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서막.
팬텀이 이곳에 있다는 말.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팬텀으로 보이는 존재는 없었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집행자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이곳에 모여있는 자 중에선 ‘팬텀’의 기색이 아예 없었으니까.
전부 자신들과 같은 ‘아바타’로 여겨지는 자들뿐이었으므로.
···기억을 되찾은 그들은 모두 은연중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텀과의 첫 만남.
자신을 ‘생존’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대체 팬텀께서 어디에 계신다는 거지?”
천둥 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자.
“아직 너희들은 느껴지지 않나 보군.”
이자벨라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최초의 불’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불이라는 건 알겠으나, 저 안에 ‘팬텀’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자벨라가 천천히 말했다.
“이 불은 그분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 아직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건, 그분께서 건재하다는 증거.”
최초의 불이야말로 팬텀의 존재를 입증한다.
또한, 이곳 미궁에 최초의 불이 설치된 뒤로 미궁은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박현명의 정체성을 대변하듯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박현명처럼, 미궁 내의 생태도 숱하게 진화한 것이다
허드슨이 미궁에 대해 절대 함구한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 미궁에는 빛만 있는 게 아니었지.’
박현명은 미궁 도시의 총괄을 허드슨에게 맡겼다.
이후 박현명은 미궁 도시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로 인해 생긴 미궁의 변화들이었다.
마치 생명체처럼, ‘최초의 불’이 놓인 미궁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미궁 자체의 크기가 커지고, 더 복잡해졌으며, 괴물들은 미궁 내에 적응하고 진화해갔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빛이 아닌 어둠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
진화한 히드라곤과 흉조는 아주 단편적인 경우일 따름이었다.
미궁을 총괄하는 허드슨으 입장에선 굉장히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들이 외부로 반출된다면 적지않은 파장이 일 테니.
그렇다고 미궁 내의 괴물을 바깥으로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 괴물들은 오직 미궁의 생태에만 적응한 종이었던 탓이다.
‘······ 도시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욕심이었을 뿐인데.’
물론, 시작은 허드슨의 욕심이었다.
시체 까마귀와 히드라곤과 같은 괴물들을 처음 미궁에 배치한 건 다름아닌 허드슨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괴물들 중 절반은 스스로 찾아왔다.
백왕에 의해 미궁이 오주력의 도시로 선포되자, 북부 크람델을 비롯해 각지에서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허드슨은 그들이 살아갈 구역을 지정해주고, 외부의 공격에 대비해 던전을 꾸미듯 미궁을 방비한 것이다.
허나, 분명히 처음엔 평범했다.
평범한 괴물들이었다.
그 괴물들이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괴물들은 절대로 미궁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아예 자신의 구역을 침범하면 무차별적으로 공격부터 하는 괴물들도 있었다.
허드슨의 손을 떠난 괴물들 말이다.
미궁을 잘 키워보고자 의욕적으로 벌인 일이, 상상을 초월해 스케일이 커져버린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선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 지금은 멸망의 탑 그 자체가 되어버렸으니.’
이제 미궁은 단순한 미궁이 아니다.
집행자들은 못 보았으나, 미궁에는 그들도 있었다.
릴리스와 이름 없는 수리!
만약 누군가가 그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곳이 ‘멸망의 탑’과 연결된 본진임이 명실상부해질 터.
이곳 미궁 도시야말로, 박현명의 상징이다.
그의 정체성이며 존재성이다.
“······ 그분의 본체를 너희들도 찾지 못한 건가?”
어찌됐든, 천둥 사자로선 의아한 게 당연했다.
그러자 이자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분께서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으나, 당장 우리로선 손을 쓸 수 없다.”
“왜?”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계시니까.”
“······ 뭐?”
“그분께선 천명이 넘는 이들을 구원하셨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이지. 하물며, 자신의 구원을 아무도 기억 못한다면 더더욱.”
“······.”
“오랜시간 그분께선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을 해오셨다. 우리의 구원과 세계의 해방을 위해. 이제, 우리가 그분을 ‘생존’시킬 차례다.”
그 남자가 했던 말과 같다.
팬텀이 자신들을 생존시켰듯, 이번엔 자신들이 그를 생존시킬 차례라는 말이.
허나,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잊고 있던 기억은 실로 경이로웠으니까.
생존?
그건 시작일 따름이다.
그가 행했던 모든 건, 단순히 그들의 몸을 장악하고 조종하여 사심을 채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였다면 그 상황에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 확실히. 우리가 ‘초월’할 기틀을 만들어주셨지.”
“감사하긴 커녕 원한을 갖고 있었으니······.”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군.”
집행자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육체의 틀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릇을 완성시킨 건 다름아닌 ‘팬텀’이었다.
균형잡힌 능력치와 온갖 히든 피스로 강화된 육체.
