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67)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67화
세계의 주인
자신의 세계에서, 레메게톤 왕은 적수가 없었다.
1:1의 대결이라면 모르겠으나 ‘전쟁’에서 그는 절대로 패하지 않는다.
압셀론도, 룬드말도 레메게톤과의 전쟁을 극구 피했던 이유다.
가장 먼저 판게니아로 넘어간 게 레메게톤인 맥락 또한 같았다.
다수의 대결에서 레메게톤은 무적이었다.
그가 다루는 ‘그림자 군단’은 수호기사들 따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레메게톤은 죽음으로부터 그림자를 일으켰다.
그림자들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합쳐지며, 억겁의 세월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격을 쌓을 수 있었다.
‘룬드말. 네놈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레메게톤 왕은 미소를 머금었다.
판게니아에 잠재된 가능성을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곳은 그가 있던 ‘무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명력이 넘쳐났다.
수많은 세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그 중심에서 가공할 마력이 탄생하고 있었다.
특히 ‘멸망’에 의해 한 번 파멸적인 타격을 입어서인지는 몰라도, 도리어 그 당시 죽음들이 밑거름되어 더 많은 생명을 꽃피우는 중이었다.
‘네놈이 넘어올 때쯤이면 나는 이 세계를 온전히 나의 그림자로 뒤덮은 뒤일 것이다.’
그는 죽음을 먹고, 피우는 자다.
적어도 레메게톤만큼은 판게니아가 얼마나 대단한 가능성으로 점칠 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죽음을 모두 먹으면, 룬드말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룬드말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보단······.
‘아름답군.’
지금 자신과 대치한 대적자들.
그들의 마력에 취할 것만 같았다.
이들을 제외하면, 판게니아에서 레메게톤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으리라.
저들도 그것을 알기에 한꺼번에 뭉친 것일 테다.
레메게톤. 그가 두려워서.
그는 천천히 자신을 대적하고자 모인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우선, 거대한 초월룡(超越龍)을 필두로 모인 여섯 존재.
그들은 이미 죽음과 밀접한 자들이었다.
멸망의 기색이 짙게 느껴지는 걸 보아, 과거 판게니아에 출현했다는 ‘멸망’과도 관계가 있을 듯하였다.
특히-
‘초월룡. 여섯 중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저 녀석이다.’
가장 강대한 마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가장 묘한 기색이 느껴지는 괴물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는지.
하늘까지 닿을 듯 거대하였고, 그 비늘도 새까맣기 그지없었으나, 두 눈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위압을 가져다주었다.
일반적인 용이 아니다.
‘생명과 죽음. 파괴와 창조. 그 사이 어딘가에서 태어난 묘하기 그지없는 존재로군.’
단순히 ‘용’의 규격으로 묶기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놈이었다.
과거 그의 세계에서 천상의 문이 열렸을 때도, 저런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세계를 수호하는 용신?
아서라. 저것은 용신을 먹는 용이다.
풀려선 안 될 것이, 풀려난 게다.
레메게톤은 시선을 돌렸다.
또 다른, 강력한 마기를 흩뿌리는 이가 아까부터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으므로.
판게니아와 연결된 세계의 뿌리 중 하나.
그곳을 지배하는 왕의 자격을 지닌 존재.
굳이 정의하자면, 마왕이라 불러야 할 터.
‘···이 녀석은 더 묘하군.’
마치, 남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수많은 마력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중첩되고, 그렇게 얽히고설켜 ‘혼돈’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한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다.
숨기지 않았음에도, 대놓고 드러내고 있음에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스으으으으으!
모든 그림자들이 한데 모인다.
이어, 그의 손에 검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검은 압셀론조차 한 번에 쪼개버린 죽음의 성물일지니.
레메게톤은 웃어 보였다.
“어디 한 번 놀아보자꾸나.”
*
태고의 절망을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복귀시킨 즉시.
나는 주춤거리는 ‘세계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종말의 기운은 사라진 상태.
룬드말 왕은 소멸했으며, 세계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하던 영역도 사라진 데다, 종말조차 멈췄으니 더 세계의 위협은 없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종말’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돌아오거라.”
내가 부르자 종말이 내게로 돌아왔다.
이전보다 더욱 거세진 종말의 기운을 품고서.
절망하며 깨달은 뒤 ‘절망 그 자체’로 거듭난 것이다.
이미 완성되었으니, ‘태고의 절망’이 없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는 듯했다.
하기야 ‘태고의 절망’은 종말을 멋대로 부리려고 했을 따름이었으니.
―내게 무엇을 바라느냐, ‘진리’여.
세계의 근원이 물었다.
하지만 나를 부르는 호칭이 이상했다.
멸망이나 종말로 부를 줄 알았거늘.
진리라.
“나를 왜 진리라고 부르는 거지?”
궁금해서 묻자 근원이 답했다.
―진리란, 시작과 끝을 말한다. 진리란, 그 사이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대는 시작과 끝에 존재하는 13개의 진리를 품은 채 태어났으니, ‘진리’라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설명하는 건 불가하리라.
13개의 진리.
설마 히든 특성을 말하는 건가?
“히든 특성은 심연에 가라앉은 ‘종족’의 기원 같은 거라고 알고 있는데. 그게 ‘진리’와는 무슨 상관인 거냐?”
―그것은 깨달음의 조각이다. 각각의 종들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이름이니라. 모두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나 결국 ‘진리의 조각’이라 봐야 하는즉.
“마지막에 도달하는 이름이라고?”
이상하지 않은가.
마지막. 멸족한 종족이 끝에 다다라 깨닫는 게 ‘히든 특성’이라면, 내 마지막 히든 특성은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그럼 천상의 이름이 히든 특성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되지 않나?”
