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9)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9화
마계(魔界)
용신회.
절대자이자 용신들의 공주인 아샤가 염원구슬에 비친 한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돌아왔군요, 팬텀.’
그가 무의 세계에서 일을 끝마치고 판게니아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무의 세계’에서 어떠한 업적을 이뤄냈는지, 아샤 공주는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파멸’이 등장했을 때 그를 물러나게 한 것이 아샤 공주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멸의 기척이 ‘무의 세계’에 접근한 걸 알고, 천상에 경고를 보냈다.
팬텀은 용신회의 비호를 받고 있노라고.
절대자의 업을 지녔으니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한동안 천상은 그대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다소 무리하긴 했으나, 용신회의 의견은 똑바로 전했다.
더 이상 천상의 만행을 묵과하지 않겠다 하였으니, 팬텀을 향한 천상의 수작이 잠시 멈출 것이었다.
“공주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때, 걱정스러운 얼굴로 절대자 ‘루인’이 다가와 물었다.
“최고 회의를 거치지 않고 선전포고한 걸 말하는 건가요?”
“···잘 알고 계시군요.”
“그대로 놔뒀으면 ‘파멸’은 팬텀을 죽이려 들었겠죠. 회의를 진행할 시간 따윈 없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다른 절대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들은 저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닙니다. 그저······.”
“괜찮아요. 위로하지 않아도 돼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샤 공주가 씽긋 웃어보였다.
루인과 팬텀을 제외하면, 이 용신회에서 그녀의 편은 없다시피 하다.
절대자 대부분이 온건파였다.
반면, 아샤 공주는 천상과의 전쟁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팬텀을 더더욱 잃을 수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팬텀이 ‘파멸’과 싸우면 패배했을지요.”
팬텀은 강력한 언령을 지녔다.
보고 있노라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존재였다.
판게니아의 용신인 아인하사르 역시 팬텀이 마음먹으면 용신회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하였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졌을 겁니다. 파멸과 맞붙었다간 팬텀의 정보가 천상에 전부 넘어갈 테니까요.”
천상은 아직 팬텀의 전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강 짐작할 뿐, 어디까지 닿을지 모른다.
그러나 ‘파멸’과 전투를 벌였다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부 파헤쳐졌을 것이다.
이후 완전한 대비를 통해 팬텀을 멸하려 할 것이고.
아마도- 용신회가 팬텀을 감싼다는 사실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파멸이 쉽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천상은 몇 번이나 팬텀을 노렸어요. 제가 파악한 것만 최소 일곱 번 이상. 팬텀 본인은 자각 못 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천상이 한 존재를 이토록 오랫동안 공들여 노리는 건 처음 봐요. 여느 ‘멸망’을 만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공을 들인다······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요. 그런데 팬텀에게 그만한 가치가 정말 있는 겁니까?”
“예.”
“······?”
루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찰나의 고민조차 없는 대답.
아샤 공주가 염원구슬을 빙그르르 돌렸다.
그러자 ‘무의 세계’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은······ 무의 세계. 천상이 폐기한 세계 아닙니까?”
“우리 또한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죠. 천상과 진리가 포기할 정도로 가능성이 없는 세계. 하지만, 팬텀이 바꿔놨어요.”
“그게 무슨······.”
“창조자의 나무, 그리고 태초신을 탄생시켰죠.”
“······!!!”
경악을 넘어섰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루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팬텀은 창조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어쩌면 ‘천상의 진짜 주인’과도 연관이 있는 자일지도 몰라요.”
“···창조주 말입니까?”
“예. 천상이 팬텀을 노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저희는 반드시 팬텀을 지켜내야 합니다.”
“하지만··· ‘종말’을 모는 팬텀이 어떻게······.”
상식적이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팬텀은 멸망에 가까웠다.
천상의 무기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아샤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서 천상이 팬텀을 노린다고 생각했어요. 죽이거나, 혹은 네 번째 멸망으로 만들려는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위장이었다면?”
“······용신회 전체가 움직여야겠군요.”
루인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예삿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용신회가 천상과의 전쟁에 회의적인 원인.
그건 천상을 없애도, 대안이 없어서였다.
용신들은 진리를 다룰 수도 없고,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해 진리를 벗어난 세계를 파괴할 수도 없다.
나름대로 세계 유지에 천상도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안이, 나타났다.
팬텀이라는 이름으로.
가능성 없는 세계에 가능성을 꽃피우는 자!
“이제 용신회가 팬텀을 비호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천상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공주님. 팬텀은 이대로 가만히 놔두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그는 그대로 움직입니다. 당장 판게니아에서 벌어진 일들을 처리하기도 바쁠 테니까요.”
“···아! 안 그래도 ‘마왕’의 문제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루인은 아샤 공주를 찾아온 목적을 상기했다.
처음부터 그가 이곳에 온 건 ‘마왕’의 출현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왕’이 용신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
레메게톤이 문을 넘어 판게니아로 향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정복을 위해 공격하리라는 사실도 파악한 뒤였다.
룬드말과 비슷한 무력을 지녔다면 판게니아에 재앙이 닥치리라.
무의 세계에서 즉시 복귀한 건 오로지 레메게톤 때문이었다.
‘레메게톤이 죽었다?’
히프노스가 내게 남긴 메시지.
그건 텔레파시라기보단, 의념에 가까웠다.
긴박한 사실을 내가 복귀한 즉시 알리고자 알람을 남겨놓은 셈이다.
