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묘수.
“둘 다 선택하지 않겠다.”
내 대답은 간결했다.
용신이 되어야만 살 수 있는 하나.
누구보다도 용신이 되고싶은 바사라.
둘 중 하나를 고르는건 내가 생각한 답이 아니었으므로.
-······?
-선택을, 안 하겠다고?
-용신의 자격이 필요없다는 것이냐?
절대자들의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
“······ 왜 그런 선택을······?”
바사라의 눈가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당연한 반응이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대로 하나의 죽음을 방관할 것이냐는 물음.
하지만 애초에, 시작이 잘못됐다.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다.
선택지를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선택해라.”
선택지를 주는 사람이다.
용신의 자격을 구걸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저들의 장단에 놀아줄 생각도, 저들의 거래에 응할 생각조차 없다.
-······ 우리보고 선택하라는 말이냐?
-돌연변이 둘중 한 명이 용신이 되는 것을?
나의 발언에 그들은 난색을 표했다.
돌연변이를 용신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둘 중 한명을 자신들이 선택하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이 역시 내 의도와 다르다.
내가 말한 ‘선택’은 하나와 바사라 중 한 명을 골라달라는 말과는 아예 상관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저들에게 이중택일의 선택지를 던졌다.
“내가 용신회에 소속되는 것과 나와 전쟁을 하는 것.”
빙글 웃으며 말하자 절대자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
-그게 무슨······?
-용도 아닌 자가 용신회에?
용신회에 가입할 수 있는 건 오직 용신뿐이다.
용신의 자격과 업을 지닌 지고한 용만이 소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이 맹점이었다.
“나는 용신이 추앙하는 존재다. 나야말로 더욱이 지고한 용신이라 할 수 있을 터.”
내겐 특별한 ‘업’이 있었다.
바로 하나로 인해 생겨난 ‘용신-추종자’의 업(業)!
칼날용신 하나가 나를 추앙한다는 내용이며, 내가 공격당할 때만 타격할 수 있는 ‘무적’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업이 하나가 광란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다.
나와 칼날용신 하나가 영혼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 공백이 하나의 광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로.
‘내가 자격을 부여받는 건 하나가 자격을 부여받음과 같다.’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다.
바사라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물론 하나와 달리 바라사와는 연결되어있지 않지만.
‘용신회의 절대자가 되면, 용신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저 ‘절대자’의 칭호를 내가 가지면 되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직접 바사라에게 ‘용신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게 될 터이니!
나는 당당히 그들을 도발했다.
“지금 당장 선택해라. 나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나와 전쟁을 할 것인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여 말했다.
“물론, 후자를 고른다면 내 앞에 있는 너희 둘은 확실하게 죽는다.”
-······.
“모를 것 같았나? 혼자서 여럿인 척 다역을 하는 한 놈,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보는 한 놈. 너희 둘 말이다.”
틀림없이 말하는 절대자는 최소 다섯 이상이었다.
나는 이것이 연기임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혼돈을 주고자 다수인 척하였으나.
결국 두 명이다.
그것도 대화를 이어가는 건 한놈뿐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그저 뒤에서 가만히 있을 따름이었다.
순간.
-놀랍군.
목소리가 합쳐졌다.
용신.
언령을 다루는 절대적인 존재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알아본 거지?
“보인다만.”
-······.
절대자는 할말을 잃은 듯했다.
그러나 보인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 진짜로 보였으니까.
‘진리의 눈’을 통해서 저들의 형체가 뚜렷하게 말이다.
-멸망의 힘을 다루는 자는 용신이 될 수 없다. 절대로.
절대자가 힘을 주어 말했다.
세계를 수호하는 용신과 멸망은 상극의 존재.
되고싶다고 하여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였다.
“··· 그러나 단순한 용신이 아닌, 용신회에 들어오고자 하는 거라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뚜벅, 뚜벅.
누군가가 어둠으로부터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
조각처럼 빚어놓은 듯 아름답기 짝이 없다.
에메랄드빛 머리칼을 소유한 묘령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 아샤님을 뵙습니다.”
용신 아인하사르가 급히 몸을 낮췄다.
