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41)
-콰득!
“끄읍.”
쇄골을 파고든 무형검을 비틀자 귀검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어지간한 고통에는 익숙하고 인내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것은 마치 검의 정수답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을 선사했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예언, 화신 그 모든 걸 밀회의 수장인 목간이란 자가 경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화신을 빼돌렸다고 하는 할아버지를 노린 것이겠지.”
이 말에 귀검이 미간을 찡그리며 답했다.
“하아······. 하아······. 화신으로서 자각한 것도 각성한 것도 아닌데 많은 것을 알아냈군.”
“아까부터 각성, 각성하는데 내 안에 있는 녀석을 말하는 것이냐?”
“그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아직 각성을 하지 못한 것이지?”
오히려 귀검이 되물었다.
이에 목경운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나는 다른 존재다.”
“다른 존재?”
“그래.”
목경운의 대답에 귀검 역시 코웃음을 쳤다.
“그게 너와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존재였다면 네 조부, 아니 해영약선이 지금껏 자신의 모든 걸 걸고서 너를 보호했을 것 같으냐?”
“······.”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그 말에 목경운이 싸늘해진 눈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가졌던 의문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키웠던 것은 그 배화교의 성화가 내린 예언 때문이었던가?
그게 아니었다면 할아버지가 그리 비참하게 죽었을 일도 없었던 것인가?
그 모든 게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나?
그래서 그런 것이었나?
“······대체 난 뭐지?”
“하아······하아······. 의미 없는 의문이군. 화신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일깨웠다면 자연히 알게 될 진실이 아니더냐?”
-꽉!
“난······. 나일 뿐이야.”
목경운은 자신의 안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다.
이런 목경운의 반응에 귀검이 혀를 내둘러대며 중얼거렸다.
“정말 자신의 말을 기어이 지켜냈군. 해영약선.”
“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목경운이 무형검을 더욱 깊이 박으며 검신을 비틀었다.
-콰득!
“끄으읍. 적당······히······해라. 이런······게 아니어도······. 나······역시도······대화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그래? 하면 말해라. 뭘 지켰다는 거지?”
“너도······알고······있지 않느냐.”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난 나일 뿐이고 화신······.”
“아니. 그대는 화신이다. 하나 해영약선은 그대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려 했다.”
“뭐?”
목경운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완전한 인간으로 키우려고 했다니?
“진실······. 진실에 꽤 다가갔다면 그가 뛰어난 무공의 고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래.”
해영약선 장문노.
중원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사천당가의 분가이자 전전대 가주인 화천독수(花千毒手) 당연종의 가르침을 받은 초고수였다.
목경운 역시도 그가 죽었을 때까지조차도 이런 진실을 알지 못했다.
천지회와 황궁, 사천당가를 거치며 할아버지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것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할아버지와 화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진실에는 공백이 존재했다.
“무공을 숨겼다는 게 그것과 무슨 상관이란 거지?”
“상관이 없을 것 같나? 배화교에선 화신인 그대를 신적인 존재로 숭상하며 동전의 양면을 가졌기에 스펜타(善神)이면서 아흐리만, 즉, 앙그라(惡神)라 치켜세우지만 그대의 근본은 마(魔)이다.”
“마(魔)?”
“그래. 마(魔)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존재······. 그게 바로 그대다.”
이런 귀검의 말에 목경운의 표정이 묘해졌다.
[쿨럭쿨럭······. 약조해라.] [무엇을 말입니까?] [절대로 네 본성을······. 드러내지······않겠다고······.]본성.
할아버지는 내 안에 어두운 면이 있다고 했다.
모든 인간에게도 그런 면이 있지만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것을 더욱 통제할 수 없을 거라 했다.
그렇기에 그 본성을 억누르라고 늘 가르쳤다.
할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를 지키려고 했지만, 그의 죽음 이후로 자신의 본성은 절대 선(善)이 아님을 깨달았다.
