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 귀찮으니 한꺼번에 덤비도록.
협박이 아니다.
진심이었다.
저들이 하나에게 용신의 업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곳 ‘용신회’를 불태워버릴 작정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대단한 존재라고 한들,
······ 멸망만은 못할 터였으므로.
천상을 대적하는 집단, 세계를 수호하는 용신들이 소속되어있는 곳!
어떤 식으로 자신을 포장해봤자 그들은 천상을, 멸망을 막지 못했다.
그러니.
나 역시, 막지 못하리라.
모든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용신회’가 호락호락해 보이더냐?
-‘궤멸’을 죽였다고는 하나 그뿐인 것을.
-꿇어라.
순식간에 사방을 옥죄는 강력한 언령의 기운.
“······ 큭!”
나의 뒤에 있던 바사라가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곤 바닥에 주저앉았다.
꿇으라는 말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다.
용언과 비슷하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른 절대언령의 주박이었다.
나 역시도 무릎이 간질였으니까.
‘확실히 일반적인 용들은 비교조차 안 되겠군.’
그러나 그뿐이다.
내가 만나본 용, 혹은 용신들보다 더 윗급의 존재감을 지녔지만, 내 무릎을 멋대로 꿇릴 수는 없었다.
빌헬름의 능력과 종말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는 저들에 비해 전혀 격이 부족하지 않은 탓이다.
도리어-
툭.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가소롭다는 듯이, 여유를 담은 미소를 지은 채.
“귀찮으니 한꺼번에 덤비도록.”
피하지 않겠다.
다만, 한꺼번에 덤벼라.
하나씩 상대하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니까.
······ 예전이었다면 이와 같은 행동은 만용이었을 것이다.
기선제압을 위한 연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내 진심을 구태여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저들은 언령을 다루는 용신.
내 말의 진의 정도는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터이므로.
-‘태고의 언령’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
-······ 멸망은 멸망이라 이건가?
약간의 혼란.
나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허나 이로써 확실해졌다.
저들은 ‘멸망’을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천상의 무기도 아닌 주제에 ‘종말’을 소유한 나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절대자’들이시여.”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황금빛의 거대한 용이 나타났다.
휘황찬란한 황금률을 두른 채, 어느덧 멀쩡해진 상태로 내 앞을 막아선 존재.
그를 보며 절대자들이 말했다.
-······ 아인하사르.
-무슨 낯으로 용신회를 찾아온 것이냐.
-규율을 위반한 ‘용언’ 사용에 대해 아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거늘.
용신 아인하사르는 판게니아 전역에 권능을 사용하여 팬텀의 아바타들을 일깨웠다.
이는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
수호자가 지켜야할 행동과는 거리가 먼 규칙 위반의 행위였다.
아인하사르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규율을 위반한 데에 대한 벌이라면 언제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두 용신에게 제대로 된 자격을 부여해주십시오.”
절대자라 불린 고대 용신들.
아인하사르의 말이 끝난 즉시 그들이 답했다.
-돌연변이는 용신이 될 수 없다.
-아아, 용신회의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돌연변이가 용신이 된 적은 없지.
··· 단호하다.
돌연변이에겐 절대로 용신의 자격을 허락할 수 없다는 말.
하기야······ 대화가 통할 상대였다면 진즉에 통했을 터.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전부 죽은 다음에도 거부할 수 있을지 봐야겠군.”
전부 죽으면 그야 거부도 못하겠지만.
직접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그들이 격분했다.
-선을 넘는구나.
-진정 오만한 놈이로다.
-감히······!
분위기가 한창 험악해질 찰나.
다시금, 아인하사르가 나섰다.
“절대자들이시여. 그의 말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됩니다.”
-······?
-······?
그리곤 전혀 의외의 말을 쏟아냈다.
어쨌든 아인하사르도 용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당연히 용신회의 편을 들 줄 알았거늘.
절대자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어이가 없는 눈동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분위기.
아인하사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는 그가 ‘궤멸’과 싸우는 걸 직접 보았습니다. 그 광경은······ 태고용신 ‘융’님의 전투를 보는 듯했습니다.”
-··· 어허. 어디서 ‘융’님의 이름을 언급하느냐.
-네 녀석은 그분을 뵙적도 없을텐데.
강한 반발들.
그들에게도 ‘융’의 이름은 그처럼 대단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태고용신이라.
‘태고용신의 보물창고에서 보았던 그 녀석과 비슷한 용신인가?’
나는 ‘태고용신’의 존재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태고용신의 보물창고.
그곳에서 ‘최초의 불’을 찾은 덕에 ‘태고의 갑옷’을 만들었으니.
“예 저는 직접 그분을 뵌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천상’이 궤멸의 정수를 회수하고자 보낸 ‘진리의 문’을 그가 강제로 닫는 걸 똑똑히 보았습니다.”
-······!
-······ 뭐?
-······ 천상이 보낸 진리를?
절대자들은 상당히 놀란 반응이었다.
궤멸의 정수를 회수하고자 보낸 ‘진리의 문’을 나는 강제로 닫은 바가 있었다.
꺼지라고 욕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의아했다.
닫는 데 별반 힘이 들어가진 않았으니까.
내 의지대로 닫은 것에 불과했으니까.
아인하사르가 계속해서 말했다.
“태고용신 ‘융’님처럼, 혹은 천상의 천신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가능한 ‘진리’를 다루는 자입니다. 그의 영혼은 이미 이곳에 계신 절대자의 규격조차 넘어섰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니.”
