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
1화 기회 (1)
중랑현(中朗懸)
저잣거리로 많은 인파들이 몰렸다.
가판대에서 요깃거리를 만들어 팔던 아주머니, 아슬아슬하게 물지게를 나르던 아저씨, 동무들과 뛰놀던 아이들, 지나가는 여러 행인들까지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마을의 거리 한복판을 길게 이어지는 행렬이 관통하고 있었다.
-끼그덕! 끼그덕!
두꺼운 목창살 수레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관군의 호위 행렬 사이로 보이는 목창살 안에는 손발이 구속되어 있는 죄수들이 타고 있었다.
“저것 봐.”
“어휴. 완전 피투성이야.”
모진 고초를 당한 듯이 초췌하고 상처 많은 얼굴들.
그들의 흰 수의(囚衣)는 붉게 얼룩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송 행렬을 지켜보는 마을의 분위기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행렬이 한참 이어지던 때였다.
누군가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쥐고서 목창살 안으로 던졌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퍽!
“크윽!”
손발이 묶여있는 죄수는 돌멩이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 말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죄수의 모습.
이를 본 행인들의 일부가 어느새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언가를 잡고서 던지기 시작했다.
-퍼퍼퍽!
목창살 속의 죄수들은 이를 맞아야만 했다.
“못된 것들!”
“에라이 쌍놈들아!”
“이거나 맞고 뒈져라!”
이들을 호송하는 관군들 중에 누구 하나 이것을 제지하는 이들이 없었다.
오히려 비웃음을 흘리며 이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애초에 죄수의 공개 이송 행렬의 목적은 이런 의도였다.
만천하에 죄를 고하는 것이다.
“흠.”
그런 그들을 객잔 2층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한 중년인이 있었다.
단정하게 앉아 찻잔을 들이키는 그에게 맞은편에 있던 관복을 입고 있는 관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나?”
저들은 죄인들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죄수들을 보며 쉽게 연민을 느낄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이에 중년인이 한 수레를 쳐다보았다.
다른 죄수들과 달리 혼자 갇혀 있는 어떤 죄수가 보인다.
수의의 가슴과 복부 쪽이 붉게 물든 죄수였다.
“어리군.”
죄수는 봉두난발을 하고서 곧게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에 얼굴의 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얼핏 봐도 소년이었다.
고작 해야 열여섯에서 열일곱일 듯 했다.
‘…….도련님과 동년배인가.’
저 어린 죄수를 보니 문득 모시고 있는 도련님이 떠올랐다.
그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를 짓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그런 그를 바라보던 관인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형을 집행하기 전까지 밝히긴 힘들지만 보기엔 저래도 저 중에서 가장 중한 죄를 저질렀네.”
그 말에 의아해진 중년인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어리다고 한 저 녀석이 이번에 이송 온 죄수들 중 가장 악질적인 놈이란 말일세.”
“가장 악질적이라고?”
중년인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 어린 죄수가 무엇이 악질적이란 말인가?
“……사람을 해하기라도 했나?”
관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죄는 대역죄라 불리는 반역이다.
하지만 대역죄를 저지른 자는 그 죄명을 공개하여 호송을 하니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저지를 가장 악질적인 죄는 하나뿐이다.
바로 살인이다.
“그렇네.”
관인의 대답에 중년인이 옅은 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민간인들에게 있어서 살인은 중죄였지만 자신과 같은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런 그를 보던 관인이 혀를 찼다.
“쯧쯧. 누가 무림인이 아니랄까봐 크게 와 닿지 않나보구만.”
“죽이고 죽는 일은 이쪽에선 부지기수일세.”
“그러시겠지. 하나 저놈의 정체가 뭔지 안다면 자네도…..”
-퍽!
관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목창살 안에 있던 소년의 머리로 돌멩이가 정통으로 날아와 적중했다.
주변이 술렁였다.
소년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데 다른 죄수들과 달리 소년은 조금의 미동도 고통의 신음성도 없었다.
“어린놈이 아주 독종이야.”
“아프지도 않나? 머리가 저리 되었는데 어찌….”
