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38)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의 심복 오악회(五岳會).
그중 두 번째 서열인 이악(二岳) 장님 위맹천의 잘린 머리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며, 목의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푸슉!
늘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던 위맹천이었지만 그 최후에 짓던 표정은 절규에 가까웠다.
-두드득! 두득!
검게 물들어서 기괴하게 부풀었던 목경운의 오른손이 이윽고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것은 역혈사공의 묘리였다.
워낙 부작용이 심한 수법이라 그리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었지만 잠깐 동안은 공력을 두, 세 배 가까이 치솟게 만들어줬다.
목경운은 이를 최대한 아껴두다 적절한 순간에 활용해 위맹천의 목을 베어냈다.
-스륵!
이런 목경운의 앞으로 청령이 사뿐히 내려왔다.
-제법이었다만 아직 멀었다.
“그렇네요.”
목경운도 순순히 이를 인정했다.
다른 감각들이 비상식적으로 뛰어나다고 해도 상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순수 대결로는 꽤 고전했다.
원래는 하단전의 사기(死氣)와 순수한 초식 대결만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으나, 그것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배의 식과 역혈사공을 쓰고 말았다.
그렇기에 목표를 제거했음에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반면,
‘······빠르군.’
말은 아직 멀었다고 했지만 청령은 내심 목경운의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엄밀히 말해 장님 위맹천은 목경운보다 한 수 위의 고수였다.
내공에서도 경험적인 면에서도 훨씬 위다.
실제로 그 경험에 걸맞게 매 적절한 순간에 변초를 쓰면서 목경운을 압박하는 모습마저 보여줬다.
그런데 목경운은 이를 겨루면서 배워나가고 있었다.
이건 보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더 고전할 거라 여겼건만.’
예상과는 달랐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지 하단전만으로 더 겨뤘다고 해도 승산이 없진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성장 속도다.
그러는 사이 목경운이 죽은 위맹천의 시신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호오.”
-왜 그러느··· 음?
청령의 눈에도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위맹천의 사기(死氣)가 응집하며 모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죽은 위맹천의 사기를 흩어지기 전에 흡수하려고 했던 목경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다르게 사기가 흩어지는 게 아니라 뭉치는 현상을 보였다.
청령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 보겠구나.
“무엇을요?”
-제대로 된 원혼의 탄생을 말이야.
“아······ 이건가요?”
-그래.
육인강령술을 비롯해 여러 방술을 터득해 사기로 원혼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목경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건 처음 본다.
그렇다는 건,
-꽤 억울했나 보구나.
어지간한 집념으로는 원혼이 되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기가 뭉쳐질 정도라면 원한이 극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윽고 얼마 되지 않아 뭉쳐진 사기는 인간의 형태를 갖춰갔다.
생전에 얼마만큼 강한 집념과 원한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원혼의 격이 정해진다.
-파르르르르!
형태를 갖춰가는 것과 동시에 부러진 죽명검의 손잡이가 떨려왔다.
육신을 잃은 원혼은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혼이 이승을 떠나려고 하는 것을 붙잡게 한다.
아마도 저 손잡이가 그 매개체일 것이다.
-제법 원한이 컸나보구나.
청령은 흥미로워했다.
형태를 제대로 갖춰가고 있는 도중이었는데도 흘러나오는 영력을 가늠해보면 적어도 주령(朱靈)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렇게 완전히 형태를 이룬 원혼.
-으득!
하얀 안광을 일렁이며 위맹천이 목경운을 노려보았다.
-원통하도다. 원통하다. 그분을 따라 대업을 이루고 개안하고 싶었건만 이리 죽어서 망령이 되다니.
원한으로 가득한 목소리.
위맹천은 목경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죽어서 이렇게 원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는구나. 내 너를 저주한다. 네놈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죽을 때까지 괴롭···.
말을 하던 위맹천이 도중에 이를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
순리에 의해 원혼이 된 그였기에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경계의 이치 역시도 자연스레 이해했다.
그런데 목경운이 죽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뭘까?
그러는데,
“할 말이 참 많으신가 봐요. 막 원혼이 되신 분이 주절주절 말이 많네요.”
-너? ······설마 내가 보이는 거냐?
“보이니까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겠죠?”
-네놈! 네놈이 나를 이리 만들었다!
목경운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이에 더욱 분노에 찬 위맹천이 목경운을 향해 죽일 기세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팍!
-컥!
위맹천의 하얀 동공이 흔들렸다.
그것은 목경운이 갑자기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자신은 죽은 망자다.
목경운이 어떻게 죽은 자신의 목을 움켜쥘 수 있는 거지?
-네놈 대체 뭐야? 어떻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위맹천이 경기를 일으켰다.
-어이. 애송아. 시체에 온기도 안 마른 녀석이 기운이 넘치는구나.
‘!?’
원혼들은 본능적으로 격을 구분할 수 있다.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영압에 위맹천은 정신이 혼미해지려 했다.
‘무··· 무슨 기운이······.’
이건 단순한 원혼 수준이 아니라 재해 수준이 아닌가.
영체가 떨려서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공포에 질린 위맹천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이렇게 원혼이 된 경우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어떻게 할까나?”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한다는 거냐? 그냥 사기를 흡수하고 제령 시키든 해라.
“아아. 역시 그게 낫겠죠?”
-꽈악!
이에 목경운이 사기를 끌어올려 위맹천의 목에 더욱 힘을 가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제령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그였다.
-스스스스!
한데 밀려오는 기묘한 고통과 함께 영체가 서서히 사라지는 듯한 위협을 느꼈다.
