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나의 승리다.
그러나 궤멸은 부정했다.
저것은 ‘진리’의 안에도 등록되지 않은 수.
잠시 ‘천상’이라 착각했으나 그럴 리 없다.
13은 끝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길함’을 나타내는 수이므로.
불운, 불명예, 죽음과 관계된 그 어둠은 감히 비할 데가 없다.
7대 죄악의 악마들 따위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면 12는 신성한 숫자다.
시간과 우주, 그 외의 모든 게 12로 나뉘기 때문이다.
고로.
저 멸망이 ‘종말’이라면, 저 인간은 ‘종말의 악마’라 칭할 수 있을 터.
-······ 넌, 천상의 적이로군.
궤멸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인간이 왜 ‘진리’의 안에 등록되어있지 않은지.
어째서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를.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니다.’
애당초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다.
그나마 7죄종의 악마들 중 가장 닮은 꼴은 ‘탐욕’이라 할 수 있으나······.
‘탐욕의 악마도 13에는 이르지 못했다.’
적어도 ‘진리’에 등록된 탐욕의 악마에 대한 정보는 그러하다.
궤멸에 앞에 서있는 저 존재는 그정도로 불길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근원의 악.
모든걸 감염시키고 종말로 내모는 ‘절대죄악’!
천상이 멸해야할, 적이다.
궤멸은 여유를 되찾았다.
······ 그저 불길한 상징일뿐, 저건 천상과 관계없는 무기다.
천상이 창조한 멸망이 아니다.
그렇다면.
-십이황도의 전사들이여.
쿠르릉!
12개의 탑이 흔들린다.
이어 탑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더니, 가루들이 압축되듯 모여들며 특정한 형상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바로 12마리의 짐승들이다.
양, 황소, 용, 원숭이, 사자, 여우, 돼지, 쥐, 뱀, 말, 토끼, 염소!
사신교의 간부들이 착용한 짐승탈의 모습이 구체화된 것이다.
이들은 멸망의 사흉과 마찬가지로 궤멸이 이끄는 황도의 전사들이었다.
‘황금 가면’은 사신교를 만들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궤멸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다만.
본래 ‘염소’는 없었다.
염소를 제외한 11개의 정통과 후견자들뿐이었다.
12번째는 ‘궤멸’이며, 그가 염소인 탓이다.
팬텀은 스스로 ‘염소’인 척을 하였지만, 결국엔 흉내이며 가짜일 따름이다.
궤멸의 얼굴에 위치한 거대한 눈이 빙그르르 돌았다.
타악!
그리고 다시, 궤멸은 열 두 개의 손을 합장했다.
-십이신왕 봉인.
꽈아아악!
재차, 팬텀의 몸이 조여진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강력하다.
궤멸이 낼 수 있는 최강의 봉인이 십이신왕 봉인이었다.
열 두 신을 한꺼번에 봉인할 수 있는, 오직 궤멸에게만 주어진 권능!
감히 대적자체를 불가하게 만드는 것.
-이번에는 쉽게 풀 수 없을 것이다.
십이신왕 봉인에 당한 팬텀이 움쩍달싹 못하고 있었다.
십이궁 봉인은 밀어내면 풀리지만, 십이신왕 봉인은 잘라내야만 풀린다.
허나 ‘종말’은 절대로 십이신왕 봉인을 풀 수 없다.
-잘라낼 수 없어서 당황스럽나? 하기야 너는 모르겠군.
궤멸이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13의 숫자에 잠시 압도되었으나, 결국 저놈도 ‘멸망’의 한계를 벗어던지진 못한 것이다.
-모든 ‘멸망’은 서로를 직접 공격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궤멸이 계속해서 팬텀을 봉인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멸망’은 서로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없다.
그렇게 설계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봉인을 유도한 것이다.
예상대로 종말은 십이신왕 봉인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종말 역시 멸망의 한종류인 탓이다.
