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56
755화 개미굴
벽 너머에서 애타게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거에 눈 하나 깜짝할 나와 냥펀이 아니다.
이제 보니 벽 안에 뭔가를 둔 게 아니라 벽 자체에 놈을 박아 둔 형태.
한마디로 살아 있는 상태로 시멘트를 부어 버렸다는 말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녀석일 리가 없다.
‘저렇게 갇혀 있는데도 멀쩡한 것만 봐도 그렇지.’
자고로 이상한 녀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상책.
“이야아. 여기 어딘가 보물이 있을 거양.”
“그럼, 그럼. 하다못해 먹을 거라도 있지 않겠어?”
“무시하지 말라고!”
자연스럽게 잡담을 나누며 복도를 따라 걸었으나.
-드드드득.
-쿠르릉.
뻥 뚫려 있던 복도가 막혔다.
복도뿐만이 아니다.
벽이 사라지며 새로운 길이 생기는 건 물론.
문을 열었더니만 뜬금없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벽에 갇힌 녀석이 보였고.
“길을 잘못 들었구만. 흠흠.”
저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이쪽이야. 얼른 와.”
어느 길로 가도 녀석에게로 돌아가는 형태로 성채가 바뀌었다.
변화를 느낀 건 우리뿐만이 아닌지.
-야! 뭘 한 거야?
-성채가 제멋대로 바뀌는데요?
-으으음. 지금도 계속해서 내부가 바뀌고 있네.
벽 너머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원인은 보나 마나 벽에 갇혀 있던 녀석인데.
-콰아아앙!
혹시나 싶어서 벽을 두들겨 봤지만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수복된다.
재차 부숴도 마찬가지.
심지어 강도가 더 단단해지더니 이제는.
-카아앙!
무슨 쇳덩이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튕겨 나간다.
파이어 밤이나 다른 스킬은 먹힐지 모르겠으나.
“그래 봤자 소용없지! 아니, 무시하지 말고 나 좀 빼 줘!”
반응을 보아하니 그것도 정답은 아닌 거 같았다.
작게 혀를 찼다.
귀찮게 달라붙기는.
애초에 성채 전체를 변화시킬 능력이면 알아서 빠져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것보다.
“쟤 NPC일까, 아니면 괴이체일까.”
“모르겠는뎅.”
녀석의 정체가 의문이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NPC 같다만 성채가 변화할 때 권능에 잡힌 게 없다.
스킬이나 권능이 아닌 고유 능력으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데 종족은 암만 봐도 인간이고.
종족 특성이 아니라면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건 괴이체뿐이다.
그것도 아니면.
‘혼돈의 파편이거나.’
이 가능성도 버리지는 않았다.
한 층에 혼돈의 파편이 여럿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이곳이니까.
그 꼴을 숭배자의 왕이 보고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확인해 보면 그만.
다른 건 몰라도 숭배자랑 같은 편은 아닐 거다.
그랬다면 저렇게 갇혀 있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차피 올 거면서 튕기기는.”
“그건 아니고 그냥 널 날려 버리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서.”
“오옹. 원인 제거! 완벽한 해결법이징.”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검을 뽑았다.
실제로 공격할 생각은 아니다.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지.
아직까지는 그리 공격적인 성향은 아닌 거 같다만 혹시 아는가.
당장 도움이 필요해서 이빨을 감추고 있는 걸지.
덤으로.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츠즈즈즈.
녀석의 정보를 읽어 냈다.
[우리 집 개미굴]-상급 괴이체입니다!
-집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적 있나요?
-사라지거나 없어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잃어버린 게 맞긴 할까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괴이체였다.
그것도.
“냥펀.”
“으음?”
“저 녀석, 상급 괴이체다.”
“으에에엥?!”
지금껏 만나 본 적 없는 상급 괴이체.
그렇다는 건.
“숭배자 놈들이 널 가둔 거군.”
“아, 그 녀석들. 무작정 찾아와서는 에이잉. 개념 하나 잘못 훔쳤다가 이 꼴이.”
이 녀석이 여기에 박혀 있는 것도 숭배자들이 컨트롤하기 힘들어서일 가능성이 컸다.
공사 중이었던 성채도 이 녀석의 힘을 줄이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고.
성벽에 박아 넣은 개념도 영향력을 빼앗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제멋대로 모양을 바꿔 대면 거점의 가치가 없다.
이거 알고 보니까.
