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73
772화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이란 무엇인가.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다.
사전에도 가타부타 설명 없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 적혀 있으니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부끄러움이란 자연, 스러운 감정이기 때, 문이다.】
하이덴의 말마따나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고.
‘그게 내 삶을 대표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지만.’
다만, 내가 사용해야 할 부끄러움이란 단순 감정이 아니라 개념.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
시작은 다양한 시도부터.
괴상한 짓거리를 한다거나 옷을 훌렁 벗는다거나 그런 거.
하이덴은 아예 마을 사람들까지 불러와서 일을 진행시켰다.
“…젊은 친구가 딱하군.”
“머리에 이상이 있는 걸까요?”
“그래도 몸은 튼튼하네.”
정작 하이덴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모습을 감췄다.
구경하랍시고 음료과 간식거리까지 남겨 둔 상태.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 짓을 오죽 많이 했어야지.’
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똥밭에서도 구를 각오를 해야 했다.
흙탕물에서 뒹굴든 앞구르기를 하든 간에.
남 시선 신경 쓰면서까지 움직일 정도로 탑은 여유로운 곳이 아니다.
옷을 벗는 거?
“뭔 짓거리를 해도 섹시가이보다는 낫지.”
적어도 난 노출증은 아니잖아.
걔는 개념까지 노출증이다.
정작 녀석이 그러는 꼴을 보면 열불이 터지며 괜히 내가 부끄러워지지만.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데.
-이 몸은 쁘찡 연합의 섹시가이다! 공듀님의 의지를 받은 사나이! 형님, 보고 계십니까!
이 지랄을 하니 안 부끄러울 수가 있나.
특히 나를 콕 집어 칭찬해 달라는 어필을 팍팍 할 때가 더 그렇다.
뭐랄까, 그건.
“으음. 모르는 척하고 싶은 그런 느낌이지.”
난 이 사람 몰라요.
일행 아니에요. 나 보지 말아요.
그래. 대충 이런 느낌.
이게 맞나?
이후에도 몇 가지 시도를 더 해 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타닥.
모닥불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갔을 때쯤 하이덴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겪었으니 알 것, 이다. 그대는, 행위적인,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 는 철면피다.】
“누구보고 철면피래. 나만큼 성실하고 진실되게 산 사람이 어디 있다고.”
【무장부터, 그 꼴인, 관심 종, 자가 할 소리는 아니구나.】
펠라인 풀 세트.
일곱 빛깔 충만한 모습도 이제는 당당하다!
마음가짐의 변화랄까.
스스로가 떳떳하면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은 법 아니겠는가.
절대 정신 보호 맥스를 찍어서 그런 게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신 보호 최대치까지 찍은 것도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 같은데.’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나도 모르게 지난 삶을 반성…….
반성은 무슨. 지금까지 해 왔던 건 모두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다.
그때 할 수 있는 선택들로 온갖 시련을 이겨 낸 거니까.
지금 하라 해도 다시 할 수 있는 일들뿐이다!
암. 그렇고말고.
【유독, 스킬 레벨이 낮은 게, 있던 거 같던, 데.】
“으음. 피곤하군. 역시 심적인 부담이 컸던 건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계승자가 되니까 못 보던 게 보이는 건가.
최근에 얻은 악마화와 절대 영역.
두 스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스킬은 최대치까지 레벨을 올린 상태.
딱 두 개. 예외가 있었으니.
[구애의 춤(A) Lv.5] [치명적인 포즈(C) Lv.7]강력하지만 섣불리 꺼낼 수 없는 비기라고나 할까.
절대 쓰고 싶지 않아서 안 쓰는 게 아니다.
너무나 파괴적인 위력에 비장의 한 수로 사용하기 위해 꽁꽁 싸맸을 뿐!
힐끔 하이덴을 바라보자 측은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다.
“표정이 이상한데?”
【난 가면을 쓰고, 있다.】
가려도 보인다고.
허여멀건 가면을 쓰고 있으면 뭐 하나.
눈빛부터가 불손한데.
한번 녀석을 노려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저 훈련하지.”
