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12와 13의 차이.
팬텀의 별자리.
그 두 번째, 란돌프의 별.
동시에 스멀스멀 어둠이 몰려온다.
여태껏 외면했던, 내가 제어하지 못했던 거대한 어둠이.
허나 멸망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멸망뿐이다.
지금 여기서 란돌프의 종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끝은 파멸뿐이었다.
‘란돌프. 너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다오.’
하지만.
······ 나는 란돌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빌헬름은 벗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깝게 여겼고, 황제의 아들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도 확인했으나.
정작 란돌프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빌헬름의 육체는 마왕이 강탈했으며 그의 영혼은 여신들에 의해 지켜졌다고 해도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넌 누구지?’
··· 내가 빙의한 이 육체 말이다.
종말을 가둬둘 만큼 강인한 그릇.
다른 플레이어들도 ‘판게니아 사람’에게 빙의하는 게 기본이건만.
빙의한 육체의 주인과 관련된 정보를 찾는 게 어렵지도 않건만.
정작 란돌프와 관련된 정보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원정에서 도망친 병사들과 함께 사막도시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참가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을 터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군.’
빙의 직후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300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노예가 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대원정에 참가했지만, 도망친 병사들.
말인즉슨, 란돌프도 함께 도망쳤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원정의 참가 명단에 이름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허드슨이 총력을 다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름은커녕 관계가 있다는 사람도 전무했으니.
그날 갑자기 땅 위로 솟아난 사람 같지 않은가.
누굴까.
이 몸, 란돌프의 주인은.
‘문’의 안에서조차 가만히 나를 지켜만 보았던 자.
아무런 감정 없이, 어떠한 의도와 의지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 이야기가 없다. 영혼이 없다.’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했다.
란돌프에겐 영혼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육체.
목적을 갖고 고안해낸 그릇인 탓이다.
‘아아.’
동시에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그리고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도 예상이 되었다.
‘나를 탐욕의 악마라고 부른 이유도 너 때문이겠지, 란돌프.’
······ 탐욕의 악마.
란돌프의 육체는, 분명히 탐욕의 악마와 닮았을 터.
판게니아 어디에서도 란돌프와 관련된 정보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고한 존재들은 나를 ‘탐욕의 악마’라고 확신하듯 말하곤 했다.
물론 나의 특성과 성향이 그렇게 비춰졌을 수도 있지만, 란돌프의 영향 역시 강하게 미쳤을 것이다.
‘너를 만든 건 여신들이다.’
또한, 나는 이 그릇을 만들어낸 게 여신들이라고 확신한다.
유일하게 멸망에게 닿았던 최강자.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도운 건 여신이었다.
그러니 탐욕을 모방한 육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나를 너에게 빙의 시킨 것도 두 여신이지.’
그날, 란돌프에게 빙의한 건 여신의 입김이 있었다.
그럼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
‘······ 나는 탐욕의 악마인가?’
내 영혼이 정말 탐욕의 악마란 말인가?
심상의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지구의 태초신.
그는 내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너는 보다 본질적인 존재이니라.
당장은 탐욕의 악마라고.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존재라고.
이 말의 의미에 대해 무던히 고민했으나,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탐욕의 악마가 아니야.’
내가 아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나를 무감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녀석.
란돌프, 너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도, 탐욕의 악마가 아니다.’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로 비슷할 수는 있으나 전혀 다른 존재다.
··· 여전히, 란돌프의 눈빛은 공허하다.
하지만 이전보다 녀석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한결 편안해졌다.
란돌프가 지닌 어둠, 종말의 힘도.
어쩌면 처음부터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에겐 옳고 그름이 없었을 뿐이다.
그저 종말의 기운에 따라 움직였을 따름이었다.
‘함께 써보자. 팬텀의 이야기를, 우리의 별자리를.’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너를 피하지 않겠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며.
우리는 ‘팬텀’이니.
······ 그 순간이었다.
란돌프가, 손을 내밀었다.
