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65)
이자벨라는 문득 사막도시에서 뱀공주로 살아가던 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여유가 없고, 모든 이에 대해 적대적이기만 했는데.
당시의 그녀에겐 아무런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이자벨라의 마음은 한없이 풍요로웠다.
이자벨라는 고개를 돌린 채 방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노라. 들어봐.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정말 많아.”
소노라의 손을 꽉 잡으면서.
이제부터 함께할 시간은 많았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전부 이야기해주리라.
··· 자신이 변했듯이.
소노라, 너도 변할 수 있을 거야.
*
“세렝게티.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교황청에 마련된 연무장.
혼자서 한창 단련 중이던 세렝게티를 향해 허드슨이 말했다.
“··· 후웁! 내가 뭘?”
세렝게티가 검을 내려놓으며 묻자, 허드슨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날 피하는 거 같은데.”
“내가 허드슨을 피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아니, 있지. 네 첫사랑.”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벨로프 부단장. 그 사람만 나타나면 눈을 떼질 못하잖아.”
한껏 격양된 표정.
말투도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세렝게티는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오, 오해야.”
“오해면 왜 당황해?”
“그것도 오해야. 난 당황한 적 없어!”
“내가 널 몰라? 눈빛만 봐도 다 안다고.”
허드슨의 앞에선 표정을 못 숨기는 세렝게티였다.
아벨로프 부단장의 이름이 나온 뒤로 눈동자가 급격하게 확장하는 걸 허드슨이 바로 잡아낸 것이다.
세렝게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냥······.”
“그냥, 뭐?”
“······ 그러는 허드슨이야말로 왜 가만히 있는거야?”
“내가 뭘 가만히 있는데?”
“우리 결혼 안할거야?”
“······.”
허드슨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미 한번 파국이 나버린 결혼식.
그 이후 이와 관련한 대호를 제대로 놔눠볼 기회가 없었다.
세렝게티가 무겁게 말했다.
“그렇게 불안하면 하면 되잖아.”
“······ 알잖아. 난······.”
“상관없어. 허드슨은 허드슨이야. 다른 사람이 되어도 내가 반한 허드슨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아.”
플레이어.
이 세계에선 죄인이라 불리는 존재.
그게 허드슨이었다.
진실을 전한 뒤로, 허드슨은 세렝게티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세렝게티는 허드슨이 사실 다른 사람이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허드슨에게 반한 부분은 외관이 아니었으니.
“······.”
허드슨이 살짝 울먹이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세렝게티가 방긋 웃었다.
“허드슨. 나도 무서워. 어느날 갑자기 허드슨이 사라질까봐 항상 두려워.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기도 해. 저 세계의 허드슨은 어떤 사람인지.”
허드슨이 두려워하듯, 세렝게티도 마찬가지로 두려웠다.
어느날 불현 듯 이 세계에 대한 미련을 허드슨이 버리게 될까봐.
지구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세렝게티는 포용하고자 했다.
아니, 더 알아가고자 하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둘의 사이는 진전될 수 없을 테니.
세렝게티는 불안해하는 허드슨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함께하는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아······.”
허드슨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설마 세렝게티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주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 변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마주봐야만 했다.
허드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러자.”
허드슨과 세렝게티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
“청춘이군요.”
저 멀리 허드슨과 세렝게티를 바라보며 아벨로프가 말했다.
청춘이라고.
그만큼 보기 좋다는 의미다.
이윽고 아벨로프가 나를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단장님께선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 뜬금없군.”
여신절이 시작되기 전, 오랜만에 갖는 휴식기였다.
이름 없는 수리가 변한 투구를 쓴 채, 아벨로프와 함께 교황청의 주변을 거닐던 도중.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물음을 물어온 것이다.
“주변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훌륭하다니. 무엇이 말인가?”
“전부 말입니다. 세아 성녀도, 이자벨라도, 릴리스도, 전부.”
“······.”
글쎄.