―그 이유는 나로서도 알 수 없다. 일전,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던 ‘진리’와 그대는 모든 게 다르다. 허나 진리는 오직 하나여야만 하는 것.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넌센스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세계의 근원’이 한 말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천상도, 그리고 천상이 향유하는 진리도 모두 나와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는 곧 끝난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겠지. 무(無)의 세계. 그 이름처럼 이곳은 처음부터 존재해선 안 되었던 곳일지니. 진리여, 너의 세계로 돌아가거라.
“원래부터 존재해선 안 될 세계 같은 건 없다.”
―천상도, 그 진리조차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이 세계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니, 룬드말이 태초신의 격을 온전히 달성했다고 해도 세계의 끝을 막지는 못했으리라.
천상과 진리가 포기한 세계.
원래부터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특이하고 특수한 곳.
운명처럼 끝이 정해져 있었으니 포기한 것이다.
어차피 끝을 막을 수 없다면, 그리하여 ‘가능성’을 꽃피울 수 없는 세계라면 천상이 굳이 눈독 들일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그 ‘진리’도 똑같이 판단했다 하지 않나.
룬드말이 태초신의 격을 쥐어, 이 세계를 다시 구성했대도 결국 끝을 같았을 것이라는 근원의 말.
그러나 아쉬웠다.
‘멸망해도 되는 세계 같은 건 없다.’
천상을 자신들의 규칙을 벗어난 세계를 마음대로 멸망시켰다.
이 세계 역시도 멋대로 시한부 판정을 내렸을 따름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룬드말 스스로 증명하지 않았나.
아무리 뒤에서 ‘파멸’이 도왔다고 하나, 태초신을 탄생시킬 수 있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뿐만인가.
세계의 근원이 휘청대자, 모든 생명체가 달려들어 근원을 지키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계를 사랑하는 존재들은 아직도 많았다.
“‘창조자의 나무’를 받아들여라, 근원이여.”
―······ 창조자의 나무?
태고의 검을 완성하자 ‘이스터 에그’로 얻은 것.
일반적인 ‘세계수’와는 이름부터 달랐다.
창조자의 나무가 자라기 위해선 세계의 근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까지.
예사롭지 않은 이름과 조건이나, 정확한 정보를 열람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알 것 같다.
창조자의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쓰임새를 가졌는지.
“최초의 세계수. 세계가 시작될 때 주어지는 나무의 이름이지.”
갖게 된 순간 알았다.
제작자가 숨겨 놓은 이스터 에그.
이것은, 시스템의 이면이다.
아니, 어쩌면 시스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태까지 시스템을 운영하는 운영자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예컨대 두 여신과 ‘민트초코맛있어요’, 마왕 등이 이 시스템을 만들고 개입한 존재라고 여겼다.
하지만, ‘창조자의 나무’를 보자마자 내 생각이 틀렸음을 확신하게 됐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고 한들, ‘최초의 나무’를 시스템에 숨겨 놓는 건 불가능했기에.
천상도 마찬가지다.
‘천상은 세계를 만들 수 없다.’
그들은, 세계를 만들 수 없다.
창조할 수 없다.
천상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파괴뿐이다.
만약 진정으로 놈들이 창조의 영역에 손을 뻗쳤다면, 굳이 멸망을 만드는데 이 세계를 실험실로 사용할 필요가 없을 터이므로.
당연히 ‘창조자의 나무’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시스템을 만든 건 그들의 위, 혹은 상극에 있는 존재다.
‘창조자.’
창조신이라고 해야 할까.
만물의 시작이 되는 자.
세계를 구성하는 최초의 요소.
그가 시스템을 만든 건 아닐는지.
파괴하는 천상에 맞서, 창조의 요건들을 시스템 안에 욱여넣은 것이다.
진리를 이용한들 절대로 찾지 못하고 파괴하지 못할 ‘이스터 에그’로서.
운영자라 칭해지는 자들은 그것을 멋대로 오인하여 사용할 따름이다.
시스템의 본질은 ‘창조’에 있는 게다.
―그대는······ 그런가. 13번째 진리의 조각, 사라진 천상의 옛 이름을 가진 자였나.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근원이 말했다.
13번째 조각의 정체.
그것이 ‘창조의 나무’와 관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라진 천상의 옛 이름’이라니?
―받아들이마. 허나··· ‘최초의 세계수’가 존재하기 위해선 ‘태초신’이 필요하다. 그대는 이 세계의 태초신이 될 수 없다.
“태초신이 되려면 무슨 자격을 지녀야 하지? 신격을 지녀야 하나?”
―그대가 선택해야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신의 격을 지녔거나, 혹은 특수한 자격이 필요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저 ‘선택’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 세계의 태초신을 될 자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건가?”
혹시 몰라 다시 묻자, 근원이 답했다.
―그렇다. 창조자의 나무를 가져온 자여. 나와 그대의 의견이 합치하니, 남은 건 그대의 선택일 뿐.
근원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오롯이 내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누가 이 ‘무(無)의 세계’를 이끌게 할 것인가.
이 세계를 제대로 이끌고, 제대로 만들려거든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춘 자여야만 했다.
후보는 많았다.
이 세계를 사랑하는 자들.
사탄, 수호기사 안드로, 혹은 삼왕 중 하나인 압셀론.
아니면 진정으로 신격을 지녔으며 세계를 이끌어 나가본 적이 있는 ‘드워프의 신 라무네’도 선택지 중 하나로 충분했다.
판게니아에서 나의 가신들 중 하나를 데려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또한, 선택하는 이에 따라 이 세계의 미래는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세계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천상’에 대적하기 위한 본격적인 발판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이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여태껏 내가 해온 선택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녀석이 좋겠군.’
나는 때마침 한 명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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