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69)
누구냐, 너는.
두 눈이 마주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이 느껴지는 눈빛.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순간 나는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히 처음 접하는 장면일진대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받아본 것 같았다.
눈과 입가가 모두 웃고 있지만,
‘······ 웃지 않고 있다.’
이아린은 웃고 있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연기’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웃음’의 영역을 완전하게 재현해내고 있었다.
입가의 미소와 선명한 눈동자, 몸짓 하나하나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을 수준이나 나는 왜인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위험한 여자로군.’
확신했다.
남자라면 홀릴 수밖에 없는 그런 아름다운 미소.
누구라도 저 미소를 보며 위협을 느끼진 못하리라.
하지만 나는 아니다.
히든 특성 【영원의 신】과 【진리의 눈】으로 말미암아 단순한 관찰의 영역을 넘어, 냉철하게 상대의 진위를 파악해내는 게 가능했다.
‘탐색하고 있나, 나를.’
이아린은 나를 탐색하는 중이다.
미소 뒤에서 은연중 살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하지만 반대로 나도 궁금해졌다.
이아린.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연합의 부연합장.
그녀의 실력은 연합장 박태우를 위협할 정도라고 하지만.
나는 그 또한 과소평과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벽을 넘어선 자.’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
굳이 검을 나누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아린은 마력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나, ‘적당히’ 조절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일부러 마력을 봉인해두었다는 것을.
피부 바깥으로 표출되고 있는 마력의 양과 육체의 인지, 조화가 굉장히 부적절했으니까.
얼추 계산해봐도 저 안에 움크린 마력은 이미 인외(人外)의 수준이다.
‘마력량 자체는 그라시아를 넘어섰다.’
물론 마력의 수치가 높다고 그라시아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류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자들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정리를 끝냈다.
그리곤 답했다.
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냐고?
“왜 마력을 숨기고 있는 거지?”
“······.”
역으로 되묻자 이아린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아. 확실히 이아린이 원한 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대로 어울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가식으로 점칠된 미소 따위가 아니라, 저 모습이 실제 이아린의 얼굴일 것이다.
오뉴월의 눈보라보다 차가운 여자였다.
관심이 없는 것에는 벌레보다 못한 시선을 겨누며, 타인에 의한 감정의 동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본모습.
허드슨이 ‘가장 위험한 인물’로 선정한 10인 중 한 명이자, 최상단에 위치한 게 이아린이었으니까.
「이아린(특급 위험, 상당한 주의 요망)」
-이세라의 침략 시기에 돌연히 등장한 강자.
-1세대 각성자이며 판게니아에서 같은 이름으로 활동. 황금도시 ‘아르카나’에서 도박으로 전재산을 탕진한 적이 있으며, ‘허드슨 카지노’에 대출 기록이 남아있음. 상당히 낮은 레벨이었을 것으로 추정.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명예의 전당 ‘생존’을 제외하면 이름을 올린 적이 없음. 겁이 많고, 피를 두려워하는 성향.
-이세라 침략 이후 두각을 드러냈으며, 영웅연합의 부연합장으로 직위가 급상승함. 연합장 박태우가 이아린의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추정됨.
-‘대사부’라 불릴만큼 타인의 능력을 개화시키는데 특출남.
-성격과 성향, 그리고 무력의 강함이 급격히 달라짐.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인과의 연결고리를 알 수 없음.
-확실한 파악을 위해 집요하게 추적했으나 실패함.
-이아린이 맞지만, 그 속까지 이아린이 맞는지는 알 수 없음.
-특급 주의 요망.
진즉에 허드슨이 정리하여 내게 전달한 내용이다.
영국의 왕자인 올리버의 신분과 마혈종들을 이용해 그는 지구에서도 ‘정보기관’을 만들었다.
그곳의 주 목적은 각성자들의 동태 파악이다.
특히 1세대 각성자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판게니아와 지구, 양쪽의 정체를 파악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
‘이아린은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허드슨이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이아린은 그야말로 ‘정체불명’이었다.
직접 마주하니, 확실히 이해가 된다.
······ 누구냐, 너는.
“······ 어떻게 알아보았느냐?”
이아린은 더욱이 순수한 궁금증을 담아 다시한번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해주었다.
“표출된 마력을 추적하고 계산했다.”
