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66)
등장.
‘블랙 돔(Black Dome)’ 현상이 처음으로 관측된 곳은 북태평양의 바다 한가운데였다.
미국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와 맞닿는 해역 너머에서 시작된 이 현상을 파악하고자 수차례나 팀을 꾸려 파견했지만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대거 참가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최첨단 기기로도 내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그나마 근처의 해류와 해양생물을 관찰한 결과 ‘블랙 돔’ 현상이 마치 판게니아의 ‘심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추측만 겨우 내놓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국가는 전 세계에 한곳 뿐이었다.
한국.
한때 ‘제주도 소실 사건’이라 불리었던,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일을 겪은 게 바로 한국이었다.
블랙 돔 현상과 함께 모든 존재가 ‘사흉 바알’에 의해 강제로 소환된 적이 있었으니까.
이에 미정부는 한국정부와 영웅연합의 공조를 요청했으나.
“······ 연합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영웅연합의 수장인 박태우는 아직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박혀있는 상태였으므로.
제주도 소실사건, 바알의 습격은 한국인들 모두가 겪은 악몽이다.
제주도와 함께 제주도민 전체가 소실됐고 희망 따윈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박태우만이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구사일생으로 그들을 구했지만, 이 역시 ‘검은 알의 신’의 등장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었다.
‘젠장.’
박태우 연합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극복하고 나아가고 있었건만.
······ 다시금,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하물며 이번에 발생한 ‘블랙 돔’은 그 면적이 제주도의 세 배에 달한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령탑과 관련되어 있다는 추측만이 오갈 뿐.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처럼 나는, 우리는 무력하지 않아.’
물론 그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판게니아의 거점도시, 본래 마스터가 주인으로 있던 ‘유적도시 룬델라’를 기반으로 연합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제주도 소실 사건이 일어날 당시와 비교해봐도 최소 열 배 이상.
연합의 규모도, 연합운이 착용한 장비의 질도, 그 외의 모든 게 과거와 비교할 바가 안 된다.
특히 아린이 부연합장으로 취임하고 나서부터는 개개인의 무력이 질적인 측면에서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이루어냈다.
한국은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어느 나라보다도 ‘강해지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으니.
정치와 세대를 뛰어넘어,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로 단결된 게 지금의 ‘한국’이었다.
하지만······.
“······ 한국정부에선 우리 연합이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정부와 협상을 하고 돌아온 서기의 말을 들으며 박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연합이 받아들이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박태우가 걱정하는 건 그딴 게 아니었다.
“‘블랙 돔’에 진입한 내로라하는 미국의 초인들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용병대로 취급받는 ‘나인틴’도 마찬가지지.”
현재 세계적에서 가장 강한 10인을 ‘10강’이라 칭한다.
블랙 돔에 진입하여 생환하지 못한 사람 중에는 10강의 일원 중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의 ‘블랙 썬더’와 용병대 ‘나인틴’의 주인.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10강에 진입한 사람이 아직 없다는 걸 고려하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유추할 수 있으리라.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있었다.
10강이 아닌 ‘최강’이라 칭해지는, 유일무이한 강자가.
‘팬텀’이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는 암암리에서 진실처럼 통용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팬텀이 직접 나타나 도움을 준 적은 없었다.
그래서다.
박태우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누구를······ 누구를 보내야 한단 말이냐.”
가면, 살아 돌아오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블랙 돔은 사지(死地)다.
이미 제주도 소실에서 겪어보지 않았나.
바알과 같은 괴물이 저곳에 도사리고 있다면, 어마어마한 희생을 담보할 터.
그런 곳에 대체 누구를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연합장님. 이번에 블랙 돔에 진입할 탐사단은 최고로만 꾸린다고 합니다. 이미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파견하기로 확정한 상태입니다.”
주변국들은 전부 파견에 동의했다.
그것도 ‘최고’로만 꾸려서.
아직 한국만이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내가 가마.”
툭.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 한 명.
그녀를 본 박태우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아린······?”
부연합장 이아린.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겠다며 연합을 잠시 비웠던 그녀가 돌아왔다.