이 모습에 중년인 역시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저놈…….’
내공을 익히거나 훈련받은 자라면 고통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저 소년은 평범한 민간인이다.
한데 머리가 깨질 만큼 정통으로 돌멩이를 맞았는데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심지어 미동조차 없는 게 독하긴 독했다.
-슥!
흐르는 피가 머리를 적시자 거추장스러운지 소년이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러자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순간 가까이서 지켜보던 행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어.”
피에 젖은 얼굴이었지만 그 미형은 숨길 수가 없었다.
훤칠하면서도 선이 고운 것이 묘한 매력을 가진 얼굴이었다.
특이한 것은 인상이 어찌 보면 선해 보이기마저 했다.
“저런 얼굴로 어찌 그런 짓들을….?”
관인이 의아해했다.
중년인이 매우 놀란 듯 한 얼굴로 죄수 소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왜 그러나?”
그 물음에 중년인이 흠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네.”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방금 전에는 분명 충격이라도 받은 듯 한 얼굴이었다.
왜 그러나 재차 물어보려고 하는데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차는 잘 마셨네. 급한 용무가 생겨 가봐야 할 것 같네.”
“어허. 이 사람 오랜만에 봤는데….”
“내 바빠서 그렇네. 다음에 보면 월향루에서 거하게 한 잔 사겠네.”
“월향루? 어흠흠.”
그런 그의 말에 관인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고을에서 제일 호화로운 기루에 데려가주겠다는데 좋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 * *
새벽 축시(丑時) 말 무렵,
중랑현 관청 금옥 건물의 지하층.
투옥되어 있는 죄수들의 대부분이 잠이 들었고, 금옥을 지키는 보초들마저 벽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잠이 들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는 봉두난발을 하고 있는 죄수 소년이었다.
금옥에 갇혀 있는 소년은 멍한 눈으로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
죽었다고 여겼다가 깨어난지 나흘 째.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깨어났을 때 그는 죄수로 수감되어 있었다.
게다가 공개 형 집행일마저 정해졌다.
형은 거열형(車裂刑).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이었다.
‘…….당연한 형벌인가.’
겸살귀라 불릴 만큼 많은 이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형벌이 어떻든 간에 사형은 면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눈동자에는 후회를 비롯해 어떠한 초조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소년의 머릿속은 다른 것으로 복잡했다.
[뭐? 무공? 어이 꼬맹아. 혹시 무림인이라도 만났던 거냐?]같이 이송 온 죄수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했던 말이다.
그로 인해 소년은 그 동안 품었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무림인……’
할아버지를 따라 마을에 갔을 때 종종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말과 같은 속도로 달릴 수도 있고, 기(氣)라는 것을 연마하여 평범한 사람의 힘을 넘어섰다고 말이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을 사지로 몰고 갔다.
‘…….다시 만나도 결과는 같다.’
잠을 자지 않고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 자를 죽일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기습을 하거나 함정을 판다고 해도 과연 통할까?
애초에 그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이었다.
‘무림인이라는 것들은 원래 그 정도로 강한 건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요원해질지도 몰랐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죽일 수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한참을 고민에 잠겨 있던 소년은 문득 떠올렸다.
‘무공.’
그 자와 자신의 차이는 단 하나였다.
무공을 익혔고 익히지 않았고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순할 지도 몰랐다.
‘무공이 필요해.’
똑같은 조건이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이제야 뭔가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니 둘인가?’
첫 번째는 이곳을 나가야 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게 되면 거열형에 처해져 사지가 찢겨져 죽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떻게 무공을 배울 수 있느냐였다.
‘누구에게 배우지?’
무공을 가르쳐줄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그런 자들을 어떻게 찾을지도 막연했다.
게다가 이곳을 어찌 나간다고 해도 자신은 죄수의 신분이었다.
탈옥하게 되면 수배령이 내려질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면 과연 죄수인 자신에게 누가 무공을 가르쳐주려 할까.
‘……첩첩산중이군.’
머리가 또 다시 복잡해졌다.
