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1)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1화
태고의 검
나는 아직 제대로 ‘종말’의 힘을 다뤄본 적이 없다.
종말을 선포하여 세계를 멸망으로 이끄는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저 ‘존재’에 한해, 종말을 휘둘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전과 달랐다.
‘룬드말. 녀석은 세계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이 세계 자체가 이미 룬드말의 영역이 되었다.
귀속되었다.
세계가 지속하는 한 무한하게 마력을 공급받을 수 있기에,단순히 ‘종말’의 힘을 휘둘러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룬드말이 아닌 세계 전체에 종말을 가져와야 한다.
하여, 주저했다.
세계를 멸망시키는 게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아직 이 세계를 사랑하는 존재들이 남아있음에.
허나 사탄과 룬드말의 대화를 듣고, 녀석과 대적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룬드말.
녀석을 한 번 베어보니 알겠다.
놈을 가만히 놔두면 모든 세계를 망칠 것이다.
끝을 모르는 탐욕을 지니고 있었다.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
‘내가 바라는 건, 룬드말의 종말이다.’
종말을 선포하면 세계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허나, 내가 끝내고자 하는 것은 이 ‘룬드말의 세계’다.
그렇게 ‘종말 선포’를 함과 동시에.
종말의 탑이 세워지며, ‘종말’이 튀어나왔다.
고오오오오오-
종말은 순식간에 세계로 뻗어 나갔다.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고, 모든 게 완연한 어둠에 잠겼다.
그러자.
“영역 전개······ 아니, 영역 전쟁인가?”
룬드말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그와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서로의 무력 대결이 아닌, ‘영역 전쟁’이었다.
“아무리 네놈이 경외의 존재라고 하나, 혼자서 세계를 상대하는 건 불가할 터. 하물며 이 세계는 너의 세계가 아니다.”
맞다.
룬드말의 이야기는 틀린 게 없었다.
타차원.
나는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에 불과하다.
이 세계의 규칙도, 이 세계의 마력 흐름도 내가 경험한 것과 다르다.
당연히 온전하게 무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쿠아아아아아아앙!
세계의 중심부.
순간 땅이 열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거대하기 짝이 없는··· 마치 지렁이와 같이 생긴 것.
피와 같이 붉었으나, 저것이 이 세계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그것은 튀어나온 즉시, ‘종말’을 물었다.
“종말··· 저걸 떼어놓은 건 네놈의 실책이다. 이제 내 마력을 감당할 수 없겠지.”
룬드말은 미소지었다.
여태껏 그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이유가, 순전히 내가 ‘종말’을 둘러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종말에 의해 룬드말의 마력은 내게 닿지 못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근원에 의해, 나 또한 룬드말을 죽일 수 없었고.
무한하게 재생하는 룬드말을 따로 죽이는 건 불가한 일이었다.
내가 종말을 불러, 룬드말의 세계와 부딪히게 만든 이유였다.
“제대로 시작하지.”
서로가 죽고, 죽일 수 있는 판을 깐 것이다.
룬드말은 세계 자체를 움직이는 존재.
오랜 시간 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 전력을 쏟아 넣은 자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당연히 ‘종말’도 이 세계를 한 번에 멸망으로 이끌진 못했다.
“···오냐. 장난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그래서일까.
위협을 느낀 룬드말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곧 그의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두 눈은 붉은 태양처럼 변했고, 양쪽 어깨와 머리, 가슴팍을 비롯한 육체 곳곳에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내 몸이 곧 세계이니,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진화다.”
여태껏 흡수한 모든 룬의 마력을 통틀어 진화를 끝낸 것이다.
조금 전까지 쏘아낸 마력은 애들 장난 수준도 되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마력의 농도가, 차원이 다르다.
저 상태의 룬드말은 절대신과 같았다.
궤멸을 죽이고 천상의 신들 마주했을 때, 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근원’을 떼어놓았다고는 하나, 나 역시 ‘종말’을 떼어놓았으니, 당장 룬드말을 죽일 수단은 없었다.
허나.
스릉.
나는 사탄과 겨울을 하나로 합쳤다.
사탄은 닿는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극열의 성질을 갖고 있었다.
겨울은 반대로 시야에 닿는 모든 영역을 얼릴 수 있는 극한의 성질을 지녔다.
지고한 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둘을 완벽하게 세공한 이유는 단순히 따로 놀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으하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번 한 번 만입니다.
합일(合一).
나와 사탄, 겨울을 삼위일체(三位一體) 하기 위함이었다.
나 또한,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려온 것이었다.
《태초의 존재와 지고한 존재가 잠시 동안 합쳐집니다.》
《이는 이 세계의 규칙과는 전혀 다른 방식.》
《먹고, 먹히는 게 아닌, 진정한 합일의 방식입니다.》
《규격 외의 행동에 새로운 ‘진리’가 꿈틀거립니다.》
《‘태고의 검(진리 1급)’이 완성되었습니다.》
*
“최,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
수호기사 안드로가 다급하게 외쳤다.
룬드말 왕이 본격적인 권능을 발현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본격적인 세계의 잠식.
모든 걸 먹어치우기 위한 포석.
레메게톤 왕을 판게니아로 보낸 것 역시, 계산된 행동이었다.
레메게톤 왕만 없으면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못할 터이니.
“······.”
디트리히는 세계의 격변을 바라보았다.
압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세계 전역에서 보일 정도로 거대하기 짝이 없는 붉은 용이 튀어나와 ‘종말’을 물자, 종말 역시 붉은 용을 감싸며 대결을 시작했다.
저토록 거대한 재앙을, 디트리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누구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게 대체······.’