누구일까.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아인하사르를 이토록 당환시키다니.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아샤’님······!
뒤에 있던 절대자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이 묘령의 여인이 둘 중 한 명이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절대자가 바로 이 여자였다.
곧이어 뒤에서 키만 3m에 달하는 남자가 뛰쳐나왔다.
‘어마어마한 황금률의 양이군.’
갈무리하여 감춰두었으나 내게는 느껴졌다.
저들의 몸 안에서 순환하고 있는 마력의 고리가.
무한히 순환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근원의 마력!
거대한 ‘황금률’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이윽고 아샤라 불린 여인이 말했다.
“듣자 하니 그대는 ‘용신’의 자격을 받는 것보다 그 위를 지향하는 것 같더군요. ‘절대자’의 업을 말이에요.”
“아샤님. 그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절대자의 자격은 ‘태고용신’님들의 추천이 있어야만 겨우 시도나 할 수 있는 것!”
뒤따라온 남자가 결사반대를 외쳤다.
한데, 용신회의 계급도가 어렴풋이 보이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일반 용신, 절대자, 태고용신의 순서로 계급이 높아지는 듯싶었다.
그 아래로는 그들로선 용신으로 취급할 수 없는 돌연변이 등이 있는 것이고.
나를 살피던 아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루인. 그는 이미 태고용신님의 추천을 받았어요.”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 갑옷.”
그리곤 아샤가 손을 뻗어 내 몸 위에 얹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멀뚱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조금 놀라고 있었다.
지금 아샤가 만진 건 내 몸이 아니라, 내 몸을 지키고 있는 ‘태고의 갑옷’이었으니까.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반면 ‘루인’이라 불린 절대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태고의 갑옷은 보이지 않는다.
원하는 형태로 모습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투명화시킬 수도 있었다.
허나 그녀는 확실하게 알아보았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갑옷에서 태고용신 ‘융’님의 자취가 느껴져요. ‘최초의 불’이 붙어있던 나무막대기······ 맞나요?”
“······ 태고용신 융님의······?!”
절대자 루인의 두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러나 그녀의 말은 정답이었다.
“용케 알아보는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샤가 얕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역시, ‘융’님은 아직 존재하고 계시는지요?”
살아있느냐도 아니고 존재하고 있느냐 묻는다.
묘한 물음이지만 이 역시 긍정했다.
저들이 말하는 ‘융’이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창고에 갇혀있었다.”
태고용신의 보물창고.
나는 그곳에서 ‘태고용신의 영혼’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 여전히 ‘원형’들을 버리지 못하셨나 보군요.”
씁쓸한 눈빛을 지으며 아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분께선 언제나 저희에게 ‘원형’의 가치를 강조했어요. 세계를 지키고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새로우며 더 강한 무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이라고 하셨었죠.”
최초의 원형들.
그로 말미암아 나는 ‘태고’의 등급인 갑옷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나는 자연히 생긴 의문을 입에 담았다.
“왜 융은 용신회가 아니라 그곳에 있던 거지?”
“용신회에서 스스로 나가셨어요. ‘천상’에 대적할 무기는 그딴 게 아니라며······ 다른 태고용신님들과 의견이 부딪혔죠.”
과연, 그랬던가.
하지만 태고용신 ‘융’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태고 등급은 멸망에게도 통하는 힘.
최초의 불마저도 궤멸을 붙잡아두지 않았던가.
그러나 용신회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분께서 가장 아끼시던 나무막대기와 불을 건넸다는 건, 당신의 자격을 직접 확인하셨다는 뜻이죠.”
“아샤님······!”
엄밀히 말해서 건넨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직접 찾았으니까.
루인이 아샤를 말리고 나섰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제 직권으로 이 문제와 다른 소소한 문제들 정도는 해결할 수 있어요. 다만,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관문 하나가 남아있답니다.”
그녀는 용신회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지닌 듯했다.
저토록 자신하는 걸 보면.
하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게 상당히 궁금했다.
“그 관문이 뭐지?”
“그대가 어떤 종류의 ‘언령’을 가졌는지 확인하는 것.”
“언령? 말의 힘 말인가?”
