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90)
“기회를 받기 싫나요?”
이를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저 귀까지 닿을 듯이 미소 짓는 얼굴이 너무도 악의로 가득해 보였다.
‘…….내가 이놈을 너무 가볍게 보았구나.’
재능이 뛰어나기는 하나 아직 배울 게 많은 애송이라 여겼었다.
하나 지금 보니 아니었다.
이놈은 조금이라도 뒷목을 보이면 이를 물어뜯어버리는 맹수나 다름없었다.
조의공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꽈아아아악!
아직까지 쇠사슬에서 구속되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세 유령신장들.
육인강령술에 의해 생시귀(生尸鬼)가 되어 자신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스승이자 원살각의 각주인 인서옥.
주먹을 쥐고 있는 방사 조의공의 손에 점점 힘이 풀려간다.
숨겨놓은 비장의 수가 있기는 하다.
하나 이상하리만큼 저놈에게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했더니.’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려고 그랬나보다.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이 일어난 것 같다.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쉰 방사 조의공이 고개를 내리며 입술을 뗐다.
“……..기회를 받겠다고 하면 내게 무엇이 득이느냐?”
“좋은 선택을 하셨네요.”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가오려고 했는데,
“다가오지마라. 아직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내 물음에 답변하거라.”
“아까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원살각의 각주가 되도록 도움을 드린다고 했잖아요.”
목경운이 원살각주 인서옥을 고개 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방사 조의공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스승님을 조종해서 자신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의미인 듯 했다.
하나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스승님께서 생시귀가 된 것을 대사형이 눈치 채지 못할 거라 생각하느냐?”
“눈치챌까요?”
“이미 주력과 방술 실력만으로는 스승님에게 버금가는 대사형이다. 직접 대면하게 된다면 필시 눈치 채게 될 게다.”
대사형 조태청.
그는 원살가주 인서옥이 삼십여 년 전에 제자로 받았다고 한다.
그 재능이 워낙 출중하여 차기 원살각주로 이미 내정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주력이 뛰어나다.
그런 대사형의 눈과 감각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태사부님이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직접 대면하지 않게 하는 것 정도는 사부님께서 해주셔야지 않을까요?”
“뭐?”
“밥상을 차려드렸는데 숟가락까지 떠드려야 하는 건가요? 그 정도는 당연히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방사 조의공이 말없이 쳐다보았다.
이 정도 위험부담은 각오하라는 말인가.
조의공이 말없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는 말했다.
“알겠다. 생시귀의 제어권을 내게도 일부 이임한다면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
“그럼 된 건가요?”
“아니. 두 가지 더 있다.”
“두 가지나요?”
“그래. 네놈에게 협조를 한다는 건 나 역시도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다.”
“해서 그에 대한 대가가 더 필요하다는 건가요?”
목경운의 목소리가 다소 작아졌다.
뭔가 감정적으로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나 방사 조의공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어정쩡하게 녀석에게 끌려다니게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해서 무엇을 원하는 거죠?”
“육인강령술.”
“육인강령술?”
“네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원한다.”
죽은 자들의 음한 기운이라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는데 성공한 목경운의 육인강령술(六人降靈術).
이를 본 방사 조의공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이것이 가능한 걸까?
이것은 순수하게 방사로서의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알고 싶다.’
목경운의 육인강령술은 어찌 보면 기존의 약점을 보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시귀 하나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수많은 희생을 생략할 수 있다면 그만큼 효용성이 높은 술법도 없다.
‘과연 가르쳐줄까?’
솔직한 심경으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나 스승인 인서옥이었다면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 원하신다면 가르쳐드리죠.”
“뭐?”
순간 조의공이 멍한 눈으로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이걸 가르쳐준다고?
믿져야 본전이라고 그냥 질러본 것이었다.
그의 진짜 목적은 다음이었다.
한데 목경운이 정말로 육인강령술의 비밀을 알려준다고 할 줄은 몰랐다.
이에 조의공이 다소 흥분했는지 떨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게 정말이느냐?”
“대가로 그걸 원한다면서요.”
“그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정말 비밀을 원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알려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안다고 가능할려나.’
죽은 자의 기운인 사기(死氣) 흡수할 수 있는 특이 체질인 오직 자신만이 가능했다.
청령의 말이 맞다면 살아있는 자가 사기는 체내로 사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안다고 해도 하등 쓸모가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대가는 무엇이죠?”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방사 조의공이 감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함께 하기로 하였으니 맹세해다오.”