이어, 그가 나를 바라보곤.
“··· ‘팬텀’이 마음만 먹는다면 용신회는 쑥대밭이 될 겁니다.”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진중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내 협박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
-······.
절대자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미궁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들은 직접 못 보았기 때문이다.
허나 아인하사르가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현재 지구엔 ‘용신’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지구의 담당자 ‘루카리아’가 마계의 이군주 이세라를 상대하다가 죽었으니, 용신회로서도 담당자의 공백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때마침 이 칼날용신의 ‘용맥’도 지구에 있으니 자격만 부여해주신다면······.”
-이미 후보자들이 있다.
-훨씬 더 강력한 용신을 보낼 것이다.
-마계의 군주들은 감히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용신을.
-최고회의에서 이미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가 진정 진리의 문을 강제로 닫을 수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우리로선 최고회의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
-지구의 용신은······.
-음?
그 순간이었다.
돌연, 절대자들이 입을 멈춘 것이다.
그리곤 이내 놀랍다는 듯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 최고회의가 다시 열렸군.
-‘그’가 새롭게 의제를 올렸다.
-믿을 수가 없다. 여태껏 한 번도 의견을 낸 적이 없는 ‘그’가······.
-그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 아니었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확실한 건 ‘최고회의’의 결정이 번복되었다는 것.
그러나 최고회의의 결정은 절대로 번복될 리 없다는 걸 알기에 아인하사르는 재차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누굽니까?”
이윽고 절대자들이 답했다.
-지구의 태초신.
-그가 자신의 세계를 담당할 용신의 후보자로 저 둘을 직접 선택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저자가 태초신마저 움직였다는 것이냐?
-하지만······ 돌연변이를······.
지구의 태초신.
익숙하다.
아마도, 내 심상 속에서 보았던 ‘눈’일 것이다.
영원한 방관자였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구는 그의 세계였으니, 용신의 후보를 직접 고를 권한 쯤은 분명히 있을 터.
문제는 하나도, 바사라도 모두 돌연변이라는 점이다.
저들은 결코 돌연변이가 용신의 자격을 정식으로 얻길 바라지 않는다.
허나 이마저 거절한다면, 다시금 ‘나’라는 존재가 걸릴 터이니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툭.
나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
여기는 용신회이고, 저들의 세계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여기서 내가 잃을 것보다 저들 잃을 게 더 많을 건 자명한 일.
한참의 침묵 끝에.
-······ 용신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건 오직 한 명뿐이다.
-네가 선택해라.
절대자 중 한 명이 말했다.
바사라와 하나.
둘 중 하나만이, 용신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고.
이게 그들이 낼 수 있는 마지막 제안이었다.
더 이상의 양보는 불가하다.
하지만.
‘내가 고르라고?’
내가 직접 고르라니.
생각지도 못한 외통수다.
그렇다고 둘 다 용신으로 만들겠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펼칠 수는 업는 노릇이었다.
진짜 전면전을 치룰 게 아닌 이상, 나도 한 발 물러나야한다.
‘······ 진짜 용신이 되고싶어하는 마음이 더 큰 건 바사라다.’
나는 보았다.
그녀가 나를 보았듯이, 나 역시 그녀의 삶을 마주했다.
돌연변이로 태어난 바사라는 용신들에게 억압받았다.
도망치듯 마계로 흘러갔으나, 진정으로 바사라가 원한 것은 용신이 되는 것이었다.
반면, 하나는 우연찮게 용신이 되었을 뿐이다.
마혈종의 여왕으로 시작해서 칼날용신이 되었을 따름이다.
처음부터 바랐던 것이 아니라.
바사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 그녀를 선택해라.”
“······.”
“나는 용신의 자격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그 자격이 없으면 칼날용신은 죽는다.”
그렇다.
칼날용신 하나는 죽어가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 ‘광란’이었고, 광란을 일으키면 본래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첫 번째 광란에선 이군주 이세라와 지구의 용신 루카리아의 심장으로 두 오버로드를 만들어 살 수 있었다.
광란의 조건 자체를 무효로 되돌렸던 탓이다.
그러나 이번 두 번째 광란은 달랐다.
‘조건을 무효화할 수 없다.’
내가 되살아났음에도 칼날용신 하나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바사라의 말마따나 용신의 자격을 얻지 않으면 하나는 이대로 죽을 것이다.
-······ 부럽군.
문득, 이곳에 오기 전 바사라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녀는 나와 하나의 관계를 부럽다고 말했다.
냉혈의 군주.
마계의 칠군주이자 냉소만이 가득했던 그녀가 누군가를 부러워할 일 따윈 없을 텐데도.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용신회가 그녀를 용신으로 받아주지 않을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박해 받았으므로.
태어날 때부터 ‘돌연변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하나를 살릴 생각이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바사라는 처음부터 자신이 용신의 자격을 부여받으리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같이 와주었다.
방법을 알려주었다.
······ 왜?
자신이 득 볼 것이라곤 한 가지도 없을 텐데, 왜 나를 돕는 건가.
나를 깨우고, 하나까지 살리려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동생 이세라의 죽음마저도 냉담하게 대한, 정과 같은 감정 따윈 일절 없는 바사라가 나를 좋아할 리도 없었고.
백 번, 천 번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자신의 꿈마저 포기하려는 저 맹목적인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잠시의 침묵.
··· 더 미룰 수 없는 선택의 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