하지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물론, ‘궤멸’을 겪은 판게니아가 쉽사리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의 가신들과 더불어 수많은 강자들이 유기적으로 성장한 땅.
그러나 ‘세 왕’이라 불리던 레메게톤이다.
룬드말과 같다면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사방에 퍼진 레메게톤의 마력은 잔향 같은 거로군.’
잔향만으로도 코가 찌릿하다.
죽음과 밀접한 마력을 지닌 존재.
레메게톤은 악신 그 자체였다.
나는 턱을 쓸었다.
악신의 출현에 판게니아 전역이 힘을 모았을 수도 있다.
제국과 더불어 모든 왕국이 참전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특히 제국제일검 라이가, 그리고 눈 뜬 황제가 있었으니.
“히프노스.”
꿈의 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의념의 연결이 더욱 두터워졌다.
【아아, 돌아오셨습니까! 이제야 제대로 대화가 가능겠군요.】
반가움이 느껴지는 말투.
히프노스는 교만의 감시를 비롯해 판게니아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내게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먼 옛날, 멸망의 눈이라 존재이니 히프노스보다 세계를 관찰하는데 특화된 신은 없을 터.
당연히 레게메톤이 침략한 이후의 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없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전부 알려다오.’
상단전을 열고 히프노스에게 나의 생각을 전했다.
동시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레메게톤과 육각의 영웅들, 마왕의 출현은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할 듯싶습니다.】
히프노스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레메게톤이 다루는 그림자 군단은 실로 경이로웠다.
순식간에 영역을 넓혀가며, 인류를 비롯한 모든 종족에게 경각심을 세워줬으니까.
불과 5일 만에 대륙의 20%가 레메게톤의 영역이 됐다.
레메게톤은 정복한 땅에 그림자 깃발을 세워 자신의 영토임을 선포했고, 더 나아가 지력을 빨아들여 신처럼 행동했다.
다만, 레메게톤의 그림자 군단도 ‘미궁 도시’만큼은 손대지 못했다.
“너희들의 침입을 불허한다.”
칼날용신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의 날개를 지닌 이세라, 루카리아와 함께 그녀가 지키고 있자, 그림자 군단은 미궁 도시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레메게톤은 엄청난 속도로 세력과 힘을 키웠다.
한 세력으로 막을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다.
“판게니아는 끝이야!”
“살려줘!”
사람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다.
그림자 군단의 출현으로 판게니아에 로그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때, 마왕과 육각의 영웅이 나타났다.
레메게톤 왕을 찾아간 그들은 서로 그 장소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이어 ‘검성 라일리’가 용의 본체를 이끌고 가장 먼저 움직였는데.
놀랍게도, ‘라일리’가 공격한 건 레메게톤이 아니었다.
【라일리와 육각의 영웅들은 마왕을 공격했습니다.】
【레메게톤 역시, 마왕을 먼저 공격했습니다.】
【···마왕이 검을 빼 든 순간, 모든 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마왕.
빌헬름의 육체를 차지한 뒤, 오랜 시간 마계에 자리하고 있었다.
힘을 키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무력을 선보였기에, 육각의 영웅과 레메게톤이 먼저 선수를 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육각의 영웅? 검성 라일리? 심연에 가라앉았다고 전해진 그들이 나타났다?’
【레메게톤 왕이 다루는 ‘그림자 군단’은 영역을 넘고, 세계를 강제로 붙드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판게니아로 넘어온 즉시 그가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심연에 있던 육각의 영웅들은 그림자 군단의 능력을 흡수해 판게니아로 넘어왔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게 레메게톤 왕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의외였다.
‘심연 미궁에서 빛의 옥좌로 검성 라일리의 영혼을 소환한 적이 있었지.’
이후 라일리의 영혼은 마룡과 하나가 되며 사라졌다.
설마 계속해서 심연에 존재하고 있었단 건지.
【라일리는 초월룡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용신들과는 전혀 다른······ ‘심연 그 자체인 자’였습니다. 다만, 인간으로서의 기억은 거의 없는 듯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거의 없는데 레메게톤과 마왕을 상대했다는 건가?’
그것도 이상하다.
심연의 존재라면 마구잡이로 파괴하려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판게니아를 지키고자 그 둘을 상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의 영혼에 나와 함께한 일들이 새겨져 있는 덕분일 수도 있었다. 초월룡으로 변신했다는 걸 보면 말이다.
【정확히는 마왕만을 상대했습니다.】
‘그럼 레메게톤을 죽인 게 마왕인가?’
【예. 마왕은 단칼에 레메게톤을 죽였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술과 힘으로······.】
히프노스의 목소리가 떨린다.
궤멸이 나타날 때도 이 정도로 떨지는 않았다.
그는 가장 강한 멸망과 함께 했던 존재.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탓이다.
그런 그가 떨고 있다.
마왕의 힘을 목도하고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쯤되자 한 가지가 더 궁금해졌다.
마왕이 레메게톤을 죽였다면.
‘···육각의 영웅들은?’
【마계로 끌고 갔습니다.】
허.
나는 잠시 이맛살을 구겼다.
레메게톤은 죽이고, 육각의 영웅들은 살려둔 채 마계로 끌고 갔다.
왜?
분명한 건 그다지 좋은 의도로 데려가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마왕은 강했다.
그 힘의 근원을 히프노스가 파악하지 못했다면,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저 멸망의 조각이나 별, 혹은 다른 존재를 먹어치워 강해졌다면 히프노스가 저토록 떨 리 없으므로.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마계로 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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