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67)
바사라.
그녀가 다른 사람의 부름에 응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이름을 듣는 즉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자가······.’
박현명.
······ 그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으니까.
네가 진짜 박현명이라고?
교황의 선출식이 끝난 즉시.
곧바로 여신절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여신절은 성도 아드리움에서 이틀간 진행되는 대축제.
첫날은 여신 레아를, 그리고 둘째날은 여신 피나를 기리며 도시 전체가 흥에 빠지는 날.
여신교가 온전하게 개방되는 유일무이한 기념일이었다.
“아론 교황님께선 어떤 분이신가?”
“요한슨 추기경님의 제일가는 자제이시지요. 신실하고 공명정대하기로 원래부터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망나니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허어. 큰일날 소리 마십시오! 만약 그런 소문이 설령 있을지라도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어릴때의 치기가 과하게 부풀려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 그런가?”
수많은 나라의 거물들이 한데 모이고 어울리며 새로이 선출된 교황에 대한 궁금증을 이어나갔다.
난데없이 등장한 젊은 교황에 모두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래 아론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그야말로 망나니 그 자체.
그것도 그냥 망나니가 아니라 개망나니였다.
얼마나 막장이면 그 소문이 제국에까지 파다하게 퍼졌을 정도다.
안하무인의 성격과 여색을 밝히며 사람을 물건처럼 대한다고.
그런 자가 교황이라니?
“··· 이번 교황의 선출에 ‘원탁의 기사단’이 개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만.”
“허수아비를 세운 것이겠지요. ‘멸망의 탑’을 직접 점령하였으니.”
“다루기 쉬워보이긴 하더군요.”
당연히 음흉한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론 교황을 원탁의 ‘허수아비’로 생각했다.
아니라면 이런 전무후무한 수준의 출세가 가능할 리 없었다.
교황이 되기위한 거의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생략하지 않았나.
이들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원탁의 주인께선······ 어디 계시는가?
분명히 들었으니까.
그 의존적인 말투가. 어조가.
마치 어미를 찾는 새끼오리와 같았으니.
하지만 이런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에, 원탁의 주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예 모습을 내비추질 않는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나저나, 원탁의 새로운 주인은 대체 누구인지.”
“얼굴 한 번 보이질 않는군.”
“한데, 원탁이 그 정도로 대단한 집단이었나?”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애당초 ‘원탁의 기사단’은 대원정과 함께 폭사한 집단이다.
수십만의 병사와 기사가 투입됐으나 실패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살아돌아와선 ‘멸망의 탑’을 정복했다 하니, 도저히 믿을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다.
“‘멸망의 탑’자체가 별 게 아니었을 수도······.”
“새로운 주인이라는 자도 사실은 그저 그런 인물 아니겠나.”
“이미 오래전부터 여신교의 권위도 땅에 추락했으니.”
“옛날의 여신교가 아니야.”
“괜히왔군.”
“짐을 싸라. 돌아간다.”
제멋대로 짐작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새로이 선출된 교황도, 원탁의 기사들조차도 모두 평가절하시키며 떠날 채비를 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원탁의 주인’을 보고자 먼 길을 떠나온 사람들.
하지만 코빼기도 비추지 않자 크게 실망한 것이다.
그때였다.
즈아아아아-!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쿠우우우웅!
거대한 ‘빛’의 기둥이 아드리움에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이 빛의 기둥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 기둥의 중심을 가르며 등장한 남자가 있었다.
“나는 광휘의 기사 카심이다. 원탁이여, 나는 너희를 부정한다.”
광휘의 초인 카심!
모든 장비를 되찾자 찬란한 광명과 함께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또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빛의 기둥을 가르며 나타난 기사들이 더 있었다.
12명의 홀리 나이트!
그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이 전율했다.
“카심······ 카심이라고?”
“설마 300년 전 갑자기 사라진 광휘의 초인?”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하, 하지만 저 홀리 나이트들은······ 분명해. 광휘의 기사다!”
카심은 역사책에서나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12명 홀리 나이트들과 함께 여신교를 배척하는 모든 사교를 무릎꿇렸다.
불가해한 12개의 과업을 달성했으며, 300년 전 대륙에 소환된 악신을 물리치고 불현 듯 사라진 신화적인 인물!
그가 아니었다면 대륙 전역이 악신에 의해 잠식되었으리라.
여신교가 제일신교로서 대륙 전역에 퍼져나가게 한 결정적인 존재.
만약 진정으로 그가 카심이라면, 교황도 함부러 할 수 없다.
문제는 왜 지금 나타났냐는 것이다.
여신절. 가장 축복받고 축하해야할 날에.
··· 왜 갑자기 나타나서 ‘원탁’을 부정하는가.
“결투를 신청한다. 누가 더 ‘여신의 기사’에 어울리는지. 시간은 내일 정오. 장소는 이곳.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겁을 먹고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마.”
일방적인 선포와 함께 그가 다시 빛의 기둥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둥이 사라지며 카심과 홀리 나이트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
“······.”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당황하였다.
하지만 요지는 간단했다.
여신의 기사로 어울리는 집단이 누구인지 겨루어보자는 것.
“광휘의 기사단과 원탁의 기사단이라······.”
“오길 잘했군.”
“짐을 풀거라. 당장!”
떠날 채비를 하던 사람들은 다시 여장을 풀었다.
수많은 왕국의 왕들도, 거대 상회나 도시의 주인들 역시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원탁의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소문만 무성한 원탁의 기사단.
그 실체를, 이제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일이 재밌게 흘러가는군.”
아이언 왕국의 왕, 교만의 악마 프리드릭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여신의 결계가 약해진 틈을 타 아드리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살아있었나.’
한데······ 의외다.