녀석과의 훈련.
단순 부끄러움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개념을 다루는 것.
그 힘을 제대로 꺼내고 장악하는 것 또한 훈련에 포함되어 있다.
격돌하는 힘.
힘겨루기의 결과는 결국 그 존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개념이 삶을 얼마나 대표하는지에 따라 갈리니까.
일생을 별다른 고난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자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
둘 중 누가 더 나은 삶을 살았는지는 답할 수 없다.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
다만 둘 중 어느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쉽냐고 묻는다면 후자.
【그대를 위해, 검을 들겠다.】
위선.
그건 놈이 가진 또 다른 개념이었으며.
【부디 사라지, 지 않기를.】
-구오오오오!
녀석의 검이 움직였다.
위선을 담아.
내면과 다른 겉으로만 드러나는 힘을 넣어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으나 그대로 맞이했다가는 치명타가 될 게 분명한 공격.
난 검을 들지 않았다.
대신.
-우우우웅!
그 앞에 선 채 개념을 움직였다.
-콰아앙!
녀석의 검에 깃든 힘이 일순간 흔들렸지만 그대로 몸을 강타했다.
“크으읍!”
흉갑이 찌그러지며 격통이 뒤따른다.
그대로 뒤로 몇 바퀴를 굴러 땅에 처박히고 다시 일어섰다.
“다시.”
하이덴은 묵묵히 검을 띄웠고.
-콰아앙!
-콰가각!
-쿠웅!
이후에는 개념, 폭발을 이용해 놈을 공격하는 것까지.
동이 틀 때까지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행위가 이어졌다.
낮에는 부끄러움의 단서를 찾기 위해.
밤에는 이미 다루고 있는 개념을 다루기 위해.
쉬는 시간마저 없애 버리며 몰아붙였다.
자그마치 일주일간.
“뒈지겠네. 진짜.”
초인의 영역에 들어섰지만 생명체인 이상 적절한 휴식과 수면은 필요한 법.
장시간 수면을 하지 않은 것도 피곤한데 계속 몸을 굴리고 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기분.
“그에에.”
“괜찮으니까 나와 있어.”
덕춘이를 통해 상처를 회복하지도 않았다.
스스로의 재생력을 믿고 훈련을 반복했지.
밥은 당연히 못 먹었고 물만 워터 스킬로 간신히 마셨다.
그것마저 안 마시면 죽을 테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확실히 능숙해졌어.’
뭐든 하다 보면 느는 법.
그게 운동이든 스킬이든 개념이든 바뀌는 건 없다.
-후웅.
-텅.
기습적으로 녀석이 던진 검이 가볍게 흉갑을 때렸다.
원래라면 그대로 맞고 나가떨어졌겠지만.
【이 정도, 면 나쁘지 않, 다.】
이제는 아니었다.
검에 담겼던 개념이 반골에 의해 상쇄되었으니까.
하이덴이 전력을 다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괜찮다.
나도 그렇고 하이덴도 그렇고 단기간에 그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길 원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것들도 쓰면 어지간한 건 막을 수 있겠어.”
굳이 이것만 쓸 필요는 없다.
내게는 악마화와 절대 영역까지 있었으니 이것들까지 활용한다면 개념 공격은 거의 다 막을 수 있다 보는 게 맞았다.
나름 흡족스러웠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으니.
“정작 부끄러움은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거 같은데.”
이쪽은 별다른 성장이 없었다.
부끄러움.
이건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었으니.
【첫 번째는 스스로가, 부끄럽다 느끼는 것. 내가 그러, 하다.】
하이덴처럼 본인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을 겪은 것이다.
자기혐오라 볼 수도 있었고, 본인의 추악한 면모를 뼈에 사무치게 느낀 자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었다.
아쉽게도 이 방식은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떤 이상한 일이든 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한다.
그렇기에 떳떳하다.
자존감이 높은 거라 봐도 무방했다.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도 있고.
그럼 남은 하나는 무엇인가.