목경운은 이를 단순히 선을 행하진 못하더라도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억눌렀다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게 아니라고?
말이 없는 목경운에게 귀검이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그대가 있던 은신처에는 약초 관련한 잡학과 예(禮)와 올바름, 정의(正意)에 관련된 서적밖에 없더군. 해영약선 장문노는 그대가 화신으로서 절대 각성할 수 없도록 모든 것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
“처음엔 그저 그대를 은밀히 보호하기 위함이라 여겼다. 힘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했지.”
“힘을 회복해?”
“그래······. 성화의 예언대로 화신인 그대는 예전의 모든 힘을 잃었다. 해서 나는 해영약선의 판단이 그것 때문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 그는 정말로 그대를 인간으로 키울 작정이었다.”
“하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감사?”
“그래. 밀회는 화신을 두려워했기에 그 예언마저 바꾼 것이 아니었나? 그럼 오히려 걱정을 덜은 셈이지 않나?”
“걱정······. 그건 놈의 걱정을 덜어내는 것이겠지. 내게 필요한 것은 각성한 그대의 존재다.”
“각성한 나?”
“그대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화신을 두려워한다고. 목간은 그대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한다.”
“한데 할아버지로 인해 네놈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냐?”
“모르지.”
“뭐?”
“그대를 끝까지 인간으로 키우려 했던 것이 온전히 해영약선의 의지였는지 아니면 그대의 의지가 깃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목경운의 반응에 귀검이 짙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해영약선이 비록 뛰어난 의술을 지녔지만 그대란 존재를 인간에게 심거나 그 존재를 만들 만한 힘을 가지진 않았다.”
“······.”
“숙적들로부터 하여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의지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퇴화하여 인간이 된 것은 전적으로 그대의 선택이다. 화신.”
‘!?’
내가 선택한 거라고?
아니 이 말은 내 안의 존재가 나 자신이 되기를 택했다는 말도 되지 않는가.
목경운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이를 부정했다.
“그 화신이라는 존재가 인간, 그러니까 내가 되었다는 것을 네놈이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이 물음에 귀검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대의 그 모습이 그 증거다.”
“이 모습?”
“그래. 그대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대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가 있지. 믿기 힘들겠다면 연목검장이라는 곳을 찾아봐라. 그대가 인간으로서의 표본으로 삼았던 그 존재를 볼 수 있을······.”
-꽉!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목경운이 부릅뜬 눈으로 그의 멱살을 세게 짓눌렀다.
연목검장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라고?
목경운은 처음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우연과 우연의 일치로 인한 일이라고 여겼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기에 아주 공교롭게도 우연으로 인해 거의 흡사한 얼굴을 지녔던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귀검의 이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목경운이 그를 멱살을 짓누른 채 물었다.
“십칠 년 전······. 아니 십팔 년 전인데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안다는 거지?”
“······이 두 눈으로 보았으니까.”
‘!?’
* * *
광동성(廣東省) 용문(龍門).
[컥!]자신을 막아서는 연목검장의 장주 목인단을 단 한 초식만에 제압한 귀검이 자신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그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아직······. 아직 아기요. 제발······. 제발······살려주시오.]-팍!
그런 그를 기절시킨 귀검이 부서진 마차로 다가갔다.
분명 이곳이 틀림없었다.
화신의 흔적을 따라왔고 이곳에 그 존재가 있다.
-파르르르!
귀검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감겨 있는 눈꺼풀을 만져보았다.
아직까지 놈은 잠들어 있었고 자신에게 통제권이 있었다.
그 전에 서둘러야 했다.
-응애응애!
한데 어째서 안에서 울음소리만 들리는 거지?
이에 귀검은 부서진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부서진 마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그곳에,
‘이게 대체?’
쌍둥이처럼 보이는 똑 닮은 아기 둘이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는 어미의 곁에 눕혀 있었다.