“네. 말은 힘이며, 영혼에 쌓이지요. 용신은 ‘염원구슬’을 통해 언령을 발휘하고, 절대자는 스스로의 ‘입’을 통해 특정 부류의 언령을 발휘하게 돼요.”
“각자 발휘하는 분야가 다른가 보군.”
“맞아요. 예를 들어 ‘루인’은 절대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언령을 소유하고 있답니다. 그가 ‘죽음’을 입에 담으면 감히 용신이라 할지라도 죽어야만 하죠. 대신 다른 언령에는 상당히 약해요. 조금 전 ‘꿇으라’ 말했던 건 많이 약했죠.”
“아, 아샤님······.”
대놓고 약하다고 말하자 루인은 당황했다.
어쨌든 용신과 절대자의 차이가 이것인 듯싶었다.
강력한 용언의 유무 말이다.
이는 절대자의 용언이 용신이 지닌 ‘염원구슬’보다도 더 상위에 위치했다는 뜻.
아샤가 이어서 말했다.
“만약 그대가 언령의 힘을 지니지 않았다면 절대자는 될 수 없어요.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답니다.”
“그럼 확인하면 되겠군.”
“시원해서 좋네요.”
아샤가 웃었다.
그리곤 등을 돌려 걸으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
말은 힘이며, 영혼에 쌓인다.
영혼의 격이 약한 존재는 언령을 발휘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격이 아무리 강대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언령을 깨우치려거든 ‘염원의 신’을 만나야만 한다.
절대자는 염원신의 시련을 통과 해 영혼의 힘을, 언령과 염원의 능력을 깨우친 자들뿐이었다.
‘그는 궤멸을 죽이고, 진리의 문을 강제로 닫은 존재야.’
아샤는 생각했다.
또 다른 멸망인 ‘종말’을 소유한 괴물이다.
그를 용신회의 절대자로 끌어들이는 건 상당한 논란을 야기하겠지만, 그야말로 용신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상징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하물며 태고용신 ‘융’이 인정한 자.
-··· ‘팬텀’이 마음만 먹는다면 용신회는 쑥대밭이 될 겁니다.
용신 아인하사르의 그 말도 걸린다.
그만큼 위험한 존재라면, 서로 죽이는 것보단 동료가 되는 게 낫다.
생각보다 대화도 곧잘 통했고.
‘언령신의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까?’
다만, 문제는 언령의 소유 여부였다.
용신들이 ‘염원구슬’을 사용하는 건 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해서다.
제대로된 언령을 다룰 수 없는 탓이었다.
아샤가 정면을 바라봤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염원구슬’의 안으로 팬텀이 들어간 지 3분이 흘렀다.
만약 그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마음대로 ‘염원신’에게 그를 보인 죄로 상당한 질책을 받게 될 것이다.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
아샤는 기원했다.
보통 절대자들이 언령신의 시련을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일 정도.
그 범위 내라면 느릿느릿한 태고용신들도 눈치채지 못할 테다.
허나 그 이상의 기일이 걸리면 들킨다.
“아샤님. 정말 괜찮··· 겠습니까?”
루인이 걱정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들키면 아샤의 위치도 위태로워지니까.
과연 이 선택이 잘한 선택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몇분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투욱.
투우우욱.
느릿한 발걸음으로, 누군가가 안에서 나오고 있다.
들어간지 이제 고작 5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실패했구나.’
아샤는 내심 실망했다.
“······ 통과하지 못했나보군요.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이야.”
루인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염원신이 아무에게나 힘을 깨우치게 만들었다면 절대자의 숫자는 넘쳐났을 것이다.
이토록 빨리 나온다는 건 더 볼 여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강대한 존재라고는 하나, 언령의 힘을 발휘하기엔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툭!
순간, ‘팬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약간의 실망을 담아 그를 바라본 아샤와 루인은.
“······.”
“오, 오 분 만에 염원신의 시련을 통과했다고······?!”
기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뺨 옆에 작게 새겨진 X의 표식.
··· 그건 그가 염원신에게 인정받았다는 의미였으므로.
5분 만에 염원신의 시련을 통과한 건 그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표, 표식이······ 하나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