새삼 할아버지의 약조가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복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신의 숨겨왔던 본성을 쉽게 드러내선 안됐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인가.’
깨달았다고 한들 이미 늦었다.
이미 결과는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가 아직까지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알아도 사형 당할 처지이니, 내버려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슈우우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이에 소년은 몸을 돌렸다.
이상함을 느낀 소년은 숨을 죽이고 주변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뭐지?’
궁금해 하던 찰나에 소년의 눈에 무언가가 띄었다.
옅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그가 갇혀 있는 금옥 우측 밑에서 스멀거리며 퍼져왔다.
소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불이 난 건가?’
혹시 금옥 건물에 불이 난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윽고 그 의구심은 사라졌다.
불이 난 것 치고는 특별히 소란도 없었고 너무 조용했다.
그런데,
-쿵! 쿵!
뭔가 넘어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들려오는 소리로 짐작컨대 경비를 서는 관인들이 있던 위치인 듯 했다.
‘이건…..’
스멀거리던 아지랑이가 소년이 있는 금옥 안으로까지 퍼져들어 오고 있었다.
희미한 향이 코 끝을 자극하며 머릿속에 몇 가지 약초들이 떠올랐다.
‘삼백초…..당귀, 길초근, 언영초……’
할아버지를 따라 약초를 구하고 재배한 것만 어언 10년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향에 민감한 소년은 단번에 아지랑이와 같은 옅은 연기 속에 섞인 약초들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수면향.’
길초근과 언영초는 수면을 유도하는 약초였다.
이런 배합이면 이 연기를 맡은 자들은 두 시진 가량은 잠에서 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달랐다.
‘배합이 어설프군.’
할아버지의 배합이라면 모를까,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여러 약초에 대한 내성을 키워왔기 때문에 이 정도 수준의 수면향으로는 잠이 들지 않는다.
‘흠.’
소년은 뭔가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했다.
모두가 잠이 들 야심한 때에 관청 금옥 내에 수면향이 피어졌으니 말이다.
소년은 벽에 기대고서 소리에 집중했다.
-슥슥!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힘든 수준의 소리였지만 소년의 귓가에는 희미하게 들려왔다.
‘누구지?’
수면향을 뿌려놓고 들어왔다.
뭔가 목적을 띠고서 들어왔다는 소리다.
아주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금옥의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거리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대체 누가 왜 침입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던 차에 발걸음 소리가 자신의 금옥으로 향해졌다.
이에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서 일부러 잠이 든 척했다.
-슥슥!
자신의 금옥 앞에서 멈춘 발걸음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달칵!
금옥의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였나?’
목적은 명백하게 소년 자신이었다.
이렇게 되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자가 죽지 않은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 금옥까지 찾아왔을 지도 모른다.
한데 굳이 사형 당할 사람을 찾아올 이유가 있나?
‘상관없다.’
목적이 어쨌든 자신을 노린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소년은 최대한 고르게 숨을 쉬었다.
수면향에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슥슥!
또 다시 기척을 죽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잠입한 괴한.
눈을 감고 있지만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툭!
괴한이 발로 소년을 슬쩍 건드렸다.
확실하게 잠이 들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함인 듯 했다.
소년은 몸에 힘을 빼고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이 들었다고 확신했는지 괴한이 갑자기 앞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위로 들어올렸다.
고르게 흘러나오던 괴한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
감정적으로 동요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할아버지에게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배운 소년은 타인의 표정, 행동, 호흡 등을 통해 심경 상태를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기회다.’
이런 동요는 적을 노릴 수 있는 기회였다.
소년은 단번에 두 손을 구속하고 있는 나무 형틀을 위로 세차게 들어올렸다.
-퍽!
“큭!”
무방비였던 괴한이 턱을 맞고서 뒤로 비틀거렸다.
소년은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서 괴한의 머리를 나무 형틀로 내려찍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괴한이 발로 소년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그리고 뒤로 밀려나는 순간 손가락으로 빠르게 가슴 쪽을 타혈했다.
-타타타타탁!
그러자 몸이 굳어진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없어하는데, 괴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잠이 들지 않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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