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0)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0화
선포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아득한 세월 이전에.
세 왕과 사탄은 ‘천상’에 의해, ‘멸망’이 될 운명이었다.
이 무한하게 진화하는 세계는 천상의 실험실이었고, 천상은 이곳에서 ‘멸망’을 만들어내는 걸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만들 수 없었다.
애초에- ‘멸망’은 지고한 영혼과 격을 달성하여, ‘진리’를 꿰뚫어 본 자의 존재로 만들어지는 것.
그러나 이 세계의 왕들은, 비록 그 무력이 ‘멸망’에 닿아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멸망’이 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얻은 힘은 룬으로 인한 강제적인 진화에 불과했던 탓이다.
스스로 쌓아 올린 격이 아니다.
완성되지 못한 불량품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하여 천상은 ‘사탄’을 만들었다.
최소한의 룬만을 섭취하여 진화토록 설계했다.
그럼에도 실패했다.
결국, 이 세계에선 ‘멸망’을 만들 수 없다고 천상은 결론을 내렸다.
그 틈을 타서, 그들은 천상의 문을 닫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천상을 증오한다.’
룬드말 왕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천상을 더없이 증오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멸망을, 증오한다.’
멸망이란 존재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천상은 그들을 ‘멸망’으로 만들고자 온갖 실험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육체와 룬을 해부하고, 수없이 재조립한 뒤, 온갖 이물질을 들이부어 영겁의 고통을 느끼게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룬드말 왕은 아직도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만이 아니다.
레메게톤도, 압셀론도, 사탄 역시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중이었다.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선 이 세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판게니아를 정복하고, 지배하여 신이 되는 것 외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해결방법이 제알아서 찾아왔다.
“너를 먹으면, 이 고통을 더 느끼지 않게 되겠지.”
멸망을 먹는 것.
그리하여, 멸망 이상의 격을 갖추는 것!
천상이 헤집어놓은 상처를 치료할 최상의 방법이다.
비록 여태껏 마주한 적 없는 종류의 적이나, 룬드말 왕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다.
천상의 문을 닫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무력을 갖추었다.
거기다 압셀론의 룬을 절반이나 먹었으니······ 진짜 ‘멸망’이라 하여도, 물러날 이유 따윈 없는 것이다.
룬드말 왕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멸망’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뒤였다.
그는 양손을 겹쳤다.
그러자 양손에 깃든 ‘두 개의 입’이 서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느덧 룬드말의 신체는 사라져갔다.
“세계여, 타올라라.”
팔, 몸통, 다리, 마침내 머리까지 먹어치웠을 때, 룬드말은 마지막 권능을 발현하였다.
동시에.
“······이 미친 새끼!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구나!”
사탄은 경악을 내뱉었다.
하늘에 붉은 태양을 몇 개나 띄워도 지금 나타난 멸망에 비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룬드말 왕은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양손에 깃든 ‘마력을 먹어치워 배로 돌려주는’ 입을 통해, 스스로를 먹이고 이 세계 자체를 ‘붉은 태양’으로 만들었다.
구오오오오오오오-
세계가 타오른다.
세계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마력’을 빨아들인다.
“당장 멈춰라, 룬드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거냐!!”
룬드말은 지금, 세계를 먹고 있다.
세계 위에 있는 모든 ‘룬’을 먹어치우는 중이다.
세계 자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냐. 언제부터 준비한 거냐! 이만한 영역을 만들려면 지금 네 권능으로는 턱도 없을 텐데!”
사탄은 도저히 룬드말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증오한다고 해도, 자신의 세계를 망가트릴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이 정도 규모의 ‘영역’을 만들려거든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야만 한다. 애당초 세계를 멸망시킬 각오로 말이다.
―처음부터다. 사탄.
세계 전역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룬드말 왕의 목소리였다.
“뭐?”
―‘문’을 닫았을 때부터, 나는 이날만을 기다렸다. 언젠가 천상이 저 스스로 문을 열고 ‘멸망’을 보내는 날만을.
“대체 왜?”
―모르겠나? 애초에 ‘멸망’은 ‘태초신’의 인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열쇠이며, 세계의 기준점이 되는 것. 멸망을 먹으면 보다 완벽한 신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만. 멸망이 태초신의 인자로 만들어진다니. 누구한테 들은 거냐?”
―‘진리’의 안에서 보았다. 그때 생각했지. 멸망을 먹어치우면, 나는 이 세계의 ‘태초신’이 될 수 있겠다고.
“세계를 불태우는 태초신? 파괴신 아닌가?”
―나는 판게니아의 정점으로 군림할 것이다. 처음부터, 이 세계에 미련 따윈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영역을 전개하는데 마력이 부족했지. 압셀론의 룬을 먹고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절대영역을! 세계의 합일을!
“······.”
―사탄. 저 멸망은, 천상이 나를 막으려고 보낸 것이다.
사탄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너무 다르다.
그와 룬드말은 완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룬드말은 ‘멸망’이 나타나길 처음부터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언젠가 멸망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이 영역을 완성하여, 세계의 힘을 흡수하거든 천상도 감히 무시할 수 없을 테니.
“아아, 이것이 세계를 아우르는 힘이로군.”
룬드말 왕의 육체가 재생되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 봤다.
어느새 ‘멸망’은 그의 위에 있었다.
“멸망이여!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은 나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세계 전역에서 끊임없이 마력이 흘러온다.