하지만 이아린은 연합의 귀중한 재산이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
“아주 거지 같은 상황이라는 건 잘 알고 있느니라.”
거지 같은 상황?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아린의 말투에는 가시가 있었다.
굉장히 불쾌해하는 듯한 느낌.
“그래도 섣불리 보낼 수는······.”
“이대로 저걸 놔두면 지구는 종말 할 거다.”
“······ ‘블랙 돔’의 안에 있는 게 뭔지 알고 있나?”
박태우가 묻자 이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간다.”
“그럼··· 말해다오. 다시 ‘바알’과 같은 존재가 나타난 건지.”
“그보다 더 악질적인 것들이다.”
악질.
질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알보다 더 질이 나쁜 ‘것들’이라고?
설마 하나가 아니란 의미인가?
박태우는 한숨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저것에 제대로 입장하려면 조건에 맞는 ‘파티’를 꾸려야 할 필요가 있다. 파티원은 내가 알아서 선출해가마.”
“잠깐. 입장 조건이 있다니?”
미국에서 전해온 정보 중에 그런 건 없었다.
특정 던전처럼 입장 조건이 있었다면 반드시 고지를 해왔을 텐데.
이아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악질이라는 게다. 저것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아. 아직 완성되기 전이기 때문이지.”
“······.”
“내 의지는 전했다. 그럼.”
쿵!
문이 닫히는 소리.
그렇게 자기 할말만 하고 떠나버렸다.
나타났을 때처럼, 이아린은 언제나 제멋대로다.
연합장의 권한으로도 통제되지 않는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나 싶지만, 이아린은 믿을만한 강자였다.
그녀가 직접 ‘블랙 돔’으로 향한다면 쓸데없는 희생은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녀는 한국에서 ‘대사부’라 불리는 존재이니까.
블랙 돔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불길하고 불안하다. 너무나도······.’
박태우는 두 눈을 감고,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았다.
*
한국 영웅연합의 부연합장 이아린.
하지만 실제 정체는 7군주 바사라인 그녀가, 연합장의 사무실을 나서며 불쾌한 듯 미간을 좁혔다.
‘마몬. 놈이 끝내 사고를 쳤군.’
북태평양에 나타난 ‘블랙 돔’은 마몬의 작품이다.
마왕과의 대면 이후 마몬이 직접 정령탑을 부숴버린 탓이다.
문제는 후의 뒤처리다.
정령탑이 품은 ‘천상의 오염물’과 탑의 잔해, 기타 모든 것을 지구에 뿌려버린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였다면 바사라가 직접 개입할 생각까진 안했을 터다.
‘제정신이 아닌 놈인 줄은 진즉에 알았다만.’
마몬이 지구에 버린 건 정령탑이 전부가 아니다.
끌어들이지 말아야할 존재를 끌어들였다.
‘··· 심연왕들을 끌어들이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명예의 세계수가 나타나며 동시에 판게니아에 떠오른 심연구역들.
그 구역의 주인들이 이번 일에 개입했다.
모두 마몬의 작품이다.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마몬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마왕군의 침략의도는 지구의 멸망에 있는 게 아니다, 멍청한 마몬이여.’
마몬은 마왕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마왕은 지구를 정복하려는 것이지, 멸망시키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심연왕들은 다르다.
그들은 지구의 존립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키우는데에만 집중할 터.
‘천상의 오염물은 심연을 만들지. 마몬은 지구를 심연에 가라앉혀 심연 그 자체로 만들고, 심연왕들로 하여금 알아서 정복하게 놔둘 셈이다.’
‘블랙 돔’ 현상은 판게니아에 떠오른 심연왕들에겐 축제와 같은 일이었다.
자신의 구역을 알아서 넓힐 수 있음에.
하여 지금 ‘블랙 돔’의 내부에선 심연왕들과 정령탑의 존재들이 서로 뒤얽히고 뒤엉키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만약, 심연왕들 중에서 최후의 승자가 나타난다면.