그것은 죽음을 맞이했을 때보다도 더 강렬한 공포심을 선사했다.
이에 위맹천이 황급히 소리쳤다.
-사, 살려다오!
“이미 죽었거든요.”
-제발······ 제발 기회를 다오.
“기회가 당신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다, 다른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의 얼굴만이라도 보게 해다오. 그럼 제령이든 뭐든 감당하겠다.
“아내와 아이?”
목경운이 의아했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러자 위맹천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전 영사독(榮蛇毒)으로 인해 두 눈이 멀고 나서 단 하나의 소망이 있었다. 그게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위맹천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멀게 된 두 눈을 고쳐 식솔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은 대업을 이루게 되면,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해영약선(解營藥仙)을 찾아 독으로 두 눈이 멀어버린 위맹천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조했었다.
그런데 죽어서 앞을 볼 수 있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부탁이다. 나는 이대로 세상을 떠날 수 없다. 이것만 들어준다면 죽이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다른 것에는 크게 미련이 없었다.
위맹천은 그저 보고 싶었다.
살아생전 보지 못했던 아내와 아이의 얼굴.
그렇게 자신의 바람을 피력하는데 목경운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아. 원념만으로 원혼이 된 줄 알았는데, 이거 생에 미련을 남게 만든 소중한 존재들도 있었군요.”
-흠칫!
이런 목경운의 말에 위맹천은 순간 아차 싶었다.
소멸될까봐 두려워 유일한 미련이나마 풀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놈에게 부탁할 그런 게 아니었다.
이놈이야말로 자신을 죽인 원흉이 아니었던가.
실수했다고 여기는데 목경운이 자신을 죽이기 전처럼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잘됐네요. 그럼 다른 식신들보다 좀 더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겠네요.”
‘!?’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청령이 동정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보였다.
* * *
밖에서의 볼일을 보고서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목경운.
별채가 있는 입구 전각을 넘어가려던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흐음.’
주변을 가볍게 훑고는 주변을 지키는 호위무사들이 사라진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다라.
피식하고 웃더니 목경운은 이내 개의치 않는지 별채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걷다 방문을 열었다.
“늦었구나.”
문이 열리자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는 다름 아닌 암종주였다.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아까 전에 별다른 말 없이 모두를 해산시켰던 그가 왜 혼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반경 이십여 장 주변으로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해하다 이내 두 손을 모아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하려고 하는데, 이를 끊고서 암종주가 말했다.
“어딜 그리 다녀오느냐?”
“연공···.”
“장에 있었다는 그런 어설픈 거짓말은 안 해도 된다.”
“······.”
암종주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무겁고 차가웠다.
아까 전의 연장선상인 듯했다.
그러는데 암종주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침입자의 머리를 들고서 어디까지 다녀온 게냐?”
이 물음에 목경운이 시치미를 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제자는 도통······.”
“소각장에 머리 부분만 없더구나.”
“······.”
이런 암종주의 말에 목경운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보아하니 자신이 다녀간 후로 소각장에서 직접 확인한 모양이었다.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송구하온데 그걸 왜 제자에게서 찾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별채를 비우기는 했으나 호위 무사들에게 물어보면······.”
“고민을 해보아도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네?”
“대체 무슨 수를 쓴 게냐?”
“무슨 수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런 목경운의 반문에 암종주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이질감 혹은 위화감이라는 게 있지.”
“······.”
“그것이 작았을 때는 알아차리기 힘들었으나, 어느 순간 널 중심으로 주변이 위화감으로 잠식되었다.”
암종주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암종에 있는 자들은 간자로도 활동하고 기밀을 담당하는 만큼 철저히 정신 훈련을 받았다.
그렇기에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고작 이레에 불과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그들이 정파의 볼모라 할 수 있는 목경운에게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떤 기이한 수법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정식제자가 되었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선은 넘어선 것 같구나.”
-스릉!
뭔가가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암종주의 허리춤에 있던 도집에서 도(刀)가 발도하면서 난 소리였다.
그런데 소리와 함께 어느새 날카로운 도날이 목경운의 턱 밑에 닿아있었다.
-슥!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느 정도 격차는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암종주의 무위는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의 심복인 위맹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강하네.’
순수 하단전의 무위만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때 암종주가 더욱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그 목을 베어야 할 수도 있다. 하니 지금부터는 묻는 말에 확실하게 답해줬으면 하···!?”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암종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런 것이 목경운이 웃었기 때문이었다.
‘!?’
이를 보자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침입자의 목을 베었을 때, 목경운이 보였던 그 악의로 가득 찬 미소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웃음을 보면서 등골이 싸늘해지고 위험하다 여겼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를 떠올린 암종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그 웃음······.”
“감이 참 좋으시네요. 고작 위화감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니 말이죠.”
“너······.”
“해서 제 목을 벨 건가요?”
“······.”
그 물음에 암종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목경운의 이 대답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긍정한 거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나 확실한 건 이 아이 정말 위험하다.
단순히 정파의 볼모라서이거나 무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평범한 것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지금 네 목을 베는 편이 본 회를 위해서도 이로울 것 같기는 하구나.”
“그럴지도요.”
목경운의 담담한 반응에 암종주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다니 배짱 하나는 인정할 만했다.
하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이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암종 전체로 그 위화감이 잠식되고 말 것이다.
-꽉!
암종주가 도병을 쥐고서 힘을 가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한데 말이죠. 제 목을 베게 되면 사부님께서 불을 숭배하는 자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될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
그 순간 암종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놈이······ 어떻게 그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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