무한한 자신감.
자신이 패배할 거란 생각 따윈 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 설득하는 건 이제 그만 할게.”
사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까지 사탄은 룬드말의 설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룬드말의 본심을 알게 된 이상, 설득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하게 된 이상, 남은 건 무력으로 인한 정리뿐이었다.
사탄은 멸망을 향해 외쳤다.
“네가 이겼다, 팬텀! 네 마음대로 해라!”
슈우우우웅!
순간 사탄의 형태가 다시 마검으로 바뀌었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검의 모습이 되어, ‘팬텀’을 향해 날아갔다.
팬텀이 양 손에 둘을 쥐었다.
닿는 모든 걸 파괴하는 극열의 기운과, 모든 걸 얼리는 극한의 기운이 서로 융화하며 팬텀의 전신을 감쌌다.
“오호라.”
그 모습을 보며 룬드말 왕은 미소를 지었다.
기껏 한다는 게 마검의 형태로 돌아가 멸망의 편에 서는 것이었나?
마검일 때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사탄이다.
멸망에게 쥐어진다 한들, 그 한계가 어디 가겠는가.
게다가 저 ‘겨울’ 역시도, 자신을 가두지 못했다.
“선공을 양보하마. 멸망이여.”
느긋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세계의 무한한 마력을 공급받고 있었으니까.
수십, 수백억에 다다르는 ‘룬’을 말이다.
그때였다.
슥!
팬텀의 신형이, 사라졌다.
촤악!
눈치챘을 땐 이미 룬드말의 목이 잘렸다.
댕그르르!
잘린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재생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게 전부인가?”
바로 옆에, 다른 룬드말의 육체가 재생됐다.
룬드말은 비웃었다.
“세계를 파괴해야만, 나를 파괴할 수 있다. 멸망이여.”
“···그런 것 같군.”
팬텀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육체는 더 이상 룬드말에게 의미가 없었다.
이 세계 자체와 동화된 탓이다.
세계 전역에서 무한하게 마력을 공급받아, 절대로 죽지 않는다.
“이제 내 차례다. 멸망.”
룬드말이 가까이 선 팬텀을 향해 한 차례 손뼉을 부딪쳤다.
쉬이이이잉!
쿠아아아아아아아앙!
팬텀을 중심으로 지축이 흔들리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득한 수준의 마력을 압축하여 한꺼번에 터트린 것이다.
그 여파로 순식간에 버섯구름이 생기며 거대한 회오리가 쳤다.
웬만한 왕국 정도는 날려버릴 수준의 파괴력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룬드말은 아쉬웠다.
전지전능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멸망 아닌가.
조금은 여흥이 되었으면 싶었으나 그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 찰나였다.
“음······?”
룬드말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먹구름과 태풍이 갑자기 잠잠해진 탓이다.
뚜벅. 뚜벅.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생긴 것은 분명히 팬텀이었으나, 그보다 더 이질적이다.
룬드말은 인상을 찌푸리며 천벌을 쏘아냈다.
그의 손에서 쏟아진 벼락들은 끊임없이 팬텀을 타격하며 먹구름을 만들었다.
허나.
‘닿지 않는다?’
마력이, 닿지 않았다.
어느 공격도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터져라, 사라져라!”
상관 없었다.
룬드말의 마력은 무한하니까.
아무리 놈이 자신의 공격을 방어한데도, 언젠가 한계를 맞이할 것이다.
영원토록 공격을 막아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꽝! 꽝! 꽈아아아아앙!
세계가 흔들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지하가 드러나며 세계는 망가져갔다. 이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도저히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럴진대.
“이 무한한 마력을 버텨낸다고?“
어찌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단순히 마력의 양만으로는 밀어붙일 수 없어서?
하지만 룬드말은 오랜 세월 동안 마력의 질을 높이고자 수행해왔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검이여.“
룬드말의 표정이 한껏 진중해졌다.
단순히 마력을 퍼부어선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능인 ‘붉은 태양의 검’을 불러들였다.
모든 존재를 베어내는 검.
그것을 쥔 채 도약하여 팬텀의 머리를 노렸다.
쩌어어어어어어엉!
검 끝으로 휘몰아치는 마력.
그러자 팬텀이 사탄과 겨울을 들었다.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을텐데.
검과 검이 닿자, 마력이 증발한다.
폭발은커녕 공격이 통하지도 않았다.
왜일까.
어째서 무한한 마력이 통하지 않는 건가.
그제야 룬드말은 팬텀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무언가를 보았다.
본능적으로 룬드말은 거리를 벌렸다.
지금 자신이 본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 주변을 휘감은 건 뭐지?”
저것이 룬드말의 마력을 원천차단하고 있다.
저것은 모든 걸 먹어치우는 최악의 존재다.
룬드말이 세계를 먹어치워, 그 힘을 사용한다면.
저것은-.
“마지막 고민을 덜어줘서 고맙구나, 룬드말.”
멸망이 말했다.
아니, 멸망은 그제야,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후웅!
그의 전신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림자는 빠르게 확산하며 세계 전역에 퍼져나갔다.
멸망의 기운이다.
그것도 그냥 멸망의 기운이 아닌-.
“나는 이 세계에, 종말을 선포한다.”
쿠릉!
《‘종말’이 선포되었습니다.》
《‘종말의 탑’이 솟아오릅니다.》
《모든 존재는 ‘종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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