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59)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59화
여태껏 마주한 적 없는 종류의 괴물
사탄과 같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게 아니다.
룬드말이 펼쳐낸 절대적인 영역을 잘라내며 나타난 존재가 있다.
압셀론의 룬 반쪽을 먹어치우며 강화된 룬드말이다.
그가 펼친 영역을 누군가가 잘라내는 건 불가능할 터.
한데.
-캬캬캬캬!
무엇인가, 저것은.
룬드말은 눈살을 찌푸렸다.
묘한 웃음소리와 함께 허공을 노니는 작은 사신이 있었다.
녀석은 나타나자마자 룬드말의 영역을 마구잡이로 잘라댔다.
곧 영역 전체가 찢겨나갔고, 두 개의 ‘붉은 달’ 역시 사라졌다.
허나, 어디선가 저와 비슷한 존재를 룬드말은 본 적이 있다.
“영혼의 정령··· ‘천상’에 있어야 할 게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저 사신은 분명히 ‘영혼의 정령’이다.
천상에 기거하는 신들의 힘을 담아놓는 그릇이었다.
그것이 왜, 이 세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찢어발기고 있단 말인가.
하물며 ‘영혼의 정령’이 있다는 건.
“천상의 신들이 이 세계에 들어왔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을진대······.”
“···내 반려, 나를 구하러 왔구나!”
그때였다.
어느덧 재생을 완료한 사탄이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저토록 진득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탄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탄의 시선이 닿은 곳에.
‘사탄의 반려?’
웬 여자가 있었다.
사탄과 비슷한 행색을 한, 하지만 분명히 다른.
극도로 차가운 기운을 폴폴 풍겨대는 존재가.
머리칼도, 눈썹도, 눈동자도, 피부도, 모든 게 새하얗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투명하지 않았다.
“겨울! 나의 반쪽이여!”
“닥쳐.”
그녀는 겨울이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탄과 달리, 겨울은 본래 진화하지 않던 검.
자아를 지녔으나 그 자아조차 사탄처럼 강하진 않았다.
본래라면 이 정도로 극렬한 진화는 없어야 하지만, 사탄과의 ‘공명’을 진행한 탓인지 그녀는 새롭게 완성될 수 있었다.
물론, 겨울은 그 사실을 극구 인정하지 않았다.
“룬드말 왕. 여기까지 하시죠. 저희는 당신들의 세계를 무너트리고 싶지 않습니다.”
겨울은 룬드말을 보며 경고했다.
여기까지만 하라고.
이제라도 멈추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룬드말은 어깨를 으쓱했다.
절대영역을 잘라낸 것도, 사탄과 비슷한 존재가 나타난 것도 모두 의외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래. 이건 전쟁이었다.
각자의 세계를 걸고 진행하는 대규모 전쟁.
이미 시작한 전쟁은, 결판이 날 때까지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너희들은 참으로 오만하구나. 사탄도, 네년도, 전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건가?”
저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룬드말 자신이 죽고, 그의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 같았으니까.
허나, 룬드말은 아직 본인의 무력을 전부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가진 힘은 지금껏 보인 것보다도 훨씬 거대하다.
겨울이 말했다.
“룬드말 왕. 아직은 서로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평화적으로?”
“서로의 승패는 관계가 없습니다. 당신의 힘이 범상치 않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문제는 부딪힘으로 인해 생길 결과.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걸 왜 너희가 걱정하지?”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룬드말은 입을 닫았다.
자신이 자고 나란 세계.
그곳을, 사랑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잠시의 침묵 끝에 그가 답했다.
“사랑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이 죽어가는 세계를 사랑할 이유 따윈 없노라고.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는 이 세계의 파멸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다른 세계의 진출에만 목이 멨을 뿐이다.
판게니아.
그곳은, 지상낙원이다.
이 세계와 달리 생명이 요동치는 땅이었다.
푸르고, 아름다우며, 멈춰있지 않은 곳.
세계가 지닌 에너지 자체가 다르다.
드워프의 신이 가진 기억을 훑으며 얼마나 갈망했던가.
반면 이 세계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우연히 탄생하여, 천상의 놀이터가 됐다.
“당신은 천상을 증오하지 않습니까?”
“증오한다.”
“그럼 우리가 싸울 필요가······.”
“그 이상으로, 너희의 세계를 나는 욕구한다.”
“······그렇습니까.”
겨울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알아본 것이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더라도, 룬드말의 결심을 바꿀 순 없으리라.
결국, 부딪힘은 필연이다.
겨울은 차가운 눈빛으로 룬드말 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영원히- 얼어있으십시오.”
그 순간이었다.
쩌적!
룬드말의 전신이 얼어붙는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내 거대하기 짝이 없는 탑 전체가, 얼음 덩어리 안에 갇히게 되었다.
*
장엄한 광경이었다.
룬드말 왕의 탑이, 얼음에 갇힌 모습은.
저 멀리서도 그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룬드말 왕의 왕국이······!”
블랙의 두 눈에 경악이 가득 찼다.
모든 드워프들이, 기겁하며 놀라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저 거대하기 짝이 없는 탑 전체가 얼음덩어리가 될 줄이야!
“지금이라도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 기회입니다. 잡혀간 드워프들을 구해야합니다!”
“분명히 우리의 신께서도 저곳에······.”