설마 ‘카심’이 살아있을 줄이야.
300년 전 대륙에 악신 소환을 주도한 게 교만의 악마인 자신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악마들’이었다.
허나 여신의 기사인 카심이 등장해 실패했다.
이후 악마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노선을 걸었다.
그때도 괴물 같았던 놈이 바로 카심이거늘.
‘괴물같은놈. 더 강해졌군.’
300년간 은둔한 채 검만 휘두른 걸까?
빛의 크기로 보건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사용하던 무구도 전부 되찾았으니, 전성기의 무력은 가볍게 뛰어넘으리라.
과업을 완성하며 그를 따르던 홀리 나이트들은 아직도 건재했다.
반면 원탁의 기사들은 어떤가.
‘멸망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절호의 기회이지.’
오랜 옛날 멸망이 출현했을 때 악마들은 모든 신들을 뛰어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만약 다시 멸망이 출현한 것이라면 악마들에겐 다시없는 축제와 같은 일.
하지만 멸망의 탑을 원탁이 정복했고, 정작 ‘멸망’ 또한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새로운 원탁의 주인이라는 자가 멸망을 소멸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멸망은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아서라.
그건 불가능하다.
멸망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으므로.
탐욕이 다시 나타난다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탐욕을 돕던 여신들도 모두 소명을 다하지 않았나.
······ 어쨌든 간에.
‘원탁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카심을 상대로 승리할 순 없을 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300년 동안 더 강해진 저 괴물 카심을, 과연 원탁이 상대할 수 있을지가.
프리드릭 왕은 원탁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힘들다고 보았다.
그러니······.
‘이제 모습을 보이거라. 원탁의 주인이여.’
*
‘블랙 돔’ 탐사에 파견될 인원이 모두 정해졌다.
부연합장 이아린이 꾸린 파티는 다해서 열 명.
대부분이 한국을 대표하는 강자들이었으며, 개중에는 가파르게 이름을 날리고 있는 2세대 각성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딱 한 명.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함께하게 되었다.
“저 남자가······.”
“진짜 박현명이라고?”
탐사대는 작게 웅성대며 한 남자를 바라봤다.
당돌하게 연합을 찾아와 스스로를 ‘박현명’이라 소개한 남자.
즉시 연합은 뒤집어졌다.
명예의 전당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남자가 박현명이었으므로.
모두가 그가 누구일지 궁금해했다.
신의 섬에서 튜토리얼을 진행하곤 사라진 남자.
무던히 그를 찾으려고 애썼으나 증발한 듯 찾을 수가 없었건만.
그런데 돌연 스스로 연합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겼군.’
‘별로 안 강해보이는데······.’
박현명에 대한 솔직한 인상이었다.
근육질의 다부진 몸이긴 하나, 단지 그뿐이다.
최근 ‘메인 퀘스트 6’을 말도 안 되는 점수로 돌파한 존재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전의 메인 퀘스트들의 성적도 파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빌헬름과 란돌프를 이어 나타난 신흥강자, 박현명.
혹시 가짜 아닐까?
자신을 박현명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그러나 그중 한 명도 진짜는 없었다.
“너······.”
그 순간이었다.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최강남.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2세대 각성자이며, ‘한국의 미래자산’이라고까지 불리는 보물이 그다.
그러나 박현명에게 연거푸 패배를 당했다.
명예의 전당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점수 차이로 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졸도했을 정도다.
하여, 박현명이 등장했다는 말에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역시 네가 박현명이었구나. 신의 섬에서 본 그 괴물새끼!”
최강남이 이를 갈았다.
설마가 사실이 되었다.
신의 섬, 최후의 시련에서 박현명은 혼자 2위부터 9위까지 올랐던 강자들을 몇초만에 전부 거꾸러트렸다.
거기에 최강남도 있었다.
하지만, 최강남은 그때 본 남자를 ‘박현명’이라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신의 섬에서 보았던 그 남자가 맞았다.
말인 즉슨.
··· 그 괴물 같은 놈이, 진짜 박현명이었다는 뜻이다.
“너··· 내가 진짜 미치도록 만나고 싶었다. 다시 싸워보자. 한국의 최고가 누구인지 이번기회에 가려보자고!”
최강남은 대놓고 박현명을 도발했다.
‘그때의 내가 아니지.’
신의 섬에 입장했을 당시와는 비교할수없을만큼 강해졌으니.
아무리 명예의 전당에서 순위가 밀렸다고는 하나, 그게 절대적인 강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노릇.
다시 싸운다면 신의 섬에서처럼 허망하게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질 것 같지도 않았다.
국가와 연합의 모든 수혜를 누리며 집중적으로 육성된 게 그였다.
2세대 각성자 중에서도 감히 적수가 없었고, 1세대 각성자들로 눈을 돌려도 시간만 주어지면 단기간에 100위 안에 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10강에 등재될 인재가 바로 나다.’
공식적으로 10강에 들어간 인물은 한국에 없었다.
허나, 머지않은 미래에 10강에 등재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진 어떤 꼼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선 안통해. 우리와 함께할 탐색대에 어울리는 놈인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지금까지의 설욕을 한꺼번에 되갚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이 최고의 2세대 각성자임을 세상에 알리고, 모든걸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 기회를 최강남은 놓칠 생각이 없었다.
최강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왜? 자신없냐? 하긴, 신의 섬에서 봤을 때부터 알아봤다. ‘버그 사용자’, 박현명.”
이아린.
최강남은 박현명이 버그 사용자라고 확신했다.
튜토리얼이 시작된 신의 섬.
그곳에 입장할 수 있는 건 ‘비각성자’뿐이었으니까.
각성하지 않은 인간은 아무리 강해도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수십 년간 무술을 단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