“맹세? 무엇을 말이죠?”
“내게 해를 가하거나 목숨을 노리지 않겠다고 맹세해준다면 성심성의껏 너를 돕겠다.”
다른 대가들보다 중요한 건 이것이었다.
이 녀석을 겪어보니 얼마든지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기에 확실히 이 자리에서 해두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것을 맹세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걸 믿진 않는다.
단지 맹세를 하게 된다면 한동안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이를 유지하려 할 테니 그 기간을 벌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대가까지 요구한 이상 확실하게 자신을 따를 거라 믿겠지.’
진짜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놈이 자신을 믿게 한 후에 대책을 세울 것이다.
태사부마저 아무렇지 않게 죽인 놈을 무슨 수로 믿고 따른단 말인가.
방사 조의공이 이런 자신의 속내를 숨긴 채 말했다.
“어떡할 거냐?”
“불안하시다면 당연히 해드려야죠.”
“……….”
뭔가 이 녀석의 말은 공손한 것 같은데 은근히 심기를 긁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자신이 낮춰야 하는 상황이니 내색하진 않았다.
불과 보름 만에 상황이 이렇게 뒤바뀌다니 참으로 공교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가장 사부님께서 안심할 방법이 있거든요.”
“안심할 방법?”
뭘 얘기하려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경운이 자신의 손목에 있던 주언의 쇠사슬을 벗으며 그것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걸 차고서 제게 맹세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뭐?”
순간 조의공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지금 자신더러 저걸 차고서 주언의 맹세를 하라고 하는 건가?
“네놈 지금 그걸 말이라…..”
“묶어.”
-촤르르르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서 녹령 규소하의 쇠사슬이 솟구치며 그의 몸을 구속했다.
‘이런!’
이에 조의공이 손가락을 움직여 약식으로 수인을 맺으려 했는데,
-탓!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헛?”
뭐야? 하는데, 어느새 조의공의 앞에 목경운이 당도했다.
열 보 정도 거리였는데 거의 눈 두 번 정도 깜빡할 사이에 도달하자, 당황한 조의공이 황급히 수인을 완성하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목경운이 그의 손목을 먼저 움켜잡았다.
-꽉!
“흐헉!”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에 사로잡혔다.
괴로워서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목경운이 말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좀 더 자발적으로 충실한 개가 되어주셨으면 해서 기회를 드리는 거랍니다.”
“이, 이거 놓고……”
-차랑!
목경운이 괴로워하는 조의공의 손목에 주언의 사슬을 채웠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저를 믿고 따라주신다면 제가 굳이 사부님께 해코지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하니 지난번에 제가 했던 것처럼 맹세해주시죠.”
-꽈아아아악!
손목이 잡힌 조의공이 괴로움에 몸을 비틀었다.
정말로 부러질 것만 같았다.
“아니면 계속 버텨도 괜찮고요. 하나씩 부러뜨리는 재미가 있겠네요.”
‘이, 이 자식…..’
괴로워하며 목경운을 쳐다보았는데, 이걸 즐기기라도 하듯이 이죽거리면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의공은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놈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맹세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자신의 말대로 할 것이다.
이에 조의공이 고통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나….나 조의공은 목경운의 뜻을……”
“아아. 목경운이 아니라 정(正)이라고 해주세요.”
“뭐!?”
조의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주언의 계약은 자신의 진명으로 해야만 의지를 속박할 수 있다.
당연히 연목검장의 자제이고 그들 모두가 목경운이라 불렀기에 이걸로 의심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한데 이름을 속였던 거라고?
‘고작 이런 어처구니 없는 수에……’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자 그만 놀라시고 제대로 해주실까요.”
-꽈아아악!
목경운이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에 조의공이 황급히 말했다.
“끄으으. 나…..나 조의공은 정(正)의 뜻을 받들겠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쇠사슬이 찰랑거리며 떨려왔다.
그러자 목경운이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헉….헉…..”
얼마나 아팠는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땀범벅이가 된 조의공이 자신의 손목을 붙들고서 이를 악물었다.
제자로 받았던 녀석에게 주언의 맹세까지 하다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괴로워하는 그의 어깨에 목경운이 손을 얹고서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제자를 도와주신다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거지?’
아무래도 마귀 놈을 제자로 받았던 것 같다.
* * *
이곳은 천지회의 외성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기방인 홍혜방이었다.