영혼이 없고, 의식마저도 없어야할 란돌프의 육체가 내 손을 맞잡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 번째 별, ‘란돌프의 별’이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란돌프의 별’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종말’이 ‘팬텀’의 부름에 응합니다.》
*
‘궤멸’은 눈을 떴다.
『무한히 공허하며 허무한 것. 그것이 너의 사명이다.』
모든 걸 지우는 게 천상으로부터 부여받은 그의 소명이었다.
‘멸망’의 실패를 바로잡는 것 말이다.
이 세계, 판게니아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기에.
천상의 의지에 반역한 땅을 감히 남겨둘 순 없으므로.
-12궁 봉인.
‘궤멸’은 눈을 뜬 즉시 열 두 개의 팔을 맞잡았다.
12는 완성이다.
우주의 질서를 말한다.
꽈아아아악!
순간 ‘팬텀’의 전신이 옥죄이듯 조여졌다.
12궁 봉인의 대상이 바로 ‘팬텀’이었기 때문이다.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완성의 숫자를 거부하는 건 설령 놈이라고 할지라도 불가능하다.
이 상태에선 그 묘한 ‘검술’도 발휘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저 가만히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릉!
쿠르르릉!
궤멸의 주변으로 ‘12개의 탑’이 솟아올랐다.
그 모두가 ‘멸망의 탑’이다.
본래 ‘멸망의 탑’은 ‘멸망의 대지’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땅의 주인인 신에게 시련을 내려 땅을 빼앗으려거든 ‘멸망의 탑’이 필요했으므로.
하지만, 이 탑을 12개나 소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모든 탑의 위로 가공할 마력들이 모여들었다.
모인 마력은 12개의 원을 형성했고.
-순환.
쉭-
쉬쉬쉬쉬쉬쉬쉬쉭!
열 두 방향으로 거대한 마력의 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쿠릉!
쿠아아아아앙!
하지만, 여전히 ‘미궁 도시’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신.
후우웅!
‘최초의 불’이 흔들리며 불씨가 작아져간다.
저 불꽃이 꺼지는 순간 팬텀은 죽고 궤멸을 막을 건 이 세계에 존재치 않으리라.
쩌억-
쩌적!
보이지 않는 벽에 금이 간다.
12개의 탑은 끊임없이 마력포를 쏘아냈고, 그중 한 줄기가 미궁 도시 바깥으로 뻗어나갔다.
뻗어나간 마력포의 한 줄기가 어느 대륙에 떨어졌으며.
《서쪽 ‘얀티 산’이 멸망했습니다.》
《‘얀티 산’을 수호하던 탑과 ‘얀티 신’이 소멸했습니다.》
고작 한 방에 폭군 그리즐리가 주인으로 있던 광활한 산맥이 사라졌다.
그곳에 있던 탑과, 그곳을 수호하던 신마저도.
전부 사라진 것이다.
허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소명은 오로지 지우는 것.
그 어떤 과정도 필요없다.
막을 수 없다.
궤멸이 등장한 이상, 이 세계의 소멸은 정해진 것이다.
팬텀?
신경쓰지 않는다.
12궁 봉인에 당한 이상, 천신이라 할지라도 움직일 수 없다.
무엇보다, 저 ‘불’이 꺼지면 어차피 팬텀은 소멸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화르르르륵!
꺼져가던 불씨가, 어느덧 다시 강렬하게 타올랐다.
게다가.
투툭-
궤멸의 손 두 개가 풀린다.
맞잡았던 여섯 쌍의 손 중 한 쌍이.
팬텀, 놈이 12궁 봉인 중 2궁을 풀어낸 것이다.
궤멸은 느꼈다.
······ 눈을 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팬텀의 안에서 무언가가 눈을 뜬 것이다.
틀림없이 그것은 그와 비슷한 멸망의 기색을 품고 있었다.
한데, 묘하다.
눈을 뜬 멸망은 어째서인지 자신과는 다른 의지를 갖고 있었다.
진리의 문과도, 천상과도 이어져있지 않다.
-너도 소명을 잊은 멸망인가?
‘궤멸’은 물었다.
옛적, 판게니아를 멸망시키려던 ‘멸망’은 자신의 소명을 잊고 도망쳤다.