물론, 직접 공격할 수 없는 건 궤멸도 마찬가지다.
대신.
-멸망의 대결은 권속의 대결.
··· 방법이 없진 않다.
‘권속’으로 하여금 죽일 수 있다.
멸망이라면 응당 갖고 있는 ‘권속’은 너무나도 강력하여, 능히 그들에게도 닿을 수준이었으니.
-전부 뜯어먹거라, 나의 권속들이여.
콰득!
콰드득!
봉인의 사이, 열 두 권속들이 달려들어 종말을 마구 뜯어대기 시작했다.
-모든 권속을 잃은 너는 처음부터 나의 상대가 아닌 것을.
칼날용신은 광란을 일으키다 자폭했고, 바알과 릴리스는 흑왕에 의해 잡아먹혔다.
이름 없는 수리도 힘을 다하여 역소환됐다.
즉, 저 ‘종말’이 가진 권속은 이제 없다는 소리.
권속이 없는 멸망이 다른 멸망을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치 않는다.
잠시 13이라는 숫자에 압도되었으나, 권속을 모두 잃은 시점에서 결판이 나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더 이상 종말을 도울 건 없다.
인간들?
약하디 약한 그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나.
조금은 위협적이었던 드루이드 알비노는 죽었고, 두 신들도 궤멸의 파장에 타격을 입은 채 종적을 감췄다.
이미 소멸했을 수도 있고.
쩌어억!
종말이 뜯겨나가며 죽어가고 있다.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다.
‘나의 승리다, 종말이여.’
궤멸은 승리를 확신했다.
*
나는 각성했다.
내가 ‘팬텀’임을 깨우치며 집을 지었다
틀림없는 나만의 세계를 구상하고 창조했으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군.’
아직은 손과 발이 따로 노는 기분이다.
특히 빌헬름과 달리 종말의 힘은 내 멋대로 다루는 게 쉽지 않다.
내가 아직 ‘종말’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태껏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이 봉인도 생각보다 귀찮고.’
첫 번째 십이궁 봉인은 종말의 힘을 이용해 거둬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옭아맨 ‘십이신왕 봉인’은 거둬내지 못했다.
그야, 종말의 힘을 제대로 못 휘두르는 탓도 있지만.
‘내가 알던 방식의 봉인과는 거리가 먼 듯한데.’
아예 작동하는 방식이, 원리가 다르다.
그래서일까.
‘··· 빌헬름의 권능도 먹히지 않는 걸 보면 내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는 거겠지.’
쯧.
작게 혀를 찼다.
빌헬름의 별을 등록하며 얻은 권능으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별의 권능이란 1초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
사용하기에 따라선 사기적인 능력이지만, 이 봉인을 풀어낼 수 있는 해답은 아닌 듯했다.
‘궤멸’은 오직 내 움직임을 봉인하는 데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1초의 시간을 되돌려봤자 무한하게 봉인될 따름이다.
나는 침착하게 이 대결의 양상을 복기했다.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나의 봉인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란돌프의 종말을 불러낸 뒤에는 아예 봉인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어. 내가 봉인을 풀지 못하듯 놈도 나와 종말을 공격할 수 없는 거다.’
십이신왕 봉인.
이건 공격을 통해서만 풀어낼 수 있는 봉인이다.
잘라내야만 했다.
하지만 ‘종말’의 힘을 가진 나는 십이신왕 봉인을 공격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풀 수 없다.
아마도······.
‘멸망은 서로를 공격할 수 없나 보군.’
그와 같은 구조가 적용하는 게 아닐는지.
문제는 이미 내가 종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 자체가 멸망의 화신이 되었으니, 종말을 아예 떼어놓기란 요원했다.
‘놈에게 닿기 위한 격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그저 내가 겪어본 종류의 적이 아니라서다.’
빌헬름의 격.
그리고 비로소 완성된 나의 격.