【타인에 의한 부끄러움, 그게 그대가, 나아갈 방향성이지.】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나 스스로보다는 남의 시선, 남의 평가가 두려운 부끄러움이 남았다.
의외로 하이덴은 이 부분을 헤집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극복할 수 있, 는 부끄러움은 의미가, 없지.】
처음에는 부끄러울 수 있을지언정 극복하면 그만이니.
당장 나도 처음에는 멤버들한테 쁘띠공듀인 걸 들키는 걸 극도로 꺼렸지만 지금은 멤버들 채팅에서도 컨셉질을 이어 나가고 있지 않던가.
일종의 성장이랄까.
‘…이딴 성장 원하지 않았어.’
왠지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 거다.
【그대가 가장 수치, 아니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무엇인지는 본인, 이 가장 잘 알터.】
놈 또한 알고 있다.
예전에 한 번 내 기억을 읽었었으니까.
【자고로 그런 것은, 스스로 숨기기 마련이지. 잘하고, 있다.】
칭찬이기는 한데 기분이 나쁜 건 기분 탓인가.
【잊지 마라. 항시 드러나지 않아, 도 때가 되었을 때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응원이라도 하듯 녀석이 어깨를 두드린다.
【이만, 가라. 여기서 더 할 것은 없다.】
“이걸로 충분한 게 맞을까?”
살짝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
가능하면 부끄러움을 다루는 것도 익숙해진 다음 가고 싶은데.
물론 내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안다.
99층은 여전히 난리였으니.
약간의 소강상태 이후 다시 숭배자들이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뭐, 마지막으로 해 줄 말이라든가 조언이라든가 없냐?”
포탈 앞에서 녀석에게 물었다.
여전히 실마리가 풀리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한 이야기.
녀석이 유심히 나를 살핀다.
【그대가, 목숨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필사적, 으로 싸웠던 때를 떠올려라.】
필사적으로 싸운 적은 많았으나 그건 전부 목숨이 달리거나 다른 이의 목숨이 달렸을 때의 일이었다.
내가 그런 거 없을 때 필사적으로 싸운 적이 있었나?
고민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게 녀석이 무언가를 건넨다.
무심결에 받으려 하자 녀석이 다시 손을 뺀다.
“뭔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다만. 그대의, 동의가 필요하다.】
심히 수상쩍은 말이었으나 선택은 빨랐다.
도움이 된다면 하는 게 맞았으니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미 난 숭배자의 왕과 싸웠고 현 상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만한 준비를 했는, 데 같은 적에게 연달아, 죽으면 사람이 아니지. 동의, 하나?】
“동의하지.”
조금 말이 센 거 같았지만 순순히 수긍했다.
당하기만 할 거면 왜 노력을 하겠는가.
【그렇다면야.】
스윽.
녀석이 준 건 무슨 종이 같은 것이었는데, 잡자마자 스르르 녹아 내게 스며들었다.
별다른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딱히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의문이 담긴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려는 찰나.
-파앙!
“악! 뭔데!”
녀석이 나를 포탈로 밀어 버렸다.
돌발 행동에 어이가 없는 타이밍,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공정한 합의하에 공약이 걸립니다!] [내가 3번 죽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망이 누적될 시, 일부 정보가 공개됩니다!] [공개 정보: 커뮤니티 닉네임, 커뮤니티 기록] [머리 위로 닉네임이 떠오릅니다.] [공개까지 남은 사망: (0/3)]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 자식?
가면에 가려져 있었지만 녀석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나의 부끄러움, 의 근간은 숨는 것.】
즐거워 미칠 것 같은지 녀석이 몸까지 흔든다.
【그대의 부끄러움의, 근간은 숨기는 것.】
망할 위선 새끼.
사람, 아니 인격을 건 공약을 걸어?
“야 이, 개같은—!”
-파아아앗!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기억났다.
내가 목숨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필사적으로 싸웠던 때를.
60층. 패배의 전당.
단 한 번이라도 지면 닉네임이 박제되던 그때.
이를 악물고 싸웠었다.
-뿌득.
그리고 지금도.
난 이를 갈았다.