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마지막 인사.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
란돌프가 아닌 박현명으로서 판게니아에 입장할 수 있게 된 나는, 투신의 탑을 올라 라이가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팔가의 땅인 ‘명예의 성소’에서 대장로인 알비노 만났다.
성소에 숨겨진 ‘명예의 세계수’를 찾아냈으며, 세계수 내부에 있는 던전을 클리어해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됐고, ‘원탁의 기사단’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 그 과정에서.
라이가는 나를 진심으로 여겼다.
그로 인해 배운 것들이 결코 적지 않다.
라이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結)’의 묘리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끊고 맺는 것.
빌헬름의 검술과 라이가의 검술 사이에서 완성된 ‘무장해제’ 말이다.
명예의 세계수를 찾아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알비노의 인정을 받아 세계수의 던전에 입장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을 터였다.
라이가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지.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라이가가 독백을 시작했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무언가의 이해가 깔린 목소리로.
“허나 틀림없는 오문개방의 부작용이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지. 나는 급해졌다. 제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개요였다.
마땅한 제자 한 명 없었던 라이가.
그가 죽으면 팔가의 맥이 끊긴다.
하여, 라이가는 자신의 제자를 구하는 공고를 대륙 전체에 낸 뒤 투신의 탑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투신의 탑에서 만난 너는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생사경의 해석을 완벽하게 해냈으니. 나도 하지 못했던 기적이다. 드디어 내 전부를 계승할 제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무신의 재능을 지닌 제자를.”
그때의 전율과 감동을 라이가는 잊을 수 없다.
자신을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제자를 만났으니까.
모든 걸 아낌없이 전하리라.
이 녀석의 재능이라면, 오문의 완성 그 너머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팔가와 그의 염원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이가는 기뻤다.
진심으로 기뻐했다.
비록 자신은 죽을지언정,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남길 수 있다는 생각에.
“······ 착각이었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애초에, 내가 왜 하지도 않은 ‘오문개방’의 부작용으로 죽어가고 있었을까?”
라이가의 눈빛이 무거워진다.
스릉-
그는 천천히, 검을 쥐었다.
“‘신의 섬’에서 기억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오문개방’을 했다. 그리고 팬텀, 네가 나의 기억을 지웠다.”
전부 기억났다.
기억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용신 아인하사르가 ‘생존 퀘스트’의 기억을 ‘팬텀의 아바타’들에게 흩뿌릴 때, 뿌려진 기억이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탓이다.
봉인되고 지워진 나에 관한 기억 일체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엔 ‘신의 섬’에서 없어진 라이가의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이가가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나를 비웃었나? 처음부터······ 모든 게 계획적이었나?”
“오해라고 해도, 믿지 않겠지.”
이해한다.
라이가의 분노를.
나였다고 해도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말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감정의 골이다.
그래서-
스릉!
나 역시 검을 뽑아, 쥐었다.
말보단 행동으로.
검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편할 듯싶었으므로.
후우웅!
라이가의 전신에 황금빛이 맴돈다.
오문개방!
게다가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빛이었다.
기억을 되찾고, 경지 또한 오른 모양이었다.
죽음에서 벗어나 완전하게 오문개방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쩌렁!
땅을 박찬 라이가의 신형이 어느덧 코앞에 있었다.
검을 들어 막아내자 전신이 요동쳤다.
‘······ 아프군.’
팔목이 저릿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다.
이것이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리라.
분노보다도, 사실은 아픈 것이다.
마음이.
쉬이익!
라이가의 검에 돌풍이 깃든다.
사선으로 내리긋자, 상반신이 주춤대기 시작했다.
균형을 강제로 잃게 만든 것이다.
‘결······!’
결의 묘리다.
하지만 라이가는 오직 ‘끊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한데, 지금 그의 검에 실린 묘리는 ‘맺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마음대로 끊고, 마음대로 맺어서, 균형을 잃게 했다.
놀랍지 않은가.
그 짧은 사이에 오문과 결의 묘리를 모두 완성했다는 게.
내가 라이가에게 한 수 배웠듯이, 라이가도 내게 배운 셈이다.
하지만 결(結)의 대결이라면 가만히 당해줄 생각이 없다.
‘무장해제.’
스슷-!
라이가의 검에 깃든 돌풍이 사라졌다.
그리고.
쩌적!
“······!”
라이가의 눈에 이채가 떴다.
자신이 휘두르던 검에, 균열이 생겼으니까.
검기, 검강, 검환으로 감싼 최강의 검이다.
절대로 타격할 수 없는 그 검 자체를 무장해제시킨 것이다.
균열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콰칭-!
곧, 라이가의 검이 깨졌다.
패배를 받아들인 건가?
‘조각에 강환을 담았다.’
아니다.
강환의 기운을 부서진 검 조각에 모조리 투입한 것이다.
설마 무장해제를 이런 식으로 받아칠 줄이야.
싸움의 센스 자체는, 궤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꽈아아아아앙!
내게 닿은 조각들이 강렬한 폭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나.
“······ 역시, 도달했던가.”
짧게 물러난 라이가가 말했다.
나를 바라보며,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육문을······ 개방했구나.”
육문개방!
천마가 자폭하고, 죽음을 받아들이자 마침내 가능해진 것이다.
원시천마가 발휘할 수 있는 최강의 비기.
팔가의 기원이자 라이가의 꿈이었던 경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아수라(阿修羅).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따윈 없었다.
오문을 개방한 라이가처럼 황금빛을 띄지도 않았다.
하지만 라이가는 본 즉시 알아보았다.
나의 상태가 이미 육문에 도달했음을.
오문은 인간의 영역이나, 육문은 신의 영역이다.
