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70)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70화
균열의 탑 3층
제단을 넘어, 태초의 숲을 거닐었다.
“······조용하군요.”
디트리히가 경각심을 가진 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으니까.
이쯤 되면 엘프들이 나타나서 반겨줘야 하는데,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세계수’ 주변에도 엘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엘프가 없는 게 아니다.
소수지만,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이 있었다.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압셀론 때문인 것 같군.”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의 세계에서부터 압셀론은 디트리히를 따라다녔다.
설마 문을 넘어 판게니아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으나······.
압셀론의 숨기지 않은 기세가 엘프들을 두렵게 만든 모양이었다.
“압셀론. 물러나라.”
“······.”
내가 말하자 압셀론이 슬쩍 디트리히의 눈치를 봤다.
디트리히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압셀론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이 자는 안전하다. 엘프들이여.”
“저, 정말입니까? ‘레메게톤’도 그 세계에서 넘어왔습니다.”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개의치 않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제압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 뒤에야 쭈뼛대며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죄다 어리거나, 나이 많은 엘프들 뿐이었다.
“다 어디 간 거지? 여왕 아우릴은?”
그중 한 명에게 묻자, 엘프가 양 팔을 부여잡곤 답했다.
“그, 그게······ ‘전쟁’ 중입니다.”
“음?”
······전쟁 중이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레메게톤은 죽었을 텐데.”
전쟁을 일으킨 자, 레메게톤은 죽었다.
마왕이 죽였다.
히프노스가 잘못 보았을 리 없다.
“시, 심연의 존재들이······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판게니아와 연결된 심연 땅의 주인들도 모습을 드러내서······.”
“······.”
아아.
레메게톤을 따르던 그림자 군단.
그것을 흡수한 심연의 존재들이, 심연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던가.
아무래도 혼돈은 끝나지 않은 듯싶었다.
“그럼 여왕은 엘프들을 이끌고 어디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지?”
태초의 숲을 놔두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곳을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행선지가 문제였다. 엘프들이 대거 태초의 숲을 벗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종족대전이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여왕께선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도 믿지 말라더냐?”
“그, 그게······.”
우물쭈물했다.
아우릴이 나를 믿지 말라는 말을 했을 리가 없으므로.
그러나 심각한 상황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것들 외에, 또 다른 전쟁이 벌어졌나?”
“···예······ 그게······.”
엘프가 눈을 꾹 감았다.
행선지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했으나, 상대가 나이니 고민하는 것이리라.
곧 엘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 사실 모두 ‘균열의 탑’을 오르고 있습니다.”
“균열의 탑?”
“저, 저도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심연의 괴물들도, 다른 종족들도 같이 ‘균열의 탑’에서 전쟁을 벌이는 중입니다.”
이것도 의아한 일이었다.
심연의 괴물들과 모든 종족들이 균열의 탑을 오른다?
균열의 탑 1층은 내가 클리어했다.
그 이후 2층이 열렸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균열의 탑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
나는 즉시 공지사항을 살폈다.
이 정도의 변화가 생겼다면, 공지되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새로운 ‘공지사항’이 1건 등록되어있습니다.》
···있다.
공지사항을 눈여겨보자 곧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균열의 탑 2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모든 ‘심연족’의 한계 레벨이 1 상승합니다.》
《모든 ‘심연족’의 한계 봉인이 해제됩니다.》
《모든 ‘심연족’의 저주가 완화됩니다.》
《‘균열의 탑 3층’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균열의 탑 3층’의 파티 입장 조건은 ‘단일 종족’입니다. 파티의 인원 제한은 없습니다.》
《‘균열의 탑 3층’ 클리어 시 한계 레벨 상승과 함께 ‘신화의 종족’이 해방됩니다.》
《‘신화의 종족’을 달성한 종족은 ‘신화의 땅’과 함께 강력한 종족 보너스를 받습니다.》
‘···어이가 없군.’
심연의 존재들을 통틀어 ‘심연족’이라 칭하는 듯싶었다.
문제는 그들이 균열의 탑을 올랐다는 것이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심연의 존재들이 균열의 탑을 올라 자신들의 한계와 저주를 완화할 줄이야.
이건 대체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3층의 테마는 종족 대전이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아우릴의 말이 맞았다.
자기네 종족이 아니면 정말 누구도 믿어선 안 될듯싶었다.
하다못해 심연의 괴물들이 ‘심연족’으로 불리는 상황.
지금 3층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것이었다.
‘신화의 종족, 신화의 땅. 강력한 종족 보너스까지······ 3층을 클리어하는 종족이 판게니아의 주도권을 가질 수도 있겠어.’
현재 판게니아의 주도권은 인간이 5할 정도를 갖고 있었다.
여타 다른 종족들과 달리 인간은 넓게 퍼져서 대륙의 남은 땅을 향유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르혼 제국의 영향이 컸다.
허나 판도가 바뀌었다.