사랑이라.
확실히 아벨로프가 말한 이들 모두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이성으로서 여겨지긴 하지만, 사랑을 해보았느냐 묻는다면 애매할 수밖에.
사랑이란 건 서로가 같이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된 사랑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문득 이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럴거면 게임이랑 결혼하라고······.
으음.
어쨌든, 아벨로프는 나에 대한 것들을 전부 알고 있다.
내가 빌헬름으로 활동한 타차원의 존재라는 걸 말이다.
“아벨로프. 그대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허드슨과 세렝게티를 보아서일지.
나도 불현듯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자 아벨로프가 고개를 저었다.
“악신의 제물이었던 제가 어찌 누군가를 만나겠습니까.”
“만나는 게 죄는 아니니, 그럼 이번 기회에 해보도록하지.”
“······ 예?”
아벨로프가 눈을 깜빡였다.
한때 악신의 제물이었고, 원탁의 기사단 부단장으로서 이름조차 알리지 않은 채 살아간 세월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나는 이들이 잊힌 채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마침 좋은 기회이지 않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음. 여신절과 교황의 선출식을 맞이해 대륙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거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누군가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대와 다른 단원들 전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로군요······ ”
아벨로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검으로는 일류이지만, 타인을 대하는데 있어선 삼류 그 이하인 자들.
그게 바로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 허나 명령이시라면, 도전은 한 번 해보겠습니다.”
벨로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을 뛰어넘고, 죽음조차 초월했다.
그러니 그 무엇도 못할 게 없었다.
예전이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
도전이란 단어도 언급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해야만 했다.
또 다시 과거에 사로잡혀 망령으로 지낼 수는 없으니까.
아벨로프는 원탁의 주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놀라운 분이시군.’
······ 여전히 위대하다.
세계수의 던전에서 아벨로프와 원탁의 기사들은 그를 지켜보았다.
잊힌 신들을 상대로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오롯이 전율만을 불러온 자.
이후 멸망의 탑을 세우고, 그것을 스스로 허물며 정점을 찍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을 연거푸 이루어냈다.
앞으로는 얼마나 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도 가지 않는다.
당연히 아벨로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또한, 아벨로프는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대원정에서 끝난 줄 알았던 그와의 여정을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합니다, 단장님. 저희를 잊지 않아주셔서.’
잊지 않고 자신들을 찾아준 그에게.
그의 모습이 다르다하여 흔들림은 없었다.
자신들을 기억하는 그가 빌헬름이 아닐 리 만무했으므로.
아벨로프는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지켜내리라고.
······ 만약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하는 상황이 다시금 펼쳐지더라도, 절대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다.
지구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세계의 침식률’의 진행속도가 급격히 빨라집니다.】
【침식률이 28%를 달성했습니다.】
침식률이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메시지.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끈 건 메시지가 아니다.
“······ 저게 뭐야?”
“하늘에서 뭐가 쏟아지는데?”
“검은색? 석유야 뭐야?”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검은 액체와 같은 무언가가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내 사람들은 그 액체가 어디서 쏟아지는지도 알게 되었다.
“타, 탑이다!”
“하, 하늘에서 탑이 떨어진다······!”
한발자국 늦게 하늘에서 거대한 탑의 잔해가 떨어져내린 것이다.
허나 떨어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아아아아!
“저, 정령들?”
“갑자기 정령들이 왜······!”
“설마 지금 떨어진 게 정령탑이야?”
······ 정령들이다.
실체화한 정령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진 않았다.
“정령들이······.”
“합쳐진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체?”
이상한 상황의 연속.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이 특이한 상황은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정령이 합쳐지기 시작하는 걸 끝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주변이 검은 구와 같은 것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몇몇 국가에서 조사차 각성자들을 급파했다.
그 숫자만 무려 오백에 달하는 탐사인원.
그러나 검은 구로 진입한 오백명의 각성자 중, 살아서 돌아온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