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8)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8화
태초신의 탄생
“사탄으로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사탄뿐이었다.
진심으로 이 세계를 사랑하며, 그만한 자격을 갖춘 존재는.
세계를 처음부터 지켜봤으니 운영도 잘 하리라 믿는다.
―싫다!
그때였다.
사탄이 경기를 일으키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어느덧 사탄은 ‘태고의 검’에서 분리되어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인간의 모습이 된 사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왜 싫다는 거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사탄 본인 외에 이 세계를 짊어질 존재가 또 있다는 생각은 안할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사탄은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녀석이었다.
골라줬으면 되레 좋아해야 하지 않나?
“그럼 내 반려와 헤어져야 하지 않느냐.”
“······겨울 때문인가?”
“그 외에 무슨 이유가 있겠냐!”
“겨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만.”
“아니! 이미 우리는 같은 운명으로 묶였다. 헤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떼어놓겠다면 죽는 게 낫다!”
자신의 죽음까지 언급하며, 사탄은 결사반대를 부르짖었다.
얼마나 겨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허나 태초신이 되면, 이 세계에서 섣불리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지구나 판게니아로 향하거든 따라올 수 없다는 소리다.
그걸 사탄도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사탄이 있어야 ‘태고의 검’을 완성할 수 있다.
사탄과 겨울이 한데 모여있어야만 가능한 일.
그런데도 사탄을 태초신으로 추대한 건 도저히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다른 대안이 있나? 너를 대신해서 이 세계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자가?”
“그런 놈은 없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말 사탄다운 발언이었지만, 태초신을 정하는 문제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세계를 이끌 지배자를 정하는 일이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대로 정해야만 했다.
굳이 따지자면, ‘태고의 검’을 완성하는 것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사탄의 이름을 입에 담은 건데.
“나보다 잘난 놈은 없지만, 나보다 이 세계를 사랑하는 놈은 있다.”
사탄이 말했다.
웃음기를 지우고서, 진지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평소의 장난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 눈빛이었다.
“사탄. 단순히 사랑만을 가지고 세계의 운영권을 넘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이에 쓴소리를 내뱉자, 사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사탄이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겨울과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고의 검으로 완성된 걸 말하는 건지.
내가 침묵하자, 사탄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엔 사랑이 없어. 오로지 남의 룬을 빼앗을 궁리만 하지. 룬을 빼앗아 생명을 연장하고, 영원을 살다 보니 제대로 감정을 지닌 놈도 없다. 룬드말처럼 삐뚤어졌거나, 세상을 혐오하기만 해.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발전 따윈 존재하지 않아.”
의외로 사탄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세계를 싫어하는 자들이, 세계를 제대로 운영할 리 있냐는 물음.
빼앗아 진화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드워프들이 출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기술을, 그들을 잡아먹어서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나.
비상식적이다.
발전이 있을 수가 없다.
창작과 창조에 가장 거리가 먼 세계가 이곳이었다.
“이 무의 세계를 운영하려면 이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이 세계의 전통, 문화의 가치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녀석이어야만 해. 나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
“······누가 있어 그런 가치를 숭상한다는 거지?”
“딱 한 명 있지. 안드로.”
“수호기사 안드로?”
“아아.”
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안드로는 일개 수호기사일 뿐이었으니까.
사탄과 비교하면 태양과 반딧불이다.
사탄이 땅굴로 데려왔을 때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안드로를 추천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드로는 룬 자체를 숭상한다. 존경하고, 명예로이 여기지. 50년 주기로 부모에게서 룬이 계승됐으니 시간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사고가 유연해. 그릇되었다 여기면 가문 대대로 모시던 왕을 배신할 정도로.”
과연.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안드로는 룬드말 왕을 배신했다.
세계를 지켜야한다고 믿어서다.
세계의 가치가, 가문 대대로 세습된 역할보다 중요했다는 의미다.
“······협력할 줄도 아는 것 같군.”
그뿐만이 아니다.
수호기사들을 멈춰세우려고 노력했고, 디트리히를 도와 드워프들을 구출했다. 아예 제단으로 가서 문을 여는 것도 도왔다.
이만큼이나 유연한 사고를 지닌 기사는 안드로밖에 없었다.
사탄도 불가할 일이었다.
놈은 고집이 세고, 장난기가 많다.
자격은 갖췄으나 제대로 운영할지는 미지수였다.
세계를 재건하고, 더 나아가게 만들만한 이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드로라면 드워프들과도 충분히 협력할 수 있을 거다. 드워프들도 이 세계에 적응해서 어차피 판게니아로 가봤자 오래 살지 못해.”
“드워프들이 이 세계에 적응했듯이 판게니아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안 돼.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몇 세대쯤 적응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그런데 그 전에 다 죽을걸?”
결국 멸종한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이미 이 세계에 급하게 적응한 드워프들.