“숭배자 놈들이 성채를 만든 게 아니라 이곳을 사용한 거였네.”
“공블공블.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냥?”
“어떤지 봐야지.”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는 아닌 거 같으니.
아마 녀석이 훔쳤다는 개념 때문에 저 꼴이 된 거 같다.
‘노린 거겠지.’
녀석이 훔쳐 갈 걸 알고 준비해 둔 개념일 거다.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오는 살충제 같은 거지.
‘대충 느껴지기에는 그리 호전적이지는 않아.’
검을 쥐고 지척까지 다가갔음에도 별다른 반응도 없고.
우리에게 적대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나 좀 꺼내 주라. 하는 김에 성채 곳곳에 박힌 개념도 뽑아 주고.”
녀석이 몸을 비틀었지만 돌 부스러기 몇 개 떨어질 뿐 별 힘을 못 쓴다.
“그 망할 개념 때문에 힘을 온전히 쓸 수가 없거든. 뭐랄까. 몸에 돌멩이 몇 개 박아 둔 기분? 무슨 느낌인지 알지?”
“모르지. 그걸 어떻게 알아.”
몸에 돌멩이 박힐 일이 얼마나 있다고.
화살이나 칼 같은 건 박혀 봤지만.
대충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빼내 주는 건 할 수 있지. 그런데.”
툭. 녀석이 갇힌 벽을 두드렸다.
“네가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르잖아? 개념이 섞인 벽인데 이거 부수려면 고생도 좀 할 거고.”
“나를 뭘로 보고! 나만큼 얌전한 괴이체가 없는데. 절대 공격 안 해! 진짜루!”
“말로는 다 한다 이거지.”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뎅!”
“아니, 진짠데. 거짓말 관련된 개념 있는 거 아니면 괴이체는 거짓말 못 해.”
의외의 정보를 말해 준다.
그러고 보니 괴이체 놈들은 거짓말을 안 했지.
행동 원리 자체가 자신이 보유한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는 거지.”
“그럼 도와주면 너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
“성채 쓰려고? 그거야 문제는 안 되는데.”
눈을 굴리던 녀석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쓰는 건 자유인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난 모른다?”
가릴 거 없이 드러나는 광기와 혼돈.
말이 통한다 한들 이 녀석이 괴이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괜찮아.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자고.”
성채에 상급 괴이체가 사는 걸 안 이상 이곳을 사용할 일은 없을 거다.
숭배자처럼 놈을 통제하거나 억압할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우리는 그런 게 없으니까.
뭐, 이대로 봉인해 둔 채 사용해도 되기는 한데.
‘언제 빠져나올지 모른단 말이지.’
계속 봉인된 채로 있으면 다행인데 빠져나오면 무조건 보복이 들어올 거다.
그렇게 된다면.
‘성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멸할 가능성이 크고.’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데 불안 요소를 안고 가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전문가들이 있으니 녀석들의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이다.
“그보다 여기 우리 말고 사람 더 있잖아. 이쪽으로 보내 줘. 걔네가 동의 못 해 주면 못 풀어준다.”
“잘 보이란 말이징. 너의 무해함을 어필하라구!”
“으으음. 잠깐만. 어디로 보냈더라.”
어디론가 보냈다?
녀석이 뭔가 힘을 사용한 게 분명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이나마 탐사대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단순히 성채가 미궁처럼 변하면서 멀리 떨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확실히 여긴 못 쓰겠군.’
지금도 이 정도면 나중에는 더 심해질 게 분명했다.
냥펀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오. 찾았다.”
-쿠르르릉.
녀석이 눈을 깜빡이자 벽이 움직인다.
여러 개의 겹문이 연달아 열리듯 벽이 갈라지며 그 너머에 있던 공간이 이쪽으로 다가왔으니.
“이블아이! 무사했군!”
“냥펀?”
“바, 방금 뭐였죠?”
“살려, 사람 살려.”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들이 우리를 불렀다.
도대체 어디로 갔다 온 건지 식은땀을 흘리는 건 물론이고 켈런은 무기까지 들고 있다.
츠므라는 기절하기 직전이고.
“안녕한가! 이 몸은 오차르. 얌전하고 안전하며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참된 괴이체지.”
발랄하게 인사하는 녀석.
이름이 오차르였군.
아무튼.
“괴이체?”
“어쩐지 처음부터 수상했어, 여기.”
“잠깐만요. 오차르면 설마?”
“으아아아! 살려 주세요! 저 같은 거 먹어도 맛없어요!”