귀검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분명 이 안에 화신에게서 느껴졌던 그 혼돈 자체의 기운이 묻어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화신은 없고 어미와 쌍둥이 아기 둘이 있단······.
‘!?’
그때 귀검이 쌍둥이들을 바라보다 그들의 놓여 있던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는 끈적하면서 검은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이것들에서 그 잔여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귀검이 두 아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울고 있는 아기 중 하나의 가슴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화신에겐 핵(核)이라는 게 존재하지. 인간으로 치면 심장과 같은 것이면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이들 중 화신이 있을지도 몰랐다.
극도로 약해졌을 테니 자신의 존재를 속이기 위해 변해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두근! 두근!
작게 뛰는 심장의 박동.
이 아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옆의 이 아이가 화신이 맞을 거다.
귀검이 가슴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서 기운을 감지하려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 아기 역시도 심장이 작게 뛰고 있을 뿐이지 화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핵(核)이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이곳에 숨은 게 틀림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둘 다 핵도 없었고 평범한 인간 그 자체였다.
‘빌어먹을.’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자신에게 통제권이 있다고 하지만 얼마 있지 않으면 다시 놈이 깨어날 것이다.
그 전에 누가 진짜인지 알아내야 하는데 어쩌지?
‘······.’
차라리 둘 다 데리고 가서 살펴보는 편이 나을까?
하나 무턱대고 데려간다면 이 아기들을 어디다 숨겨둬야 할지도 마땅치가 않았다.
시간은 없는데 무슨 수로 알아내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귀검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부적들으로 덮여 있는 목함이었다.
[이걸 들고 가게.]그것은 당대 천지회주 비중선이 자신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이건?] [월맥의 비급서일세.] [월맥의 비급서? 하면 그······.] [그렇네.] [한데 이것은 어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걸로 화신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이 목함 안에는 월맥의 비급서가 들어 있었다.
이것을 가까이 둔다면 화신 스스로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몰랐다.
그런데,
-욱씬!
두통과 함께 이마가 아파왔다.
놈이 깨어나려는 징조였다.
하필이면 지금 깨어나려고 하다니?
쌍둥이처럼 똑같은 두 아기를 바라보던 귀검이 이내 이마를 붙들고서 힘겹게 마차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기절시킨 연목검장의 장주 목인단이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게 보였다.
세게 치진 않았지만 제법 내공 공부가 두터웠던 모양이다.
[하아······하아······. 아······아기와 그녀는 어찌······어찌한 것이냐?]이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귀검이 물었다.
[아기는 하나인가? 둘인가?] [무······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아기가 둘이라니?]이 말에 귀검이 입을 다물었다.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
저 아기 중에 진짜 화신의 존재가 있었다.
하나 이제 놈이 깨어나려 했기에 자신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에,
-탁!
귀검이 그에게 부적으로 뒤덮여 있는 목함을 던졌다.
이를 얼떨결에 받아 든 목인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귀검이 말했다.
[쫓고 있던 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 대신 그것을 주지.] [이건?] [천지회의 비서(秘書) 중 하나다.] [뭐? 천지회의 비서? 이, 이걸 어찌······.]-스륵!
무림을 삼분하는 거대 단체인 천지회의 비서(秘書)라는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목인단의 뒤로 나타난 귀검이 그의 발목을 걷어찼다.
-쿵!
[큭!]옆으로 넘어진 그를 바라보던 귀검이 이내 검을 뽑고는,
-스릉!
-촤촤촤촥!
넘어진 그의 옆구리에 검으로 상처를 냈다.
그런데 그 상처 자국이 마치 표식처럼 보였다.
이를 남긴 귀검이 연목검장의 장주 목인단에게 경고조로 말했다.
[이 상처의 표식을 기억해둬라.] [표식?] [혹 머지않아 이 표식의 존재를 알거나 새긴 자가 다가온다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할 거다.]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