이대로 심연족이 3층을 클리어하거든, 이 땅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종족이 3층을 클리어하게 놔둘 수도 없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균열의 탑을 오르는 이유다.
‘나도 구분을 하자면 인간인데.’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지만.
나는 모든 종족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직접 나서기가 모호한 상황이다.
엘프도, 백왕도, 제국도 나섰을 터.
그뿐만 아니라 여태껏 숨죽이고 있던 재야의 종족들이 모두 나타나 3층에 오르고 있을 테니.
“디트리히. 왕국으로 돌아가라.”
“예······?”
“세르닐 왕국으로 돌아가 자격을 증명하도록.”
“하,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디트리히의 두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토록 갑자기 헤어질 것이란 생각은 못 한 듯싶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마계로 향하든, 균열의 탑으로 향하든, 디트리히가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수호 성검’은 너를 온전한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그게 아니라··· 그럼 다신 못 만나는 겁니까?”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나 다시 만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왕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르닐 왕국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고, 나 역시 지금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할 것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터였다.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무의 세계에서 겪은 일이 현실을 마주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
“그럼······.”
디트리히가 뻔히 시선을 맞췄다.
그러곤 주먹을 움켜쥔 채 다시 말했다.
“한 번만 안아주실 수 있습니까?”
“······.”
“그러면 용기가 날 것 같습니다. 세르닐 왕국의 왕으로 우뚝 설 용기가.”
“······알겠다.”
나는 자세를 낮춰, 가볍게 디트리히를 안아주었다.
이제부턴 정말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에.
용기 없이는 절대로 돌파할 수 없는 장벽들이 많을 테니.
잠시 몸을 떨던 디트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압셀론이 옆에 있으니, 만에 하나의 상황이 벌어져도 안전할 게다.”
전대 왕이나 그의 후계들이 갑자기 미쳐서 디트리히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압셀론이 옆에 있다면 기사들 만 명이 달려들어도 디트리히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갚을 필요 없다.”
“아닙니다. 갚을 겁니다. 물론, 제 도움 따윈 필요 없으시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디트리히가 슬쩍 물러났다.
촉촉한 눈망울을 지니고서.
“그런데 팬텀이 본명이십니까?”
“···박현명. 그게 내 이름이다.”
“······박현명님. 꼭 다시 뵙도록하겠습니다.”
때가 되었음을 디트리히도 인지했다.
곧 디트리히가 물러나기 시작했다.
압셀론과 함께, 세르닐 왕국으로 향하고자.
“평안하십시오. 절대로 다치시면 안 됩니다!”
“너나 다치지 마라.”
누가 누굴 걱정하는건지.
이윽고 디트리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모험 하나가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남은 건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을 선택하는 것.
‘어찌한다.’
마계로 향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급한 일이 생겼다.
균열의 탑에서 벌어진 전쟁을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궁도시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할 수도 있다.
‘종족대전이라면, 마족들도 참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꿨다.
심연족이 균열의 탑을 오르고 있다.
마족이라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어쩌면, 그곳에서 마왕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균열의 탑을 오른다면 말이다.
‘아무래도 탑으로 가야겠군.’
행선지를 정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파티에 인원 제한이 없다······ ’
칼날용신 하나나 이세라, 루카리아는 파티에서 제외다.
인간과 같은 외견이라 하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드슨, 이자벨라, 아이작, 발테와 함께 해야할는지.
【균열의 탑에 오르실 생각이십니까?】
그 찰나.
히프노스가 말을 걸었다.
‘그래야겠군.’
【조심하셔야 합니다.】
‘심연족 때문에 그런가?’
【그들도 그들이지만······.】
‘······?’
【신족들도 참전했습니다.】
신족?
【성좌들과 탑의 주인들 말입니다.】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설마 백성전의 성좌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무언가의 착각이거나 아예 다른 내용일 수도 있는 노릇.
혹시나 하여 물었지만.
【맞습니다. 저 역시 그들과 함께하길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습니다.】
역시나였다.
허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좌들이 직접 모습을 들어낸 경우는 아예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은 백성전을 벗어나지 않았다.
‘성좌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였나?’
【균열의 탑 3층만은 예외인 듯싶습니다. 무언가 강력한 힘이 그곳에서 신족들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종족이, 심지어 심연의 괴물들과 신족들까지 한데 뒤섞였다.
이보다 규모가 큰 대전은 지금까지 없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가, 3층을 클리어하고자 혈안이 되어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현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아는 게 있나?’
【모르겠습니다. 제 능력으로도 균열의 탑 내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확인한 가장 위험한 존재는 ‘황제’였습니다.】
심연족의 괴물도 아니고, 신족도 아니고, 다른 종족의 괴물도 아닌 황제가 가장 위험하다니.
“황제?”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황제라고 칭할 자는 한 명뿐이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히프노스가 답했다.
【제국의 황제. 그가 참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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