반응을 보아하니 다들 아는 눈치다.
“지금이 잡기 딱 좋은 상태 같군.”
바로 쌍검을 들고 오차르를 노려보는 켈런을 붙잡았다.
놀라기는커녕 바로 기회를 잡는 건 좋은 행동이긴 하다만.
“녀석과 거래할까 해서. 잠깐만 참아 봐.”
“괴이체랑? 녀석들을 믿어?”
“거짓말만 안 하면.”
눈을 찌푸리는 켈런이 입을 다문다.
이들은 전문가였으며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괴이체가 직접 말한 거면 지키겠죠.”
“완전히 믿을 건 아니지만 말이네. 원숭이 손처럼 과정이 비틀어질지 모르니까.”
원숭이 손이라.
나도 아는 이야기다.
대충 돈이 필요하다 하니 가족 중 한 명이 죽어 보상금을 받았다는 그런 내용.
괴이체와의 거래가 이런 식이다.
거래 내용이 촘촘하든 듬성듬성하든 빈틈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놈들은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이곳을 못 쓴다는 건 분명하고 안전하게 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니까요.”
“저도 찬성입니다!”
레베카는 녀석의 은혜 갚기보다는 여기를 빠져나가는 데 중점을 둔 거 같지만.
“그럼 그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 주지.”
켈런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더니 검을 도로 넣는다.
지금 녀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가늠해 본 모양.
아마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거 같다.
“아. 너를 구속하고 있는 개념들 빼내면 우리가 가져가도 되징?”
“가져가면 나야 좋지. 옆에 두기도 싫다고.”
덤으로 개념도 챙길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역시 냥펀. 이 와중에도 챙길 건 챙긴다.
결정은 끝났고.
“개념의 위치.”
“내가 안내해 줄게.”
오차르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복도가 뻗어 나간다.
네 갈래 길.
‘총 4개, 아니지. 5개군.’
녀석을 가둔 벽에도 개념이 박혀 있을 테니.
상급 괴이체를 잡아 두려면 개념이 5개나 필요한 건가.
확실히 괴물이다.
진짜 싸워야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감이 안 잡힌다.
어째서 레베카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는지 알 거 같다.
그럼.
“다들 움직이자고.”
각자 방향을 정한다.
“저쪽은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군.”
마일러는 성벽에 있는 것을 제거하러 움직였고.
“음? 제가 아는 개념이네요. 저긴 제가 할게요.”
레베카는 정원으로 향했다.
“넌 나랑 같이 간다.”
“저 말입니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요.”
“그냥 불만 밝히고 있어. 저기 어두워 보이니까.”
“흐이이익!”
켈런은 츠므라를 끌고 어두운 복도로 걸어갔으니.
“이쪽 먼저 깨면 되나.”
“그런 듯?”
나와 냥펀은 녀석을 가둔 벽부터 없애기로 했다.
다만.
“넌 저쪽으로 가야 될걸?”
오차르가 내게 한쪽을 가리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저기에 내가 훔쳤던 개념이 있거든.”
“이따 같이 가면 되지.”
“아냐. 저건 혼자 가는 게 편해.”
여러 명이 가면 불리한 개념인가.
개념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게다가.
“네가 제일 강하잖아. 다른 애들이 가면 죽을걸?”
아무래도 저기가 메인인 모양이다.
슬쩍 냥펀과 눈이 마주쳤다.
“에에. 파이팅?”
“…고맙다.”
양손으로 주먹을 쥐는 냥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끝없이 이어질 거 같은 계단을 내려간 후 깨달았다.
“아하.”
탐사대 멤버들이 어디로 갔었던 건지.
어째서 괴이체의 이름이 우리 집 개미굴인지.
“이거 완전 딴 세상이잖아.”
성채 지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공간.
뒤엉키고 어질러진 지하에는.
-또각또각.
-찌리리리링.
-땡그렁. 텅!
-뻐꾹!
생물, 물건 할 거 없이 온갖 게 있었다.
심지어.
“오오오! 형님! 구해 주러 오셨군요!”
아는 얼굴도 있다.
내게 달려오는 녀석을 피했다.
일단 뭐라도 입혀야 할 거 같다.
“저리 꺼, 아니 이거라도 입어라.”
“형님이 옷을 하사하신다아앗! 섹시가이 김정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간직하지 말고 입으라고.
어째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꿈틀.
[개념, 부끄러움이 꼬물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