그들이 다시금 판게니아로 향하거든, 또 다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화할 환경이 급격하게 두 번이나 바뀐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나는 턱을 쓸었다.
“압셀론은?”
“텅 비었어. ‘세 왕’ 시절의 압셀론이 아니야. 그리고 각인효과인지는 몰라도, ‘디트리히’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데?”
태초신이 될 자질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기엔 너무 텅 비어있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드워프들의 신도 있다. 어차피 이 세계에 머물러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하다만.”
“푸하하!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보이나?”
“음, 진지하게 한 얘기인가보군. 그야 신으로서의 경력이 있으니, 경력자를 우대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잘 생각해봐라. 그 녀석도 결국 도망자야. 멸망을 피해 이 세계로 온 녀석이, 천상을 상대로 세계를 지킬 수 있을까?”
“······.”
“천상은 끊임없이 유혹해올 거야. 문을 열라고. 그럼 너희의 세계로, 판게니아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너 때문에 강제로 문을 열지는 못하겠지만, 태초신이 허락한다면 열리겠지. 기사들에게 먹히는 고통조차도 못 버티던 녀석이 그 유혹을 견뎌낼 수 있을까?”
맞다.
이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대안이 없다.
안드로 외에는.
판게니아에서 나의 가신을 고를 수도 있을 테지만, 근본적으로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로를 불러와라.”
*
“예······?”
안드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태초신’이 되지 않겠느냐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겨를이 없었으니까.
왕도 아닌, 일개 수호 기사인 자신이 신이라니.
그것도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자라니.
“제, 제겐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안드로는 자기객관화가 제법 되어있는 편이었다.
그가 ‘태초신’이 된다고 한들, 그 사실을 인정할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아니야. 넌 잘해낼 거다. 난 너를 믿는다, 자식아!”
“사, 사탄님······.”
“그러니까 널 믿는 나를 믿어라! 알겠지?”
사탄이 안드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응원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왜인지 떠넘기는 모양새여서.
“왜··· 저를 선택하셨는지, 여쭈어도봐도 되겠습니까?”
안드로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 팬텀이 있었다.
룬드말을 압도하고 세계의 근원을 진정시킨 자.
더 나아가 ‘태초신’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저 자야말로 진정한 절대자였기에.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룬드말은 이 세계를 파괴하려고 했다. 레메게톤도 이 세계를 버렸다. 천상도, 저 너머의 진리마저도 이 세계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나?”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됐다.”
팬텀이 미소를 지었다.
“별 이유는 없다. 그냥 네가 제일 잘 할 것 같아서 골랐다.”
“그, 그게 무슨······ 제가 ‘태초신’에 어울린다는 말씀입니까?”
“드워프들과 그들의 신이 너를 도울 것이다.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드워프들이 이 세계에 남습니까? 아니, 그 전에 그들이 저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그럴 것이다.”
“······.”
그럴 것이라는데 더 할 말이 있을 리 만무했다.
스으으으으으!
안드로는 고개를 돌려, ‘세계의 근원’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어느덧 세계의 근원은 거대한 나무로 변해있었다.
그 나무는 끊임없이 줄기를 뻗어 세계 전역에 뿌리를 내렸다.
황금의 물결이 나무 전체에서 넘실거렸다.
미치도록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에 몇 번이나 넋을 놓았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저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제가······ 감히······.”
“오직 너만이, 이 세계를 제대로 이끌 수 있다.”
팬텀은 확신에 찬 어조로 이어서 말했다.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모두가 공존하며 발전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안드로. 나와 사탄 또한 물신양면으로 도와주마.”
“아······.”
안드로의 몸이 잘게 떨렸다.
공존과 발전.
평화로운 세계.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이상인가.
모두가 이 세계의 파괴만을, 종말만을 바랐다.
그가 모시던 룬드말 왕도 다르지 않았다.
왜 그들은 세계의 끝만을 이야기하는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거늘.
안드로는 그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자격이 부족했다.
그 힘과 자격을 모두 주겠다는 말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는 것 역시 능력이라는 걸 안드로도 잘 알고 있었다.
“최선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드로가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안드로는 무의 세계에서 ‘태초신’이 되었다.
*
제단을 넘어왔다.
판게니아로.
태초의 숲으로.
그런데 제단을 지키던 엘프들이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레메게톤 왕.’
아마도 놈이 판게니아를 공격한 탓이리라.
판게니아 전역에 비상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코 끝이 찡할 정도로 강렬한 마력의 향이 태초의 숲까지 퍼져 있었으니까.
몇몇 강대한 존재들이 얽히며 혼돈을 자아냈다.
특히 레메게톤의 판게니아를 정복하고자 하는 야욕이 마력에도 진하게 묻어있었다.
엘프들은 그 거대한 욕망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제단을 넘어온 즉시, 꿈의 신 ‘히프노스’가 내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팬텀. 레메게톤 왕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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