그곳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먼 산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 고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삼대 살수 집단 중 하나인 비살문의 문주 후보인 하채린, 아니 그 몸에 빙의해 있는 고찬이었다.
‘빌어먹을. 어디다 시선을 둬야 하냐.’
고찬은 진심으로 곤욕스러웠다.
여행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화장을 하게 되었다.
맨 얼굴 만으로도 상당히 미인인 하채린의 얼굴이 고수라 할 수 있는 기방 여행수의 솜씨가 닿자 더욱 화사한 꽃으로 변모했다.
‘미치겠군.’
한데 고찬이 이렇게 곤욕스러워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기방의 기녀들이 대기하는 공동 방이었는데, 이들의 옷들이 하나 같이 속이 전부 보일만큼 얇아서 조금만 뚫어지게 보면 전부 보일 지경이었다.
“어머. 언니. 너무 그곳에 힘 준 거 아니에요?”
“얘는. 오늘 같은 날에 힘을 주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니? 그러는 너도 속살이 전부 보이는 게 아주 작정을 했구나.”
“꺄르르르. 맞는 말이에요. 오늘 같은 기회를 어찌 놓치겠어요.”
한껏 의욕이 넘쳐흐르는 기녀들의 대화에 고찬은 귀만 쫑긋거리며 고개를 천장으로 향했다.
듣자하니 오늘 굉장한 손님이 예약을 했다고 한다.
가장 예기에 능하고 미색이 뛰어난 기녀들로 준비해달라고 해서 이러는 모양이었다.
[천지회에서 꽤 높은 직위를 가진 분이 온다고 하더구나.]여행수의 이 말에 옳다구나 싶어서 자신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거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여기 있는 마흔 명 정도 되는 기녀들 중에 여섯만 안에 들어갈 수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언니언니 하면서도 견제를 하는 게 장난이 아니다.
웃으면서 기 싸움을 하는데 피곤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주인인 목경운을 위해서 천지회 내부에 잠입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가 고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거기 너.”
“………”
“신입. 너 말이야.”
그 부름에 고찬이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앞에 서있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성숙한 기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건방지게 언니가 말하는데 대답도 안한다라. 참 대단한 신입이네. 누가 너 더러 이 방으로 들어오랬어?”
“어…..음…..”
이걸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기녀치고 20대 중반이면 나이가 꽤 되는 것은 알겠는데, 자신의 실제 나이는 이 육신과 다르다.
그래서인지 선뜻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연기를 해야 하는데, ‘언니’라는 말을 하자니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에 고찬이 괜한 시비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끝까지 대답을 안 해?”
그러기가 무섭게 20대의 기녀가 갑자기 고찬의 뺨을 향해 따귀를 날리려했다.
절정의 고수의 육신에 빙의해있는 고찬이 당연히 따귀에 맞을 리가 없었다.
-휙!
날아오는 기녀의 손목을 가볍게 피했다.
이에 기녀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언성을 높였다.
“어쭈. 너 지금 언니 손을 피해?”
더 상대하면 피곤하겠다고 여겨진 고찬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보게. 소저. 나는 소저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네. 하니 이쯤에서 그만하시게.”
이런 고찬의 말투에 기녀의 표정이 멍해졌다.
“뭐야…….그 아저씨 같은 말투는.”
“………”
그런 기녀의 말에 고찬이 순간 아차 싶었다.
젊은 여인들의 말투를 어느 정도 따라했어야 했는데 순간 시비를 피한다는 게 실수 했다.
그러는데 기녀가 말했다.
“이번에도 언니 손 피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기녀는 어떻게든 따귀를 날려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었다.
이에 고찬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계속 언니 언니 하는데 소저…..아니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을 걸.”
“뭐?”
“이렇게 보여도 나 스물일곱이야.”
고찬이 대충 그녀보다 많아 보일 나이로 말했다.
언니 언니 하면서 위계질서를 따지는 걸 보니까 좀 더 많은 나이로 얘기하면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괜히 여기서 분쟁을 일으켜서 일을 망칠 순 없었다.
그러는데 기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하. 그러셔요. 신입인데 보기랑 다르게 나이가 좀 있다 이거네.”
“흠흠. 그러니 이쯤에서 서로 괜한 기싸움은 그만하…..”
-슥!
기녀가 자신의 양 소매를 위로 걷어 올리더니,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
고찬은 진심으로 이 계획을 선회할까 고민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