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33)
이른 아침.
시위부 훈련관 관주실.
무뚝뚝한 인상에 턱에 상처가 있는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이 관주실을 나서는 푸른 관복을 입은 한 사내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하며 배웅했다.
그가 나가자 중년인은 집무실 책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이 짓거리도 더는 못 해 먹겠군.’
중년인의 이름은 석전웅.
시위부 훈련 생도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관주이자 시위부령이다.
석전웅은 방금 전에 왔다 간 관인을 떠올리자 코웃음이 나왔다.
‘이를 어찌할지 참 난감하구나.’
방금 전 관인은 한림원(翰林院)의 정 6품 시독(侍讀)직을 맡고 있는 장찬이라는 자였다.
그가 이곳에 왔다 간 이유는 시위부 무시에 관한 청탁을 위해서다.
물론 이 같은 경우는 수두룩하다.
관주를 맡고 나서 계속되었다고 보면 됐다.
‘경친왕께서도 조급해지긴 하셨나 보구나. 이리 파벌의 측근을 보내 따로 청탁까지 하는 걸 보면.’
이미 시위부 무시에서 뽑기로 되어있는 여덟 명 중 그 넷이 내정자였다.
이 나라의 실권은 네 개로 나뉘어 있다.
황제 폐하의 아우인 경친왕(鏡親王) 그리고 삼공(三公) 중 태사(太師)와 중앙도독부의 제독을 겸하고 있는 대신 항윤파, 황제의 둘째 황자인 종왕(棕王), 그리고 현 황태자의 모친인 서 황귀비이다.
내정자들은 이 네 파벌로 나뉘게 된다.
아직은 황제가 그럭저럭 버티고 있기에 그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맞춰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깨지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폐하의 지병이 꽤 오래됐어.’
만약 황제가 쓰러지기라도 했다가는 파국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 조찬에도 나오지 않았기에 모든 대소신료가 이 조짐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니 경친왕도 이리 사람을 보낸 것이리라.
‘난감하기 짝이 없구나.’
관례처럼 채운 절반의 내정자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경친왕 쪽에서 지난번부터 이번 시위부 무시에 내정자로 정해지지 않은 남은 네 명의 자리를 전부 자신들의 인재들로 채워달라고 부탁하였다.
심지어 그냥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석 관주의 세수가 마흔아홉이시니 이제 시위부령직에 관련한 임기가 다 되어가는군요. 참 안타깝습니다.]석전웅의 나이 49세.
시위부령으로 있을 수 있는 임기는 50세였다.
이제 내년이 지나면 임기를 마치고 황궁을 나가야만 한다.
[아드님께서 내년 춘시(春試)에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네 번째 시험을 봤었는데, 내년이면 다섯 번째로군요. 이제 슬슬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림원에서 재능 있는 종8품 학사들이 필요하던 참입니다.]그것이 그를 흔들었다.
말인즉 청탁을 들어주면 아들을 급제시켜주겠다는 소리였다.
이 때문에 석전웅은 상당한 고민을 했었다.
아들의 문제는 국자감의 조교를 통해 듣기로 과거를 치르면 얼마든지 합격하고도 남을 실력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정자들과 권력다툼에 치여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급제를 못 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이 애비가 힘이 없어서다.’
모든 벼슬은 높은 관직에 있는 자들의 자제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소양과 실력과 상관없이 말이다.
석전웅은 본시 양민이 아니었으나 전장에서 공을 세운 덕분에 시위부로 들어와 시위부령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아무리 뛰어나고 성과를 내더라도 그 위로 오를 수가 없었다.
하여 고작 시위부령에 그쳤으니 아들의 벼슬길에 어떠한 도움도 줄 길이 없었다.
[이렇게 하도록 하지요. 전하께서 천거한 이들 다섯이 포함될 수 있다면 시위부 대두로 진급할 수 있도록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아드님의 과거 급제와 더불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됩니다.]이런 경친왕 측의 제안은 어찌 보면 참으로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들어주고 보상을 받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쉽게 그리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석전웅이 청탁 명단을 바라보았다.
‘하······.’
가관도 아니었다.
애초에 금의위로 자격이 없는 것들뿐이었다.
시위부 무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은 상급(上級) 생도만이 가능하다.
한데 청탁 명단에 있는 이들은 전부 하급(下級)으로 겨우겨우 훈련 과정을 따라오는 애송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아닌 자가 한 명 있기는 했다.
‘금종현.’
금종현은 애초에 상급 생도로 한림원의 종 5품 시강학사의 자제였다.
