘활성화 된 상징물’을 놓았습니다.》
동시에.
《‘잊힌 신’이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나의 이름은.
잊힌 신.
너무나도 오래되어 모든 걸 잊고, 잃어버린 존재.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얄팍한 기억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먼 옛날의 기억.
가장 찬란했으며, 가장 번화했던 시절의 단편적인 일면만이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항상 의문이었지.’
궁금했다.
자신의 기억도 아닌 남의 기억을 그는 왜 추억하고 있던 걸까.
어째서 두 여신과 탐욕에 관련된 기억만을 부여잡은 채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나.
이제 곧 소멸을 맞이하는 이때에도 말이다.
여태껏 그러한 궁금증 탓에 그는 안식할 수 없었다.
다른 잊힌 신들도 모두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건만.
‘나는······ 누구인가.’
미칠 듯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과 관련된 기억만이 송두리째 증발한 탓에.
떠올리려 노력해도 남는 것만 공허함 뿐인지라.
잊히게 된 이유도, 이곳에 있는 원인도 모른다.
계속해서 무한한 굴레 속에 갇힌 기분.
이대로 소멸한다면 너무나도 비참한 것만 같았다.
하여, 종말이 나타났을 때.
‘오오! 나의 끝을 고하려고 종말이 왔구나!’
그는 환호했다.
종말은 끝을 고하는 자.
끝을 정해주는 존재였기에.
고통의 굴레도 끝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종말이 지닌 영혼의 형태는 기억 속의 누군가를 닮아있었다.
‘······ 탐욕이여. 그대가 왜?’
탐욕의 악마라니.
이미 죽음을 맞이했을 터인 그가 종말이 되어 나타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둠을 지녔으나, 그 안에는 분명히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광명을 담았음이라.
‘아아. 레아, 피나. 너희는 여전히······.’
잊힌 신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들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다.
모든 게 달라진 현재에도, 애틋하게 탐욕을 감싸는 중이다.
허나 세상이 심연에 잠기기 직전까지 레아와 피나를 제외한 다른 신들은 탐욕을 돕지 않았다.
악마라는 이유로.
그의 태생과 본질이 악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오직 두 여신만이 그에게 헌신한 것이다.
만약······ 그러하지 않았다면, 탐욕의 악마는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아름답구나.’
자신과는 다르다.
잊혔으며, 추하게 변한 그와는 달리, 굳건한 믿음으로 서로가 유대를 맺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 잊힌 신은 가슴이 먹먹했다.
저리고, 아팠다.
왜일까.
입가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원인 모를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를 넘어서는 저 유대가,
저 강렬한 믿음이.
‘멸망조차 실패했던 종말의 완성을 탐욕, 그대는 완성했는가.’
마침내 종말을 완성한 것이리라.
하기야 탐욕이라면 가능했을 터다.
탐욕은 포기를 몰랐으니까.
신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끈질긴 놈.
끝내 백신전의 모든 신과 싸우고, 승리했던 유일한 존재.
멸망과의 대결에서는 비록 패배했으나······.
잊힌 신은 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세상이 진정으로 통합되었다면.
신들이 탐욕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멸망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건 탐욕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멸망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멸망은······.
멸망은······ 어떻게 했더라?
‘기억이······.’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그런데 끊겼던 기억이, 다시 이어지고 붙기 시작했다.
원인은 하나.
······ 탐욕의 악마.
어둠을 씻어낸 그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해있었다.
그 모습은 분명 탐욕의 악마와 다르지만.
‘똑같구나. 너의 영혼은.’
영혼의 형태가 더 확실하게 두드러졌다.
정말······ 아름답다.
탐욕의 악마가 지닌 영혼은 별의 모양을 하고 있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아름다운 별.
그가 본 어느 존재도 저토록 뚜렷한 별의 영혼을 지닌 존재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사용한 능력은 ‘별을 만드는 자’의 권능.
창세의 힘이다.
어떻게 창세와 종말이 함께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여신의 가호가 있다 한들 불가한 일.
‘또 있구나. 다른 영혼이. 너무나도 찬란한 자가.’
그제야 잊힌 신은 알 수 있었다.
저들과 함께하고 있는 영혼이 하나 더 있음을.
그 영혼은 잊힌 신도 전부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마도 저 영혼에 의해 탐욕은 창세의 힘을 같이 지니게 된 것이리라.
누굴까.
잊힌 신은 곧 그 거룩한 영혼과 눈을 마주쳤고.
‘기억이······ 돌아왔다.’
······ 잊히고 사라졌던 기억이, 드디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잊힌 신은 떨리는 눈동자로 탐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
“너는 진짜 강하구나!”
만신창이가 된 탐욕의 악마가 몸서리를 쳤다.
상상이상이었으니까.
자신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멸망에게는 상대가 안됐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거야? 좀 알려주라!”
“······.”
“아, 아니다. 내가 직접 알아내야지. 내일 다시 올게!”
패배를 인정한 탐욕의 악마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
권좌에 앉은 채 한치의 미동도 없는 멸망.
그는 가만히 탐욕의 악마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탐욕을 상대하는데 자리에서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물론 멸망의 기사들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당도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지만.
“······.”
멸망은 권태로운 눈빛을 짓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임무는 오직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
이 세계를 심연에 가라앉히는 게 그가 할 일이다.
그리고 악마들은 그의 멸망에 일조하고 있었다.
멸망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구태여 원죄의 악마들을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악마들은 서로 반목하는 듯하지만, 은근히 서로에게 협조적이다.
또한 겁이 많고 눈치가 빠르다.
만약 탐욕을 죽인다면 나머지 악마들 전부가 숨어버릴 터.
그러니 살려두는 게 더 이득이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
“나 왔다! 한 판 붙자!”
······ 진짜로 또 왔으니까.
하는 수 없이 멸망은 압도적인 힘으로 탐욕의 양쪽 팔을 잘랐다.
하지만 탐욕의 악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다음날도.
“다시······!”
그 다음날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힘의 차이를 실감했을 텐데도 탐욕은 계속 도전했다.
그렇게 몇날며칠이 지나서야, 멸망은 알 수 있었다.
탐욕의 회복속도가 묘하게 빠른 건 뒤에 두 여신이 있기 때문임을.
여신이라는 것들이 악마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
인간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신들조차도 서로 배신하는 판국에.
“······.”
하지만 그뿐이었다.
멸망은 그저 권태로울 뿐이었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놈의 도전은 그저 약간의 흥미가 생기는 정도였다.
가장 강한 네 명의 기사를 부른다면, 놈은 여기까지 도달하지도 못하겠으나······ 그들은 제국을 괴멸시키는데 바빴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