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29)
성도(成都)에서 4리(里) 정도 떨어진 곳.
그곳에는 작은 마을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장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사천당가(四川唐家)였다.
조용하던 사천당가의 장원에 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해가 중천에 이른 정오 무렵의 뜻밖의 누군가가 방문해서였다.
평범한 무복을 입고 있었으나, 드러난 부위의 곳곳이 온통 흉터투성이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닌 죽립인이었다.
당가의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이 이런 그에게서 경계심을 느꼈는지 그 정체를 물어보았다.
“가주와 아무런 약조도 없이 뵙겠다고 하는 객께서는 누구신지요?”
정중한 무사의 물음에 사내가 짧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석패웅.”
“석······패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굉장히 익숙한데 이 이름은 분명······.
“노, 녹림투왕?”
“힉!”
녹림투왕(綠林鬪王) 석패웅.
팔성(八星)의 일인이자 녹림연합의 수장이자 사파의 최고수 중 하나였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무사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파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녹림의 주인이 다른 곳도 아니고 정파의 한 각을 맡고 있는 사천당가에 단신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 그의 등장에 당가는 난리가 났다.
당가의 장원을 지키는 모든 전력이 집합하게 되었고, 그들은 언제라도 전투를 치를 임전태세를 갖췄다.
당가의 객당.
그 주변을 오백여 명이 넘는 당가의 무인들이 둘러쌌다.
-탁!
객당 내 누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원탁의 탁자를 두고서 서로 마주 본 채 앉아 있는 두 중년인이 있었다.
그들은 사파의 거장 녹림투왕 석패웅과 사천당가의 가주이자 마찬가지로 팔성의 칭호를 받은 천독수(千毒手) 당인해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석패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주 거한 환영인사구려. 이 많은 이들이 이 석 모를 위해 모여주다니 말이오.”
적진의 한복판에 있음에도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는 석패웅의 여유로운 모습에 당가주 당인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더니 이내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석 대협을 인정하기에 그런 것이 아니겠소.”
“대협이라······. 당 형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구려.”
“석 대협 같은 영웅이라면 응당 대협이라 불려야 마땅하지 않겠소.”
“사마외도의 길을 걷고 한낱 도적질이나 하는 무리의 수장을 대협이라 불러 마땅하다라. 기분이 나쁘진 않지만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구려. 그리 띄워주지 않아도 된다오.”
직설적인 그의 화법에 당가주 당인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석패웅 본인이 말했듯이 그는 대협이라 불릴 자는 아니었다.
그 무위는 당연히 인정받을 만했으나 산도적들의 수장에 불과한 자였기에 지탄받아 마땅한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은 그의 속셈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자가 어찌 이곳에 온 거지?’
크게 보면 정파와 사파는 당연히 적대 관계였다.
그러나 엄밀히 녹림과 사천당가는 특별히 접점이라거나 부딪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자는 너무도 뜬금없이 찾아왔다.
이곳 사천의 경우는 아미파(峨嵋派), 청성파(靑城派) 등도 있기에 정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데, 혼자서 찾아온 대담함이 마음에 걸린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곳을 방문한 걸까?
“후우. 별수 없구려.”
결국 돌려서 이야기를 해봐야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당인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석 대협······. 무슨 일로 본가를 방문한 것이오?”
“별 것 없소.”
“별 것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보시다시피 수하들도 없이 비무장 상태로 이곳에 온 이유는 딱히 싸우기 위함이 아니오.”
“싸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걸 믿으라는 건가?’
사파인들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간교함을 가지고 있다.
그 속셈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석패웅이 피식하고 웃더니 이내 본론을 꺼냈다.
“돌려서 말할 것도 아니니 그냥 말하겠소. 어차피 머리를 굴리는 것은 본인의 성향도 아니니 말이오.”
“······말하시오.”
“당가에서 한 여인을 데리고 있다고 들었소.”
“여인이라니 무슨 소리요?”
“시치미를 뗄 필요 없소. 이미 정보를 입수했으니 말이오.”
이 말에 당가주 당인해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석 대협. 본 가주는 도통 대협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소이다.”