여느 문인들의 제자들과 별 다를 바 없으리라 여겼는데, 어느 순간 시위부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자라면 굳이 청탁이 없어도 합격할 확률이 높았다.
다만,
‘나머지는 무리다.’
하급(下級) 수준의 생도들을 억지로 상급(上級)으로 끌어올려 무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가는 생도들의 반발도 그렇고 나머지 파벌들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석전웅은 확답을 하지 않고 둘러대어 경친왕의 사자를 돌려보냈다.
‘이를 어찌한다.’
일단은 돌려보냈으나 내일이 시위부 무시였기에 오늘 내로 확답을 주어야 한다.
참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경친왕 측의 청탁을 들어주게 되면 다른 파벌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제안을 거부했다가는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아아아.’
뭔가 거절할 적당한 명분이 있으면 한데 마땅히 그것조차 없었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주. 동창의 장 소감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장 소감?”
동창의 장 소감이라 하면 서 황귀비 측의 측근이었다.
안 그래도 경친왕 측 사람이 찾아와 골머리 썩고 있는데, 장 소감까지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의아해하던 석전웅이 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 * *
‘허어. 이것 참.’
관주 석전웅이 난감하다는 듯한 내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창의 장 소감이 경친왕 측과 마찬가지로 서 황귀비의 곤란한 청탁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쪽이 더 하구나.’
경친왕 측은 그나마 시위부 생도로 있는 자들을 천거했다.
다소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그런데 서 황귀비 측에서는 생도도 아니었던 외부 인사 셋을 시위부 무시를 볼 수 있도록 상급(上級) 생도로 넣어달라고 했다.
아무리 그녀가 대단한 권세를 가졌다고 해도 이건 곤란했다.
“황귀비 마마의 부탁인데 힘들겠습니까?”
장 소감의 이 말에 석전웅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송구합니다. 미리 추천해주셨던 하북팽가의 청년은 그나마 정파 명문 무가 출신이기에 실력만 증명해 보인다면 충분히 생도들이나 시험관들을 납득시킬 명분이 됩니다. 하오나 이를 갑자기 다른 이로 교체하는 것도 곤란한 마당에 그 외에 검증되지 않은 자들을 추가로 둘이나 시위부 상급 생도로 받는 것 역시도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이런 그의 말에 장 소감이 탁자에 턱을 괴며 말했다.
“관주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실력에 대한 검증 때문인 겁니까? 아니면 다른 파벌들의 반발을 우려하는 겁니까?”
“······둘 다입니다.”
석전웅이 솔직하게 답했다.
안 그래도 경친왕 측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찾는 것도 힘든데, 서 황귀비 청탁까지 들어주게 되면 더욱 그 명분을 찾기 어렵게 된다.
그런 그에게 장 소감이 웃으며 말했다.
“실력에 대한 검증은 문제 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은 천지회에서 보낸 후기지수들이니까요.”
“천지회?”
이 말에 석전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지회라고 한다면 현 무림의 삼대 세력 중 하나가 아닌가.
그간 황궁에서 무림과의 친선을 위하여 숱하게 천지회 측에도 인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천지회에서는 묵묵부답(默默不答)으로 응대했었다.
한데 그런 그들이 서 황귀비를 통해 인재를 보냈다고?
이거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실력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천지회다.
그들이 처음으로 전면으로 앞세울 후기지수라면 약한 자들을 보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야 이것을 알기에 납득했다고 해도 생도들도 그렇고 경친왕 측에서 이를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쉽게······.
‘아!’
순간 석전웅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번뜩였다.
한 번에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가 떠올랐다.
‘이이제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를 이용하여 다른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말이다.
굳이 서 황귀비 측과 경친왕 측의 이 무리한 요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둘을 붙여놓으면 그만이었다.
* * *
한 시진 후,
천지회 측이 머무는 객잔의 한 방안.
보고를 마친 동창의 장 소감이 누군가의 눈치를 슬며시 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목경운이었다.
황궁의 네 권력자 중 한 사람인 서 황귀비의 측근이었기에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던 그였지만 어제의 일을 겪은 후로는 달라졌다.
그에게 있어서도 목경운은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눈치를 보던 그에게 목경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해서 결론은 시위부 무시를 보려면 상급반 생도로 월반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한 번에 상급반으로 월반이 되도록 요청을 했으나, 시위부 훈련관 관주의 말로는 그리하면 다른 파벌이나 생도들에게서 반발이 있을 거라 했습니다.”
“그런가요? 황귀비 마마의 권세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군요.”
“······송구합니다.”
금의위(錦衣衛)는 황제의 직속 특수 기관이다.