단순한 무력의 대결이었다면 그 깊음에 있어서 궤멸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냥 다른 존재인 것이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할 뿐이다.
상대해야 하는 방식을.
아직 제대로 종말을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다.
마침, 궤멸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며 힌트를 던져주었다.
‘오직 권속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라.’
권속에 의한 공격은 가능하다는 말.
옛적 판게니아를 침략한 ‘멸망’이 ‘사흉’을 만든 이유가 이 때문일까?
강력하기 짝이 없는 멸망에게 권속이 필요한 건 쓰임새가 따로 있어서인 듯싶었다.
허나 나의 권속은 모두 쓰러졌다.
당장 부활을 시킬 수도, 새로운 권속을 찾아낼 수도 없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무엇을 해야할지.
종말을 어떻게 휘둘러야만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그동안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사고와 논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히, 내 안에 답이 있다.
없을 수가 없다.
내가 만든 집에는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나는 나의 진리를 만들었다.’
집.
그것은, 또 다른 진리다.
천상의 ‘진리’가 아닌 나의 ‘진리’였다.
그리고 나의 진리 안에 불가능이란 없다.
이후 눈을 떴을 때.
······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권속을 만들면 되겠군.’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권속을 아예 만들면 되는 일이다.
실제로 당장 나는 권속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도-
감히 그 어떤 멸망도 경험해본 적 없을 터인, 최강의 권속을 말이다.
*
놈이 눈을 감는다.
포기의 징조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씨익!
갑자기 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답을 알려줘서 고맙군.”
뭐가 고맙다는 건가.
아아.
자신이 봉인된 이유를 알려줘서?
하지만, 알아봤자 답은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권속이라도 있다면 발악이라도 해 볼 테지만.
놈에게 남아있는 건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없는 권속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답이 없음을 알았을 텐데도 웃는다니.
자조인가, 포기인가, 아니면 해탈인가?
그 순간이었다.
콰직!
십이황도의 권속 중 하나의 몸이 불현 듯 터져나갔다.
콰직!
콰지직!
계속해서.
권속들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소멸했다.
그러자 궤멸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잠시나마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에 인지가 흔들린 것이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종말의 권속 따윈, 전혀 존재치 않았다.
그러니 자신과 자신의 권속들을 공격할 수 있는 건 없어야한다.
그럼에도 공격당한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 종말을······ 권속으로 만들었다고······?
종말 자체가, 팬텀의 권속이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종말이 팬텀에게 힘을 빌려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따르는 걸 넘어서, 멸망인 종말이, 팬텀에게 종속되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멸망의 한계를, 업을 벗어났다.
멸망이란 천상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파괴자이니.
전례가 없다.
특히 멸망이 누군가의 권속이 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권속’으로 다루려거든 종말보다 더 격이 큰 존재여야만 한다.
작은 존재가 더 큰 존재를 품을 수는 없는 탓이다.
그래서 의아한 것이다.
멸망보단 큰 존재는 천상뿐이니까.
-말도······ 안 되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콰직!
이내 마지막 권속이 터지며 사라졌다.
열 두 권속이 더욱이 강력한 단 하나의 권속의 앞에서 허망하게 소멸했다.
감히, 최강의 권속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에 의해 먼지로 화한 것이다.
스으으으-
‘종말’의 얼굴이 궤멸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십이신왕 봉인도 잘려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궤멸의 눈은 종말을 보고 있지 않다.
종말을 ‘권속’으로 굴복시킨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말’이 입을 벌렸다.
이윽고.
‘종말’이 ‘궤멸’을 먹어치우기 직전.
-넌······.
······ 궤멸은 깨달았다.
13이 가진 의미는 끝, 불길함, 불운 따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13의 숫자가 가진 또 다른 의미가 또 있다는 사실을.
종말을 권속으로 만들 정도로 거대한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뿐이었다.
13.
그것은.
-멸······ 망······!
······ 배신자의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