열 수 있는 모든 문을 열고, 신과 하나가 되는 경지였다.
그러나.
“잠깐······ 육문의 개방이 끝이 아니라고······?”
라이가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꿈을 제자가 이루었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탓이다.
궤멸을 상대할 당시 이미 나는 육문 개방의 사용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리고 궤멸을 죽이며, ‘궤멸의 정수’를 부수며 그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허나 칠문의 영역에는 아직 닿지 못한 상태였다.
‘절대자의 업을 거머쥐자 드디어 닿았지.’
-칠문 개방.
-절대자 아수라.
“칠문······!”
철그렁!
라이가는 쥐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았으므로.
아니,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걸, 자신의 공격을 그저 받아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이만한 굴욕이 어디 있을까.
제국의 최강이며 판게니아의 최강이라 자부했던 그가.
라이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오문은 모든 잠재력을 격발하고, 육문은 전부 비워 신이 된다. 오문을 완성하면 하늘아래 적수가 없고, 육문을 완성하면 고금 이래 적수가 없다. 그런데 칠문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지이거늘······.”
이론이라 말했지만, 그야말로 꿈속의 경지와 다름이 없다.
육문에 닿은 자는 있지만 칠문에 닿은 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
그래서 더욱이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문을 개방하고, 완성한 건 팔가의 역사에 두 명뿐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나다 정평이 난 천재들 356명 중 고작 두 명! 초대 팔가의 가주와 나 말이다.”
수많은 천재가 도전하고 좌절했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음에 절망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 겨우 완성한 것이다.
그조차도 고작 오문이거늘.
육문을 넘어, 칠문이라니?
“무엇이 달라졌지? 무엇이 보이지?”
라이가는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 나는 칠문을 개방했다.
진리에 등록되지 않은, 그 너머의 영역에!
칠문의 경지는 가장 강력한 주신(主神)과 동급으로 치부된다.
과거 신들이 번성한 시절, 신들이 가장 강력했던 때에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두 여신과 비견되는 격을 스스로 거머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투신의 탑에서 만난 ‘흉과 재’의 주신들도 전처럼 나를 대하진 못하리라.
동시에 나는 알게 됐다.
‘이 이상이 존재한다.’
현재의 나는 감히 판게니아의 최강자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겠으나.
천상을 상대하려거든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꼭대기의 외신들, 전우주적인 선지자들을 비롯해 가장 강력했던 ‘멸망’을 넘어서려거든!
물론, 그 방법도 알겠다.
생각을 정리한 후 라이가에게 말했다.
“가능성이 보인다.”
“······ 가능성이?”
칠문을 개방함과 동시에 모든 게 달라졌다.
하지만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보는 것’이다.
지금의 내겐 다른 이들의 ‘가능성’이 보인다.
아니, ‘잠재력’이라고 해야 할까.
【SSS ‘검의 귀재’】
【854/1,140】
영어와 설명, 그리고 숫자가 보인다.
처음에는 이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앞 뒤 숫자가 모두 달랐으니까.
하지만 허드슨과 몇몇 이들의 대조를 통해 알게 됐다.
‘이건 현재의 능력치와 최대 성장치다.’
올릴 수 있는 능력치의 한계.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등급화하여 표시한 것이리라.
인재육성을 위한 최고의 능력인 셈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수라계’에 사도를 등록하십시오.】
【등록된 사도의 재능과 능력이 뛰어날수록 ‘절대자 아수라’의 힘이 강해집니다.】
【‘아수라계’에 등록된 재능이 ‘절대자 아수라’에게 적용됩니다.】
【같은 재능일 경우, 가장 높은 등급이 ‘절대자 아수라’에게 적용됩니다.】
【F급부터 SSS급의 재능이 있으며, SSS급 이상의 재능을 ‘절대자 아수라’가 학습할 경우 ‘그 너머의 영역’에 닿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절대자 아수라.
말 그대로 ‘신격화’된 것이다.
심지어 등록한 사도의 재능을 넘어서는 것조차 가능하다.
“······ 상대가 안 되는군.”
라이가는 포기했다.
자신의 패배를 선포하였다.
이 정도로 아득히 뛰어넘어버리면 싸울 의지조차 들지 않는 법.
다만.
나를 바라보는 라이가의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가르침은 네가 아닌 내가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반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나를 보며, 라이가는 또 다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편견이 깨지고 시야가 넓어지며 ‘그 너머’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와의 관계를 초기화하겠다. 분노도, 기쁨도, 전부 없던 것으로 하겠다. 나는 제국과 황제를 지키는 검이니. 검에겐 감정이 있으면 아니 되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 다시 겨뤄보자.”
신의 섬에서 내가 그의 기억을 지웠던 것처럼.
그 역시 나와의 기억을 스스로 지우겠다는 의미였다.
일체의 감정을 지우고, 다시 쌓겠다는 뜻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어, 라이가가 알비노의 무덤을 바라봤다.
“······ 나는 가족을 모른다. 가족이란 게 무엇인지, 알지를 못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건, 그건 아마도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사이를 말하는 것일 테지.”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고.
당연히 알비노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왜인지 나에게도 하는 말 같은 묘한 울림이었다.
이윽고 라이가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발을 옮기며 말했다.
“잘 지내거라, 현.”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뒷모습.
현.
팬텀이 아닌, 제자일 때 나의 이름을 불렀다.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마도 이게 내가 제자로서 그에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인사일 테니.
“··· 잘 지내십시오, 스승님.”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계절이 바뀌고, 모든 이들이 달라질 시간.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깡-!
까앙!
대장간에 울려퍼지는 망치 소리.
나는 열심히 망치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태고를 만든다.’
오직 그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오피러브
늑대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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