“아아. 모르오? 하면 배화교인이라고 하면 알아듣겠구려.”
‘!?’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인해의 표정이 찰나에 굳어졌다.
그러나 빠르게 당인해가 표정을 풀고서 시치미를 뗐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발뺌해도 소용없소. 이 정보는 믿을 만한 곳에서 나온 것이오.”
“······.”
“본인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요. 그 배화교의 여인을 넘기시오.”
이런 그의 요구에 당인해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석 대협, 어디서 그런 정보를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본가를 찾아와 다짜고짜 누구를 내놓으라 말라 요구하다니 참으로 무례하구려.”
“무례? 무엇이 말이오? 배화교인을 내놓으라 한 것이?”
“허어. 석 대협!”
“대 사천당가에서 혹세무민을 일으키는 배화교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감당할 수 있겠소이까?”
“말씀이 지나치시오!”
“지나쳐? 배화교인이 없다면 그냥 부정하면 될 일이 아니오? 어찌 무례하니 뭐니 그런 소리만 해대는 것이오?”
이 말에 당가주 당인해가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
“······당연히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소. 배화교인이 어찌 본가에 있겠소.”
“없는 것이 확실하다는 거요?”
“그렇소.”
“그리 당당하다니 문제 될 것이 없구려. 하면 당가의 장원을 수색하게 해주시오.”
-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인해가 이내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일수에 이내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쪼개진 탁자가 바닥에 쓰러지자 당가주 당인해가 무섭게 인상을 쓰며 언성을 높였다.
“감히 본가를 뒤지겠다는 것이냐?”
“구릴 것이 없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는가?”
“거부? 무례하기 그지없는 자로다. 감히 녹림의 도적 따위가 정의맹의 일각을 맡고 있는 본가에 느닷없이 쳐들어와 수색을 하겠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당인해는 더 이상 예의를 차리는 것을 포기했다.
이미 녹림투왕 석패웅이 본가를 수색하겠다고 한 시점부터 선을 넘어선 것이었기에 분노가 극에 이르러 있었다.
아무리 팔성의 일인이라고는 하나 자신 역시 팔성의 일인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팔성의 칭호가 칠성(七星)으로 바뀌길 원하는가 보오.”
“당 가주께서 많이 언짢은가 보구려.”
-후룩!
차를 들이키는 석패웅의 모습에 당인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
미처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탁자가 쪼개지기 전에 그 위에 있던 찻잔을 회수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당가주 당인해가 체내의 독 기운을 끌어올렸다.
‘오늘 이자를 살려서 보낸다면 후환이 크겠구나.’
어차피 당가의 안으로 들어온 시점에서 최악의 경우도 상정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접한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제대로 실수했다.
배화교인을 들먹이며 당가를 몰아붙이고 싶었다면 단독으로 당가의 내부로 들어와 도발을 해선 안 됐다.
자신이었다면 적어도 녹림도들을 끌고 오든 사전에 밖의 여론을 움직이든······.
-타타타탁!
바로 그때였다.
“가, 가주 큰일입니다!”
밖에서 들리는 외당주의 목소리에 당인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소란이냐?”
“지금 본가 주변을 녹림도들이 포위했습니다.”
“뭐라?”
“저들이 기름통을 잔뜩 쌓아놓고서 불을 붙인 화살을 겨냥하고서 본가 주변을 둘러쌌습니다.”
이에 당가주 당인해가 인상을 쓰며 녹림패왕 석패웅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석패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잘 알지는 못하나 독공에 강한 것이 화공(火攻)이라고 들었소.”
“석패웅!”
이놈은 미끼였다.
모든 당가의 시선을 한 곳으로 머물게 하기 위한 미끼.
‘하!’
기가 찼다.
도적놈이 머리를 써봐야 얼마나 쓰겠나 싶었는데, 수장인 자신이 미끼가 되어 모든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시켰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당인해가 냉정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작정하고 왔구나. 한데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화공이 독에 대항할 수 있는 방도라고는 하나 사천은 정도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사파의 무리들이 이곳에 와서 활개 치는 걸 다른 정도인들이 내버려 둘 것 같나?”