“······ 허.”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
일부러 띄워놓은 마력의 줄기를 따라가며 추적하고, 내부에 봉인시킨 마력의 양을 추산하여 계산하는 건 인간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그 정도로 방대한 정보를 계산해내는 것은 지혜의 용을 데려와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이는 곧 마력을 읽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뜻.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력’을 지녔다는 방증이었다.
오로지 순수한 마력을 지닌 자만이, 타인의 마력을 읽어낼 수 있으므로.
“나를 찾아올 필요가 없었겠군.”
이아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그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순수한 마력’을 체내에 쌓으며 가파르게 강해진 남자다.
순수한 마력은 단순히 레벨을 올린다고 쌓을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드시 불순물이 섞이게 되어있었다.
흔히 인간들이 말하는 ‘심법’으로 마력을 쌓아도 마찬가지다.
불순물이 덜 섞이긴 하겠지만, 0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 대체 어디서 이런 인간이 나타난 걸까.
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인간은, 지구에선 그가 처음이었다.
첫 번째는 빌헬름이었으나 그를 제외하면 유일무일한 셈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누구냐, 너는.’
알고 싶다.
박현명이라는 인간에 대해.
그의 진정한 존재에 대하여.
지구에 도달한 이후 처음으로, 이아린의 두 눈에 타인에 의한 흥미와 호기심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
이아린은 박현명의 등장을 최대한 감췄다.
박태우 역시도 이아린의 의견에 동의했다.
‘블랙 돔’의 파견은 세계의 정상들이 결집하는 일.
당연히, ‘박현명’의 등장이 알려지면 엄청난 소란이 생길 터.
세계 각지에서 그를 데려가려고 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현재 박현명은 지구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박현명이라······.”
연합장 박태우가 사무실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종이 한 장.
그곳에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파악한 ‘박현명’의 정보가 적혀있었다.
한데, 적혀있는 내용은 고작 한 글자에 불과했다.
-無
······ 아무것도 없다.
박현명의 정보는 전부 지워져있었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쓴 것이다.
하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구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정보를 남기게 되어있다.
특히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한국을 대표하는 영웅연합의 장인 자신이 모든 것을 동원했음에도 단 하나의 정보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니.
하여, 연합장 박태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의 뒤에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다.’
박현명의 뒤에, 국가와 연합의 힘을 아득히 초월하는 거대집단이 있음을.
쉽사리 밝히지 못하고, 건드리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아린의 주장에 따라 ‘블랙 돔’의 파견팀에 합류시키긴 했지만······.
“이게 잘한 짓인지 모르겠군······.”
머리가 지끈거렸다.
박현명을 얼마나 찾아 헤메었던가.
한데, 막상 나타난 박현명은 정체불명 그 자체였다.
그는 대체 누구인가?
··· 2세대 각성자는 맞는 걸까?
······ 아니, 박현명이 맞기는 한걸까?
“후우우!”
박태우가 시름에 잠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
오랜 비행이 끝났다.
천천히 비행기에서 내린 즉시.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인사드립니다. 신의 충실한 종, ‘검게 물든 알카르’라고 합니다.
그림자가 합류했다.
검게 물든 알카르.
마혈종 서열 3위로서, 이세라와 루카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일전에 한 번 나와 함께한 적이 있는만큼 상당히 반가웠다.
하지만 의아한 일이었다.
이세라의 폭주로 인해 모든 마혈종이 동원되었을텐데.
내 의문에 답하듯 알카르가 말했다.
-이세라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어느정도 안정이 된 상태입니다. 언제 다시 폭주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진 제가 모시겠습니다.
과연.
그래도 알카르가 나를 찾아올 수준의 여유는 되찾은 모양이다.
문득 일전 투신의 탑에서 루카리아가 폭주한 일이 떠올랐다.
빌헬름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대참사로 이어졌을 일.
그나마 이세라는 칼날용신 하나와 마혈종들의 보호 아래에 큰 피해 없이 보호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저 너머에 있는 검은 구를 바라보았다.
-저곳입니다. 저 안에서 정령왕들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심연왕’이라 칭해지는 존재들의 인기척도 느껴집니다.
의외였다.
그게 느껴진다고?
검게 물든 알카르의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발군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조차도 아득히 넘어선 경우다.
나도 모르는 걸 알카르가 알고 있다.
또한, 알카르가 이전보다 강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마혈종의 전체적인 수준이 월등해진 것인지.
“한국의 영웅들이여! 미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찰칵! 찰칵!
수많은 플레시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며 최강남이 중얼거렸다.
“······ 다크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