불가해한 상황을 무수히 겪으며 얻은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을 초월시킨 것이다.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미 팬텀이 모든 재료를 준비해놨기에 가능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죽이겠다며 원한을 품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도리어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착각만 하고 있었다.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집행자들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인간의 정신력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그들의 책임인 것만 같았다.
“······ ‘황금 가면’을 죽이지 못한 게 한이로군.”
집행자 중 한 명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천둥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받아들이면 ‘사신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황금 가면’은 우리를 죽이려고 최선을 다하겠지.”
허드슨이 긍정했다.
“사신교가 공격해오겠지요.”
“사신교만이 아니다. 그는 제국의 실세이니, 제국 전체가······.”
“그러진 못할 겁니다.”
“··· 믿는 구석이 있나?”
“제국에서 가장 인망있는 존재는 황금 가면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 라이가님을 말하는 건가?”
허드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라이가.
그가 사신교의 의견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는 란돌프와 박현명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세계수의 던전에서 보았던 그는 이미 예전의 라이가가 아니었다.
구태여 전쟁을 일으키려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란돌프’에 대한 공포를 투신의 탑에서 겪었을 터.
그리고 라이가가 반대한다면, 제국 전체가 움직이진 않는다.
제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황금 가면’이지만, 반대로 가장 두터운 신망을 가진 건 ‘라이가’였으므로.
허드슨이 방긋 웃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
“사신교가 움직이고, 그대들을 받아들이면 대륙 전체에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전쟁을 통해 팬텀의 아바타를 모으겠다?”
“예. 그대들이 우리를 찾아왔듯, 소식을 듣고 다른 아바타들도 찾아오겠지요.”
굳이 일일이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모여들 테니까.
천둥 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신교가······ 두렵지 않은 건가?”
“우리가 사신교를 왜 두려워해야합니까?”
“아무리 이곳 미궁이 철벽과 같은 방비를 자랑한다고 해도······ 사신교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집단이다.”
사신교의 가장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보이는 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
만약 모든 ‘정통의 후견자’들이 힘을 합친다면.
··· 최근 여신교를 패배시킨 발로그 교단조차도 고작 한 부분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간 집행자로서 사신교에 머물렀기에 사신교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허드슨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가진 저력도 미궁이 전부가 아닙니다.”
“설마 백왕을 말하는 건가?”
“예. 미궁이 공격받는 순간, 백왕께서도 저희를 도울 겁니다. 그 외에도······.”
“외에도?”
“··· 내가 도울 것이다.”
목소리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이곳에 모인 어떤 집행자들도, 그의 출현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모두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한 남자가 있었다.
“······ 누구지?”
“광휘의 초인 카심님입니다.”
“······!!!”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니, 판게니아의 대륙인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백년전 악신을 물리친 여신의 기사!
광휘의 초인이라 불리우며 대륙 최강이라 전해졌던 남자.
그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카심님과 여신교도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
*
성도 아드리움에서 펼쳐진 원탁과 광휘의 대결.
두 집단의 대결은, 원탁의 ‘중도 포기’로 인해 광휘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카심이 아니다.
이미 광휘는 원탁에게 연전연패하고 있었으므로.
과연 그걸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드슨의 발언에 의해 그는 싸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원탁의 주인께서 이 대결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가 어디있다고 그따위 소리를······.”
“이미 만나보시지 않았습니까? ‘세계수의 던전’에서.”
“······?”
“솔직히 어느정도는 예상하지 않으셨습니까?”
“······ 미친.”
광휘의 초인이라 불리며, 가장 성스러웠던 성기사가 욕을 내뱉었다.
예상을 했을뿐이지, 확신은 못했으니.
아니, 솔직히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탁의 본래 주인은 빌헬름이었다.
그리고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인간이 아닌 드루이드의 신이다.
그가 왜 갑자기 원탁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단 건가.
앞뒤가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아먹었다.
“우리의 싸움이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 그럼 왜 숨겼지?”
“왜 밝혀야하죠?”
“······ 그럼 이제와서 밝히는 이유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분께서 위독하십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
그가 죽으면 명예의 세계수를 비롯한 드루이드의 힘이 약해진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멸망의 탑을······.’
멸망의 탑을 정복한 것.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단장으로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분을 ‘생존’시키려거든 카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내가 뭘 해야되지?”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대결이 의미가 없어진 건.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움직이는 건 카심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은밀하게 맹약을 나눴기 때문이다.
엘프여왕과 멸악의 거인, 백왕, 에이션트 피닉스, 빛의 수호자.
그들의 무리도 함께 움직이리라.
황금률의 드루이드.
그를 살리기 위해서.
하지만, 카심도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규모의 전쟁이 시작되리라곤 말이다.
*
사신교가 움직이자, 세계 각지에서 암운이 드리웠다.
아이언 왕국의 프리드릭 왕이 암암리에 병사를 모았으며.
흑왕이 중앙 대륙으로 넘어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발로그 교단과 잔존한 악신의 세력들이 병합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