지구 전체는 심연화 되고, 생명체는 전멸하겠지.
그리고 지구를 차지한 심연왕은 절대자로 거듭나리라.
이후 판게니아와 마계 전부를 노릴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마왕의 의도와는 반대될뿐더러 마계에도 잠재적인 위협으로 자리잡는다.
한 마디로 마몬은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내부가 정리되기 전에 정리해야한다.’
막아야한다.
만약 ‘태어나지 않은 존재’와 같은 괴물이 승리하거든······ 걷잡을 수 없을 테니.
바사라는 ‘억제자’다.
7군주인 그녀의 역할은 ‘마계’에 위협이 될 존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지금 마몬이 벌인 짓은 너무 위험하다.
뒷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다만, 혼자서는 힘들다.
이 몸은 바사라의 진짜 몸이 아니고, 마계가 아닌 지구에선 7군주로서의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없는 탓이다.
‘블랙 돔의 입장 조건은 열쇠를 지닌 자.’
열쇠.
‘히든 특성’을 말함이다.
그것도 하나의 열쇠가 아니다.
‘8개의 열쇠를 보유한 파티만이 제대로 입장할 수있지.’
블랙 돔에 나타난 여덟 명의 심연왕.
그들에 맞춰 8개의 히든 특성을 보유해야만 한다.
만약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파티가 입장하게 되면, 수많은 심연의 저주와 함께 약화되어 먹잇감으로 전락할 테니.
‘쉽지 않아.’
탐사단을 꾸린 수많은 이들이 모이면 가능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현재 알려진 히든 특성의 종류가 대략 8가지였으니까.
심지어 알려진 것들 중에서도 보유하기 불가한 것들도 있었다.
예컨대 ‘돌연변이’와 ‘대식가’, ‘대현자’와 같은 히든 특성들.
보유자가 죽거나, 이름만 알려진 존재들.
하여, 희귀 히든 특성 보유자를 찾아 그녀가 직접 인원을 꾸려야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 떠오른 건 ‘최강남’이다.
그 외에도 몇몇 히든 특성 보유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부족하다.
“저······ 부연합장님. 누가 찾아왔습니다. 한 번 확인을 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때였다.
연합장의 사무실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데스크의 안내원 한 명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수많은 그룹의 오너들, 해외의 길드에서도 그녀를 한 번 만나보길 바랐으나 단 한 번도 그녀는 요청에 응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보통 무시할 터인데.
직접 올라올 정도면 찾아온 이가 쉬이 무시하긴 어려운 이라는 뜻.
“누구지?”
누굴까.
약간의 궁금증을 담아 묻자, 안내원이 우물쭈물대다가 답했다.
“그, 그게······.”
이윽고 이름을 들은 바사라가 표정을 굳혔다.
“······ 안내하거라. 당장.”
*
여신절을 맞이한 아론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새로이 선출된 교황이 설마 자신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문제아취급 받던 그가 여신교의 교황이라니!
‘이 모든 게 여신의 의지를 잇는 분 덕분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굳게 마음먹으며 아론은 교황청을 나섰다.
그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그를 바라보았다.
대륙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
개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법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3대 상회를 비롯해, 심지어 수많은 왕국의 왕들도 자리했을 정도.
이 모든 게 꿈 같았다.
하지만 아론에겐 그들의 출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분께선 어디 계신거지?’
원탁의 기사들이 자리한 곳.
그들은 가장 앞에서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으나, 정작 ‘원탁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상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인파는 ‘원탁’을 만나고자 온 것임을 아론도 알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이 자리에 없다.
가장 중요한 날,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교황 성하 납시오-!”
“교황 성하 납시오-!”
부우우우우웅-!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아론은 카페트 위를 지나, 교황의 상징인 원목지팡이를 들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떨리지 않으면 거짓이리라.
두 손이 땀으로 흥건하다.
눈앞은 빙빙 돌았다.
이윽고, 아론은 겨우 입을 열어, 교황으로 재위한 뒤 가장 중요한 첫 한마디를 건넸다.
“원탁의 주인께선······ 어디 계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