하지만 눈앞의 멸망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휘둘리는 길을 택한 것인가?
인간의 등 뒤로 솟아오른 두 개의 팔.
그 팔이 12궁 봉인 중 2궁의 봉인을 밀어냈다.
멸망이 고작 인간의 부름이 응답하여 힘을 내어준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경우인가.
-포기하거라. ‘멸망’은 결코 12를 넘어서지 못하니.
다만, 상대가 나쁘다.
궤멸은 천상을 제외한 모든 걸 허무로 되돌리고자 등장한 존재다.
그에 특화된 멸망이라는 소리다.
당연히 그 어떤 멸망보다도 ‘완성’되어있다.
모든걸 공허로 되돌리는데에 있어서 그보다 완성된 멸망은 있을 수 없다.
투둑-
팬텀의 등 뒤로 두 개의 손이 더 튀어나왔다.
12궁 봉인 중 4궁 봉인이 풀렸다.
서로가 지닌 팔의 힘은 동등하다.
1대 1의 교환비율이었다.
저 멸망이 최소 네 가지의 열쇠로 말미암아 태어난 존재라는 뜻이다.
투툭!
여섯 개.
여기까진 예상하였다.
아무리 소명을 잊었대도 6의 숫자까진 감당할 수 있을 테니.
진짜의 시련은 여기서부터다.
6궁 봉인까진 어찌저찌 풀었을지라도······.
투두툭!!
······ 8궁의 봉인이 깨졌다.
팬텀의 등 뒤로 튀어나온 여덟 개의 팔.
소명을 잃은 멸망치고는, 꽤 많은 숫자를 지니고 있다.
-순환.
모든 멸망의 탑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아아아아앙!
무자비하게 ‘팬텀’을 공격했다.
한 발로 산맥을 소멸시킨 마력포다.
닿는다면 신조차 지워버리는 절대적인 파괴력.
놈이 팔을 뻗어낼 시간 자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쨌든 자신의 승리일 터이니.
툭!
······ 그 사이에서, 분명히 들었다.
10궁 봉인이 깨지는 소리를.
여섯 쌍의 팔중, 다섯 쌍의 팔을 풀어낸 게다.
심지어.
-······ 뭐냐, 네놈은.
마지막 한 쌍의 팔조차도 점점 풀리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12는 완성의 숫자일 터인데.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할 터임에도.
어떻게 이걸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꽈아아아악!
궤멸은 사력을 다했다.
마지막 봉인이 풀리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
12궁 봉인이 풀린다는 건, 다시말해 상대가 그보다 더 완성된 형태의 멸망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궤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아악!
······ 마침내, 12궁 봉인이 깨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해할 수 없었다.
멸망은 세대를 거칠수록 진화해왔다.
파멸, 절멸, 그리고 멸망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궤멸에 도달한 것이다.
당연히 자신보다 앞선 세대의 멸망은 결코 12의 숫자에 닿을 수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닿았다.
설마 진리가 틀렸다는 건가?
절대로 틀릴 리 없는 진리가?
그게 아니라면.
혹, 놈도 자신과 같은 12로 완성된 멸망이라는 뜻을는지.
동시에 태어난 멸망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등 뒤로 피어난 12개의 팔.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후웅!
······ 한 개의 팔이 팬텀의 등 뒤로 더 솟아난 것이다.
-13······.
열 세 번째.
이는 12를 넘어서는 숫자다.
게다가 13번째로 튀어나온 것은 ‘팔’의 형태라기보단, 아예 다른 모양이었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같기도 하고, 해골 모양의 무언가 같기도 한.
저것이 저 멸망의 얼굴이자, 본체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13번째의 숫자였다.
13은 죽음이다.
모든 것의 끝을 고한다.
말하자면, 저것은······ 저 ‘멸망’은.
-너는······ ‘종말’······ 아니.
종말의 다른 말.
모든 것의 끝이며, 시작인 건 하나뿐이다.
-‘천상’인가?
······ ‘천상’ 말이다.
동시에 의문이 생긴다.
············ 모든 것의 끝과 시작이 따르는 저 존재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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