그렇기에 그 선발 과정에는 아무리 황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을 지닌 서 황귀비라고 해도 크게 간섭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는 다른 권력의 사인방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의위만큼은 황제 직속 단체라 압력을 행사하기 힘든 중립적인 위치에 존재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래서 월반의 조건이 뭐죠?”
“마찬가지로 상급반으로 월반을 요청한 경친왕 측이 천거한 생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시험관의 공증 아래 그들과 겨루면 됩니다.”
“이기는 쪽이 월반을 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뭐, 그리 까다롭진 않겠군요.”
일종의 비무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했다.
그때 섭춘이 말했다.
“한 자리는 내정으로 정해졌다고 하니 주군께서는 굳이 나서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몽무약과 제가 월반 비무를 하겠습니다.”
“아뇨, 저도 비무를 할게요. 내정 자리는 몽무약이 가도록 하죠.”
“네?”
목경운의 결정에 몽무약이 놀라서 반문했다.
내정 자리에 있으면 금의위 선발이 거의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째서 이런 결정을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군. 이 정도는 저희 선에서······.”
“아뇨. 괜찮아요.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으면 따분해서요.”
이에 몽무약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이유라면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그저 따분하다는 이유로 주군과 겨루게 될 비무자가 딱할 뿐이었다.
* * *
오후 미시(未時) 무렵.
시위부 생도 훈련장 근처.
한림원(翰林院)의 정 6품 시독(侍讀)직을 맡고 있는 장찬이 한쪽 어깨에 부목을 하고 있는 붉은 관복에 하얀 분칠을 한 늙은 환관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아직 부상으로 몸도 좋지 않으신데 이리 부탁드려 송구합니다. 범 소감.”
늙은 환관의 이름은 범증.
황궁 서창의 소감(少監)직을 맡고 있었다.
“아닙니다. 경친왕 전하께서도 함께 살펴봐달라고 했으니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일개 문관에 불과하여 월반 비무가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알 수가 없어, 이리 고수이신 범 소감에게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허허허. 노부도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니 이리 부상을 입은 게지요.”
“그런 말씀 마시지요. 공께서 목숨을 걸고 군주마마를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전하께서도 이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셨다니 그저 황공할 따름입니다.”
“늘 겸손하신 모습에 이 장모가 한 수 배웁니다. 하면 가시죠.”
시독 장찬이 손을 내밀며 앞장섰다.
이에 서창의 환관 범 소감이 절뚝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사실 그는 부상을 입어서 다른 서창의 환관에게 일을 양보할 수 있었으나, 호기심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천지회라······.’
이번 월반 비무가 치러지는 상대가 천지회라 들었다.
그간 황궁 내외적으로 많은 무인을 만나보았지만, 대부분이 정파인들이었다.
그렇기에 범 소감은 사파인들조차 두려워한다는 그들의 저력이 궁금했기에 직접 참관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천지회가 서 황귀비가 결탁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아서 나쁠 건 없겠지.’
머지않아 경친왕 전하께 있어 위협적인 적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과연 천지회 측 후기지수들의 무위는 어느 정도일까?
“아! 저기 기다리고 있군요.”
시독 장찬이 하급 훈련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오오. 그렇······!?”
기대감이 부푼 마음으로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옮겨가던 범 소감이 무언가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서 도중에 멈춰 섰다.
“범 소감?”
시독 장찬이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 범 소감을 쳐다보았다.
그의 안색이 갑자기 좋지 않았다.
심지어 몸을 파르르 떨 만큼 경직되어 있었는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 어찌 저자가 이곳에?’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띌 만큼 미색이 뛰어난 자가 보였다.
범 소감은 그를 보자마자 어찌나 놀랐는지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잘못 본 건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천운처럼 겨우 살아남고서 다시는 놈과 마주치지 않기를 염원했던 그였다.
그런데 어찌 저 악귀 같은 놈이 이곳에 있는 거지?
“범 소감?”
시독 장찬이 그를 불렀다.
이에 겨우 정신을 차린 범 소감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들이 천지회 측의 후기지수들입니까?”
“저희 쪽 생도들과 대치하고 있는 걸 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한데 범 소감 아는 얼굴이라도 있는 겁니까? 어찌 그러시는지?”
이런 그의 물음에 범 소감이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가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당장······. 당장 비무를 포기하게 하시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오.”
“이길 수 없다니요? 아직 겨뤄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무리요.”
이런 시독 장찬의 말을 범 소감이 단호하게 끊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조차 상대할 수 없는 괴물 놈을 저런 애송이들이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이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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