이런 그의 말에 석패웅이 팔짱을 끼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평소라면 그렇겠지.”
“평소?”
“이곳으로 오면서 본인이 무엇을 했을 것 같소? 아마도 당가에서 배화교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게 인근으로 쭉 퍼져나가고 있겠구려.”
‘!!!!!’
-꽉!
당가주 당인해의 쥐고 있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당했다.’
이놈 단순한 도적놈이 아니었다.
제대로 전략을 구사할 줄 안다.
본가에서 배화교인을 보호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정의맹이나 다른 정파인들이 섣불리 도울 명분이 없어진다.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석패웅이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당 가주. 본인도 이곳에 전쟁을 치르러 온 것은 아니오. 당가와 본 녹림이 싸우게 된다면 서로 간의 희생도 클 테고, 이것이 또 다른 정사 대전의 빌미가 될 수 있소. 그렇기에 본인은 평화로운 제안을 하려 하오.”
“평화로운 제안? 하!”
“나흘의 시간을 주겠소. 그 안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순순히 보호하고 있는 배화교인들 데려오든 당가를 수색하게 해주든 결정해야 할 거요.”
“······.”
“단 나흘이오.”
-탁!
그 말과 함께 석패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당 가주 당인해가 살기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오오오오!
“순순히 보내줄 것 같은가?”
“객당 주변에 당가의 모든 전력을 모은 것 같은데······. 팔성의 칭호를 받은 우리 둘이 지금 당장 싸우게 된다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어디로 갈 것 같소?”
-으득!
득의양양한 석패웅의 말에 당인해가 이를 갈았다.
“본 가주가 그 정도 각오조차 하지 못할 것 같은가?”
“당 가주. 이성을 찾으시오. 고작 배화교인 하나를 보호하고자 대 당가의 명예도 버리고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거요?”
“······.”
이 말에 당인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놈이 모든 퇴로를 막아놓았다.
놈의 말대로 여기서 싸움을 불사한다면 설령 운이 좋아 석패웅과 녹림을 물리친다고 해도 그 피해가 상상 이상일뿐더러 당가는 배화교인을 보호하려 했다는 오명(汚名)을 쓰게 될 것이다.
“나흘이오.”
그렇게 석패웅은 당당하게 객당의 바깥을 나갔다.
그가 그렇게 나가자 얼마 있지 않아 외당주 당철용이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가주!”
당철용의 부름에 당가주 당인해가 힘이 빠진 것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가주. 생각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녹림도들과 싸우는 것보다 그 계집을 데리고 있었다는 게 소문이라도 난다면 사태를 수습하기 힘들어집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 않았나!”
“······설마 아직도 예지 능력인가 뭔가 하는 것에 미련을 가지시는 겁니까?”
“······.”
이런 그의 물음에 당가주 당인해가 입을 다물었다.
이에 당철용이 혀를 차며 말했다.
“가주. 이제 그만 미련을 접어야 합니다. 송아 그 계집이 제 조모(祖母)의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해도 그 아이는 철저히 배화교인입니다. 그런 아이가 본가의 분파고 뭐고 간에 가주를 위해 그 힘을 쓸 것 같습니까?”
“······.”
여전히 대답이 없는 가주의 앞으로 다가온 외당주 당철용이 탄식을 내뱉었다.
대체 그놈의 예지 능력이란 게 무엇이기에 가주가 이렇게까지 가문의 위기에도 미련을 보이는 것일까?
* * *
같은 시각.
성도의 동북쪽에서 이틀 정도 떨어진 도시 덕양(德陽).
그곳의 한 객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목경운의 일행이었다.
쉬지 않고 이동하던 그들은 평야 지대로 들어서며 잠시 요기를 채우기 위해 마을에 들린 차였다.
-탁!
목경운이 고기 국수를 먹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반도 먹지 않은 국수 그릇을 보며 섭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주군. 국수가 입맛에 맞지 않으신 겁니까?”
그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여유롭게 식사를 할 틈이 없네요. 조금 서둘러야 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목경운이 객잔의 2층에서 병장기를 차고서 속삭이듯이 대화를 나누는 무리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목경운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산도적분들이 제 먹잇감을 노리네요.”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