드워프들은 흥분했다.
탑이 얼었다는 건, 룬드말 왕도 멀쩡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고로, 지금 이 시기에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신’의 탈환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땅굴에 연락을 돌려야 합니다.”
“장로! 장로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드워프들은 늙은 장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로는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이미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선택권이 없다니요?”
장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손을 떠났다는 이야기요.”
저 사태가 벌어진 원인.
모든 건 판게니아의 인간들이 나타나며 시작됐다.
오랜세월 전쟁을 벌였으나, 그들은 적들의 심장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도리어 패한 채 숨어살기 바빴다.
이어, 장로의 눈이 한쪽을 향했다.
“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까?”
공손하게.
그러나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채로.
팬텀에게 물었다.
팬텀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탄과 겨울에게 육체를 만들어주는 기적을 이행했으나, 정작 본인은 이곳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듯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윽고, 팬텀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번 ‘멸망’과 싸운 적이 있다.”
“······?!”
“그, 그게 무슨······!”
장로를 비롯한 모든 드워프들의 두 눈에 경악이 서렸다.
멸망과 싸웠다니.
멸망이 어떤 존재인지, 그들이 모를 리 만무했다.
애당초 멸망을 피해 이 세계로 들어온 것이니까.
“승리했으나, 피해는 괴멸적이었지.”
“······.”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승리했다고?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멸망’은 판게니아를 초기에 침략한 멸망이다.
하지만 팬텀이 말하는 ‘멸망’은 ‘궤멸’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그럼 판게니아가 멀쩡한 이유가······.’
‘맙소사. 그 멸망을 몰아냈단 말인가?’
‘백신전의 신들도 하지 못한 일을?’
블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팬텀이 땅굴에 들어온 초기, 그를 도발하듯 한 행동들이 떠오른 탓이다.
하물며 ‘기간트’를 선물하고자 지하로 향했을 때도 그에게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지 않았나.
‘내, 내가 무슨 짓을······!’
하마터면 전부 사라질 뻔했다.
그제야 블랙은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블랙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자 팬텀이 마저 말했다.
“마찬가지다. 룬드말 왕과 내가 부딪히면 이 세계도 멀쩡하진 못할 것이니.”
그 순간이었다.
쩌적!
탑의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오오오오오오오!
세 개의 붉은 태양이, 탑의 주변으로 떠올라 얼음을 녹였다.
그 모습을 보며 팬텀은 씁쓸하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까지 걷어찬 모양이군.”
*
궤멸과 한 차례 붙으며, 비록 승리하였으나, 많은 걸 잃었다.
단순히 전설의 드루이드 알비노가 죽고, 비록 복구했으나 미궁 본연의 모습도 달라졌다.
판게니아의 지형 몇 개가 사라졌으며, 모두가 죽을뻔한 위기를 겪었다.
만약 조금만 늦었어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을 터.
‘룬드말 왕은 궤멸 이상의 괴물이다.’
나는 인정했다.
룬드말이 지닌 마력은 궤멸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연히 부딪힌다면 필연적으로 이 세계에 격변이 생기리라.
어쩌면, 멸망해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세계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천상’을 적대시한다.
같은 적을 두고 있다면, 기회를 줘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나.’
사실 알고 있었다.
룬드말 왕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사실을.
그러나 나는 사탄이 사랑하는 이 세계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룬드말 왕도 같은 생각이라면, 충분히 타협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내 의사는 겨울을 통해 전달되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나는 이방인이고, 저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부정하지도 않을 생각이지만, 평화적인 해결책을 제시했음에도 거절한다면.
······나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시간이 많지는 않다.’
룬드말과 비슷한 존재가 판게니아로 향했다.
누군가가 문을 넘어갈 때 생기는 차원의 균열을 읽었다.
“팬텀이시여.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장로가 물었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챈듯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곤 짧게 답했다.
“최대한 깊숙한 곳에서, 안전하게 숨어 있도록. 다른 땅굴의 드워프들에게도 전해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절대로 바깥에 나오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충고는 끝났다.
나는 다시금, 탑을 바라봤다.
이미 모든 얼음을 녹은 뒤였다.
그리고 하늘에는 네 개의 붉은 태양이 떠 있었다.
‘종말이여.’
나는 종말을 불러일으켰다.
상대가 전쟁을 원한다면.
마땅히, 상대해줄 용의가 있었기에.
*
“······.”
사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본능적으로 ‘나타나선 안 될 존재의 출현’을 눈치챘다.
“젠장······.”
사탄은 쓰게 내뱉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저것은 그런 것이니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상 결과를 내어야만 하는 현상에 가까운 것이다.
어느덧 얼음을 깨부순 룬드말 왕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위엔, 여전히 자신의 태양만이 떠있었다.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극도로 불길한 존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전신의 근육이, 세포가, ‘룬’이, 경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여태껏 마주한 적 없는 종류의 괴물이 나타났노라고.
그제야 룬드말은 사탄과 겨울이 했던 말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씨익!
“저게 너희가 믿고 있던 놈인가 보군.”
룬드말은 웃었다.
저런 괴물의 ‘룬’을 먹는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심히 기대되었기에.
이윽고.
“멸망! 너는 멸망이로구나!”
상대를 확인한 룬드말 왕이 확신에 차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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