···생명체의 싸움이 맞는 건가?
설령 신이라고 할지라도 저 정도 규모의 전쟁을 벌일 수는 없을 것 같다.
판게니아에서 두 존재가 튀어나왔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륙의 4분의 1은 날아갔을 테다.
그 정도로 커다랗다.
“드워프들은 안 됐지만, 우리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구해야 해요.”
탑에 갇혀있던 드워프들.
그들은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다리가 잘리거나, 장기를 먹혔거나, 고문을 당한 흔적이 즐비하다.
그 숫자가 수백이었다.
“가까이 있는 존재부터 먹힐 거다!”
“믿는다, 팬텀을.”
“아무리 ‘멸망’이라도··· 멸망할 세계를 멸망시킬 순 없어!”
현재, 룬드말은 멸망의 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룬드말 본인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멸망은 출현한 뒤, 세계를 멸망시키며 힘을 급속도로 늘린다.
한데 멸망시킬 세계가 없다면, 그 힘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종말’이 세계의 근원과 맞붙게 된 배경이었다.
팬텀이 룬드말을 압살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분은 멸망 같은 게 아니다.”
디트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팬텀은 멸망이 아니라고.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저게 멸망이 아니라고?”
수호기사 안드로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봐도 종말은 세계를 먹어치우고 멸망시키고 있었다.
그것을 다루는 팬텀 역시 멸망이라 봐야 할 터였다.
“저분께선······ ‘구원자’이시다.”
디트리히는 가까이서 그가 행한 기적을 지켜보았다.
그는 세계의 멸망에 관심이 없다.
도리어, 세계를 구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 자가 어떻게 ‘멸망’이 될 수 있겠나.
그 순간이었다.
디트리히는 시선을 돌려, 팬텀을 바라봤다.
“······.”
“······.”
세상에 갑자기 적막이 찾아왔다.
디트리히와 안드로만이 아니라,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춘 채 팬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출현했으니까.
두 자루의 검이 합쳐지자, 상식을 벗어난 존재가 나타났다.
생긴 것은 투박하기 그지 없는, 그저 검 한 자루였다.
“무엇이냐······ 어떻게 사탄을 먹인 거지?”
룬드말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탄과 같은 존재가, 다른 검에 먹히는 걸 이해할 수 없어서다.
그는 사탄이 먹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합일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무지(無智)했으므로.
그렇다.
그들의 세계엔 깨달음이 없다.
룬을 먹어 강해지는 일만이 진리처럼 여겨졌다.
생명의 소중함, 시간의 중요함, 스스로를 돌아보는 경험이 부재했다.
깨달음이 없으니, 영혼이 없다.
사탄이 다른 규칙 속에 섞였다는 걸 룬드말은 부정했다.
합쳐진 게 아니라, 먹혔다고 생각했다.
“···부숴주마.”
룬드말은 검을 들었다.
모든 걸 녹이는, 태양의 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방을 태웠다.
쉬익!
꽈르릉!
룬드말이 검을 휘둘렀다.
태양조차 쪼갤 듯한 거센 검기가 몰아치며 팬텀을 노렸다.
찰나, 룬드말은 검기와 함께 팬텀에게 쇄도했다.
쿠와아아아아앙!
땅이 움푹 패인다.
룬드말은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계속해서 검격을 날렸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며, 무저갱과 같은 깊은 동굴을 만들었다.
그리고 룬드말이 타격을 가할 때마다-
팬텀의 전신에는 상처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피부 겉면이 뽀글대며 육체가 타올랐다.
‘막아서는 것만으로도 한계겠지.’
당연한 것이다.
종말을 떼어낸 이상, 그의 압도적인 마력을 버텨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뿐만인가.
최종의 진화를 끝낸 룬드말은 무적이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아도 룬을 태울만큼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너의 룬이 보인다.’
룬드말은 육신이 아닌 그 너머의 룬을 보고 있었다.
압셀론의 ‘본질을 꿰뚫는’ 눈이 그에게 적용된 것이다.
이는 압셀론의 룬 절반을 전부 흡수했다는 증명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진 자신의 힘을 어찌 막아내겠나.
종말을 걷어내고, 물질적인 육체를 걷어내자, 팬텀의 본질이 보였다.
‘저것이 너의 룬이겠지.’
꽁꽁 숨겨놓았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거대한 집과 같은 것.
그 안에, 팬텀의 가장 중요한 게 있다.
룬드말은 모든걸 태웠다.
팬텀의 집도 피해갈 순 없었다.
하지만, 집의 내부가 드러났을 때.
룬드말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룬이 하나가 아니야······?’
이상하다.
하나의 존재에게는 하나의 룬만이 허락되어야할진대.
팬텀의 룬은, 하나가 아니었다.
많다.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많은 룬을 집이라는 형태로 합쳐놨을 뿐이다.
이 역시, 사탄과 겨울이 합쳐진 맥락과 같았다.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를 멸망시키는 존재가, 이처럼 많은 룬을 지키고 있음에.
룬을, 영혼을 먹지 않고, 서로 아껴주는 모습이. 그리하여 계속해서 나아가는 또 다른 진화의 형태가.
도저히 멸망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찰나였다.
“···내게도 보인다, 룬드말. 너의 ‘룬’이.”
씨익.
팬텀은 웃었다.
보였으니까.
룬드말의 룬이.
룬 너머의,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룬드말의 본체가 말이다.
마침내 그가 움직였다.
방어일변도에서 처음으로 기세를 바꾸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스컥!
세상이 반으로 쪼개졌다.
오피러브
늑대훈련소
TXT viewer control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4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